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49강, 룻

윤주만목사 2019. 3. 30. 09:53


49,

 

마태복음 1:1-6절을 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성경은 구원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왜 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발달을 하고 교회가 거대한 종교의 집단이 되다 보니까 자기가 가야 하는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우연히 그 인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인물을 세워서 어떻게 구원을 하고 있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 가를 배워야 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과 같이 구원을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룻이라는 여자를 구원한 것은 그 여자 한 사람을 그저 세운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내가 룻과 같은 여자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은 곧 나입니다

그것이 예전에 있던 어떤 사람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나를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고 있는 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인물이 어떻게 행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인물을 어떻게 섭리하시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기적입니다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구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상식으로 저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 같아 아니 저 사람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야 라고 하는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도 모르는 아니 도저히 구원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해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많다는 것이 절대 나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것은 분명히 좋지만 사람들은 구원이 얼마나 극적이고 또 기적적인가를 모르게 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다 보니까 구원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면 됩니다.

또 내가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생각을 해서 이 교회는 좋고 이 교회는 목사가 참 마음에 들고 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자기를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회를 선택을 해서 다니고 있다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자기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또 찾으시고 그들을 선택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의 그런 기본조차 모르고 있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셨다는 것을 아주 기분 나빠하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을 나를 선택한 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안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뭐라고 합니까? 벌레요 구더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벌레 구더기가 그리고 지렁이가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그것들을 찾아서 나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사실은 나를 모르는 것이 바로 벌레입니다 내가 그것들을 보호해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사랑을 베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나를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인생의 차이가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 안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또 지적인 이성을 갖고 있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는 못 합니다. 그것은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 보실 때는 벌레요 구더기요 지렁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이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런 제사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자기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10절을 보겠습니다. (128)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많은 교회가 있어 스스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만 이 시대는 자기가 찾고 있습니다.

 

구원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절대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구원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점점 율법주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렁이가 땅 밖으로 나왔습니다.

한번 그렇게 나오면 스스로는 땅 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부분 지렁이는 그렇게 나오는 순간에 죽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살리려면 땅속으로 집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지렁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하고 또 그것을 앎으로 해서 나 역시도 그렇게 은혜를 입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자기가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사실은 사망의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 인생은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 보니까 자기가 잃어 버렸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이스라엘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안 믿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로마라는 강대국이 있어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신실하게 믿었고 그런 자기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데 있어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구 입니까?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단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부를 하던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마귀의 지식들 중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예수님께서 구원을 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잃어버린 자입니까?

그 당시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사람이 잃어버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했던 부류의 사람이 잃어버린 자였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그 당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볼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는 그를 찾으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주류가 아니라 주류에서 볼 때 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 같아 하는 그가 잃어버린 자이고 또 주님께서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나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어버린 자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찾아서 은혜를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류에 속하기를 좋아하고 그 안에 있는 자기를 보면서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과 같이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의 일입니다

아니 그것은 이스라엘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잘못했어도 자기들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과 그 섭리를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를 하고 있고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룻기1:1-5절을 보겠습니다. (402)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 지 십 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룻기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들어서 룻이 누구인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에 엘리멜렉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서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가서 살다가 자기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이제 나오미와 자부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가 룻입니다

그 남편은 말론입니다 말론은 아주 병약했던 것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은 다 이름의 뜻에서 보면 이방 땅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룻기를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둘째 며느리인 오르바는 그 남편이 죽고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시어머니의 말에 따라 모압에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옵니다.

