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43강, 영혼 구원​

윤주만목사 2018. 10. 27. 06:20


43, 영혼 구원

영혼 구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피곤해야 합니다. 이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피곤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성도만이 언젠가는 피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부르짖는 성도만이 얼마나 많이 부르짖어서 내 목이 마르고 내 눈이 쇠하였다고 하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누가 성경을 압니까?

아니 이제까지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라는 곳에서 누가 성경을 바로 해석해서 가르쳤습니까? 정말 구원을 위해서 피곤할 정도로 가르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과 같이 보이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부르짖은 사람이 있습니까?

너무 부르짖어서 피곤해서 내 목이 마르고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다고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어거스틴이 그랬습니까? 칼뱅이 그랬습니까? 웨슬레가 그랬습니까? 천주교의 어느 교황이 그렇게 했습니까? 어느 신학자가 그랬습니까? 그들이 남겨 놓은 글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종교인입니다.

성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기를 피곤할 정도로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를 비난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그 사람들은 종교인으로는 존경을 받을 만하게 살았을지 몰라도 다윗과 같이 자기 영혼 구원을 위해서 부르짖음으로 해서 피곤해서 그들이 목이 마르고 하나님을 바람으로 해서 그들의 눈이 전혀 쇠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있습니까?

아직까지 그런 목사를 못 보았습니다. 종교인은 있어도 다윗과 같은 사람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피곤하지 않아서 때가 이르매 거두었다고 생각이 되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들으면 화가 날지라도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제가 더 화가 납니다.

한 사람이라도 겸손하게 하나님께 자기 영혼에 대해서 피곤할 정도로 부르짖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 시대 교회가 율법주의, 은사주의, 성화주의, 기복주의로 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견제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가 다 거짓 선지자가 되어서 다른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저주를 받게 하는 장본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2:3절을 보겠습니다. (367)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죄인들에게서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내신 그분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에게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여러분이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은혜입니다.

정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 성도라면 지금 이 세상에서 가지고 살아가는 그 믿음으로 절대로 피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신학자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로 갔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이 종교에 빠져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고 이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피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피곤하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고는 자기 구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피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피곤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은 피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그 행위에 빠져 성경에서 문자로 알고 있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피곤합니다.

정말 자기 영혼을 생각하는 성도는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피곤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보고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십자가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우리 영혼을 피곤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 십자가에서 의미하고 있는 말씀들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한 가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문자로도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폐하였다고 하는 그들이 실제 교회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까지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키고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폐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피곤하지 않아서 때가 이르면 영생을 거둘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거두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는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그것을 어떻게 지킬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율법을 지킬까를 생각하다가 지금 이 시대 제사만 안 드리지 실제로는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생각하는 성도는 율법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도가 거두어야 하는 것은 영생입니다. 성도는 피곤하지 않을 때까지 이 영생에 대해서 주님께 부르짖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선하신 이를 믿어야 합니다. 믿으려면 성경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잠언10:5절을 보겠습니다. (920)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여름에 거두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여름에 거두는가 하면 영생을 여름에 거두라는 말씀입니다 청년의 때를 그냥 허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나이와 상관이 없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하루아침에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정말 내 여름의 때에 그 일을 마쳐야 합니다.

청년의 때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여름입니다. 가을이 되면 이미 수장절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절기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 인생 역시도 가을이 오면 총기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가을이 오면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여름에 거두어야 합니까?

우리 인생은 나이가 들면 총기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70이 넘어가면 총기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총기가 아닙니다. 성경의 지혜는 정말 오묘해서 나이가 들어서 그것을 깨달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지혜의 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어떻게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는 우상까지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우상을 섬겼던 일을 가지고 어느 사람들은 솔로몬이 구원을 못 받았다고 말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솔로몬이 우상을 섬길 때는 이미 총기가 사라진 때입니다.

그때의 행위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 합니다.

솔로몬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청년의 때가 지나고 가을이 오니까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그가 지혜가 있다 해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총기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여름에 거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여름에 거두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느라 허송세월을 그냥 보내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름에 반드시 거두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총기가 사라지면 그때는 거두고 싶어도 못 거둘 수 있습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시라도 젊은 여름에 우리는 거두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 여름의 좋은 때를 이 시대는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선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또 나이가 아무리 많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이가 많을 때까지 성경을 늘 상고하고 있고 성경에서 영생을 얻고자 했을 때 누군가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씀을 들을 때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영생을 위해서 부르짖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다가 들을 때 가능한 역사입니다.

여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총기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자기들 마음대로 영생을 주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표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광야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나이가 이십 세 이상이었던 사람은 다 죽고 말았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총기가 있는 20세 이상으로 해서 40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총기가 있는 40년이 여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청년의 때입니다.

피곤하지 않게 해서 거두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거둔 성도를 주님께서 끝까지 견인해서 구원해 주십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청년의 때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그때에 이미 결정이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태에서부터 예정을 하셔서 경륜 가운데서 구원을 하십니다.

청년의 때를 허송세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때를 그냥 보내면 반드시 가을에 자게 되어 있습니다. 가을이 턱 밑까지 왔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절기상으로도 그렇습니다. 또 사람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이 다 자게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름의 때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내 안에 구원의 확신이 들면 거둘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도 그렇게 청년의 때에 여름에 거두려고 하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6:10절을 보겠습니다. (309)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9절은 내 스스로 선을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선한 이를 믿어서 영생을 거두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라고 말씀을 한 것은 성도 각 사람이 선하신 이를 믿는 것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을 행하면 때가 이르되 거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거둡니다.

