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강,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요한복음 5:29절을 보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람이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물론 세상 적으로는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하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가 됩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만약 그 선한 사람들이 생명의 부활을 얻는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간부터 예수를 믿기 보다는 그런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일이 선인지 아니면 악한 일인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선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신앙인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선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 더욱 열심을 갖습니다.
구원의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는 조금 잘못 알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문제는 내가 오해를 하고 있는 순간 내 영혼은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조금 오해를 해도 괜찮은 것이 있고 오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의 문제입니다
지금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해를 하게 되면 자기는 선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심판의 부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선을 행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이스라엘이 자기들은 선을 행한다고 굳게 믿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것이 악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 시대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그 일이 그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많은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분명히 구별이 되었는데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도지 못하게 하는 일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 보다 더 악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을 행함으로서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 같이 이 시대도 하나님께 열심은 있지만 지식이 없음으로 도리어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선을 행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악으로 나타나서 심판을 받게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것은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구원의 표징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교회에 나왔지만 다수는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면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무뎌져서 깨닫지를 못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선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선을 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을 행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에 미혹이 되면 자기는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선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시편 14: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정의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인생을 굽어 살폈을 때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바로 율법의 신기루 현상입니다 욥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또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정말 선을 행하는 사람처럼 신기루 같이 보여 진다는 말씀입니다.
신기루는 허상입니다
마치 그것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사람의 눈에 허상이 떠오르는 것을 신기루라고 합니다. 율법은 이와 같이 사람의 눈에 선하게 보여 지지만 실제 나중에 보면 율법으로 완전하게 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지키는 그 율법이 그렇습니다.
내가 주일을 지키고 또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가난한 자를 돕고 하는 그것이 신기루가 되어서 마치 선한 것처럼 보여 지지만 신기루가 사라지고 나면 율법을 다 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신기루에 속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마치 선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상사람 뿐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이 신기루에 눈이 미혹이 되어서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율법주의였습니다.
아담이 첫 언약을 어긴 후 사람은 스스로 그 언약을 잘 지키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사람이 타락을 한 것은 물론 죄로 인해서 타락을 한 것도 있지만 오히려 선을 행한다고 오해를 하면서 악을 행하는 그것으로 타락을 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죄입니다.
그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이 죄를 안 짓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율법이라는 신기루는 죄인이 죄를 안 짓는 것 같이 보이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가 조금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신기루에 취해 죄인이 마치 의인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고 그 율법을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신기루에 빠지면 죽습니다.
사막이라는 광야에서 신기루를 보고 가다가는 죽습니다.
교회 생활이라는 광야에서 율법을 보고 가다가는 분명히 죽고 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율법의 신기루에 취해 더욱 열심을 내면서 그 행위를 보고 자기가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비교를 하게 됩니다.
신기를 보고 비교를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자기와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비교하면 분명히 자기 스스로 보기에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신기루가 눈에 뚜렷이 보여 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율법의 신기루에 빠져 자꾸 끌려가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신기루를 지적해 주면 오히려 공격을 합니다. 신기루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신기루라고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그것은 분명히 자기 눈에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이 아니라고 해 보세요
아마 공격을 하고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할 것입니다
광야에는 그렇게 무서운 신기루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왜 다 죽었느냐면 바로 율법이라는 신기루를 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 율법의 신기루에 눈이 미혹이 되어서 성막 안에서도 예수를 못 보았습니다.
신기루를 보면 참을 못 보게 됩니다.
