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93강,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19. 6. 6. 08:38


93,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6절을 보면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장은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교회에 나왔지만 교회 안에서 천국을 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을 비유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나와서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에서 맡겨 주신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 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왼 편에 서 있는 자는 모두가 영벌에 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왔는데 구원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당한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차라리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보는 생각은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도 태평합니다.

단지 교회에 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또 자기가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구원에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줄 생각도 안 하시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버림을 받은 사람 모두 다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이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은 아예 비유에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제가 이미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오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싶고 성경을 묵상하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과연 양과 염소가 왜 분리가 되고 그들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오른편과 왼편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오른편은 구원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왼편은 무엇을 상징하느냐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정욕과 탐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오른 편에 있느냐 아니면 왼편에 있느냐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서 10:2절을 보면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편에 있습니다.

오른편에 있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을 하시고 대 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구원이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을 알고 그 마음이 오른편에 가 있습니다.

 

그럼 우매자는 누구입니까?

자기 장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자기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우매자입니다.

 

교회 안에는 양과 염소가 있습니다.

바로 오른편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왼편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그 오른편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 세상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오른편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리지는 왼편을 더 생각합니다.

오른편이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면 왼편은 바로 이 세상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 보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잘할까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더 많이 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과 왼편에 있는 사람에게 똑 같은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것에 대해서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했습니까? 묻는데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언제 그런 일을 안 했습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35-36절을 보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똑 같은 말씀을 하면서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했다 하지만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주여 우리가 언제 이러한 일을 했습니까?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기가 한 것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겠습니까? 지금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아주 작은 일을 한 것도 다 기억을 하고 있는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 질문을 하고 있지만 이 질문은 모두 영적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지혜자는 어떻게 하든 한 사람이라도 영혼을 구원하는데 자기 마음을 다 두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육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인 이런 일을 한 것에 대해서 육적으로 질문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이 질문이 육적인 질문이라면 과연 누가 의인의 자라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내 주변에는 수많은 작은 소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을 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이 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옥에 갇혔을 때 가서 보아주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일을 다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그 중에 몇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일을 완전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이러한 일을 했느냐고 반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했습니다.

바로 천하 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소자가 영혼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어떻게 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요한복음 6:55절을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무엇을 먹였습니까?

물론 이 세상 육적인 양식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혼의 양식을 먹였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였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소자가 영혼의 양식을 먹지 못해서 배가 주리고 있을 때 의인들은 그 소자에게 영혼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육적인 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있고 영적인 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인은 비록 육적인 양식은 소자에게 주지 못할지라도 영적인 양식은 어떻게 하든지 먹이려고 합니다. 영적인 말씀이라고 하니까 그저 성경에 있는 말씀을 예수 믿으라는 형식적인 것을 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이는 사람이 있고 율법을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인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기 때문에 물론 육적인 양식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양식 예수 그리스도를 먹이고자 합니다. 분명히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예수를 먹이기보다는 율법과 세상 것으로 먹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35,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요한복음 7:38절을 보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성경은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의인들의 마음은 예수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마음에 있습니다. 복음이라고 전하지만 속이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속이 시원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행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염소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행위들을 보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행위를 보고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참 믿음이 좋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소자에게 생수를 마시게 합니다.

영혼에 대한 문제가 속 시원하게 해결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성령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과 외적으로 나타나는 은사적인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다 보니까 자기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 같다가도 늘 찜찜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믿음을 모릅니다.

내 안에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믿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도 없고 믿음이 무엇인지 조차 분별을 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염소들은 자기들 외적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를 보고 마치 진리의 성령이 자기 안에 임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은사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아름답게 보이고 또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구원을 받는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의인은 소자에게 믿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창세기 47:9절을 보면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그 나그네를 우리는 영접해서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육적으로는 세상 나그네를 다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소자 나그네가 되어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그 소자를 영접하여 주님이 계신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나그네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를 보면 나그네도 급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나그네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의 주인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성경 말씀이 무색해 집니다. 성공과 출세하는 자만이 존재하는 교회는 이미 나그네가 아니라 세상의 주인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요한계시록 3:17절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

 

모두가 율법의 옷을 입으려 합니다.

