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강,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이사야 29:13-14절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시대는 변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납니다.
조선 시대 사람이 현대인과 만나서 대화를 한다면 아마 벽에 부딪쳐 서로가 자기주장만을 하다가 끝이 날 것입니다 조선 시대도 그런데 고려 시대 그 이전에 삼국 시대를 가면 도무지 말이 안 통하게 됩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부모와 자식도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가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그렇게 서운 했는데 지금은 내 아들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서운합니다. 아마 내 아들도 똑 같은 것을 겪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문명이 발전을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문명에 빨리 적응을 하는 젊은 세대와 옛 것을 그리워하는 기성세대의 생각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변화하기 보다는 안주하기를 바라는 기성세대와 어떻게 하든지 변화를 하려는 젊은 세대는 어쩌면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서로를 이하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급속하게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인생들이 똑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이 사상은 절대로 변하지를 않고 오히려 더욱 발전을 해서 자기가 율법주의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단은 지혜롭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사단이 하는 일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 세상 다수의 사람들은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사람 뿐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 온 다수의 사람들도 역시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진단을 못 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는 하나님께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거의 모든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만 그랬습니까?
노아 홍수전에도 율법주의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물로 심판을 하셨고 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 내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그 과정에서도 믿음이 있는 자가 거의 없어서 광야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육적인 죄를 지어서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바벨론 포로 이전에 벌써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 간 것은 율법주의가 되어서 믿음을 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절대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저를 공격하실지 몰라도 제가 보는 한국 교회의 믿음은 거의 실종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들은 믿는다고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입술로는 믿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에는 믿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면서 열심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고 기독교가 3%를 넘어 가는 순간 타락의 길로 접어들어 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기독교는 이런 태평한 세대에 진리를 사수하기 보다는 오히려 핍박과 박해를 받을 때 진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 많다고 좋아할 것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체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다니시고 또 제자들을 강권적으로 부르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스스로 찾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말씀을 합니다. 사람은 입술로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있다고 아주 자신 있게 말 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엉뚱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세속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사람의 심중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병자입니다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미혹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음에는 예수가 없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심령까지도 감찰을 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 모슨 생각을 갖고 있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 합니다.
아주 최고의 존칭을 써 가면서 입술로는 존경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예수, 예수, 예수 오직 예수를 외치고 있지만 그 마음은 예수를 떠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만 하면 그가 무엇을 해도 다 용납이 된다는 것을 그 마음에 예수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최고의 존칭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마음이 떠나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 성도는 그것을 분별하기 힘듭니다.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또 장기간 세뇌를 당하다 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껌뻑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실제로는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람의 계명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도무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내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행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5:1-9절을 보면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사람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말씀 그대로 사람이 만들어 낸 계명이 사람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을 했으며 만약 공경하지 않고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십계명에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이유가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부모를 공경하지 못 한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으면 그것은 괜찮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이유는 하나님을 더욱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부모에게 조금 소홀하게 했어도 하나님을 잘 공경했으면 괜찮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사람들의 생각도 거의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억지로라도 제가 하는 비유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예수를 아직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에게는 5남매가 있어서 그 중에는 한 사람은 예수를 믿고 나머지는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데 그 중에 한 형제가 하필이면 일요일 날에 결혼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녀가 바로 맏이입니다
부모는 큰 아들이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이라면 생각도 안하고 결정을 다 했을 것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자기가 큰 아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교인들은 그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스스로 믿음이 든든하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조금 상하고 그 형제들의 마음이 상하고 하는 것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가 바로 외식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까?
행위가 더 중요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있다면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마음에 있는 믿음을 받으셨기 때문에 행위의 외식을 취하기보다는 마음을 드리고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믿지 않는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서 오히려 그 일로 그 형제들까지 구원을 할 수 있는데도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때 이겨서 내 부모 형제가 교회에 나왔다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율법주의자를 만들어 교회에 나왔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상에 있는 사람 보다 더 불쌍해 져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의 계명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미 마음으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데 사람의 계명에 미혹이 되어서 헛되이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이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는 일인데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 율법을 다시 살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다시 살려서 그것을 지키고 있는 것은 사람의 계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율법을 지키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폐해 버린 그 율법을 사람들이 가르치면서 그것을 지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지옥에라도 기꺼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물불을 안 가립니다.
