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윤주만목사 2019. 2. 23. 20:39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신명기 15:7-11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율법

성경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율법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죽게 히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 좋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율법은 나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지나치게 보이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자기가 당사자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의 일로 보면 그것이 지나치게 보일지라도 내가 그것을 직접 당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먼저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마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율법이 믿음이 되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안 지키고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특히 시민법으로 기독이 되어 있는 율법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금이라도 더 지키려고 합니다. 아니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하고 있는 자기를 보면서 마치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습니다.

특히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어느 교회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해서 밥을 주고 있고 여러 가지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니세프라든지 그런 구호 단체를 통해서 정말 가난한 나라에 아이들을 위해서 후원하는 그것으로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율법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저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는 것이며 그런 행위를 조금 하는 것으로 자기가 율법대로 살고 있다고 아니 다는 못해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있는 이런 말씀들을 자기가 조금 하는 그것으로 마치 자기가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는 이상 그 노력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다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은 약간의 돈을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나한 자를 위해서 다 내 놓았다 해도 그는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입니다.

 

약간을 후원했습니까?

그것으로 내가 노력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적으로 자기가 행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자기 육체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릅니다.

그것은 율법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저 율법을 보면서 초등학문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어떤 학문도 다 초등학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초등학문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설명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 성경을 보고 그 뜻을 그대로 이해를 하면 그것을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신명기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펴서 도우라고 말씀을 하셨구나 하면서 그들을 돕기 위해서 앞에서 말씀을 드린 그런 행위들을 했다면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보이고 말을 하는데 그가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알 수 있어 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그대로 이해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초등학문입니다.

 

모든 성경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초등학문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교회 안에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르쳤는데 그것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이해를 하고 있다면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성경을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정말 목사들의 설교를 가끔 들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목사입니까?

그저 성경을 지식으로 공부를 해서 어느 말씀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들으면서 아멘 아멘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독사의 독이 있는 그 말에 나를 죽여 달라고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설교에는 예수가 없고 내용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안타깝지만 이 시대 율법주의 은사주의 성화주의인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저주를 자청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18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도 교묘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면서도 율법주의가 되지 말라고 말을 하고 또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성령이 오시면 이제 율법 아래 있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성도로서 살아가게 인도를 해 주시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이 율법도 지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래서 율법 아래 있었는데 이제 성령이 오시니까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를 하심으로 우리가 율법을 당당히 이겨서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이스라엘과 그렇게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경께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도와 주셔서 이제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 아래 있을 때는 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지면서 살았는데 성령이 오시니까 이제 법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시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성경이 아무리 진리를 기록했다 해도 목사들의 말에 의해서 그것이 사망에 이르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하면서 그것을 설교라고 하고 있고 그것을 듣고 있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마치 진리를 들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율법을 잘 지키고 신앙생활도 잘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 분명히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율법이 아니라고 합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똑같이 지키면서 이스라엘이 하면 율법주의고 자기들이 하면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 시대 안식일 교회가 하면 그것은 율법이고 자기들이 하면 믿음이라고 아주 이상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아니 성경에 언제 주일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대로라면 안식일 교회에서 드리는 것같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물론 안식일 교회의 그 안식일도 스스로가 안식일의 규례를 지키지 않은 모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 하는 그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있습니다.

 

신학에서 조직신학을 배워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처음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점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그런 공부를 하고 있는 신학생들이 교회에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일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들이 또 교인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기독교는 종교화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두 짐승 중에 하나 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거의 다 율법 아래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 문자적으로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안 됩니다 내가 믿음으로 한다고 하는 그 율법도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초등학문 아래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주일을 지킵니까?

그리고 형식에 따르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다 초등학문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계속해야 하는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주일에 대해서 판단을 하면 마치 예배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예배 하는 것을 언제 반대 했습니까?

 

율법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주일이라는 율법이 아니고 또 형식에 맞추어진 예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찾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완전히 종교가 되어서 짐승에게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문자적으로 아는 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초등학문에 빠져 있다가 결국에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초등학문에 빠져 있지만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고 가는 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저 율법 아래서 진노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받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가 문자적으로 지키라고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으라고 주셨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사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법이 있습니다. 도덕법입니다. 이 세 가지 법은 모두가 다 율법입니다, 그러나 제사법과 시민법의 거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하신 일들을 그림자로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덕법은 그 법을 통해서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있고 또 그 법을 통해서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할 정도로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법 역시도 시민법에 속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시민법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반드시 걷어내고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율법을 보면서 자기들이 육체로 그대로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그들이 육체의 모양을 내면서 부자가 되어 가고 있고 그런 부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가르쳐 주셨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부자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다 해도 그가 갈 곳은 지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어느 율법이라도 그것으로 부자가 되는 순간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으로 부자가 되지 마시고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가는 성도가 되어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의 어느 한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동족이 살고 있거든, 당신들은 그를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 가난한 동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당신들의 손을 움켜쥐지 마십시오.”

