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강, 두 짐승(4)
요한일서 3:6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어디에 거합니까?
우리 성도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의 거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거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육체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땅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아무리 그가 교회 안에 있다 해도 역시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만들었지만 이 시대는 수많은 우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짐승을 위해서 우상을 만듭니다.
사실 교회 안에 우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교회도 우상이고 또 목사도 우상이 되고 있고 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행위와 은사들 역시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 그 모든 것이 용납이 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짐승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다 해서 다 그 안에 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을 통해서 두 짐승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짐승은 정통이라고 하는 이스라엘과 그리고 이방의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우리 교회가 혹시라도 짐승이 되어 있지 않나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은가 늘 깨어 있어야 내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 짐승이 됩니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교회가 정통이라서 짐승이 안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보이는 눈과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교회를 보고 또 성경을 보다 보니까 짐승을 보고도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로 보고 있습니다.
시편49:20절을 보겠습니다. (구 837쪽)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스라엘은 존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시고 그 자손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존귀한 백성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짐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으면 그가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민족이라 해도 역시 멸망하는 짐승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방의 교회 역시 짐승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 합니다
세상이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혼인 잔치에 청해서 존귀에 처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짐승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너무도 안일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교회 안에서 들어와 믿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짐승에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면 그것은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보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이스라엘을 따라가려고 그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짐승으로 보지 못하면 그는 짐승에 의해서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짐승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정통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에게 미혹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에게 얼마나 미혹이 되어 있는지 제가 교회를 짐승이라고 하면 아마도 저를 공격을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짐승이라고 해도 저를 공격을 안 할 사람들이 교회를 짐승이라고 하면 저를 이단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것을 비판을 한다고 아예 진리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장로교가 무엇이고 감리교가 무엇이고 침례교가 무엇입니까? 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그것부터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장로교인입니까? 내가 김리교인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그 안에 있다고 요한일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습니다.
장로교가 성경에 있습니까? 감리교가 성경에 있습니까? 그는 장로교인 감리교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성도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는 아볼로에게 누구는 게바에게 누구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망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짐승입니다
장로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짐승이고 감리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짐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장로교도 감리교도 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이 땅에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서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짐승 반드시 멸망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이 짐승이 어떻게 멸망을 당하는 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짐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짐승과 같이 멸망을 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짐승이 무엇인줄을 모르고 짐승에게 철저하게 미혹이 되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깨닫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지혜를 구하는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짐승에게 미혹이 되면 마치 자기가 지혜가 있는 줄로 알게 만들고 있고 하늘의 것을 구하기보다는 땅에 것을 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짐승은 철저하게 땅에서 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실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해서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역시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청함을 받아 존귀에 처했으나 깨닫지를 못해 멸망하는 짐승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13:15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처음 짐승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짐승은 바로 이방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부터 이 세상에 세워지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단도 물론 짐승이지만 성경은 이단에 대해서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들이 최소한 우상 숭배는 하지 않는다고 자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그리고 일월성신을 섬기면서 살았을지라도 자기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모두가 다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짐승에게 미혹이 돼서 우상을 섬긴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우상 숭배자는 천국에 못 갑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것은 인정을 할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을 숭배를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을 강의를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우상의 제물을 교회 안에서 먹고 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있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고 있는 교회는 거의 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고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얼마나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탐욕에 찌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먹어도 족하지를 않고 계속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탐욕을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탐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을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우상 숭배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것을 탐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제가 강조를 합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밖에서 이 세상에서 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탐하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교회 안에서 무엇을 탐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처음 보는 분들은 누가 교회 안에서 탐을 내고 있는 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내고 있는데 무슨 교회 안에서 탐하는 사람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있을 때는 교회 안에 탐욕을 내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있어도 적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탐합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탐욕을 부린다고 말씀을 하니까 우리의 이성적으로 나쁜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탐욕을 낸다든지 재물을 탐욕을 낸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교회 안에서 탐내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가 먹는 장소도 아니고 또 돈을 버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탐욕을 낼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의 의와 은사적인 것입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탐욕에 물들어 있어 무엇이라도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자기들이 부리고 있는 탐욕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에 얼마나 탐욕을 부렸는가 하면 자기들의 말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찾아온 부자 청년도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의를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우상이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문화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 그리고 은사적인 행위들을 통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탐욕입니다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우상숭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있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에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특별한 것을 하면 그것이 교회 마다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자기들도 그것을 하고 싶어서 탐욕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그런 행위로 탐욕을 부리는 것을 누가 주는가 하면 바로 짐승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찬송가가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다들 노래를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그 노래를 부르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못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두가 다 우상 숭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하고 있는 단 한 가지의 행위에 탐욕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십일조를 정확하게 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몰라도 자기는 믿음으로 십일조를 한다고 할지 몰라도 그것 역시 탐욕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 그냥 지킵니까?
하나님의 날이라서 지킵니까?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주일을 잘 지킴으로 해서 사람들로부터 그 행위를 통해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왜 그것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짐승에게 미혹이 돼서 주일이라는 날에 탐욕을 부리면서 자기를 의롭게 보이고자 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군가 하면 바로 짐승입니다. 이 짐승이 교회를 붙들고 있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의를 들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기 위해서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그것이 실제 우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아니 사람들이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우상으로 교회가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켰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또 다른 짐승이 먼저 있던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더라 하는 이 말씀은 율법이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이 율법, 우상의 제물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전체적인 율법을 지키지는 않을지라도 자기들이 정해 놓은 율법을 지키면서 그 율법에 대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입니다.
