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복음과 율법-설교2

제34강, 누룩

윤주만목사 2018. 10. 24. 07:30


34, 누룩

​​​마태복음 16:6절을 보겠습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누룩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사두개인 역시도 율법주의자지만 그들은 부활에 대해서 믿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누룩입니까?

율법이 누룩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두개인과 같이 영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을 누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두 가지 누룩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성경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누룩에 대해서 이 시대는 애써 외면을 하면서 마치 바리새인만 율법주의자이고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바리새인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지키던 율법 중에서 아주 적은 몇 가지의 율법이 온 덩이를 퍼지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과 같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적은 바리새인의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저주를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무엇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바리새인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 있는 일들이 지금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그 말씀이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온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몇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이라고 하신 그 율법을 사도 바울은 아주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는 정말 어리석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 누룩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면서 바리새인은 율법주의자이고 자기들은 믿음으로 지킨다는 말로 포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말입니다. 성경에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지키면 율법주의가 되고 자기들이 지키면 믿음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할례를 받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할례라는 율법 한 가지를 행하는 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입니다.

단 한 가지 할례이기 때문에 적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누룩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예배가 다 누룩을 섞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 전체가 누룩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에 무엇을 합니까?

예배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 마다 헌금을 내고 있고 있습니다. 십일조라든지 각종 헌금이 다 율법입니다. 그리고 예배 때에 사도 신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기도를 누가 해야 하고 또 언제 찬양대가 찬송가를 불러야 하고 또 찬송을 언제 해야 하고 하는 등 모든 것이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마 따질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이 다 율법이라고 하면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따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도는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예배가 지금과 같은 율법으로 정해져 있는 그런 예배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적은 누룩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루가 적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가루는 적고 누룩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루는 아주 적은데 누룩이 더 많다 보니까 그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적은 누룩도 온 덩이를 퍼지게 하고 있는데 가루 보다 누룩이 더 많으면 그 덩이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바리새인이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보다 더 바리새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안 믿고 율법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 단 한 가지를 가지고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할례는 안 받을지 몰라도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다 누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삼가 지키고 있습니까?

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는 이상은 이 삼가 지키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자기들이 얼마나 바리새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주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누룩입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시대는 부활이 있다고는 다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부활을 합니까?

내가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씀을 드려서 육체의 내가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내 안에 있는 영이 부활을 합니다. 성경은 아담으로부터 난 내가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탄생이 된 영이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내가 아닙니다.

육체는 반드시 썩어집니다, 그것은 한번 죽어서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은 부활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탄생이 된 그리스도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아담으로 탄생이 된 나는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그리스도의 영 그러니까 또 다른 내가 부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살던 내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세상에 사는 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거의 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던 나는 죽어도 역시 죄인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두개인은 아예 부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부활을 하는데 이 세상에 살던 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거의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누룩이 교회 안에 만연해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도 이 영의 비밀에 대해서 바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누룩을 먹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이런 사상은 다 세상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보고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사두개인의 누룩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이 내가 아니라 영이 나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것이 내가 아니라 영원히 있는 영이 나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카데미 강의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5:6-8절을 보겠습니다. (268)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도다

율법이 우리를 자랑하게 만듭니까? 믿음이 우리를 자랑하게 만듭니까? 이 시대는 성경 자체를 너무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아니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을 모르는 유치원생 수준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나를 자랑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도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모든 행위가 나를 자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떻게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간증을 한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킨 율법을 그리고 은사를 실컷 자랑을 하고 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 그것으로 자기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자랑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기도를 하면서 나는 죄인과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자랑했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영악하게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십일조를 자랑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것을 믿음의 증표라고 하고 있고 또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이 십일조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드리고 있다고 자기들의 마음에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누룩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리새인의 누룩도 없고 사두개인의 누룩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이 넘치고 있고 오히려 가루는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새 덩어리입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성전을 지어가는 영의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묵은 누룩을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서 분명히 누룩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이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희생이 되셨습니까?