 

율법은 이스라엘의 육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지금 신명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가난한 형제가 너희와 함께 있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고 내 손을 움켜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가난한 자들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실제가 아니라 영적으로 그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가나한 자들을 위해서 추수를 하고 나서 한 번 밴 이삭을 다시 거둬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네 모퉁이를 추수하지 않았습니다. 또 과실이 열려 있는 나무에서는 다 따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은 매 삼년 끝에 십일조를 해서 가난한 자들이 먹을 수 있게 창고를 가득 채웠습니다.

 

다 영적인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런 말씀들을 보고 다 육적으로 했습니다. 이렇게 육적으로 하는 것을 바로 초등학문에 있는 것이고 율법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게 육적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그들은 어디나 있습니다. 육적으로 가난한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가난합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육적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이 율법은 이 세상에 가난한 자가 아니라 율법으로 가난한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가난한 자를 육적인 가난한 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와줍니다.

또한 도와주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 자책을 하면서 정죄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정죄에 빠져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보는 성도는 절대로 정죄에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에 대해서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율법의 의를 보면서 마음에서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하는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그렇게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시민법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해 주시는 일들을 율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 교인들도 이런 율법을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부자가 되어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또한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대표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대표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가 이 율법에 기록된 대로 자기 육체로 행할 수 있습니까? 물론 행하는 사람이 가끔은 있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가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 율법은 주님께서 오셔서 이 세상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형제인 우리에게 부요함을 다 주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키셨기 때문에 부요하신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합니다.

이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강퍅케 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세상에 대해서 부요하신 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움켜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손을 펴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그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부자가 되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고 또 성화가 되려고 큐티를 하고 있고 자기에게 있는 은사를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가를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오히려 자기들이 은혜를 받았고 또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가지를 바로 알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르고 또 율법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어서 그저 자기 육체로 그것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가나한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말씀을 바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율법에 대해서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참으로 묘합니다.

그것을 지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되고 맙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비교할 때 자기가 잘 지키고 있는 그것을 보면서 자기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그는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음부에 떨어지고 마는 신세가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고 그 안에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모르니까 초등학문에 빠져 자기들이 가난한 자를 도우려고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까 스스로 정죄에 빠지고 그것이 진노를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가난한 형제입니다.

과연 누가 그렇게 넉넉히 줄 수 있습니까? 지금의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과연 이 율법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율법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이 율법에 형제라고 하니까 이방인인 팔레스타인을 대적으로 생각을 하고 가난한 그들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살생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누가 기독인이 더 많습니까?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는 물론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기독교인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더 적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목사들 중에는 이스라엘의 그 전쟁을 옹호하고 있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육적으로 하라고 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어떻게 해 주시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손을 우리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베드로후서 1:11절을 보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넉넉히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쓸 것을 넉넉히 주셨습니다. 조금도 모자라지 않도록 넉넉히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을 보고도 주님이 우리에게 쓸 것을 넉넉히 주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서 어떻게 하든지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마음에서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다 육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넉넉히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넉넉히 주셨습니다.

 

율법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율법을 바로 해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육적으로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 거절을 하는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의 일이지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그것을 지켜서 생명을 얻으라고 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또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가나한 자라는 것을 깨닫고 또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해 주시는가를 깨닫고 믿게 하기 위해서 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보고 모두가 다 행위에 빠져 들어가는 미련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주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악한 마음이 없는 분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시민법인 율법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걷어내고 나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잘 이해를 못하다 보니까 자기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은 육적인 이스라엘이 물론 육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가난한 자가 누구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다면 누가 이것을 하셨는가를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을 다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다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제는 하나님께 호소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까지도 호소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이고 오히려 그 죄가 자기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가난한 자들이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도 호소를 합니까?

그 사람은 안 믿는 미련한 자입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 가난한 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은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부요하게 되어서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이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그저 자기들의 미련함을 더 나타내고만 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선하십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부요해 질 수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해서 자기 율법의 행위로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 썩어 버리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하면서 썩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주님입니다.

이 시민법은 주님이 이루시는 법입니다 이런 법을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난한 형제를 돕는 것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 이성적 도리로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자를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구제할 때 아끼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이런 시민법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이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하면서 자기들이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들이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성경을 모르면 그러한 행위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 내가 지키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 가난한 자를 위해서 자기 손을 펴서 그에게 내어 줄 수 있습니까? 그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 일은 오직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초등학문 아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성도는 이것이 주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그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보고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지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늘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아니 아담부터 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의 모든 사람이 다 가난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네 손을 펴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펴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말씀 그대로 주님이 오셔서 이루셨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시민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은혜를 거절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에 누구를 찾아 오셨습니까?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와 곤란한 자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의로는 도무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형제로 오셔서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이 시민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이러한데도 율법을 보고 감사하지를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보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율법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실상은 자기들이 모르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율법을 모르는 자들은 그저 육체적인 행위로 나타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걷어내는 성도만이 이 율법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고 있습니다. 진리를 바로 아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