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강,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예레미야 9:23-2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팔불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자랑하는 사람을 일컬어서 팔불출이라고 합니다.
사전적인 뜻은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랑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찌 자랑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자식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유머에 나오는 말이지만 전체 학생들의 사기를 진작 시키기 위해서 주는 상이지만 부모는 자기 아들이 받아 온 상을 사랑을 합니다. 자기 아들이 특별히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더라도 자랑을 하는데 하물며 다른 아이들 보다 특별한 일을 했다면 자랑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 합니다
자식만 자랑하겠습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림을 자랑하기도 하고 또 자기 집에서 기르는 화초도 자랑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쓴 시에 대해서 자랑을 하고 책을 선물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는 마치 부의 상징이 되어 버려서 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기가 가진 재물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굳이 자기를 나타내고 자랑을 하지 않아도 그 차가 대신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피알시대입니다.
내가 가진 프레젠테이션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를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자랑이라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닙니다. 내가 시를 아무리 잘 쓴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해도 그것을 습작을 해서 나 혼자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기획력이 뛰어 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내가 가진 기획력을 모르기 때문에 내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기획을 잘 포장을 해서 남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지금까지 해 왔던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도 나를 그냥 알아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해도 타국에 혼자 가서 있다면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인지 도무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 신분을 밝히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극진히 영접을 하고 서로가 모시려고 할 것입니다
더구나 일반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를 않고 오히려 무시를 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저명한 시인이라고 해도 시를 전혀 모르는 다른 모임에 가서는 누구 하나 인사를 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가 저명한 시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나면 그때부터는 시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에 대한 예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꼭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어느 정도는 자랑을 해야 하고 또 그 자랑으로 인하여 격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 일을 맡기는데 있어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자랑해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그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자랑을 해야 합니다.
너무 팔불출 같이 자랑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내가 가지고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자랑을 해야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적당하게 자기를 나타내면서 자랑하는 것을 나를 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릅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는 나를 자랑해서는 안 되는가 하면 내가 받은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내가 노력을 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유태인들 중에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외부적인 충격이 다가오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사면 뭐합니까?
재산을 많이 가졌으면 뭐합니까?
지식이 뛰어나서 명예를 가졌으면 뭐합니까?
자기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세상에서 가장 예쁘면 뭐합니까?
모두가 포로수용소에 잡혀 가서 그저 죽이는 자의 눈에 들면 그 날로 그 생명이 끝이 나는 절명의 순간에서는 그가 가진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마치 짐승과 같았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보다 못 했습니다
이래도 내가 노력을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들이 노력을 안 해서 그들이 지혜가 없어서 그들이 재물이 없어서 명예가 없어서 그런 짐승과도 같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그들에게 인격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사치스러운 단어에 불과합니다.
자기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인격 그리고 명예가 마치 자기 노력으로만 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마디로 아직 외부적인 충격을 받지 못한 사람이며 그들이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아직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하늘의 섭리를 깨달은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내가 성경의 모든 지혜를 깨달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전도서 2:16절을 보면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지혜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는 지혜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물론 성경을 아는 것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지혜가 내 안에 가득하다고 해서 우매 자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하는 지혜는 한 마디로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것이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은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가슴에 깊이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만큼 사랑을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면 그런 성경 공부는 세상 지식을 배우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면 영어 성경 공부를 하고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뛰어 납니다
아마 사도 베드로가 왔다면 고개를 숙이고 말 것입니다
사도들보다도 더 지식적으로는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해서 지혜가 뛰어난 것 같은데 실제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영어 성경공부를 한다고 자랑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런 사람들 치고 복음에 대해서 깊이 알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면 거의 무지에 가까운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지혜로는 뛰어 나지만 그것이 자기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처럼 오해를 하면서 그런 외적인 것에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혜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지혜로 말미암아 오히려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더 겸손히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외적인 지혜를 자랑하는 순간 타락을 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아주 자랑거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그 대적과 싸움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성도는 육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아무리 강한 군대가 와도 그 싸움에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군대를 믿고 전쟁에 나간 왕은 반드시 패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지 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역대하 24:24절을 보면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 손에 붙이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아사 왕 때에 구스가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유대를 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스의 백만 대군을 아사 왕 앞에서 패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아스 왕 때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아주 적은 아람 군대가 왔지만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어 당당히 나가서 싸웠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패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싸움은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도 자기가 싸우려고 자기 용맹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무슨 용맹을 자랑 합니까?