그것이 사람의 계명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는 자기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폐해 버리신 율법을 다시 사람들이 살리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 편리에 따라서 꼭 해야 하는 것은 없애 버리고 있습니다.
의식은 자꾸 정당화해서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준 말씀은 별로 이익이 안 되니까 없애 버리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와 찬미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에베소서 고린도전서에 성도가 모일 때 반드시 시와 찬미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귀찮으니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기들 마음대로 없애기도 하고 또 예수님께서 폐하신 것도 살리기도 하면서 그것을 가르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마음에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야 하는 것을 도무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경외가 무엇입니까?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이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전적인 뜻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앎으로 해서 그 은혜에 공경을 하고 또한 내가 구원하시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계명으로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는 심지어는 이 세상의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알파코스라든지 명상 기도 같은 것이 아무 거리낌이 없이 교회 안에 들어와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것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외식은 겉치레 또는 바깥쪽을 장식하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는 믿지 않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바깥 바로 행위로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을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행하는 모든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가 외식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전형적으로 외식에 빠져 있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수천억을 들여서라도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다. 아주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교회 안에서 그것을 반대를 하면 아마 이단자로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인데 수천억의 돈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에 힘을 보태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전을 무너뜨려 버리셨는데 이 시대는 저 유럽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면서 교회를 성 같이 짓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혀 영적인 분별을 하지 못하고 아주 자랑스럽게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고자 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일지라도 외식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외식을 하고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꿈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그것보다 더 호화롭고 웅장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들에 핀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보다 못한 그것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이 시대도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그 일을 하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그 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가르침으로 입술로 하나님을 존경하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에 따라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외식을 하는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못 알아보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다고요?
사람의 계명으로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 예수를 믿는다고요?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에 불과한 것이지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면서 입술로 예수를 믿는 다고 떠들고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 무엇을 나타내 그것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외식이며 결국 입술로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계명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하나님을 위하는 그 열심이 로 사람의 계명에 따라 외식을 하고 있다면 이스라엘과 같이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한국 교회도 외식으로 가득 차 있고 소경된 자들에 의해 소경이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사람의 계명으로 외식하면 불행입니다.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이 없어지느냐면 바로 사람의 계명에 따라 외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분별할 수 있는 명철이 있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율법으로 인하여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폐해 버리신 그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자 하는 순간 그것이 사람의 계명이 되어서 다시 가르치고 지키려고 하는 순간 그에게서 지혜가 사라지고 명철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외식을 하는 순간에 지혜자의 지혜가 사라집니다.
지금 교회 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가 없고 명철이 없다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영적으로 바른 것을 분별하지를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계명으로 외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외식을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율법의 의로 자기의 겉모습을 가꾸고자 하는 그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들이 행했던 외식을 그대로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조차 인식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율법이 성행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지혜자의 지혜가 사라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어져서 분별을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어 세속화에 물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율법주의는 안 변합니다
사도 들이 있던 그 시대도 벌써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를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와 싸웠던 초대 교회의 모습은 사리지고 오히려 율법을 연구를 하면서 더욱 더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단 한 가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순간 그것을 용납하는 순간 지혜자의 지혜는 사라지고 명철자의 총명은 가리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것조차 분별이 안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 가를 늘 깨어 자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진리를 지키는 것은 싸움입니다.
영적인 싸움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 생명까지도 버렸고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어 지금 내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마음에 믿음이 없으면서도 얼마든지 믿음이 있는 것처럼 자기를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사단은 너무도 지혜롭다는 것을 알고 늘 깨어 지혜와 명철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영혼에 대해서 깨어 간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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