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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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은혜와 진리의 말씀

2강, 나는 어떤 죄인인가?

윤주만목사 2019. 4. 18. 20:06


2, 죄에 대해서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나함이요

 

오늘 이 말씀은 시작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께 말씀 드리는 것은 가장 큰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그 죄에 대해서는 일단 논하는 것을 보류하고 일반적이 죄에 대해서만 논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는 죄인이라는 것을 모두 인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어떤 죄를 짓고 또 무슨 죄가 큰 죄인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하니까 별로 지은 죄도 없으면서도 그냥 죄인이라고 말 합니다

 

죄인이라고 안 하면 교만할까봐서 그저 입술로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떤 죄를 짓고 정말 내가 왜 죄인 중에 괴수인가를 알지 못하고 죄인이라고 고백을 한다면 그는 오히려 가증한 사람입니다

 

죄가 별로 없으면서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 가장 악한 자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솔직히 죄인이면서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 다운 고백이 될 수 있지만 별로 자기 죄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그저 남이 따라하니까 죄가 없다고 하면 교만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죄인이라는 고백을 한다면 그는 죄인이 아니라 악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한국기독교 안에 이런 문제가 바로 정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율법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좋아야 한다는 말을 아주 거리낌 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은 사실 보수적인 기독교에서 나온 사상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안식일 교회 같은 곳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이런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그런 사상을 전혀 여과 없이 교회가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작금의 시대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단에 의해 사상이 점령당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단 사상을 따라가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한 가지는 나로 인하여 이웃이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적질 안하고 살인을 안 하고 간음을 안 하고 거짓 증거를 안 하고 거짓말을 안 하면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대다수의 한국기독교인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극히 일부의 사람을 빼 놓고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은 경의를 표하기가 전혀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서는 내가 무슨 죄가 있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다가 아주 작은 실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와서 바로 고백을 하여서 그 죄를 용서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자기가 지은 죄가 생각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죄에 대해서 통회 자백하고 있습니다. 아마 기독교인들 중에 죄를 짓고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죄를 짓고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죄를 짓고 나서 자백하는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실수를 했거나 연약하여 잘못을 했을 때 고의든 타의에 의해서 했든 죄를 짓게 되면 눈물을 흘리면서 자백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죄를 도덕적인 죄라고 말씀 합니다

이런 도덕적인 죄를 짓게 되면 우리가 자백을 할지라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그리고 막대기를 드셔서 우리를 징계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그냥 용서해 주시기도 합니다. 성도가 이런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를 안 해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도덕적인 죄를 지어도 된다고 가르친다면 영지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지키기 위해 정말 제 자신과의 수많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인지라 또 넘어지는 내 자신을 보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죄가 과연 그렇게 큰 죄입니까?

 

제가 이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도 이 죄에 대해서는 처절할 정도로 싸우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관연 이 죄가 그렇게 큰 죄인가는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이런 죄만 안지면 내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이런 죄에 대해서는 철저할 정도로 잘 지켰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은 바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 죄를 모르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앞에서 열거한 그런 죄를 안 지었다고 마치 나에게서 그리 무슨 큰 죄가 있냐고 한다면 여러분은 율법주의 사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이고 이스라엘과 같이 회칠한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자라고 자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의 죄를 보고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은 율법에 아직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죄인 중에 괴수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죄를 들여다 볼 때 내가 죄인 중에 괴수가 안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자기 죄를 모르고 그저 남들이 죄인이라고 하니까 겸손을 나타나기 위해서 죄인이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가증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가증한 사람은 실제 자기는 안 그런데 자기를 지나치게 낮추어서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에서는 안 그러면서도 자기 스스로가 죄인 중에 괴수가 될 정도의 죄를 찾지 못하면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가증한 행위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 죄를 찾지 못하면서 자기를 죄인이라고 아주 그럴싸한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도 아니면서 별로 죄가 생각나지도 않으면서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를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면서 그저 죄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들입니다 자기 죄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성경에서 발견한 사람은 이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웃이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느냐면 안식일 교회에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를 질 수도 지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가 어떻게 이웃에게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는 최소한 자기는 어는 정도 행위가 있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가 죄인 중에 괴수인 사람이 어떻게 이웃에게 행위를 보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런 말을 한다면 그는 뻔뻔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면서 조금 죄를 지은 사람에게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한국교회는 자기가 어떤 죄를 얼마큼 짓고 있는 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뻔뻔스럽게도 죄인 중에 괴수가 남에게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는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가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가 아니니까 남의 행의를 요구하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가 죄인 중의 괴수라면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면서도 이웃에게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 마디로 철면피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십자가를 부인하는 행위와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십자가를 부인하는 사람 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먼저 깨닫기 바랍니다.

