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복음과 율법-설교2

제15강, 율법

윤주만목사 2018. 10. 19. 10:58


15, 율법

갈라디아서 2:19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이 그런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의 율법이 우리 인생들을 범법한 자로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범법한 자가 되면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결국에는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강경합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대충 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자기를 범법한 자로 만들어서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도 그 율법을 믿음이 있는 성도가 지킨다는 정신 나간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합니까?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죽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물론 사도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율법과의 관계에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인생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 인생인 사도 바울 자신을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미리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들은 한 번 죽는 것이 이미 정해졌습니다. 왜 인생들이 죽는가 하면 바로 율법을 어겨서 범법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니 사형을 당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 범한 자는 모두를 범한 자가 되어서 우리는 살인을 한 자이며 간음을 한 자이며 도적질을 한 자가 되어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사형 집행을 아직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니 사형 집행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육체가 살아 있습니까?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잠깐 보인다 해도 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을 한 자고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사형집행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먼저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그가 율법을 지켜서 뭐하겠습니까? 율법은 살아 있을 때 지키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하는가 하면 율법을 세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더 이상 율법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뜻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율법으로 죽지를 않았습니다. 죽었다면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데 살아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보고 말로만 내가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이성적 지식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율법과의 관계에서 죽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이율배반적인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지식으로 알고 있으면 뭐 합니까? 실제 교회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이 말씀을 안다고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더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법입니다.

어느 범죄자가 법에 의해서 사형이 집행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는 끝이 난 것입니다. 그가 다시 살아 날 수도 없고 한번 죽으면 더 이상 법이 그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이런 말씀들을 믿지를 않으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보고 사도 바울과 같이 율법과의 관계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되어야 하는데 성경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서 7:4절을 보겠습니다. (247)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 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다른 것으로 죽었어도 그것이 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으로 죽었습니다.

나를 죽게 한 그것은 내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죽인 그 원수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해도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죽인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아서 그렇다 해도 지금 이 시대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이 자기를 죽게 했는데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율법을 폐하라고 하면 싸우자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를 죽은 그것은 분명히 원수가 맞는데 그 원수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무식하다기 보다는 무지한 자입니다. 어떻게 나를 죽인 그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인들에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단이라고 하면서 싸우자고 하면서 대들 것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를 죽이는 율법입니다.

내가 왜 죽었는가 하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범법한 자가 되어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갈라디아서와 같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율법에 대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전제조건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거짓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고 하는 그들이 얼마나 거짓에 속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라는 율법을 믿음으로 드린다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교회 안에서 진심으로 예배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진심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종교에 빠져 있어서 아무리 성경을 바로 말씀을 드려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지식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해도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있지 않다면 그는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가 아무리 신실하게 보여도 역시 거짓 형제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믿고 싶은 것입니다, 믿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고 진심을 이야기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죽지 않으면 여러분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을 지키는 순간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은 성도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율법으로부터 오는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바랍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를 통해서 그런 것들이 나타나야 마치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귀의 자식들인 이스라엘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의 열매를 맺는 그것입니다 영생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영생을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열매를 맺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그들은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잘 지켜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말에 이 시대 모든 교인들이 속아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생의 열매는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면 반드시 율법과의 관계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있는 성도고 그런 성도가 영생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을 얻는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내가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다고 말씀을 합니다, 정말 사도 바울은 율법과의 관계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기록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죽었는가 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보다 더 확실한 말씀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만 죽었습니까?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사도 바울이 죽은 것과 같이 우리도 역시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실제 그렇게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이 말씀을 가지고 얼마나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런 감성을 자극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언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는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복음을 알고 난 이후에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같이 이 세상을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사도 바울도 율법과의 관계에서 율법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감성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율법과의 관계에서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지금 이 시대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말은 청산유수입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은 정말로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로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 그에게서 더 이상 율법의 행위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은 것을 어떻게 죽었는가를 말씀하는 것이지 사람들의 신앙을 감성적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는 사도 바울과 같이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은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말은 정말 잘합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중적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심장까지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말로는 모든 수식어를 다 쓰고 있는 그들이 이중적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면 죽은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죽었다고 하면서 왜 산 사람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나는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나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것이고 주님이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24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로마서에서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육신에 있지 않다는 말씀은 육신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며 육신으로 지켜서 의롭게 되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는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육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육신에 있습니다. 자기들의 육신으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육신으로 하는 것인지 영으로 하는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 육신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육체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내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고 주님께서 그렇게 사신 것이 내가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내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사는 것이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행위를 하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임에도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그런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영입니까?

그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것이 우리가 산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모두가 다 행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신 것이 내가 산 것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육체의 행위와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을 마치 믿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육체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영이 거하셔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성도만이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육신에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니 이 말씀에 감동을 받으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은혜가 넘치게 말을 하면서 사람들은 육신에 있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말로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지 실제로는 안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믿음, 믿음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셔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믿음 안에서 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자기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고 마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이 하신 것을 내가 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그것을 보면서 믿음 안에서 산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1절을 보겠습니다. (372)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고자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지 사람의 이성으로 보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너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입니다, 믿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받았습니까?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받았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셔야지 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주님이 하신 일을 내가 진리의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서 믿을 수 있고 그 믿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들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다고 하면서 그 믿음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믿음의 행위를 보이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국어적인 단어도 뜻도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이 세상 종교를 믿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21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다 사라졌습니다, 말로는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말로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했으면 그에 따르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 따로 행함 따로 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 바울이 의롭게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율법을 완성케 하셔서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셔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데나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은혜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영생과 관계가 있어야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영생과 관계가 없는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얻은 은혜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내가 한 행위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정말 잘 지켜서 주님이 그 모습을 보고 나를 사랑하셨다면 그것은 은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어떤 행위를 했는데 사랑을 받는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사랑을 받아 마땅한 것이지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가 사랑을 받은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했다면 그것은 거저 주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할 수도 없는 것을 주님이 하시고 우리 가난한 자들을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영생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은혜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헛되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만일 우리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주님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자기 혼자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것밖에는 안 됩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으로도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보고 깨달아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시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이 되게 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그 율법을 지키면서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지킨다면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8절을 보겠습니다, (24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지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지 죽지 않고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율법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그 죄인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랑이 있어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은 헛되지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아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인생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고 우리에 대한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그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만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정말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가도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의롭다 함의 문제입니다,

그냥 사람의 이성에 좋으니까 지키고 말고 하는 그런 문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율법을 하나라도 세우는 그 순간에 의롭다 함을 받느냐 아니면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해서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이 따라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저 이 세상을 사는 것 같으면 당연히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지키는 율법의 행위가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영의 일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일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하시는 명령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키는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율법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사망에 이른다면 정말 주님은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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