그 시아버지의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그들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모압 땅으로 가서 거기서 두 자부를 얻었지만 신앙만은 지켰던 것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에서 분명히 엘리멜렉은 자기 가정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정확하지만 보통 우정(友情)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신학자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으로는 룻에 대해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가 자기 동족에게 가라고 했지만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것이 룻기의 시작입니다

 

룻기1:16-17절을 보겠습니다. (403)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의 고백입니다

지난시간에 라합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라합 역시 하나님을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라합은 소문으로 들어서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고 룻은 아마도 시아버지의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시아버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십년입니다

모압은 이방입니다. 그 당시 모압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이 시집을 와서 십년을 살았습니다. 그 동안에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고 하나님에 대해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기를 보고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공경을 한 며느리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전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룻의 고백은 물론 시어머니에 대한 공경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룻은 엘리멜렉의 가정으로 시집을 와서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은 성경을 마치 도덕책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더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덕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성경은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이미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가 하면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우리의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 나선 것은 그것은 룻의 즐거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시집을 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돌아갔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돌아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오르바가 절대로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 보았을 때 더 이상 나오미와 함께 있는 다는 것은 젊은 여자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두 사람이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세상을 따라 돌아갔고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별로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집니다.

이것은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두 여자에게 똑같이 복음이 전해졌지만 한 여자는 결국에는 세상을 따라 가버렸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즐거움을 따랐습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하늘의 즐거움을 따라 룻은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갔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어떤 즐거움을 따라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즐거움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의 일이며 나오미를 따라간 룻에게는 반드시 즐거움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나오미는 다 잃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갈 때 자기 기업을 다 팔아서 갔는데 그곳에서 자기 남편을 잃고 또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나오미는 더 이상의 즐거움이 없어 보입니다. 세상에 즐거움은 없었지만 분명히 하늘에 즐거움은 있었습니다.

 

왜 룻이 나오미를 따라왔습니까?

성경이 룻이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것을 이 시대 사람들이 배워서 그렇게 하라고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오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룻을 통해서 이방의 여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고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루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룻기2:3절을 보겠습니다. (40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가을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기업이 없는 나오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추수 때에 베는 자를 따라 가서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밭에 이삭을 깨끗이 베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레위기23:22절을 보겠습니다. (18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을에 추수를 할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이 율법대로 곡물을 벨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않았으며 또 베다가 떨어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절대로 줍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가난한 자나 객을 위해서 그것을 버려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이신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와 객을 불쌍히 여기시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추수를 할 때 일부러 곡물을 떨어뜨리면서 베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기계가 다 하니까 사실 이것이 별 의미가 없겠지만 이때만 해도 아니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이 다 일일이 손을 했습니다.

 

룻을 위해서입니다.

룻은 이방의 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곡물을 벨 때 반드시 남겨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객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율법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곡물을 벨 때 떨어뜨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는 룻이 추수하는 밭에 가서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룻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해서 곡식을 벨 때 다 베지 말라고 하신 것을 알고 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어서 시어머니와 자기가 먹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육적인 이삭이지만 이것은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율법에 곡물을 다 베지 말고 또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니까 그대로만 했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그리고 객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남겨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육적으로는 참 잘했지만 영적으로는 남겨 두지를 않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리고 또한 객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곡식을 다 베지 말고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룻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룻이 육의 곡식을 주워 양식으로 삼았지만 그것은 영의 양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는 다 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을 남겨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가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이방의 객이 그것으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신 뜻입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남겨 두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먹고 있습니다. 룻이 그 당시 그것을 주어서 먹은 것 같이 우리가 이 시대 이스라엘이 남겨 놓은 것을 먹고 구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이방에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율법적으로 그것을 행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 세상에 가난한 자나 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영의 성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너무 육으로 하다 보면 진짜 영의 일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너무 율법의 모양을 육으로 나타내서 이 세상에 사랑을 보이려고 하는 교회들이 많은데 그것이 오히려 진리를 가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빵 하나 더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영의 양식을 먹여서 그가 구원을 받게 하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율법의 문자에 갇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제가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빵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 준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룻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 추수할 때 곡식을 떨어뜨린 것을 다 줍게 하고 또 모퉁이를 다 베게 했다면 룻은 먹을 양식이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나오미가 모압 땅으로 갈 때 자기 기업을 다 팔고 갔기 때문에 만약에 이 율법이 없었다면 룻은 남의 집에 종살이를 하든지 아니면 삯을 받고 일을 해야 하는 일꾼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15:27절을 보겠습니다. (26)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가나안 여인입니다

역시 이방 여인입니다.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고 하면서 소리를 질러 예수님께 그 병을 고쳐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무엇을 말합니까?