로마서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입을 열 수 없습니다. 감히 행위를 주장할 수 없으며 행위를 주장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우습게 아는 악한 자입니다 행위로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입을 막고 감히 자기 행위를 주장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사단에게 미혹되어 있는 사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입으로는 죄인이라고 하면서 그 마음은 한없이 높아져 자기 죄를 찾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면서 자기 죄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욥기31:1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

 

욥과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변론을 합니다. 욥이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며 세 친구는 네가 무슨 죄를 지었으니까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말로 욥을 정죄합니다. 그러나 욥의 변론을 듣고 욥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고 31장에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욥이 자기의 의로움을 말했습니다.

욥이 어느 정도 의롭게 살았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욥기31:1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은 처녀에게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이 살고 있던 시대는 족장 시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처녀를 취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큰 죄가 될 수도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욥은 족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처녀에게도 주목치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31:9-10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욥은 다른 여자에게 마음도 두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자기 처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31:13

남종이나 여종이 나로 더불어 쟁변할 때에 내가 언제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던가

 

욥은 족장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 종은 노예입니다 사고파는 물건과 같은 노예입니다 그런 노예가 욥이 조금이라고 그들에게 불의를 행해서 그들이 욥에게 쟁론을 할 때 그 사정을 멸시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회사 사장의 말도 법과 같은데 그 당시 종에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도 자기 종이 자기와 쟁론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족장의 체면이 다 구겨지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욥은 그 종의 말이 맞으면 그런 사정을 다 들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욥기31:16-18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에게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를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모태에서 나온 후로 과부를 인도하였었노라

 

욥은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가 와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욥은 어려서부터 고아와 과부를 먹였습니다. 자기 혼자 배부르게 먹은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 있는 고아나 과부를 언제나 먹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31:19-20

내가 언제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게 된 것이나 빈궁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도 나의 양털로 그 몸을 더웁게 입혀서 그로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던가

 

욥의 주변에 옷이 없는 자에게 옷을 주었습니다. 빈궁한 자가 덮을 것이 없으면 양털로 덮어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50년대에는 정말 옷이 없어서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욥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다 덮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욥기31:24-25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 언제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던가

 

욥은 재물을 탐하지도 않았습니다. 재물이 풍부한 것과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재물을 보고 기뻐하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정말 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수고해서 얻은 재물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다는 말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욥기31: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였으며 그의 재앙 만남을 인하여 기운을 뽐내었던가

 

욥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말 합니다 욥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히 욥의 근처에도 못가는 나를 보면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입을 벌려서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욥기를 읽으면서도 행위를 주장할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욥기31:31

내 장막 사람의 말이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었는가

 

욥과 같이 사는 사람은 모두 다 고기로 배부르게 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이 먹는 고기를 같이 먹으면서 그 고기로 배가 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시대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것도 욥에게는 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기31:32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

 

욥은 주변에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않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문을 안 열어 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행위가 좋다고 해도 이 시대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래도 행위를 주장하고 싶습니까?