우리는 늘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영생을 거둔 사람만이 영생에 대해서 전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영생에 대해서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서 말씀을 듣더라도 그가 영생을 받은 사람이어야 내가 선을 행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목사들이 말 합니다.

목사가 설령 잘못해도 성도가 잘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참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일이라면 가르치는 자가 잘못 가르쳐도 배우는 자가 더 연구를 하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영생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주님께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가가 있는데서 성도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도 그 안에서 다른 복음이 들어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말씀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그 안에서 복음이 전해질 수 있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자기를 설령 잘못 인도를 해도 내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거짓 선지자를 삼갈 필요도 없이 내가 하나님께 구하며 됩니다. 아니 선지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해도 이 가운데서 다른 복음에 빠질 사람은 나와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세웠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바른 것을 전합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세워서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전하는 사람에게서 배운 사람들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만 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얼마나 추상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만 잘 믿으면 되는데 거짓 선지자가 있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거짓 선지자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은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도 구원을 받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가 있습니다.

그를 사도 바울이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회에는 가르치는 자가 있고 배우는 자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가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으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사망에 이릅니다. 갈라디아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에 할례를 받아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누가 할례를 주장했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할례를 주장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유대로부터 왔다고 하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자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렇게 할례를 가르침으로 해서 할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나는 율법은 안 지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거짓 형제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0:38절을 보겠습니다. (205)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저가 두루 다니시면서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착한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모든 말씀들이 성경에서 해석을 해 주고 있습니다. 착한 일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갈라디아서 말씀도 거의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하니까 이 세상의 착한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믿음의 가정에게 하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착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얼마나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강해입니다.

그리고 주석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착한 일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생각하는 그런 착한 일을 하라고 사도 바울이 성도의 도덕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으로 알고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었으면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고 믿음의 가정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착한 일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도 이 갈라디아서를 보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목사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육체로 가고 있는가를 이 말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세상에서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착한 일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런 착한 일을 하셨습니까?

주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가 고프면 먹이고 아프면 치유하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그런 일들은 다 예표와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그런 것을 자기들이 직접 보이고 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그 사람에게 밥을 준다고 해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물론 성도라면 당연히 배가 고프다 하면 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분명히 착한 일이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착한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에게 눌린 자입니다.

그런 자들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마귀에게 눌려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 역시도 마귀에게 눌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신 이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해가 됩니까?

선하신 이를 믿는 것으로 영생을 얻는 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이것이 천국 복음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절대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이 있는 성도는 선하신 이를 믿는 것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마귀에게 눌려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 스스로는 자유하지 못 합니다. 어느 누가 율법에 대해서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마귀에게 눌려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마귀에게 눌려서 아니 마귀의 포로가 되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마귀에게 눌려 있는 이스라엘에 오셔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이스라엘은 누리지 못하고 율법의 저주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전하신 복음이 마귀에게 눌려 있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 일을 하신 주님이 착한 일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착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밥을 주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마귀에게 눌려 있는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기회가 있는 대로 해야 합니다.

영생을 거둔 성도는 기회가 있는 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저 성경에 있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전하고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고 해서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 자에게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 성도는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착한 일을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빌립보서1:6절을 보겠습니다. (318)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착한 일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착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생을 받는 그것을 착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믿게 역사를 하심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입니다.

그 날에 우리가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기 시작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되기 시작을 하면 주님의 날까지 그것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은 은혜입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영생을 위해서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도 역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라고 하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 같이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합니까?

우리 속에 착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을지라도 영생은 그것과 상관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영생에 관여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 사람이 타락을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할까를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도 다 염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생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다른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성경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들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말씀들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가를 모르다 보니까 행위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행위가 자기를 저주 받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종교에 의해서 사망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착한 일입니다.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착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나를 통해서 이 착한 일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그리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합니까?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 영생을 거둔 성도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었습니다. 그런 성도는 반드시 이 세상을 살면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꼭 내가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할 때는 하는 자를 돕는 것도 하는 일입니다.

초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이 모든 일들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을 때는 그를 돕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도왔습니까? 사도 바울이 눈이 나쁘다고 하니까 할 수만 있다면 자기 눈이라도 빼어 주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착한 일을 기회가 되는 대로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6:2절을 보겠습니다. (291)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은혜 받을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지금 이 시대는 죽을 때까지 종말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생을 거둔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착한 일을 하신 이를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회

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나 경우를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이 얼마나 좋은 때입니까? 우리가 초대 교회와 같이 생명을 걸고 핍박을 받는 때도 아닙니다. 또 중세 시대와 같이 종교의 권력이 너무 커져서 종교 재판을 하는 때도 아닙니다.

사실 이 때보다 좋은 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 때에 이 시대는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기회가 되는 대로 착한 일을 해야 하는데 정말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난 이후로 복음을 전하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 착한 일을 정말 자기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했습니다. 이 일을 하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순교를 당한 성도도 참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착한 일을 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정말 최악의 기회에서도 그들은 자기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착한 일을 했습니다.

이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또 중세시대에는 어떠했습니까? 초대 교회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종교적 신념으로 죽은 사람도 꽤나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착한 일을 하다가 죽은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회가 좋았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지금 너무도 기회가 좋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죽이지 못 합니다 우리를 이단이라고 공격은 할 수 있어도 국가의 법이 있기 때문에 죽일 수 없습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는 기회가 너무 좋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때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정말 이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둔 성도는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는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아닙니다,.

종말의 때에는 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좋은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착한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입니다.

세상의 착한 일을 믿음의 가정에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는 착한 일을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음의 가정에게 하라고 하는가 하면 갈라디아에 다른 복음이 들어왔기 때문에 믿음의 가정을 든든히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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