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5강, 다른 복음

윤주만목사 2018. 10. 17. 01:09


5, 다른 복음

요한계시록 2:23절을 보겠습니다. (401)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참 오해를 많이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 있는 거의 모든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는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너희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으니까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답답합니다.

그런 진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핀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런 진심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진심을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도대체 성경을 보는지 안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은 항상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성령이 오신 성도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만 들어 보아도 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인가 아니면 그저 모양만 내려고 하는 종교인인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복음과 다른 복음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복음이 사람들의 이성에는 바른 복음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가 진심으로 했든 아니면 거짓으로 했든 그것이 사람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에 참 빛을 비춰주셨지만 점점 더 다른 복음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에도 다른 복음이 있었는데 이 시대는 말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와서 2000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들은 완전한 율법주의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뜻과 복음은 전혀 다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복음을 들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도 바울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인간적으로도 지적이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그가 유대교를 믿었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사도로 부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사도 바울은 지나치게 유대교를 믿었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알고 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이렇게 주님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2절을 보겠습니다. (30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천국 복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들었어도 어떻게 되었습니까?

3년 반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모든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게 죽으시고 장사를 지내자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수많은 말씀들을 듣고 있었지만 막상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자 그들은 예전에 자기 생업을 찾아가고 말았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제자들에게 이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다 보았습니다. 정말 베드로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런 고백을 하던 모든 제자들이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복음에 대해서 듣는다 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가를 잘 보여 주신 예표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도 누군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은 그 복음이라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지식에 불과합니다. 앞에서도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그런 성경적 지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분명히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한 사람들로 인하여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된다면 역시 다른 복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그가 받았다 해도 또 그것을 배웠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초대교회를 보면 여러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면서 복음이 어떻게 자기에게 계시가 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도 있고 또 그 시대에 활동을 했던 선지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느 누가 사람에게서 받아서 또 사람에게서 배워서 선지자로 살았습니까?

 

지극히 드믑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또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선지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계속해서 연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지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누구에게서 배워서 그 당시 선지자로 예언을 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만 그렇습니까?

모세도 그렇고 사사 시대에 있던 사사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가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이 타락을 하면 또 다시 징계를 하시고 난 후에 사사를 세우기를 얼마나 반복을 하셨습니까? 그 사사들을 부르실 때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사사로 세운 인물은 끝까지 사사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언제 부름을 받았습니까?

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30세 이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가 그 이전에 누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신약의 사도들과 구약의 선지자들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복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마찬가지라는 것 또한 인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나이가 30대 이전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당시에는 하나님이 선지자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정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제사장 집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대로 성경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분명히 당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제자들은 솔직히 성경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체가 납득이 안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 당시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을 얼마나 무시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전혀 뜻밖의 인물을 세우셔서 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만약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라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모순투성이 일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이고 그것은 우리의 육이 아니라 하늘의 신비한 영의 일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사람에게 받아서는 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로부터 배운 디모데나 디도 같은 사람들은 사도들이 떠나고 난 이후에 그들로부터 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그 개인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람에게서 받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5:8-9절을 보겠습니다. (25)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사람에게서 배웠습니까? 이스라엘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을 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말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진짜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존경하는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들이나 교인들이나 얼마나 하나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독교인들만큼 말을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학식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쓰면서 마치 자기들이 최고로 하나님을 잘 믿는 것같이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어디서 옵니까?

사람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국가와 사회가 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의 말들을 들어 보면 지나치다 할 정도로 미사여구를 쓰고 있습니다. 지나친 존칭은 오히려 그 사람을 내리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나친 존칭을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존경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어야 존경을 할 수 있는데 지나치게 하나님을 존칭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그들은 정말 입술로는 자기들만큼이나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서 존경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여호와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불경하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필사를 하다가도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다시 쓰기 시작을 했을 정도로 그들은 존경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사람에게서 와서 그렇게 조상 대대로 행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시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존경을 하고 있는가를 극존칭을 써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존경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마음에서는 멀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었습니다. 세상 이성으로는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아는 백성이 없었지만 실제 성경적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모르다 보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의 지식으로 존경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말을 통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존경하는가를 나타냈지만 실제로는 헛되이 경배를 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했습니까?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사람의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람의 계명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성경에 어떤 계명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세상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서 입술로는 존경을 하는 사람들의 지식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바로 사람에게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하면서 이 세상을 살면서 도적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도 이 말을 하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성경에 물론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제가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도적질 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보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성경을 보면 그렇게 가르칠 수 있고 또 그것이 옳다고 인정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도 왔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의 계명이며 교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율법뿐 아니라 거의 모든 율법을 이렇게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은 영혼을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이라고 그리스도편지 설교에 올려 드렸습니다.

