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91강,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윤주만목사 2019. 6. 5. 07:14


91,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5:20-28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부활(復活, resurrection))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문화와 언어가 헬라니즘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헬라어를 기반으로 해서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헬라의 사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활입니다

성경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를 공부를 하고 헬라의 사상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 부활에 대해서도 헬라 사상으로 성경을 이해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은 그냥 우리에게 말씀을 하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그것을 헬라의 사상과 겹쳐서 보게 되면 반드시 헬라의 사상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도 내세의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부활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성경에도 부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시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표현해서도 안 되고 이야기를 해서도 안 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

물론 한 성령 안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세의 일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사람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보고 듣는다 해서 그것이 하루아침에 받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내세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게 이해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꾸 이성으로 접근을 하고 있고 자기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장 잘 전하는 자가 누군가를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특히 이 내세의 일에 대해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세는 자기 생각을 집어넣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가 그것을 다 깨닫지를 못하고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가르치는 자가 그 부분까지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들이 가장 쉽게 오류에 빠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자기가 성경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만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도 성령을 받고 있습니다.

 

감동입니다

그것까지 가르치는 자가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영역까지 자기들이 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사람의 이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이 각자에게 임한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사람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발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특히 내세의 일은 가능한 성경에 있는 그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음으로 해서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영의 생명이 사는 것에 대해서 감동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도 영의 일에 대해서는 다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주님께서 표현을 하실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어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말씀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도리어 더 혼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내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 역시도 그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내세의 일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에 불과합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과 철학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은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이 우리가 내세의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헬라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조차도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지 않은 것을 자기들이 지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람의 말로 그것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헬라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런 말에 미혹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으로 역사를 하면 됩니다. 성경이 왜 믿음, 믿음이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믿음이 아니고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내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면 지식이라고 했을 것이 더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세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는 것을 이성적으로 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우리는 그 부활에 대해서 믿는 것이지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람의 언어로 설명해서 이해를 시킬 수 있습니까?

 

부활을 합니다.

심지어는 어느 교회에서는 그 부활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휴거를 한다고 하면서 그 휴거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해서 우리가 부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면 주님께서는 아마도 그림으로 남겨 두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서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면 됩니다. 그 부활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영광 가운데 부활의 형상을 입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지식이 조금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부활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성이 믿음을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세의 일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난 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고 마치 아브라함이 부활을 한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아브라함은 부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부활을 했다면 주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습니다.

아니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믿다가 육체의 생명이 죽습니다. 그러면 육체는 그것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는 썩어 없어지게 되어 습니다. 그러나 그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그 영은 생명이지만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영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자고 있습니다.

왜 잠자고 있는가 하면 그 영이 아직 부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부터 해서 이 세상에 있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의 육체는 썩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은 성도들은 거듭남으로 해서 하나님께로서 난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은 아직 부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잠자고 있는지는 저 역시도 모릅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표현할 수 없어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잠자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잠자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우리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확실하게 믿어지고 있습니다.

 

내 할아버지가 죽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난 영이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로서 죽었습니까? 그 육체는 썩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영이 있는 그 생명을 성경은 잠을 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잠잔다는 말씀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1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믿음의 역사입니다

부활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그리고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것을 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그는 영의 일을 모르고 내세에 대해서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는 지혜가 있는 척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다른 말씀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믿음의 역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의 역사를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과 지식으로서 그것을 알고 싶어 하고 있고 가르치는 자도 그렇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저는 성령의 감동으로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부활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를 해서 사람의 지식으로 가르쳐 드리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멈추고 믿음의 역사로 성령의 감동을 받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제가 드리고 있는 이 말씀에 믿음의 능력으로 역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부활에 대해서 믿을 수 있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해서 그의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것이 능력이 되어서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지도 않는 그들이 그렇게 교회 안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성도들의 자고 있는데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해서 이제 그 성도들이 주님께 붙어 있음으로 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이 죽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죽은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람들은 그 죽은 사람의 영이 살아서 부활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죽습니다.