최소한 욥 정도는 하고 나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욥의 발가락 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 행위를 주장하고 있으며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아주 매력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욥은 정말 사람이 보기에 완전할 정도로 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세 친구가 그에게서 죄를 찾으려 하였지만 그의 죄를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런 욥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죄인입니다 아니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왜 욥이 죄인 중에 괴수냐면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완전하게 보였을지라도 그가 한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욥이 자기를 의롭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변론을 하십니다.

 

욥기38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전부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 합니다 욥은 자기는 의롭다 하나님의 심판의 저울에 나를 달아 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의롭게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가 아직 못한 것을 38장부터 말씀을 하시니까 욥은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이 왜 죄인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욥은 사람이 볼 때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지만 그 역시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르쳐 주신 선을 다 행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욥기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친구와 변론을 할 때는 자기 죄를 찾지 못할 정도로 의롭게 살았다고 자신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욥도 죄인이라서 회개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뭐가 의롭다고 다른 사람의 행위를 요구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주장하려면 최소한 욥보다는 더 의롭게 산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십계명에 나오는 도덕적인 죄를 진 것이 큰 죄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 죄인이 아닙니다. 또한 죄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십계명에 나오는 도덕적인 죄는 사람에 따라서 다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죄는 이것입니다

이 죄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야고보서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욥이 행한 것이 바로 선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선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마태복음5장에 나오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 대는 것,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는 것, 누가 구하면 거저 주는 것, 이런 것이 선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기어 다니는 지렁이도 보살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다 행해야 선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죄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가책도 받지 않으면서도 매일 죄 가운데 살면서 자기가 선을 행하고 사는 사람처럼 가증스럽게도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죄라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아주 작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이웃에게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율법적인 신앙인들입니다

 

여러분은 선을 행치도 못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한다고 해 보아야 아주 작은 부분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 보아야 그 역시 선을 알고 행치 아니하는 자 이기 때문에 매일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죄만 더 짓고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발걸음 자체가 죄입니다.

 

내 주변에 간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서울에도 노숙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을 데려다가 우리는 따뜻하게 밥을 먹여야 하고 재워줘야 한다는 것이 선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양심에 화인을 맞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나는 선을 행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죄를 지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기 때문에 알고도 선을 행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도적질을 안 하고 강도짓을 안 하고 거짓말을 안 할지라도 그는 더 큰 죄를 지면서 매일 살아가고 있는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선을 얼마나 행하고 있습니까?

아는 선을 다 행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여러분은 살인한 자요 강도요 도적질 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선을 행하라고 주셨는데 알고도 선을 행치 아니하는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아주 작은 죄를 진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증스럽게도 더 큰 죄를 매일 밥 먹듯이 짓고 있는 죄인 중에 괴수가 아주 작은 율법적인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다는 주장을 하며 말로 사람을 치고 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가 아주 작은 죄인에게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고 행위를 요구할 정도가 되면 그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달라고 하면 거저 주고 내 곁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먹여야 하고 집이 없어서 거리에서 자는 사람이 있으면 내 집으로 데려다가 그를 따뜻하게 재워야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죄는 양심에 거리낌도 없이 죄를 지면서 율법의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자기가 어떤 죄를 짓고 있는 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죄인 중에 죄수면서도 자기가 행하는 아주 작은 율법의 의를 보면서 자기가 더 큰 죄를 매일 짓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인하는 죄 보다 간음 하는 죄 보다 도적질 하는 죄 보다 더 큰 죄가 바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기의 행위만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욥의 발꿈치도 못 따라가는 행위를 가지고서 욥이 행한 선의 근처도 가지도 못하는 선을 가지고 이웃에게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증한 사람입니다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가를 모르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고백을 하려면 자기 죄를 바로 깨닫고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죄도 모르고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보입니다 죄도 모르고 무조건 남들이 죄인이라고 하니까 죄인이라고 하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들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심장과 폐부 까지도 감찰 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인 중에 괴수가 자기 죄도 모르고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다른 사람에게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