주여 옳소이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여인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추수 때에 떨어지는 것을 다 줍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정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주님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바로 알아야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말을 합니다.

이 여인이 자기를 개라고 한 것처럼 자기를 낮추어서 주님으로부터 자기 딸의 병을 고침을 받았다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 여인은 율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주인이 곡식을 벨 때 다 베지 말고 가난한 자들과 객을 위해서 남겨 두라는 그 말씀을 하면서 율법의 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정말 주위 깊게 보지 않으면 이런 말씀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 여인이 자기를 개라고 낮추어서 마치 자기 딸의 병을 고침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가 그렇게 인간적으로 겸손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자기를 낮춘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가나안 여인은 그것을 주장하고 예수님께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듣고 주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 그대로 되리라 하시고 그 시로 그의 딸이 나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과 객을 위해서 밭의 모퉁이를 다 베지 말고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하신 율법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예수님께 말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여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율법대로 그 여자의 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방은 객입니다

그리고 율법적으로 볼 때 너무도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먹을 수 있게 이스라엘에게 밭의 모퉁이를 다 베지 말게 하셨고 또 곡식이 떨어지는 것을 줍지 말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서 그것을 주어서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이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이방인인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마치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런 말씀들을 바로 알아야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룻기2:8-9절을 보겠습니다. (403)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

 

보아스가 말 합니다.

내 딸아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합니다. 그들이 베는 것을 보고 따르라고 합니다. 또한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으니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온 것을 마시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역을 잘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다 육적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날씨가 굉장히 덥습니다. 잠시 일만 해도 너무 더워서 목이 마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에 가지 말고 곡식을 주우라고 말을 하고 있고 똑 목이 마르거든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먹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양식입니다

룻의 육의 양식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 양식을 주워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목이 마르면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를 하고 있는 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곡식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을 안 드려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이 마릅니다. 보아스가 지금 룻에서 무슨 물을 주고 있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구원에 대해서 목이 말라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가 있고 또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요한복음4:14절을 보겠습니다. (148)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이 영생에 대해서 목이 말라 있습니다. 그것을 채워 줄 있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이 갈증이 해소가 안 되어서 이단이 와서 한번 흔들기만 하면 모두가 거기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보아스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습니까? 룻은 우리 이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아스는 가난하고 객인 이방인인 룻에게 양식을 주고 물을 주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보여 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보아스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주고 있는 가를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룻기는 룻과 보아스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인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룻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어떻게 입어서 구원을 받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갔는가를 우리가 룻기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구원을 받는 일이고 천국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이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룻이라는 이방 여인을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룻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룻과 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아스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룻에게 보아스가 있어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아도 됩니다. 보아스가 먹으라고 하는 그 물을 먹고 룻은 육적으로 목이 마르지 않았고 그것은 영적으로 영생에 대해서 목이 마르지 않았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룻을 모압 땅에서 생명의 말씀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오셔서 그에게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시고 또 목마르지 않는 영생을 얻는 물을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룻이 누구입니까?

사실 모압 땅에서 사는 이름도 없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엘리멜렉의 가정을 모압 땅에 가서 살게 하시고 또 그 아들을 통해서 혼인을 하게 하시고 그 아들들이 죽자 생명의 떡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오게 하셔서 보아스를 통해 곡식을 먹을 수 있게 하고 또 목이 마르지 않게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섭리를 하고 있습니다. 룻이라는 여자를 통해서 구원을 어떻게 이루시고 있는 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또 룻을 통해서 우리도 역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룻과 같은 믿음이 있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통해서 바른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그림자를 그림자로만 보아서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자 하는 뜻을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보아스를 통해서 룻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없습니다.