 

사망입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 인생은 죽는다고 말씀을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인들은 마치 그 인생이 다시 사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의 사람이고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이 아담의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은 자는 썩어 없어집니다.

 

혼동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과 영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것은 육체입니다 그 육체를 보고 다시 산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도 분명하게 사망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이 온 자가 어떻게 다시 삽니까?

 

죽은 자의 부활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죽으신 그 육체가 부활을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활을 하셨습니까? 그 죽은 육체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마치 그 육체가 부활을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3절을 보면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사도 요한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삼년 반 동안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일상생활을 같이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밧모라 하는 섬에서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인자 같은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육체로 부활을 했다면 아니 사람의 지식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하게 인자라고 말씀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가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것을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인가 같은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부활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자기가 환상으로 보고 있지만 이 부활에 대해서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인자 같은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 같은 이입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주님의 부활을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주님의 육체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는 사라졌습니다. 그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았다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아담의 사람도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도 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는 아담의 사람도 있고 그리스도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또 다른 표현으로 내 안에 두 생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의 사람은 모두가 죽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도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 아담의 사람이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을 입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난 육체를 입고 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아담의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론 살아 있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담의 사람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과 같이 산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 안 믿든 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고 그것을 성경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이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부활입니다

그 차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고 아브라함이 부활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이지 실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8:9절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이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것을 인자 같은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로 알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붙은 자입니다

실제 붙어 있는 것을 말씀을 합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붙은 자인가 하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붙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을 고린도전서에서는 붙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영이 있는 성도만이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육체의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에게 붙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가 붙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우리 성도는 부활을 합니다. 우리 육체가 부활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듭난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이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그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가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그것을 떡덩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안 됩니다

내 안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합니까? 그리고 그 영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것을 설명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오직 믿음의 역사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감동을 받음으로 해서 부활을 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부활이고 믿는 부활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한다는 것은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가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부활은 우리 아담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위와 모든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드리실 것입니다.”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는 붙은 자가 되어서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붙은 자가 누군가 하면 우리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 부활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이렇게 부활을 합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됩니까? 저도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믿지 않는 자들도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고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의 부활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받는지는 저 역시도 말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부활에 대해서만 알면 됩니다. 그들이 음부의 고통 중에 어떻게 있는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에 대해서만 알면 됩니다.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고 또 그에게 붙은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을 하면 됩니다.

 

그 후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하고 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내세의 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바치고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 성도가 굳이 알 필요성이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요한계시록 20:14절을 보면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주님은 왕입니다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원수를 그 발아래 두실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굳이 우리가 알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알려고 하다가 스스로의 지식에 빠져 사망에 이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 중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자기들이 받을 것을 영원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성경이 사망이라고 하면 사망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도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만 영생을 합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은 영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은 사망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으면서도 믿지 않는 자들이 영원히 고통 중에서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원수가 마귀냐 아니면 거짓 선지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지막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맨 나중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부활을 하고 난 후에 그들이 고통을 받느냐 하는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론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에 소금치듯 한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것이 비유인지 실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기들이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들이 자기들이 형벌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은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마지막에 대해서 아주 끔찍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영원히 살아서 형벌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에 굴복시키셨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고 말할 때에는, 모든 것을 그에게 굴복시키신 분은 그 가운데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굴복 당할 그 때에는, 아들까지도 모든 것을 자기에게 굴복시키신 분에게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만 보아도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마지막에 어떻게 하실 것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차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문제는 부활입니다

정말 심각할 정도로 이 부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육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붙은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반드시 그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셔야 합니다. 이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을 하시고 이제 강림 하실 때에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들어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문자로 아는데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반드시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그의 영이 거해야 강림하실 때 부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의 영을 주시고 우리도 강림하실 때에 그의 사람으로 부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부활하신 것과 같이 영의 생명이 있어 부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