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45강, 새로운 피조물

윤주만목사 2018. 10. 27. 06:24


45, 새로운 피조물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겠습니다. (29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갈라디아서를 마치면서 율법에 대해서 우리 성도는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우리 성도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육체로 분명히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육체는 죄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의 비밀을 통해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새 것이 되었습니까? 우리의 육체는 썩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썩는 것으로 새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새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와 똑같은 영을 우리 안에 탄생을 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육체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나는 죄악의 종자고 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죽어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은 어느 것이라 해도 새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한번 더러워진 것은 아무리 그것을 다시 고친다 해도 새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불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어느 것을 새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불교를 믿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썩어진 것이 어떻게 새 것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 교회는 불교가 되어서 자기 육체의 것을 새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성화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로서 온 것이 새 것이 되고 그것은 절대로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새 것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더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온 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우리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 육체가 아직 살아 있을지라도 성도는 그 육체를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입니다.

사실 불교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의 비밀을 모르고 불교와 같이 자기 육체를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그것 말고는 사실은 불교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가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영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육체가 죽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있고 그리고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영의 존재 자체를 이성으로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이 새로운 피조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새로운 피조물에 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새로운 피조물을 사람들의 이성으로 설명을 하다가 스스로 올무에 걸려들고 있습니다.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밝히 보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영의 일들은 믿음이 아니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 믿어지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이 안 믿어진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세뇌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먼저 율법을 버리고 믿음을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듣고도 율법을 지키면서 지혜를 구하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이 영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16절을 보겠습니다. (309)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이 법칙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이 규례입니다.

어떤 규례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하는 세상은 이 세상도 물론 어느 정도 포함이 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율법에 대해서 내가 죽었고 율법이 나를 볼 때도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준 규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혀 이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단 한 가지의 율법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복음에 대한 규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례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결국에는 다툼만 되고 서로의 이론을 주장하는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입니까?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내가 정말 주님의 은혜로 아니 성경을 많이 보다보니까 성경의 비밀을 알아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자가 된 것도 아닙니다. 아니 설령 지혜가 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먼저 율법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내 의를 나타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씀 안에는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오직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다른 한 의를 믿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해서 내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내 육체의 어느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새로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영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고 해서 내 육체의 어느 것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해도 우리 육체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깨끗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정립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면 사망에 이릅니다. 사람들이 자기 육체가 의롭다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두루 뭉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분명히 다 지고 가신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육체의 것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성도는 새로 지으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규례입니다.

이 법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이 새로 지으심을 받는 법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새로 지으심을 받은 영이 탄생이 됩니다.

이 법칙입니다.

세상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법칙입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는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영의 말씀을 드리면 너무 어렵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니까 처음 그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있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육체의 일을 하게 되어 있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좇아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육체는 죽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영을 따라 사는 것인가를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어 있는 성도만이 새로 지으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된 성도는 할례도 아무것도 아니고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나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나는 썩습니다.

