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44강, 핍박

윤주만목사 2018. 10. 27. 06:22


44, 핍박

마태복음 5:11절을 보겠습니다. (5)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할례를 왜 받게 합니까?

아니 율법을 왜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하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니 교회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정말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있는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을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심하게 핍박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습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참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였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왜 고소를 당했습니까? 저가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한다고 해서 고소를 당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습니까?

믿는 성도라면 반드시 먼저 율법을 폐해야 합니다. 만약에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왜 핍박을 받았습니까?

그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처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부터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핍박이 너희에게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핍박을 면하려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율법주의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하는데 할례를 받음으로 해서 그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세상이 더 이상 핍박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옳습니까?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옳습니까? 지키지 말라는 것이 옳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당연히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면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가 아닙니다.

악하다고 하는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누가 핍박을 받겠습니까? 왜 초대 교회가 로마에 의해서 그렇게 핍박을 받았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악하다고 하니까 세상도 그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의 말씀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또 교회 안에서 실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 보고 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 이 한 가지로 우리는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감사하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초대교회와 같은 핍박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악하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역시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악하다고 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핍박을 면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례 한 가지만 받아도 그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됩니다. 십일조 한 가지만 드려도 그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됩니다. 사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해도 핍박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 율법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26:10-11절을 보겠습니다. (233)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심히 격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을 때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심히 격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심히 격분을 했는가 하면 사도 바울 역시도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악하다고 말씀을 하니까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심히 격분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지금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있는 성도님들은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해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으니까 그것이 깨달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이 율법을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써서 주신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이 나서 참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일반 교인이라면 저런 이단이 있나 하면서 참을 수 있겠지만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촉망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켜왔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악하다고 하니까 세상에 저런 이단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초대교회 때는 종교가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워낙 치열하게 살다 보니까 그저 종교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도 하나의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삶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그들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이 율법을 통해서 깨닫고 있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율법입니다. 자기들의 신앙의 전부가 율법인데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반 백성이라면 몰라도 최고의 정통인 가말리엘 문하에 있는 사람이라면 격분을 하고도 남습니다.

얼마나 격분했습니까?

자기 나라에 있는 사람들만 핍박을 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성에까지 가서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서 핍박을 했습니다. 사실 좋은 말로 격분이지 사도 바울이 얼마나 화가 나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합니까?

이 세상 어느 국가도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종교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에서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하면서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이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핍박입니다.

그 핍박을 피하는 일은 자기도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가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할례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게 함으로 해서 성도가 받아야 하는 핍박을 면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흠 없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지금은 국가의 권력이 세다 보니까 핍박을 가할 수는 없을지라도 아마 상종도 안 하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핍박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을 주님은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율법이 악하다는 것을 믿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편지에서 전하는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알면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편지를 정죄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악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피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율법으로 인하여 오는 어떠한 핍박도 이겨야 합니다.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초등학문에 순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그것에 순종하는 순간에 그는 이 세상과 같이 됩니다. 성도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13절을 보겠습니다. (309)

할례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율법

아마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사람들은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율법으로 저주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아간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데 더욱 더 열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무너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몇 가지 율법을 가지고 마치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마음껏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할례를 받으라고 하는 그들도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지금 십일조를 내라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도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몇 가지 지키는 것 같은 모양을 내면서 교인들에게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를 받게 하는 저희도 율법을 지키지 못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누가 지킵니까?

우리 인생은 절대로 못 지킵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할례를 받았다 해서 그리고 십일조를 낸다고 해서 주일을 지킨다 해서 율법을 지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인생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켰습니까?

아직까지 아니 주님이 오실 때까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다른 사람에게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오직 주님만이 지키셨습니다. 그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킨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십일조를 내라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분명히 율법입니다. 그렇게 십일조를 하라고 하는 그 역시도 십일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십일조를 하라고 하는 순간에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했다면 그는 아무리 십일조를 했다 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뭐 합니까?

그 십일조를 드리는 순간 그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자기 믿음을 보이고 싶겠지만 그 십일조를 드리는 순간에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며 모든 율법을 우리 인생은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십일조를 철저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드린다 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그 생각부터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7:52-53절을 보겠습니다. (199)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스데반집사의 말씀입니다.

그는 단 한번 사도행전 7장에서 말씀을 전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지키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분명히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집사는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는 문자 그대로를 지키는 것을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데 성경은 그렇게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잘 지켜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킨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지켰다고 생각합니까? 자기가 실제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면서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또 도적질 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고 자기가 도적질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지켰습니까?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자기가 실제 우상을 섬기지 않은 것으로 율법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할례를 보면서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육체로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렇고 스데반집사도 그렇고 나중에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도 역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스스로 율법을 잘 지켰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인자입니다.

