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아마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에서 자유 함을 주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다시 율법으로 사람들을 구속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이루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죄가 없다는 말씀은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케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다 이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이루시고 완전케 하셨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율법을 전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율법을 완전케 요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주의에 미혹된 사람들은 사람들의 행위를 완전케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어느 사람이라도 율법을 완전케 할 수 있다면 또 그것을 주장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 죄인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그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다가 장사지내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심으로 율법을 완전케 할 수 없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아직도 자기들이 완전케 하려고 하는 무리들이 이 시대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입술로는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떤 죄를 짓고 있는가 모르고 자기가 행하는 작은 선을 보면서 스스로 자기는 성도로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큰 죄를 매일 짓고 있으면서도 작은 죄를 안 짓는 자신들의 모습에 취해 행위를 주장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강도짓 안 하고 도적질 안 하고 간음 안 하는 자신을 보며 자기 죄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살아가면서 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죄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 대고 있습니까? 나를 송사하는 사람이 속옷을 달라하면 겉 옷 까지 가지게 하고 있습니까?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꾸고자 하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않고 주고 있습니까?
이 중에 하나라도 자신 있게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당부하신 이 말씀들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아주 작은 행위를 보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큰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보이는 아주 작은 죄를 안 짓는다고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죄도 모르는 사람들이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적질 안 하고 간음 안하고 강도짓 안하는 자기 행위에 취해서 비틀 거리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위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여러분이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거저 달라고 하면 화를 내며 자기 것을 지키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을 거절하면서 행위를 강조한다면 그는 위선적인 사람입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기 모습을 더 큰 죄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조금 의롭고 선을 행하는 그런 행위의 모습에 취해 비틀거리며 사람들을 율법주의 화 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39-42절을 하지 못하면서도 행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다 율법주의에 미혹되어 성도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더 큰 죄는 깨닫지 못하고 아주 작은 죄를 가지고 판단하면서 행위를 주장하고 있는 율법주의에 미혹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세상에 오셔서 종말이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
개역 성경 보다는 조금 더 쉽게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볼 때 개역 성경에서 해석이 잘 안되면 다른 성경을 우리는 참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을 참고 하기보다는 성경 해석 가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다 이루어 졌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율법에 구속 시키고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과 싸우셨는데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다면 예수님은 스스로 이중적인 사상을 가지신 분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너무도 그 사실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예수님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정말 이 시대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5장1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문장 전체를 파악하시고 내용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문자적으로만 보다가는 여러분은 깊은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17,18절에는 분명히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19절에는 이 계명 중에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니라 21절 이하부터 나오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시는 계명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문장을 이해하시면 이 계명은 앞서 말씀하신 율법이 아니라 뒤에 말씀하시는 계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율법이나 계명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을 이 설명이 마친 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19절에 있는 말씀을 먼저 설명을 하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율법이라면 율법은 완전하게 지킨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절을 보면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천국에 간다는 말씀입니까? 못 간다는 말씀입니까?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쳐도 천국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천국에 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버린다는 말씀은 자기도 지키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율법은 작은 것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됩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범해도 모두 범한 자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치는 그 사람도 천국에 간다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5장21절부터 나오는 말씀을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5장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더 강화 했다고 하는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무식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식한 주장이라는 것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19절 말씀에 나오는 계명은 율법이 아니라 21절부터 말씀하신 것을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계명이 율법이라면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천국에서 크다 작다 를 논하는 것은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 백성이 되고 난 후에 크다 작다 를 논해야지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천국에서 크다 작다 를 논하는 것은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려면 마태복음5장 21절 부터의 말씀을 우리는 한 가지라도 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강조하면서도 39절부터 42절 말씀을 버리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버리고 가르친다는 말씀은 자기는 행치도 않으면서 말로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는 오른 뺨을 대 주지도 않고 겉옷을 주지도 않고 십리를 가 주지도 않으면서 거저 달라는 사람에게 주지도 않으면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만 못 하기 때문에 버리고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다 행해야 한다면 우리는 천국 자체를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설령 조금 행하지 못하더라도 천국에는 간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행위로는 갈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가는 것이기에 너희가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는 가는데 작은 것을 버리고 가르치면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레의 두 번 금식을 하고 박하와 회향의 근체의 십일조를 드리고 그들은 구제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마 이 정도는 나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나그네를 섬겼으며 고아와 과부를 어려서부터 돌보았습니다.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이렇게 행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행위가 나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근처에 가지도 못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의는 힘써 거절을 하면서 자기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의는 가지려 하지 않고 행위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차별의 없는 의를 가르치기 보다는 차별이 있는 행위를 보면서 믿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면서 자기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는데 율법주의자들은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있다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의는 거절하면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보다 자기의 의를 세워서 천국에 가려고 하는 자가 바로 율법주의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선물에 자기 행위를 포함시키려 하는 자가 바로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럼 21절 부터의 말씀이 구약의 율법을 더 강화한 율법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장은 구약의 율법을 강화한 율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제단에 예물을 드린다는 말씀은 안식일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으로 하면 주일 예배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려 하는데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안식일을 어기고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에는 안식일을 어기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아 죽을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안식일 보다 형제 화목을 더 중요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율법주의와 싸우시다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래도 마태복음 5장에 말씀하시는 계명이 율법을 강화한 율법이라고 주장을 하겠습니까?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율법은 어떻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율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어기면서 그리고 율법을 뒤집으면서 우리가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마치 예수님께서 율법을 강화하시고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내가 한 몸이라면 우리는 율법을 완전케 한 사람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한 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예수님이 완전케 하신 것을 예수님이 하신 것이고 내가 또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 몸이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 내가 한 것입니다 그래야 한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몸이 아닌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은 자기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완전케 되려고 이 시대에도 율법을 강조하면서 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강조하는 자체가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실 때 함께 완전케 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신 것을 믿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완전케 한 성도가 그냥 세상에서 막 살아도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계명을 우리는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치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져서 천국에는 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가 온전하시면 그 아들은 당연히 온전하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온전하게 사는 것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준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어떤 기준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행위는 율법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기도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입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행위입니다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성도들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강조하려면 최소한 예수님의 계명을 먼저 스스로 지키면서 강조해야 그래서 양심이 있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은근히 조장하면서 성도들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큰 자가 되려고 하다가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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