실제로 죽인다는 것도 될 수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가 실제로 죽이지는 못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십일조를 안 내고 또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단으로 정죄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가 짐승이 되어 있는 교회 안에 들어가면 아마도 견디지를 못하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은 자기를 경배하게 만들고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않을 때는 믿음이 없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일부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안 내고 주일을 못 지키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6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입니다.
이 짐승에게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짐승이 어떻게 되는 가를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 모든 자에게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코드입니까?
정말 정신 나간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 세상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 표를 받는 사람은 이미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고 남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실제 어떤 표를 받는 것으로 바코드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에게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고 경배를 한 자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이 세상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서 있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코드 이 세상의 일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실제 바코드를 한다 해도 이 세상 사람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코드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표라는 것이 그렇게 보이는 실제 어떤 형태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에베소서 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요한계시록7:3절을 보겠습니다. (신 406쪽)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성도입니다
여러분이 인 치심을 받은 것을 믿습니까? 그럼 이 인 치심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느끼고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이 인침을 누가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영의 일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그 인침을 보지도 못했고 또 만지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그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이마에 인침을 받았는데 그것을 누가 증명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영의 일을 모르고 있는 무식한 사람들이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다고 하니까 그것을 바코드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왜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에 그런 바코드로 인하여 구원을 못 받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거대한 짐승을 만들어 놓고 강제적으로 표를 심어 버리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안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코드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받은 것을 알 수 없듯이 짐승이 표를 주는 것 역시 사람들은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을 그렇게 바보로 알고 있습니까? 사단은 사람들이 죽는 줄도 모르게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환상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입니다 그것을 실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두 짐승은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와 이방의 교회라는 것을 바로 알면 이 표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코드가 마치 사단의 표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바코드를 받으면 큰일이 나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이 매매를 합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바코드가 안 찍힌 것이 있습니까? 만약에 이것이 바코드라면 이미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코드가 찍혀 있는 상품을 매매를 하면서 자기가 표를 안 받았다고 말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어린 아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표를 누가 받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은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자들이 이 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아 있는 자들 중에 표를 안 받고 받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모든 자들이 받았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받았습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를 하지 않은 자는 다 죽이고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표를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안 받고 받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받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았는데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 빼고는 모두가 이 표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볼 때 주의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을 때는 그 말씀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 기록을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두 짐승이 누구라는 것을 안다 해도 왜 이 말씀을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성경을 모르는 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첫 단추가 되는 짐승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13장을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신 이유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1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누구든지
13장9절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 그 이름의 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장 9절에 있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9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13장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장에서 두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성경을 보는 어느 사람이라도 이 말씀을 보고 바로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두 짐승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두 짐승에게 미혹이 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에게 미혹이 되면 누구든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있던 짐승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는 분별을 하는 성도는 인내와 믿음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또 다른 짐승이 표를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게 하는데 이 표를 받은 자 외에는 누구든지 매매를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9절과 17절의 누구든지 는 반대가 되는 말씀이지만 결국은 똑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처음 누구든지 는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두 번째 누구든지 는 짐승에게 미혹이 되는 누구든지 매매를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와 인내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는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다.
두 짐승에 대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에 권세에 의해서 모두가 굴복을 하고 결국에는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또 교회가 짐승의 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성도들을 말씀하면서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짐승입니다
다 죽이고 땅에 살아 있는 자 모든 자들에게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를 가지고 매매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하는 사람은 구원을 못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표를 모두가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13:44절을 보겠습니다. (신 22쪽)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매매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의 소유를 교회 안에서 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 은사적인 의, 이런 모든 것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매매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표를 받은 자만 매매를 합니다.
성도들이 이것들을 매매를 합니까? 성도들은 이 소유를 이미 다 팔았기 때문에 매매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매매를 하고 싶어도 자기 소유가 없기 때문에 이미 다 팔아서 천국을 샀기 때문에 매매할 수 없지만 짐승에게 표를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이 의를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짜 사고파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매매를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매매를 하는 것과 같이 자기의 의를 사고 있고 또 팔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결국 이방의 교회도 또 다른 짐승이 되어서 존귀에 처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 소유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8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육백 육십 륙
바코드가 아닙니다. 성경에 바코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육백 육십육을 정확하게는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비유적인 숫자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의 완전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짐승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빠져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그들은 율법에다가 은사가 더해져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그 우상의 숫자가 육백 육십육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이냐면 바로 탐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탐욕을 부리고 있는 그것이 바로 이 육백 육십육이며 성도는 탐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이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탐심을 부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탐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이성으로 좋게 생각하고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역시 탐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한 행위라도 탐심을 부리고 있다면 그는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또 짐승의 표를 받아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탐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왜 탐심을 부리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탐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사람은 반드시 짐승과 같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이 시대 교회는 사도요한이 본 환상과 같이 모두가 탐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율법 얼마나 지키고 싶어 합니까?
은사 그것을 얼마나 갖고 싶어 합니까? 그것을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온갖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런 것을 탐하지 않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짐승의 표를 받아서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두 짐승입니다
처음에 있던 짐승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짐승은 이방의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모든 교회가 다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지 않은 모든 사람은 이 짐승의 표를 받아서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물건을 매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매매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지만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과 은사를 가지고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짐승에게 표를 받은 것인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환상과 기도응답 같은 표적을 다 표로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두 짐승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듣지 않은 것 같이 이 시대 역시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듣지를 않고 있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미 우상의 제물만을 전하고 있고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두 짐승을 바로 분별하고 또 사도요한에게 보여준 환상을 통해서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모든 탐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짐승이 만든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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