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복음과 율법-설교2

제17강, 성령

윤주만목사 2018. 10. 20. 07:41


제17강, 성령

갈라디아서 3:4절을 보겠습니다. (30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앞뒤에 있는 말씀이 연결이 안 되기도 합니다. 다른 번역들을 보았지만 오히려 더 이해하기 힘들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갈라디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말씀을 하면서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지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의 행위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지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는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율법을 잘 지키는 것과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고 말씀을 합니다.

다른 번역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체험, 경험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왜 한글개역성경을 기준으로 보는 가를 말씀을 드립니다. 바로 이런 번역에 있어서 가장 근접한 번역이 한글개역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글개역성경이 아니고는 문장의 연결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말씀입니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의 행위로냐 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는데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많은 괴로움을 인하여 받았고 그것이 헛되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괴로움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괴로움입니다.

무엇을 괴로워했습니까?

성령을 받는 그것을 괴로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그 받기 까지가 많은 괴로움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에서 괴로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이해하기가 어렵더라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믿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계시는 분들도 이러한 경험이 있었지만 영의 일을 알기까지 내 안에 믿음이 있기 까지 사실 이해가 안 됩니다. 구원을 받기를 바라고는 있지만 영의 일이다 보니까 이것이 육을 가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저도 어려웠습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이것을 글로 표현을 해서 말로 전하려고 하니까 사실 딱히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정말 때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할 정도로 난감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괴로움입니다.

구원을 받고는 싶은데 그래서 성령의 감동으로 영의 일을 깨닫고 싶은데 이것이 잘 안 됩니다, 분명히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전하니까 알고는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의 감동으로 듣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는 능력이다 보니까 쉽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괴롭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면 간단합니다. 그것을 보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는 것인데 이 듣고 믿는 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렇게 이해가 안 되다가 듣고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라는 능력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영의 일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괴로움입니다.

성경에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기 까지는 이렇게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육체의 괴로움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괴로움 그러니까 그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많은 괴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가 그런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느냐 하면서 그것이 헛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명하는 저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이러한 말씀들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많은 괴로움이 있다고 하니까 그저 육체의 괴로움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기 까지 성경을 아는 것에 있어서 많은 괴로움을 견디고 나서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헛되냐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지금 아카데미를 듣고 계시는 분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내 안에 성령이 오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있었습니까? 정말 영의 말씀을 믿고 싶은데 도무지 믿어지지는 않고 또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도 안 됩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이 듣고 믿음으로서냐 율법의 행위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은 듣고 믿음입니다, 그런데 듣고 믿기 까지는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괴로움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직 임하지 않아서 믿고 싶은데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많은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아카데미에서도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된 영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 믿음이 없어서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안에 탄생이 된 그리스도의 영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나라는 말씀을 하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저도 괴롭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아니 아직 성령의 역사가 없어서 괴롭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미혹을 당해서 결국에는 아카데미에서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있는 성도님들은 이제 그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영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나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내가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나라는 것이 이제 믿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것이 믿어진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지금 내 육체의 나는 무엇이냐고 묻게 되고 그것에서 답을 찾지 못하니까 내가 믿는 이것까지도 의심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 괴로움을 이겼습니다. 누가 이기게 했습니까? 듣고 믿으니까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그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까지 오기는 인간의 이성이 있어서 많은 괴로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그것이 과연 헛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괴로움이 있는 후에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내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하는 그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지금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절대로 헛되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10절을 보겠습니다. (408)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의 기도입니다,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이 한나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왜 마음이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자기 대적 브닌나는 아들을 낳았는데 한나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잉태하지 못해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반드시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성도가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인 하나를 더 얻기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한나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 아들이 없으니까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탄생이 되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하는 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사실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천국복음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지식입니다.

그런데 믿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믿어지기 까지는 정말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마치 한나가 아들이 없어서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것과 같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령이 임하기까지 많은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물론 복음을 전했지만 역시 사람의 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믿어지게 하는 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 믿어지지 않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많은 괴로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다 이러한 괴로움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머리에서는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데 명확하게 보여 지지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나의 괴로움입니다,

아들이 없는 한나의 괴로움이 바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기까지의 괴로움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괴로움을 너희가 헛되게 받았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절대로 헛되지 않다고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해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말씀들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아무리 그가 성경을 많이 본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육체의 괴로움이 아닙니다,

구약의 육의 일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나의 괴로움이 바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의 괴로움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괴로움을 헛되지 받았느냐 절대로 아니다 너희가 성령을 확실하게 받았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기까지 괴로움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적으로는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든든히 서기까지 그리고 내 안에 성령이 임하기까지는 영의 비밀을 알기까지는 많은 괴로움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의 사람입니다.

영의 일을 안다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 복음이 쉽게 믿어지는 역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율법을 버리는 일 이 한 가지만 해도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까? 율법을 버리면 구원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듣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때까지의 괴로움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많은 괴로움입니다.

성경을 한 번에 다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셨다 해도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깨달아 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씩 깨달아 질 때마다 괴로움이 있습니다. 마치 한나가 아들을 낳기 까지 그 마음이 괴로워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성령 단번에 받습니다.