나오미가 이스라엘인이고 원래는 베들레헴에 기업이 있었지만 다 팔고 모압 땅으로 가서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룻은 천국의 기업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천국에 기업이 없는 룻이 어떻게 해서 기업을 이을 수 있는 가를 룻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기업이 없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친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천국에 기업을 갖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룻이 천국의 기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방인인 우리가 룻과 같이 천국의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룻기2:19-20절을 보겠습니다. (404)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보아스가 볶은 곡식과 떡을 주었습니다.

룻이 배불리 먹고 그 남은 것을 시모에게도 주어서 먹게 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룻에게 네가 오늘 어디서 일을 했느냐고 하면서 너를 돌아본 자가 복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 합니다. 룻이 대답하기를 자기를 일하게 한 자가 보아스라고 말 합니다.

 

하나님이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나오미가 이 말을 한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룻기에서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이런 말씀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에게 여호와의 복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 합니다.

 

그에게 여호와의 복이 있습니다.

지금 누구를 가르쳐 말하고 있습니까? 육적으로는 분명히 보아스를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복이 누구에게 있는 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복이 누구에게 있는 가를 알고 지금 이 말을 룻에게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30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서 한 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우리가 소망을 하고 있는 천국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을 기독교인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이 어떤 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구약의 이런 복을 가지고 마치 이 세상의 복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복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의 복은 사단이 가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분복을 주셨습니다. 우린 그 분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지 마치 이 세상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고 싶습니까?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두 가지 복을 다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이방인에게 미치고 있고 그 복이 천국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이 세상의 기복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목표가 뚜렷합니다.

성경의 정점은 천국입니다 성도는 이 천국의 복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지 이 세상의 복을 바라보고 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포기하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땀 흘려 일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누구입니까?

보아스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나오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 것이지 보아스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그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을 받으라고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가 아니고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국의 복을 예수가 아니고는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통해 받은 복이 지금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이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면서 이방의 빛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 연인 룻을 통해서 천국의 기업을 어떻게 이을 수 있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바로 보아스를 세워서 룻에게 천국의 기업을 잇게 하시는 역사를 보여 주시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천국의 기업을 얻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룻기3:1-4절을 보겠습니다. (405)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나오미는 우리의 즐거움입니다.

그 나오미가 룻에게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나안에 기업을 얻는 것은 천국에 기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안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입니다. 그에게는 가나안에 기업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을 얻게 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룻이 안식할 곳을 얻은 것은 우리가 천국을 얻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룻이 이 안식할 곳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할 곳을 얻어야 합니다.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그것은 안 얻어도 되고 얻어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그 안식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아직까지 안식할 곳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에는 나왔지만 안식할 곳을 구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는 데는 너무 열심을 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 영혼이 안식할 곳을 구하는 데는 너무도 게을러 있습니다.

 

마태복음13:45절을 보겠습니다. (22)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시는 선물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가 맞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대해서 들었다면 당연히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구합니까?

기도를 해서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이 구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을 구해서 우리가 성경 안에서 천국의 안식을 얻을 수 있게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천국의 안식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자기 모습에 취해서 마치 안식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광야의 고된 삶이지 천국의 안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있는 성도는 늘 이 안식을 위해서 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히브리서4:11절을 보겠습니다. (356)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셔서 그 은혜를 주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제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오미가 말한 것과 같이 안식할 곳을 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청함을 받았다고 해서 자기가 안식에 들어온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 거대한 교회가 세워지고 그 안에만 들어가 있어도 무엇인가 안심이 되고 평안함을 육체적으로 느끼는 시대에 영의 비밀을 모르면 그대로 다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육적인 안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힘쓰시기 바랍니다.