 

입술로 경배를 하면 뭐 합니까?

교회 안에서는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나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그렇게 사람에게서 난 것으로 가르치는 모든 말로 인하여 헛되이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그것을 배워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흠 없는 율법의 의 때문에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배우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을 만나기 전에 사도 바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열심까지 가졌습니다. 지금도 사람의 계명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헛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그 예배를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자기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 해도 헛된 것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이며 그들은 결국에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예배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예배입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를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예배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한다고 하는 것은 성립이 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온 예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 한 가지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율법들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를 하고 있지만 헛된 율법을 따라 드려지고 있는 그 예배가 사람에게서 왔고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는 율법화 되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15절을 보겠습니다. (324)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새 번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보이실 수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다면 인생은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육체는 죄가 있기 때문에 흠도 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죽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참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왜 성경을 그렇게 보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었습니까? 물론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보이신 것이 계시이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나타나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물론 직접 말씀을 하신 것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나심으로 사도 바울도 그렇고 이 시대 성도들은 역시 복음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입니다.

어떻게 계시를 해 주셨습니까?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으로 때로는 이적과 기사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계시는 무엇인가 하면 바로 성막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보았습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계시를 해 주셨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하늘의 모형대로 지은 성막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고 섬기는 일을 하면서도 헛된 것에 미혹이 되어서 성막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구약에서는 이렇게 성막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복음이 성막이었고 신약에서는 그 복음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참 형상으로 오신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 믿음으로 역사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보여 주셨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계시를 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이 복음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하늘의 참 형상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구약에서 성막으로 그리고 신약에서 주님이 직접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천국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일입니다.

이것은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생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시를 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 복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시라고 하니까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이 어느 순간에 뚝딱해서 성경에서 복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를 해 주셨다는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의 모든 말씀이고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직접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모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계시를 해 주셨습니까?

물론 사도들은 주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계시를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복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사람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마치 자기 혼자서 계시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에게서 많은 사람들이 배웠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가르쳐 주었지만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계시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5:8-10절을 보겠습니다. (282)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먼저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들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사도들은 또 이방에게 전파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도 역시 복음을 받았습니다,

 

받았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으로 역사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의 이성으로는 복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할 것 같으면 이 세상에 모든 인생들은 자기들의 지혜로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또 구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보여 주셔야지 만 됩니다, 보여 주신 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하셨다는 그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그것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교회 안에서 평생 다른 복음에 빠져서 그것을 행하다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가 몰랐겠습니까? 그는 지독한 율법주의자였기 때문에 당시 있었던 그 사건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잡아서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때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지만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듣기 까지는 소경이었기 때문에 보아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깨닫게 되고 나서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세상에 보여 주셨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천국 복음에 대해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방의 사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안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사람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또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시고 난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알게 된 것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 계시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나중에 주님을 믿을 수 있었고 또 자기가 받은 복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방에 사도로서 일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성경은 구약 성경이고 이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신약에 와서 또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보이셨습니다.

사도들은 직접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복음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이 복음이 누구에게서 왔는가 하면 사람에게서도 아니고 또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그 계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보는 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을 선지자들이 기록을 했고 사도들이 기록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복음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을 창설 하셨을 때부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 모든 일들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고 또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았다면 사도 바울은 계시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계시라는 의미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계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았습니다.

구약에 성막이 없고 또 신약에 와서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복음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복음을 알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10절을 보겠습니다. (14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십니다,

우리가 빛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는 밤에도 늘 빛이 비추고 있어서 이 빛에 대해서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는 이 빛에 대해서 너 많이 느끼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십니다. 그 빛을 비추시기 위해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이 빛에 대해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 빛에 대해서 명확하게 사람의 이성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보니까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그림자로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이 참 빛에 대해서 기록한 구약 성경을 보고 오히려 어두움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모든 성경은 이 참 빛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 빛이 보이지 않아서 세상과 같이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이성적으로 해석을 하다 보니까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어두움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빛은 오직 믿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비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정말 경계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은 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어두움에 거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가 되었어도 믿지를 못하게 되고 믿음이 없으니까 이 복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 합니다.

어느 세상이 그를 알지 못 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교회는 세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은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계시를 통해서 자기가 복음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계시를 보고도 오히려 다른 복음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성경적인 지식이 초대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왔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가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그 말씀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어떻게 받는지를 몰라서 믿지를 않고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다른 복음에 빠져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안 되니까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그 계시가 어디에 되어 있는가 하면 모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성경에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고 우리 인생들에게 최고의 선물인 영생을 우리가 받은 복음을 통해서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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