그 썩는 것을 가지고 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나입니다. 이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내 육체가 은혜를 입어서 새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진 내 육체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영의 신비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규례는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규례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의 일이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드리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너무 어렵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말씀을 듣지 않고 육체를 따라 살아왔기 때문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육체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15:44절을 보겠습니다. (283)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의 몸으로 심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있기 때문에 아니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전적으로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 육체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육체는 아담이 죄를 짐으로 해서 모두가 죄악의 종자가 되어서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육체를 우리에게 왜 주셨는가 하면 이 육체를 통해서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육체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도 알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니 율법대로 살려고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육체가 있어서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 육체가 없다면 신령한 것을 심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세상과 같이 믿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통해서 신령한 것을 심어서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살아야 하는데 육체를 통해서 육체를 위해서 심어서 그것이 다 썩어 없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악의 종자를 통해서 그 은혜를 주시고 있지만 그 죄악의 종자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로 태어난 이유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를 통해서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살기 위해서입니다. 죄악의 육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 지으심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은 영의 신비로운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받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영의 규례대로 살게 하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 소욕을 따라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을 우리 안에 탄생을 시켜 주셨습니다. 육체와 같이 썩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영이 신령한 몸을 입게 되는 그 날에는 하늘의 천사보다 더 신령한 몸을 입어서 그 천사도 우리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규례를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규례를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으심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평강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은 생명이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썩어지는 육체가 어떠한 고난을 당하더라도 내세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17절을 보겠습니다. (309)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사도 바울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갈라디아서의 강해를 마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똑같은 말씀을 여러분에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받은 것을 함께 받은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것을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고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을 완전하게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록한 성경 어디에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정말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 이 복음을 이방에 전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는 성경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누가 괴롭게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는데 율법주의자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와서 할례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 할례 한 가지로 인하여 사도 바울이 해산의 수고를 한 그것이 다 헛되게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나 쉽게 사람들이 다른 복음에 빠지는 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했는데도 거짓 형제들이 들어오니까 속히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해야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 때문에 사도 바울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아직 까지 이 율법의 문제가 명확하게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서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 그 율법으로 괴롭게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것을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데 그것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이방인들을 괴롭게 했고 사도 바울은 또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괴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게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를 보고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이 시대에 있어 교회들을 보았다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침통해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율법은 괴롭게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 율법을 없애기까지 얼마나 괴로운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갈라디아서를 다 안다고 해서 그들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될 일입니까?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많은 설교가 율법을 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많은 말씀을 보고도 율법을 폐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있다면 그들을 다시 처음부터 복음을 가르친다면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물론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라는 그 율법 하나 때문에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헛되게 된 사람들을 다시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일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낫습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율법에 미혹이 되어서 다시 가르쳐야 한다면 쉽게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배가 더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셨지만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이 복음을 듣고 회개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심각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 시대는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또 믿음으로 한다는 말을 함으로 해서 그것이 믿음으로 변해 있습니다. 거기에 은사까지 더해져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절망적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할례가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사도 바울을 괴롭게 했습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이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5:19절을 보겠습니다. (213)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나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할례라는 율법 한 가지로 사도 바울이 괴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할례 문제로 결론이 안 나서 예루살렘에 사도 바울이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율법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으니까 할례도 받게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을 하고 난 후에 주의 형제 야고보가 다시 일어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이 전혀 괴롭지가 않습니다. 바리새파와 같이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괴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괴롭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율법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 줄을 깨닫지를 못하고 지금도 바리새파와 같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율법을 지키게 하면 얼마나 괴로운 일이 됩니까? 이 괴로운 일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떻게 생각합니까? 십일조 그 문제 하나로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왜 괴롭게 합니까?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율법을 가지고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 괴롭게 하는 것으로 주님이 오실 때 거짓 선지자가 되어서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가 밤낮 괴로움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괴롭게 하는 그것으로 나중에 자기들이 받을 괴로움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괴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사람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해서 그가 영생을 얻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살아 있는 동안에 율법의 행위를 하게 함으로 해서 괴롭게 하고 있고 또 죽어서도 거짓 선지자가 되어서 밤낮 괴로움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오죽 하면 사도 바울이 이제는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보다가도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정말 어제까지도 잘 따라오던 사람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율법주의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괴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정말 해산의 수고를 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괴롭습니다. 그가 차라리 세상으로 가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받을 괴로움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을 지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4:7절을 보겠습니다. (289)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흔적이라고 하니까 어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 공동번역에서는 낙인이 찍혔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체험이 아닙니다. 이 시대 자기들이 은사를 통해서 체험하는 그것을 가지고 흔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체험을 한 은사를 마치 자기 믿음의 증표나 되는 것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겉에 있는 흔적이 아닙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문자에 사로 잡혀서 자기 이성으로 알고 있는 그대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다가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은 것을 성경을 통해서 빤히 알면서도 이 시대 역시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흔적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썩어 부서지는 그릇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보배를 가진 것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흔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역시 우리 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이 보배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보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미 복음이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까?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율법을 지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미국의 선교사들의 수고를 전부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압니다. 그들은 분명히 세상 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한글개역성경입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번역이 되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이 성경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우리에게 고마운 일을 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다고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도 지키지 않았을 때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우리 몸에 가질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을 다 버리셔야 합니다. 특히 율법은 단 한 가지라도 우리에게서 모양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는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종교가 되면서 그 종교 안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모양도 다 악하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우리는 육체의 모양을 가능한 다 버려야 합니다.

율법은 악합니다.

왜 악한가 하면 우리를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모양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보배를 가져야 합니다. 그 보배가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흔적입니다.

그것은 육체에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흔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흔적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알지도 못 합니다. 아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 못하는 영의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성령이 오셔서 소욕을 따라 이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6:18절을 보겠습니다. (309)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이제 갈라디아서를 마치려 합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학벌이 좋고 문벌이 좋은 사람이 많이 있고 또 큰 교단에 속해 있는 목사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또 신학을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있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있습니다. 저는 늘 성경을 해석할 때마다 이 말씀이 저를 감동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미련한 것을 택하셔서 세상에서 지혜 있다고 하는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고 자랑하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이 영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한 규례를 행하게 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비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영의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우리가 듣고 믿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아니 내 육체의 모든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율법을 버리는 것이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그 안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천국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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