그러나 쉽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한나와 같이 마음에 괴로움을 당한 사람만이 성령을 받습니다. 성경을 보고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많은 괴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성경을 보고 있고 마치 세상 책을 보는 것과 같이 문자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나가 얼마나 괴로워하면서 기도했습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보면서 정말 이 정도로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행위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괴로워하는 그들이 정작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괴로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나입니다. 마치 아담을 통해서 하와가 탄생이 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깨끗한 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영의 일이 믿어지기 까지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까?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다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다 보기까지는 그리고 내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까지는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바른데 그것이 아니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02:1-2절을 보겠습니다. (875)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괴로워하시기 바랍니다.

영의 생명이 내 안에 탄생이 되기까지 괴로워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그것을 깨닫기 까지는 많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육체의 일로는 괴로워해도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괴로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괴로운 날입니다.

복음을 듣고 내 안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기 까지 그래서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해서 새 생명이 탄생이 되기까지는 정말 괴로워해야 합니다, 갈라디아교회도 많은 괴로움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괴로움이 있었지만 사도 바울이 절대로 헛되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면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 시간에 들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구원을 받기까지는 정말 우리는 괴로운 마음으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을 듣고 믿어서 내 안에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육체로 마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성령을 받기까지 왜 육체의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사실 영의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많은 괴로움의 날을 보내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입니다.

그들은 이미 육체로 빠져 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모든 설교를 다 보고 안다 해도 역시 육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기까지입니다.

그때까지는 우리 성도들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괴로움을 헛되게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내 안에 성령이 오셔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에게만 이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5절을 보겠습니다. (304)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성령을 받은 성도가 율법을 잘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갈라디아에서는 계속해서 성령을 받은 성도가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믿겠습니까? 묻고 있는데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목사가 말을 하면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도 그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의 말에 감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목사가 하는 말에 다른 생각을 품으면 그것으로 마치 자기가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연세가 많으신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성경은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해왔던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교회가 잘못이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을 때마다 그들이 어떠했는가를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모르고 그저 목사의 말만 듣다 보니까 복음을 아예 받아들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미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어린 양과 그리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고 난 이후에 7일씩 7주가 지나고 난 후에 오순절이 임하니까 성령이 오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켜서 받았습니까? 주님께서 몇 날을 기다리라고 하시니까 오순절이 임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조입니다.

2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고 또 5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너희에게 성령이 오셨는데 그 성령이 율법을 지키게 하느냐 아니면 믿게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까? 믿는 것입니까?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고 우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은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더 확실하게 말씀해야 합니까?

성령이 오시면 내 안에서 역사 하시는 이의 일이 듣고 믿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로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안타깝게도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율법의 행위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게 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의롭다 함을 받을 만큼 율법을 지키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그들은 율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율법을 어떻게 범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마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 자기들이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에게 성령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냐 믿는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니 모든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이 잘못 보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시는 분인데 선지자를 보내 율법을 지키라고 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성령을 보내 주시고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든 안 오시든 우리 인생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데 하나님을 믿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24절을 보겠습니다. (26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일을 하시고 우리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 주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능력입니다,

육의 일의 능력이 아닙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능력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면 믿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능력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은 오직 영생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는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을 왜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지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둘을 함께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 갈라디아서 3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도 믿고 율법도 잘 지킨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사람은 진노에 빠지게 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그것은 이미 율법에 구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며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어서 구원을 얻었는데 그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에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적은 누룩 하나가 결국에는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적은 누룩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라고 말을 해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율법이 아닌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절대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하는 말씀을 그냥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켜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면 된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율법을 지켜서도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도 의롭다 함을 받는데 너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율법을 지켜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렇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느 것으로 너희가 받았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당연히 율법으로 받아야 하는데 너희는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을 알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이의 일을 우리가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의롭게 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아닙니다.

우리를 의롭다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율법은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율법은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1:5절을 보겠습니다. (377)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냐 믿음이냐를 계속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도 지키고 믿음도 갖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믿을 것이냐 두 가지 중에 하나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 중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데 그 중에 하나인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왜 하고 있는가 하면 유대에 있는 거짓 형제들이 갈라디아에 와서 율법인 할례를 행하게 해서 그들이 미혹을 당하는 것을 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내 능력입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또 내 의지로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고 또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 외에 다른 한 의를 보여 주시고 그 의를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도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능력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하고 그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진노를 받는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면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진노를 받는 율법을 아무 생각이 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너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내가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기 까지 계시를 해 주심으로 이제 율법을 버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그것입니다.

주신 믿음입니다.

유다서에서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일하시는 이의 일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역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믿지 않고 아니 자기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진노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진노에서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원수,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호해 주시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도리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기까지 대학 공부를 하고 어느 사람들은 박사가 되기 위해서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그렇게 하면서도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한글개역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보호하심을 입었는가 하면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진노를 받게 하는 율법으로부터 보호하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호하심을 입는 그것이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호하심을 입는 일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면서 진노를 받게 하는 율법도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믿으면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진노를 받을 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냐 하는 말씀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을 받고 율법의 행위로는 진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4:7절을 보겠습니다. (289)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기 까지 기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배입니다. 이 보배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이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이것을 보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서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 보배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는 것 같다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보화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안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보화를 사람이 성경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보화가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그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믿음과 율법을 바로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믿는 것이고 율법은 성도로서 살아가는 도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도덕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의롭게 되어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고 또 그 시작으로부터 해서 율법주의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역사하시는 그 능력이 임한 성도는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것이고 그 능력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갈라디아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의롭게 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다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진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라는 율법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율법에 대해서 강경했는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그것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때문에 율법을 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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