자기가 무슨 용사나 된 것같이 사단을 이기려고 합니다.
헛되고 무익한 율법과 싸움을 하면서 겨우 몇 개를 이기고 나서는 마치 개선장군이 된 것같이 어깨를 으쓱 거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임을 모르고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여 있는 모습입니다
자기 부를 자랑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와 모형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그저 말씀을 문자로 해석해서는 부를 자랑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가 무엇입니까?
육적인 이스라엘에게는 재물 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이스라엘에게는 보이는 재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를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다 용맹이 있다 재물이 있다는 것을 자랑한다고 만약 구원과 문제가 있다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랑치 말라고 하는 것은 자랑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실제 자기 지혜를 자랑하고 자기 용맹을 자랑하고 또 자기 재물을 자랑하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육적으로도 성도는 그런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 예레미야의 말씀은 그런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56절을 보면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질만 소유가 아닙니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선한 일과 의로운 일도 소유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신용사회입니다 사실 재물을 얼마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 보다 신용이 얼마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사회입니다
내가 가진 소유보다 신용으로 더 많은 소유를 가질 수 있는 사회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 그것이 마음에서는 소유가 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의 의로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자기 의가 좋게 보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도저히 받아들이지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성경을 아는 지혜를 자랑하지 마시고 또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자랑하지 마시고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가진 그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자랑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더 이상 은혜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지면 무엇 할 것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자랑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 교회 안에서 이런 자랑들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하고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타락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도가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 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곧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가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하나님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까? 우리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 지혜를 자랑했고 또 대적과 싸워서 이긴 것을 자랑했고 자기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를 자랑했습니다.
요엘2:13절을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기 보다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또 자기 형편이 나빠지면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크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만약 하나님이 무서운 하나님이시고 또 우리 실수를 용납하시지 않는 분이셨다면 이 세상은 벌써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죄는 용납을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마다 진노를 내리신다면 벌써 인류는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에 나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목회자들이 은근히 겁을 주고 있습니다. 마치 한 가지라도 잘못을 하면 그 일에 대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생은 사는 자체가 죄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마치 자기가 죄가 없어서 징계를 안 당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역시도 매일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성스럽게 보이는 목사라 할지라도 그도 사는 순간순간이 모두가 죄입니다.
견딜 수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에 대해서 그대로 징계를 하신다면 우리 인생은 견디지를 못하고 다 죽고 말 것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내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벌써 죽었습니다.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면 자녀는 부모를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서우면 절대 자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어떠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내 아버지는 나를 너무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자랑을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지를 못 합니다
기껏 자랑한다는 것이 자기가 예수 믿어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사랑이 많으면 내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사랑한다는 것을 자랑하지만 아버지가 무서우면 내가 이렇게 했더니 축복을 해 주었다는 자기 자랑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마치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로마서 3:22절을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행위로 말미암고는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불공평합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사망을 당해야 할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 사망의 권세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불공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사망의 권세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아주 공평한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아주 공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교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더 잘하고 못하고를 논하지만 사실은 모두 사망의 권에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죄인이고 죄의 삯은 결국 사망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낫고 못하고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방종을 해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또 그렇게 살고자 모든 사람들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이 막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으면 다른 사람도 역시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두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아주 공평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를 얻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것 자체가 불공평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평한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들이 행하는 불공평한 것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십니다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모든 약속을 다 지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절대적인 이유는 아담에게 하신 약속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까지 모든 약속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약속을 이루시고 나머지 단 한 가지 남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약속을 틀림없이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고 또 그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떤 일을 했어도 그것을 자랑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오직 내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나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경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우리 인생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또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차별이 없는 의를 얻게 하시고 또 아담으로부터 하신 모든 약속을 정직하게 이루셨다는 것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자랑하세요.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또 모든 약속을 정직하게 다 이루셨다는 것을 자랑하셔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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