신기루에 가려져 어느 것이 참인지를 분별하지 못 합니다 참을 보는 사람은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지만 참을 못 보고 신기루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참이 보여도 신기루에 가려져 자꾸 신기루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가진 속성입니다
마치 참 같이 보여 지지만 나중에 보면 모두가 죄인으로 나타나 오히려 등에 비수를 꽂아 버립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율법이 참으로 선하게 보이는데 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되어서 오히려 진노를 받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 선해지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지만 그것은 신기루가 되어 지금 내 눈에 좋게 보일 뿐이지 나중에는 참이 아니기 때문에 사라지게 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악으로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이 부분을 강조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생명의 부활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하면 모두다 껌뻑 죽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어떻게 고백을 하는 가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7:19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사도 바울도 선을 행하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돌아보니까 마음으로 선을 행하기를 정말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고 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자기 생명까지도 아깝게 여기지 않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를 하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요즘 말로 립 서비스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정말 선을 행하기 원했지만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까 악만 행한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신기루를 보았던 것입니다 자기에게서는 참이 없었고 신기루만 보여 졌기 때문에 오히려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것을 겸손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얼마나 겸손한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정확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참을 보다 보니까 신기루가 걷혀진 것입니다
야고보서 4:14절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도 바울은 안개였습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 간절히 바랐지만 그는 안개였기 때문에 자기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 모든 일이 참이 아니라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임을 보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악을 행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기루 같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장미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꽃이 지고 나면 썩어가고 있는 그 장미를 보고 아름답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선한 일을 하게 되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선하게 산 사람이라도 그 시체를 보고 아름답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의 의라는 것 사람이 행하는 모든 선한 일이 그렇습니다. 지금 내 눈에는 선하게 보이는 그것이 썩어지는 그 순간에는 신기루보다도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안개를 보면서 선하다고 합니까?
신기루를 보고 선하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율법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율법의 의라는 신기루에 취해서 무척 선하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했다고 하는데 이 시대 선하게 살았다고 자랑을 하고 간증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신기루를 보면서 그 안에 파라다이스가 펼쳐져 있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가 복음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분명히 선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선한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 선한 것을 성도는 당연히 행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기루라도 성도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신기루라고 선을 행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을 한다면 그것이 영지주의 사상입니다 비록 원치 아니하는바 도리어 악을 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선한 일이 비록 신기루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고는 있지만 그럴지라도 성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누가 악합니까?
죄인과 악인은 다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 죄인이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믿음을 의로 삼으시고 의롭다 하셔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행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가장 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구해주었는데 구해 놓고 나니까 자기도 구해 주는 사람에게 힘을 보탰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힘이 남아 있어서 설령 구해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나왔다 할지라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조금 힘을 쓴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바로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욕되게 하는 사람 아닙니까?
무엇이 그렇게 만듭니까?
바로 율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되게 만듭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내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기의 의를 보태려고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입니다
율법의 신기루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신기루와 같아서 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리게 만듭니다. 선한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을 보게 만들어 버립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율법은 하나님도 선하고 자기도 선하게 보이게끔 신기루와 같이 보여 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분만 선하게 보여야 하는데 율법의 속성은 사람도 선하게 보여 진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도 선하게 보이기 시작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 이상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선하지 않습니까?
내 스스로 선한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정신 나간 사람들이 어떻게 믿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자꾸 신기루를 이야기 합니다. 자기 눈에 신기루가 보이니까 그 신기루를 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라는 신기루를 보고 있다가 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도 율법의 신기루를 보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는 믿는다 하지요
그러나 그 십자가의 은혜를 모릅니다. 말로는 은혜, 은혜 외치고 있지만 믿음, 믿음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기루를 더 주장하고 있습니다. 싸구려 믿음이 있습니까? 참으로 악하기가 한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믿어서 구원을 얻은 사람의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단어들을 끄집어내서 믿음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싸구려 입니까?
싸구려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싸구려라고 주장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 시대 이런 사람들이 악한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악한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 세상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나는 선한 일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선한 일입니다.
가장 선한 일은 내가 예수를 믿어 내 생명이 구원을 받는 그 일입니다 그보다 더 선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게 됩니다.
영생은 오직 믿음 입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는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 믿음인데 바로 믿어서 생명을 얻는 그것이 가장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믿으려 고는 하지 않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해서 선해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내 몸으로도 행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모르는 사람은 몸으로 행하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성도는 자기 마음으로 행하고 있고 그 행함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압니다. 무엇을 행하라고 하면 몸으로 행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악입니다
왜 악이 되냐면 신기루가 되어서 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려 버리기 때문에 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전했지만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보고 고린도전서 3장에 나는 게바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바울에게 하면서 사람을 보았습니다.
세 사람 모두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가 보이지 않고 신기루인 게바가 아볼로가 바울이 보이니까 나는 누구에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려지고 만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한다고 하는 모든 것은 바로 그와 같이 신기루가 되어서 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지금 우리 목사님 하고 있습니다.
똑 같은 이야기입니다 목사가 보이니까 예수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목사가 안 보이려고 해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목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목사가 자기 몸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목사가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 합니다.
몸으로 행하는 선은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선을 마음으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는 성도를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선을 행할 수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선입니다 내 몸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마음으로 믿는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선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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