묵은 누룩, 괴악한 누룩, 악독한 누룩으로 우리 인생들이 다 죽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무엇 때문에 희생이 되셨는지도 모르고 이 시대는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헛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들이 율법으로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구원해 주시려고 희생이 되셨습니다. 그 율법의 저주 때문에 희생이 되셨는데 이 시대는 적은 누룩이 아니라 아주 많은 누룩 그리고 다양한 누룩을 섞어서 주님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에 누룩이 있습니다. 아니 누룩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간판을 내걸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모든 교회가 다 누룩으로 온 덩이를 퍼지게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가루는 없고 누룩만 있는 그런 이상한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도 그저 그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천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는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께서 주의하라고 하는 그 누룩을 전혀 주의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마치 자기들의 도리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십일조가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 시대는 십일조가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또 주일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이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율법이라고 해도 자기들이 율법이 아니라고 하면 율법이 아닌 것이 되고 있습니다.

구원 문제입니다.

분명히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룩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루는 없고 누룩만 먹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목사들이 성경을 보면서 다 누룩으로 만들고 있지만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도 얼마나 소중합니까? 하물며 영의 생명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생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세뇌가 되어 있습니다. 좀 심한 표현 같을지라도 제가 보는 교회는 거의 공산당과 같은 수준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거의 생각이 같습니다.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있고 거기에 한번 빠지면 물불을 안 가리는 것이 정말 공산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의 말은 곧 북한의 주석의 말과 같이 신성시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그저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에 다 넘어지고 있습니다.

뭐가 오직 예수입니까?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이 잔뜩 섞여 있는데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묵은 누룩 악독하고 괴악한 누룩을 먹고 있으면서도 오직 예수라는 말 한 마디만 하면 아멘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 누룩들이 자기들을 저주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그저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0절을 보겠습니다. (308)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으리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교란시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얼마나 한 영혼을 위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할례라는 그 율법으로 저주를 받게 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은 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 할례를 받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안타까워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은 정말 복음을 전하는 성도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율법주의로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우면 나는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으리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강의를 듣거나 또 사이트를 통해서 설교를 보던 사람들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도 바울의 심정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조금은 냉정합니다,

아니 돌아서는 사람들에게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저에게 이런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성경을 통해서 이런 말씀들을 깨닫다 보니까 돌아서는 사람에게 이제까지 전화 한 번도 안 해 보았습니다.

다른 마음을 품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밝히 드러나기 까지는 저 역시도 사람인지라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편지 강해를 듣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늘 기도를 할 때마다 악한 자가 우리 형제들 안에 있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안 들었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아니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거의 다 보고도 미혹이 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강의를 듣는 성도님들 가운데 악한 자가 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누룩에 그들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복음을 전한다 해도 역시 영혼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도 믿고 있습니다.

정말 아카데미강의를 듣고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오직 믿음으로 굳게 서 있는 줄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입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다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반드시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요동을 합니다.

남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 요동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주일을 지키고 찬송가를 부르고 또 기도를 하고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은 요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있는 성도는 절대로 요동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2:25절을 보겠습니다. (189)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요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저를 가르쳐 가로되 내가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해서 그가 내 우편에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는 성도는 요동치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내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요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우편에 계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가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믿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대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우리의 죄를 단번에 사하는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세상 죄를 단번에 지고 가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점이 있는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단번 속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보면 사람의 이성에 따라 요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행위를 보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누군가 할례를 받으니까 진짜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보이고 그것을 보니까 사람들이 요동을 했습니다, 자기도 이스라엘과 같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들은 사람이 일반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는 것을 보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도 그들과 같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 이름도 붙이고 싶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누군가 십일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 바로 다른 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으로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행위를 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행하게 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선지자입니다, 또 이제 막 교회에 들어온 소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자가 교회에 들어와서 내가 하고 있는 행위들을 따라 하게 된다면 그 소자도 심판을 받지만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 먼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거짓 선지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선지자가 심판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요동합니까?