룻은 이방 여인입니다 율법의 예로는 그녀가 안식할 곳을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방 여인이지만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의 기업을 얻게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육을 보고 우리는 영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안식할 곳을 바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기업이 없는 룻이 기업을 얻어 안식할 곳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룻은 가난하기 때문에도 기업을 살 수 없고 또 이방의 객이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기업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의 기업을 얻어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을 지금 룻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룻이 어떻게 해서 천국의 기업을 얻어 안식에 들어갔는가를 배워서 우리도 역시 그렇게 룻과 같이 천국의 기업을 얻어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에 힘쓰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다른 것에 정말로 힘 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다른 것에 힘을 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는 그 일에 힘을 써서 어떻게 하든지 그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는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유익입니다.

 

차라리 교회 밖에 있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빠져 종교를 섬기느라 힘을 다 쓰고 있습니다.

 

룻기3:7-11절을 보겠습니다. (405)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리고 보아스에게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보아스는 누구냐 하면 엘리멜렉의 친족입니다 가까운 친족으로서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지금 룻이 보아스에게 우리 기업을 물러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룻이 이 일로 인하여 천국의 기업을 얻어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 복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의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복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보아스가 왜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거절을 할 수 있는데도 왜 이 말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룻이 보아스에게 한 말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5장에 가나안 여인의 말을 했습니다. 그 여인이 율법의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룻도 지금 율법의 예를 들어서 보아스에게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 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하는 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늘 율법을 보아야 하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에서 그림자를 걷어 내고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레위기 25:23절을 보겠습니다. (186)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천국은 누구 것입니까?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토지를 영원히 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천국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니까 너희가 그것을 영원히 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은 나그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천국에 들어가서는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지만 천국의 예표인 가나안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 예표를 보여 주신 것이고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신 가나안 땅은 내 것이니까 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5:24-28절을 보겠습니다. (186)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율법입니다

토지를 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난해져서 어쩔 수 없이 토지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이 판 것을 무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이 율법을 정해 놓았는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에게 에덴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담은 사단에게 기업을 팔아 버렸습니다. 죄를 져서 가난해 지니까 에덴을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에덴을 다시 찾아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값으로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다 사단에게 팔린 자가 되었습니다.

 

희년을 강의해 드렸습니다.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년이 되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 무를 사람이 없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다시 기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은혜의 해에서 강의를 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가난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룻은 가난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입니다. 그 여인이 천국을 기업으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친족이 와서 그 기업을 물러 주면 되는 것입니다

 

에덴은 본래 아담의 땅이었습니다.

천국은 본래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죄를 진 인생들은 모두가 가난해서 스스로 그 기업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친족 중에 부자가 있으면 그것을 다시 사서 물러 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른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지금 보아스가 룻에게 기업을 물러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4장에 가서 그 말씀이 나오겠지만 무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잠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엘미멜렉이 기업을 팔고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 죽었습니다. 보아스가 그 기업을 물러 주면 보아스가 그 기업을 사서 다시 엘리멜렉의 기업이 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보아스 것이 아닙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보아스의 것이라면 이 기업 무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이 기업을 사서 룻에게 주면 보이스는 더 이상 이 기업에 대해서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제 엘리멜렉의 기업이 되어서 룻이 그 기업을 이었기 때문에 룻의 기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이 바로 이렇습니다.

 

룻이 율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에게 율법에 친족이 기업을 물러 주게 되어 있으니까 기업을 물러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룻에게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현숙한 여자에 대해서는 제가 설교 말씀으로 올려 드렸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면 됩니다.

 

룻기3:12-13절을 보겠습니다. (405)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

 

기업을 물러 주어야 합니다.

율법에 그의 친족은 기업을 물러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대답하기를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 머무르라 아침에 기업을 무를 더 가까운 친족이 네게 책임을 행하면 좋겠거니와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를 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친족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아무리 가까운 친족이라 해도 기업을 무른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 기업을 사서 자기 것이 되면 좋은데 원래 기업의 주인의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는 돈을 주어야 하고 권리가 아무 것이 없기 때문에 기업을 무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아무리 기업을 무를 책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강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자기 부인도 있고 아들들도 있는데 아무리 자기 재산이라고 해도 혼자서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자기 재산을 친족에게 그냥 주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누가 그것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맹세를 합니다.