도적질 한 자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하지 않은 자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살인도 하지 않았고 도적질도 하지 않았고 우상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모두가 다 범한 자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할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에 모양을 내서 자기 육체에는 할례의 흔적을 만들었지만 마음에 할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모양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마음에 할례도 하지 않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일입니다. 육체에 할레는 받아서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 같이 보였지만 그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아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할례를 받으라고 육체의 모양을 내게 하는 그 자체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할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할례를 마음에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켰더라면 그들은 절대로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할례를 받는 그 자체가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에 할례를 받습니까?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율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할례는 어디에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신명기에서 할례는 마음에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하는 할례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당연히 육체의 할례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율법을 어기면서 할례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례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아니 십일조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율법 613가지를 자기 육체로 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진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음으로 해서 율법을 육체로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그 율법을 받아들여서 부한 자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성경은 역설입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줄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 모든 육체의 모양을 내는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아서 지키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실제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어서 저주를 받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왜 내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십일조를 냄으로 해서 자기들이 자랑하고자 함입니다. 교인들이 십일조를 내면 누가 자랑이 됩니까? 자기들이 교인들을 잘 가르쳐서 봐라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로서 십일조를 내고 있지 않으냐고 하면서 자랑하기 위해서 십일조를 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잘 지키면 누가 자랑이 됩니까? 지금 이 시대 목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는가에 따라 그들의 자랑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를 크게 짓고 있고 십일조를 많이 해서 우리 교회가 선교사를 많아 파송하고 있고 내가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용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교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누가 자랑이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교인들이 율법을 잘 지키면 지킬수록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결국에는 자기들이 자랑을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만 주시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라는 것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지키는 일이 다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사람은 육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지키는 율법은 사람을 자랑하게 하고 마음에 할례는 하나님의 자랑입니다.

율법은 자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랑은 다 세상을 좇아 온 것이고 아버지를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아야 그것이 자랑이 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라고 신명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할례를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고 마음에 할례를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표면적으로 지키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율법의 이면을 알아서 지키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육체에 할례를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6:14절을 보겠습니다. (30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육체의 모양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에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탄한 자랑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킨 그것이 허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십일조를 내고 자랑하고 있습니까? 아니 십일조를 내고 간증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십일조를 낸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빙자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간증이라는 모양을 빌려서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그러한 자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누구의 종입니까?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율법을 지킨 것을 가지고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이기 때문에 주인이 시키는 것을 잘 했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것 아닙니까? 율법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간증하면서 믿음이 좋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내 육체로 한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랑이 곧 저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사도가 율법을 지킨 것을 가지고 자랑했습니까? 우리 성도는 육체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누구의 종이냐에 따라 그 주인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율법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내 생명의 구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율법을 지킨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합니까? 내가 율법을 지킨 그것이 내 영혼의 구원에 조금이라고 관여를 했다면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다른 것을 절대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모릅니까?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지고 가셔서 의롭다 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들이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낸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있고 율법을 지킨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율법을 자랑합니까? 허탄하고 악한 그것을 자랑하느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을 보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아는 성도라면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우리가 자랑할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구원했습니까?

율법의 행위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까? 내 생명이 어디로부터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율법은 저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자랑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성경이 이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형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 생명의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구원해 준 사람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이 오신 성도는 성경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왜 십자가만을 자랑하는가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내가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누가 주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골로새서2:20절을 보겠습니다. (326)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 초등학문에서 죽었습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아닙니다.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대해서 전혀 죽지를 않았습니다. 세상이 나를 보면 나는 죽었고 또 내가 세상을 보면 세상이 죽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율법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율법이 죽었고 율법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그러다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 알고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내 쪽에서 보면 율법이 죽어야 합니다. 또한 율법 쪽에서 보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성도는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그대로 살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 쪽에서 보면 내가 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에게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죽은 자가 되어야 율법이 더 이상 우리 성도를 미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 자체가 율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율법이 볼 때도 우리는 죽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는 율법이 더 이상 미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과는 너무 다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초등학생과 같이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목사라고 하면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이상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자체를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히브리어를 공부한다고 하고 있고 헬라어를 공부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국어만 알고 한글개역성만만 이해를 해도 성경의 반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반은 정말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생명이 걸려 있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의 생명이 죽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할 것 아닙니까? 교회는 여러분을 구원하는 방주가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어떻게 되었는가를 성경에 가르쳐 주고 있는데 너무도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영혼의 생명이 살고 죽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수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수가 광야에서 죽은 것 같이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또한 율법도 나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강경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깊이 상고하면 율법에 대해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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