주님께서 대제사장이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를 않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을 누가 받는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3:19절을 보겠습니다. (243)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율법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왔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 거대한 물살을 거스를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도 한 사람도 율법을 바로 정립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믿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합니다.

그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사실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성경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믿었습니까?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볼 때는 그들보다 더 잘 믿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 전체를 지켜서 안 믿은 사람이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단 한 가지를 지킨다 해도 역시 그 안에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아니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입을 막게 되는가 하면 나중에 율법을 지킨 것이 믿지 않는 행위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입을 막게 됩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아니 죽어서도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그렇고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아니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만 보아도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말로는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가 하면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이 믿음을 따르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율법을 잘 지킵니까?

실상은 율법을 폐하는 성도가 율법을 더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십계명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과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십계명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그 십계명을 범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의미적으로 모든 십계명을 다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더 살인을 합니까?

성도는 복음을 알기 때문에 살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육체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은 실제 교회 안에서 영혼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살인을 하지 않으면서도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설입니다.

이런 영적인 비밀을 모르면 다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우상을 숭배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실제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은 것으로 마치 십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늘 내 한계를 알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마음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오직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할례를 행하면서 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너희를 꾀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1절을 보겠습니다. (308)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만일 내가 여전히 할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면 왜 내가 지금까지 박해를 받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할례를 전하고 있다면 내가 전하는 십자가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고소할 때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한다면서 고소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핍박을 당했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족에게 위험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유대인들에게서 핍박을 받았는가 하면 바로 율법의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고린도후서11장 말씀을 봤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율법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율법의 남편을 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남편을 폄하하고 폐했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참지를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했어도 이렇게까지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핍박을 합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왜 핍박을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남편이 아니라 율법이 남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남편이 죽었다고 하니까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모든 교회가 실상은 다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폐하는 것은 자기 남편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례를 받으라고 전했다면 절대로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할례를 하지 말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까? 이제까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를 지키는 순간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하나 지키는 사람도 율법주의고 율법의 전체를 지키는 사람도 율법주의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주의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경에서 빤히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거의 모든 교회가 십일조와 주일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각종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이 율법이고 악한 일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그리스도편지가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렇고 또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그렇지 만약에 자기들에게 피해가 있다면 당연히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내가 할례를 전했다면 나는 핍박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라고 전했으면 유대인들이 나를 핍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율법의 문제 때문에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사십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하는 매는 거의 반은 죽을 정도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11:9절을 보겠습니다, (254)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누구의 밥상입니까?

이스라엘의 밥상입니다,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입니다.

주님께서 내 살은 생명을 위한 너희의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만찬을 유월절 예비일에 직접 보이시면서 이를 기념하여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주의 살인 떡과 주의 언약인 포도주를 주시면서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성경에서 내 살과 내 피를 성도들과 함께 나누라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 시대는 성찬식이라고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실제 보이는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주의 만찬을 나누는 것을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실제로 하면서 성찬식이라는 종교적인 행위를 만들었고 그것을 모든 교회에서 지키는 율법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주의 만찬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밥상이 있습니다. 주의 만찬은 성도들이 모여서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알아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밥상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초등학문에 빠져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저희의 밥상과 같이 전했다면 절대로 핍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저희의 밥상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알고 있는 사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저희의 밥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거치는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에 거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과 저희의 밥상은 서로 거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의 밥상입니다.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밥상을 먹으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같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기 때문에 시편의 많은 말씀들이 실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율법은 올무가 되었고 덫이 되었고 거치는 것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오직 예수라고 힘주어서 말을 한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반드시 그 율법이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거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을 먹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거의 다 저희의 밥상을 먹고 있습니다. 율법을 먹고 있으면서도 그저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마디에 다 속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저 성도로서 바르게 살기위한 것이고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거치는 것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하는 성도는 율법을 안 지킵니다.

아니 성도들의 행위를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외식에 빠질까봐서 늘 주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거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시대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은혜 받은 자들의 예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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