룻이 자기의 기업을 물러 달라고 하니까 보아스가 명세를 하면서 아침에 더 가까운 친족이 무르면 좋겠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반드시 그 기업을 물러 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보아스는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에덴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난합니다. 그런 가난한 우리에게 천국의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팔아 버린 기업을 다시 사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천국의 기업을 물러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드로전서1:4절을 보겠습니다. (377)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의 기업입니다

룻은 가나안 땅의 기업을 보아스가 물러 주어서 안식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우리의 친족이 스스로 되셔서 우리가 팔아 버린 에덴의 기업을 다시 찾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기업을 얻지 못한다면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천국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천국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기업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잠시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세상의 것은 언젠가는 썩고 쇠하고 더러워진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 천국의 기업을 생각하면서 그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룻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이 천국의 기업을 잇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이 기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고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룻기3:18절을 보겠습니다. (406)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천국의 기업을 잇게 하시기 위해서 쉬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업을 얻어 안식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쉬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17절을 보겠습니다. (150)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쉬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주님께서는 하나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도 우리가 천국의 기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쉬지 않으시고 지금도 쉬지 않고 우리가 구원을 받아 안식에 들어가게 하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다 하셨습니다. 룻은 가만히 있고 보아스가 그 일을 다 알아서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룻에게는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수 있게 모든 일을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천국에 기업을 잇게 하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업은 룻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업을 물러 줄 수 있는 보아스가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룻은 그저 처분만 바라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의 기업을 잇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일을 하셔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의 기업을 잇고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누가 일하고 있습니까?

룻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스가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룻은 그저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천국의 기업을 잇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다 이루시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요한복음14:2-3절을 보겠습니다. (17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소를 예비하시고 다시 오셔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업을 물러 주실 분은 부자입니다.

 

다 살 수 있습니다.

아니 천국의 모든 땅의 소유주이십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 창조주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로 팔아 버린 에덴을 다시 사서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가서 룻의 기업을 잇게 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 가셔서 우리가 안식에 들어갈 기업을 잇게 하시고 그 처소를 예비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거할 처소를 이미 다 예비를 하셨습니다. 그 처소는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식할 수 있는 그런 처소를 예비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을 무를 자에게 이야기를 해서 기업을 물러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기업을 물러줄 자가 누구라는 것조차 모르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기업을 물러줄 자가 누구인가를 알면 그에게 가서 부탁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룻은 자기의 기업을 물러줄 자가 보아스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가서 기업을 물러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난한 자나 이방인이 천국에 기업을 얻을 수 있게 기업을 물러 줄 수 있는 율법을 만들어 이스라엘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법대로 하면 됩니다.

우리는 법에 있는 대로 내 기업을 물러 줄 친족이 누구인가를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도 율법을 잘 안다고 하는 그들이 정작 중요한 자기의 기업을 물러 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천국에 있지를 않고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율법을 보고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 무를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가난한 우리의 기업을 물러 줄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은 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것을 영원히 팔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정말 친족도 없으면 희년이 되어서 자기 기업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룻과 보아스와의 관계는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천국의 기업을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소를 예비하시고 우리를 영접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안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 믿고 있습니다.

 

룻기4:14절을 보겠습니다. (407)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찌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즐거움입니다.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기업을 무를 자가 있는 사람은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 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업을 무를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죄로 죽어야 하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의 기업을 잇게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기업이 아닙니다.

 

썩지 않습니다.

더러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쇠하지도 않습니다. 천국은 영원한 즐거움만 있는 안식입니다. 그 기업을 얻었는데도 찬송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천국의 즐거움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으로 즐거워하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국의 기업을 이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룻은 나입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가난해서 남들이 추수하는 곳에서 양식을 주워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려면 목이 말라 있습니다. 그런 룻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천국의 기업을 잇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룻이 바로 다윗의 증조할아버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룻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룻과 같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천국에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너희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할 곳이 많다는 것을 믿고 이 기업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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