그러나 율법의 옷으로는 단 한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면 거의 모두가 부자가 되어 율법의 옷을 입고 그것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아주 작은 율법의 의를 보면서 마치 구원의 옷을 입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이렇게 율법의 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의 옷을 입기를 좋아하느냐면 그것은 눈에 보이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때문에 그것을 입고 있으면서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의인들은 소자에게 의에 옷을 입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히고자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염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히기 보다는 율법의 의에 옷을 입고 그것을 보면서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소자들이 정말 필요한 구원의 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옷을 입으려고 하는 사람은 의에 옷을 입을 수 없고 의에 옷을 입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율법의 옷을 사도 바울과 같이 배설물처럼 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얻기 위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율법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서로를 칭찬해 주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옷을 다 입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율법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으면 최고로 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도 바울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소자에게 이 옷을 입혀 줍니다.

구원을 아직 못 받은 구원에 대해서 모르는 소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지금도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은 이렇게 소자에게 의에 옷을 입혀 주고 있습니다.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아가서 2:5절을 보면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사랑하면 병이 납니다.

정말 천국에 가고 싶으면 병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어 병이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정말 구원을 사모하고 있는데 구원에 대해서 확증을 할 수 없다면 병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병든 자를 돌아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깊은 상심의 병이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상사병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병든 소자를 영접해서 그 병을 치유해 줍니다.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줍니다.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구원에 확신을 갖고 그것을 확증하고 있는 성도는 마치 자기 병이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것은 정말 영적으로 구원에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자가 천국에 가고 싶어서 병이 났는데 그 소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소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서 그 병이 치유가 됩니다.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갈라디아서 3:23절을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면 율법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율법이 결국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모르고 율법에 매여 아직도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소자를 옥에서 끌어 내 줍니다.

율법이라는 옥에 갇혀 있는 소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자유를 줍니다. 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이라는 매임에서 벗어나야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대는 오히려 율법을 사모하고 있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의인들이 이 일을 했습니다.

가장 작은 소자에게 이런 영적인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영적인 일을 육적으로 물어 보시니까 의인들은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했습니까? 하고 반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7-40절을 보면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의인들은 실제적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어 오직 영혼 구원만을 생각하고 소자를 대하더라도 그 영혼을 어떻게 하면 구원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지극히 작은 소자를 천국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럼 악인들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44절을 보면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했다는 것입니까? 안 했다는 것입니까?

이들은 자기들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육적으로는 소자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소자의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45절을 보면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천국에 온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긴다 하면서 작은 소자를 위해서 외식을 했지만 실제 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한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몰론 소자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수고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인들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혼 구원에 마음이 있는데 악인들의 마음은 영혼 구원보다는 자기들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물으시니까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안 했느냐고 반문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했습니다.

육적으로는 소자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주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들이 한 행위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왼편의 일에, 종교적인 행위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분명히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인은 천국에 온 지극히 작은 소자를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천국에 온 작은 소자를 위해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일을 했지만 영혼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 적인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일이라고 착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복음에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는 지극히 작은 소자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을 받게 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양과 염소가 있습니다.

내가 양인가 염소인가를 분명히 분별을 해야 합니다.

양은 자기가 지극히 작은 소자를 위해서 수고를 했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염소들은 자기들이 언제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못한 것이 있냐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열심을 다 했지만 천국에 온 지극히 작은 소자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천국에 온 지극히 작은 소자를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소자를 구원하는 일은 물론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어서 늘 작은 소자를 보면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혼구원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신앙적인 일이 염소와 같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염소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른편에 있는 지혜로운 성도는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에 칭찬을 듣고 천국의 모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영혼 구원을 위해 수고를 해서 주님 오시는 날 천국의 모든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