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9강,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윤주만목사 2019. 6. 4. 06:35


8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잠언 6:6-11절을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유럽속담에 게으른 자의 혀는 결코 게으르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설적인 말로 들릴지 몰라도 부지런한 자는 말로 유창하게 자기를 변론하기 보다는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속담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게으른 자는 말이 많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게으른 것에 대해서 합당한 핑계를 대야 하고 또 왜 자기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가를 타당성 있게 이야기를 하려면 게으른 자는 자연스럽게 말을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의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의 몫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같은 말입니다

게으른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게으른 자가 기발한 발상을 해서 대우를 받는 일도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보통 생각으로는 누구나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공부는 하는 만큼 성적이 나옵니다.

물론 머리가 나빠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보통의 같은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력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물인 새도 부지런할 때 먹이를 많이 먹을 수 있고 또 새끼를 기르다 보면 부지런하지 않고는 그 새끼를 온전히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어미 새는 자기 새끼를 기르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안 좋습니다.

그럴지라도 남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세상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요즘 세상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을 하다 보니까 건강을 해치는 일을 보게 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농부는 반드시 그가 얼마만큼 부지런하게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가을에 수확이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자연 재해가 발생을 해서 그 수고가 헛될 수도 있지만 재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부지런하게 자기 농작물을 살펴본 농부에게 자연은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어느 농부가 씨만 뿌려 놓고 기다리겠습니까?

장마가 오면 물을 빼주고 또 가뭄이 들면 물을 대주고 병충해가 들면 약을 쳐서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부지런하게 보살펴 주어야 가을이 되었을 때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이 직원을 볼 때 부지런하고 성실한 직원을 더 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 보다 더 열심히 발품을 팔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 나가서 고객을 만나지 않고 게으르게 기다리고만 있다면 수익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는 분명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세상은 꼭 같은 결과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부지런한 자가 게으른 자 보다는 삶의 질이 더 나은 것을 보게 되고 또 수익을 많이 얻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일이 그렇습니다.

사는 것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너무도 게으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부지런하게 일을 하고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전혀 부지런하지 않고 게으른 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습니다.

그럼 자기가 뿌린 씨를 잘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지런을 떤다고 하면서 자기 밭은 돌보지도 않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게으른 자입니다 농부는 농사를 잘 지으면 됩니다. 농사를 돌보지는 않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농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아프리카 언어를 공부를 하고 있다면 그는 부지런한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주 부지런합니다. 그런데 그 부지런한 것인 농부가 새벽부터 아프리카 언어를 공부하는 것 같이 하고 있다면 그는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아주 게으른 자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영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에는 너무 부지런하면서 실제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게으른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부지런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부지런해야 하지 씨를 뿌려 놓고 아프리카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으른 자의 모습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으면 그 씨가 잘 자라서 수확을 많이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다수가 그렇습니다.

새벽 기도회부터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는 너무 부지런한데 실제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아주 게으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마치 자기 영혼에 대해서 부지런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마치 농부가 아무 쓸모없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 자기는 부지런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에 대해서 부지런해야 하는 가를 모르면 그는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게으른 자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부지런하게 보여도 하나님이 볼 때는 아주 게으른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게으르고 악한 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 행위를 보면서 교회 안에서 제일 부지런한 자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참 부지런 합니다.

그런데 그 부지런한 것이 오히려 게으른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장로가 될 정도로 열심을 다하면서 부지런을 떨고 있지만 실제 성경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칭찬은 받고 있지만 그의 영적인 상태를 보면 게으른 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장로가 되어서도 성경을 일독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장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성경을 10 독도 하지 않고 안수를 받고 목사라고 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은 많이 합니다.

교회 일이라면 아주 부지런해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그런데 성경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고 성경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해서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볼 때 가장 게으른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부지런한 행동을 보면서 자기는 게으르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너무 부지런합니다.

새벽 기도회를 드리고 매일 집에서는 큐티를 하고 있고 또 구역 예배를 드리고 또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찬양을 듣고 수요 예배 금요 예배 일요일은 하루 종일 교회에 나가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는 부지런하다고 오해를 합니다. 또 교회에서 어떤 행사를 하면 앞장서서 참여를 하다보면 아주 정신이 없이 부지런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성경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를 하겠습니까?

자기 영혼에 대한 문제인데도 성경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남이 전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받아들이다가 나중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서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지만 여름 동안에 먹을 것을 예비하고 추수 때에 양식을 모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역자는 일을 하는데 감독을 하는 사람을 말 합니다.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지만 개미는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를 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스스로 자기 먹을 것을 예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예비하지를 못하고 남이 먹여 주는 것을 마치 새끼 새가 받아먹는 것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 주는 자를 어떻게 믿습니까?

그가 정말 복음의 선지자인지 아니면 광명의 천사인지 어떻게 분별을 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 자기 먹을 것을 예비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그가 주는 먹이가 무엇인가를 분별하지 못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주는 것을 입만 벌려서 받아먹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영혼을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55절을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전해지는 말을 보면 예수가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예화가 전해지고 세상 지식과 상식이 전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유머를 전하면서 사람들을 웃기기까지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내가 먹어야 하는 양식은 오직 예수입니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주는 대로 입만 벌려서 받아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직 예수를 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썩어서 전하고 있는지 분별이 안 됩니다 그렇게 분별이 안 되는 것은 개미에게서 배우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령이 누구고 간역자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로 치면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될 수 있고 지금으로 하면 목사들이 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개미들은 목사가 없어도 자기 스스로 먹을 양식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목사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사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양식을 예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게으른 자입니다.

물로 참된 목사가 있어 내가 필요한 양식을 다 채워주면 좋겠지만 과연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부족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 안에 임재 해있는 성령을 통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그에게 자기 영혼의 문제를 맡긴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게으르기 때문에 성경을 볼 시간도 없고 지혜를 구할 시간도 없어서 사람에게 의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성도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목사가 전하는 말이라도 반드시 성경을 통해 확인을 하고 또 성령의 감동하심을 간절히 구하면서 지혜를 찾기 위해 늘 성경을 봅니다.

 

지금은 여름입니다

이 여름은 계절적인 여름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기를 통해 예표하신 수장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재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름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대 이 여름을 살아가면서 참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게으른 자입니다

 

교회 일 아무리 많이 해도 그는 게으른 자입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무 쓸모없는 아프리카 언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부지런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게으른 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일도 육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육체로 하는 모든 일은 다 육적인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양식을 모으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의 생명의 양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도 부지런한 자는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하고 그 안에서 진주보다 더 귀한 보석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들은 자기 영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와 교인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지금 이 여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묵묵히 자기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은 두령과 간역자에게 매여서 그가 시키는 일로 바빠서 자기 영혼의 양식을 예비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설교가 잡탕이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좋은 것을 다 썩어서 웃기기도 하고 또 좋은 예화를 사용해서 감동을 주기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 방해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룩이 섞여 있는 양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게으름에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것을 비유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게으른 자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자는 게으른 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그가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 열심을 다한다고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예비하는 자가 부지런하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26:16절을 보면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자는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느냐면 자기가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 지혜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열심을 다하고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또 모든 교회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부지런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베드로후서 1:8절을 보면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다른 일에는 아주 부지런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 게으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육체적으로 하는 일에는 아주 부지런하게 행동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으릅니다.

 

예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정통의 교회 안에서 아는 예수는 이단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도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 알기를 아주 게으르게 하고 있고 자기 영혼의 양식을 모으는데 너무도 태평합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절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행위에 빠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행위에 빠져 있기 때문에 행위로는 아주 부지런하지만 실제 그는 아직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잠을 잔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깨어 있다고 오해를 합니다.

 

고린도전서 16:13절을 보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행위를 보는 사람은 잠자는 자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성도는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양식을 삼아 창고에 모아 두는 그런 사람은 바로 믿음에 든든히 서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모르는 자는 아직도 행위를 보면서 잠자고 있습니다. 행위를 보면 그들은 분명히 부지런하고 깨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 그 영혼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양식을 모으는 것 보다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할 생명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려고 는 하지 않고 그저 행위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깊은 잠에 빠져 복음의 빛이 비추어도 좀처럼 깨어나지를 못하고 자기 행위를 보면서 부지런하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위에 빠져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또 사도들을 통해서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교회에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만 자기 영혼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개미와 같이 여름에 일하지 않고 오히려 행위에 빠져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혜는 행위에서 깨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목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만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주장을 합니다. 행위에 깊은 잠에 빠져 아무리 빛이 비추어도 좀처럼 깨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양식을 구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에는 너무도 부지런한 그들이 양식을 구하는 일에는 너무도 게을러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0,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이 말씀은 영적인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깨어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면 공격을 하실 분도 있겠지만 지금 나와 있는 성경 공부 교제에서 예수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인을 만들고 있습니까?

 

교인을 만드는 성경공부 교제입니다

그 안에는 영혼의 양식인 예수를 가르쳐 주는 말씀은 거의 없고 그저 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 교제는 솔직히 아무리 배워도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예수만 가르쳐 주면 됩니다.

예수를 모르니까 자꾸 이상한 것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를 아는데 있어서는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하고 있지만 행위에 있어서는 너무도 부지런하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교회 나왔다고 다 깨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다 자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빠져 깊은 잠을 자고 있었고 빛이 비추어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이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는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모르면 죽습니다.

예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 성경은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늘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행위에는 부지런한 그들이 예수를 아는 것에 있어서는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 하고 있습니다. 행위에 빠져 너무 바빠서 예수를 아는 지혜를 구할 시간도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예수를 발견할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강도는 내가 알고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적군도 뻔히 알고 있는데 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잠자고 눕고 있을 때 내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아주 태평한 때에 강도가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강도는 내가 전혀 모르는 그때에 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내가 강도가 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강도가 올 수도 없고 강도로 인하여 피해를 안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도는 그 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감자기 들어와 모든 것을 빼앗아갑니다. 자기 영혼에 대해서 너무도 태평하게 있는 그 시간이 바로 강도가 들어오는 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그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자기 행위를 보면서 자기 영혼의 양식을 예비하지 않고 있다가 강도가 갑자기 들어와 그 영혼을 빼앗아가고 맙니다. 내 영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 이 여름에 개미와 같이 부지런하게 양식을 예비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는 성도는 지금도 성경을 보면서 자기 생명의 양식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한 성도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영접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