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복음과 율법-설교2

제4강, 그리스도의 종

윤주만목사 2018. 10. 16. 20:15


4, 그리스도의 종

누가복음 12:42절을 보겠습니다. (116)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종이 누구입니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이 양식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종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종인가 아니면 사단의 종인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종입니다 양식이라고 하니까 이 시대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양식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설교는 누룩이 많이 섞여 있고 또 거의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양식이 아닙니다.

사망의 독이 가득한 것을 먹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참된 양식이 될 수 없고 그것을 먹는 자는 반드시 사망과 저주가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탁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거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교병입니다.

그것이 참된 양식입니다.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은 양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이 양식을 나눠주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사도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도 자기들이 무엇을 먹이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양식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독이 든 것을 먹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독을 육체가 먹으면 금세 죽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구원을 받은 성도도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릅니다. 그것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른다는 것은 안 믿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밝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영의 일이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런 영의 오묘한 비밀을 알지 못하면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평생을 신앙생활 하다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는 참된 양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경의 문자 안에 있는 참된 양식을 알아서 그것을 먹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사단의 종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을 보고 자기 육체로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주의 만찬을 성찬식으로 만들어서 먹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성전을 보시고 내 육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의 거의 모든 율법에서 그림자를 걷어내고 나면 이렇게 참된 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참된 양식은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오셔야지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듣는다고 해서 마치 자기가 양식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는 이 세상의 좋은 책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는 것으로 마치 양식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미디어를 통해서 하루 종일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저주의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가 참된 양식을 먹이고 있습니까?

이 시대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정말 그런 분이 있다면 저는 그 분께 가서 듣고 배우겠습니다. 저를 비난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목사들 가운데는 이 참된 양식을 때를 따라 나눠주는 자가 없습니다.

 

때를 따라 나눠주라고 하니까 이상한 일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매일 주기 위해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고 수요 예배를 그리고 금요철야 예배를 그리고 구역 예배를 또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가 아니라 지금은 구원을 받은 만한 그런 때라는 말씀입니다 시간을 정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자체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양식이 중요합니다.

그런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본질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양식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때를 따라 예배를 드리는 그 일을 너무도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양식이 없다면 그 때를 따라 드리는 예배가 독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저주를 자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9절을 보겠습니다. (291)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부탁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부탁을 하셨습니다. 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 스스로 겸손의 모양을 내려고 종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 그들의 행위는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부탁하셨는데 이 시대는 오히려 교회 안에서 다툼만 일으키고 있는 것이 목사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때를 따라 주는 양식을 먹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들에게 그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돌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려서 그가 저주를 받은 자가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신 그 십자가를 믿는 것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화목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심한 다툼을 하고 있고 그 다툼이 어디서 오는가 하면 율법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이미 다툼을 일으키는 일인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어떤 것을 부탁하셨는가 하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 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니 안 지키니 하면서 다툼을 일으키고 있고 심지어는 이 율법 때문에 이단이라고 까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절대로 화목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화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죄를 진 그것을 우리에게 돌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다는 그 말씀이 하나님과 성도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양식을 먹어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는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하물며 그 양식을 먹지 않고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마치 생명의 양식이 되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말했습니까?

그들이 주님과 다툼을 일으킬 때 무엇을 가지고 말을 했습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이스라엘이 독사의 자식이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다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그 성경에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깨달아 그것을 전해야지 그렇지 않고 그저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전하면 그것은 독사의 독으로 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말씀에서 화목하게 하는 뜻을 알고 그것을 전해야지 화목하게 하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부탁입니다.

그런데 그 부탁은 듣지를 않고 오히려 율법으로 다툼만 일으키고 있는 것이 이제까지 교회 안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정말 내가 그리스도의 종인가 아니면 마귀의 자식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아서 그 말씀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되었지만 독사의 새끼들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입에서는 독사의 독이 나왔습니다.

누구의 입입니까?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입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그 사람들의 입에서 독사의 독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40:6절을 보겠습니다. (831)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로서 사는 것 자체 그리고 헌금을 하는 모든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는 정말 복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시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리고 독사의 새끼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식들은 제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제사가 있는 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드리고 있는 거의 모든 예배는 다 제사라고 보면 맞습니다.

 

헌금도 제사입니다.

기도도 제사입니다, 찬양을 부르는 것도 역시 제사입니다, 그런 것이 다 제사인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제사에 대해서 가르쳐 주면서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를 하고 있고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그 제사를 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면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제사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도 해야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찬송도 해야 하고 또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물질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다 틀리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런 모든 제사가 율법화 되어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헌금을 어떻게 합니까?

다 정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헌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이 있습니까? 그런 것이 다 제사라는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헌금 종류만 해도 제가 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정해서 하는 헌금이 아니라 마음에서 감동을 받아 그냥 하는 헌금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다 이 예배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지만 예배가 다 제사로 변질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부탁하신 그것은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시지 않는 그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쉽게 말씀을 드리면 내가 교회 안에서 육체로 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제사라고 보면 맞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모든 것이 다 제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억지로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기쁩니까?

예배를 드리면 누가 기쁩니까? 헌금을 하면 누가 기쁩니까?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면 누가 기쁩니까? 다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참 악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면서 더 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드리고 있으면서 정작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전하지도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실제 영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무색무취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믿어지는 것은 내 이성으로 그것을 알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로 일어나는 오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성도들을 감동하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역사입니다, 사실 이것을 육체적으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거짓에 가깝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복음을 듣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색무취한가를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이 영의 일을 믿고 또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저 믿어지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내가 그 영의 일이 믿어지는 것이지 내 육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다 보니까 초대 교회에서는 영지주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영지주의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영지주의가 없습니다.

영지주의라는 것은 반드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발생이 됩니다. 다른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절대로 영지주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구원파가 영지주의라고 하는데 영지주의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구원파는 변형이 된 율법주의지 영지주의가 절대로 아닙니다, 영지주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파가 영지주의입니까?

그렇다면 그 뿌리에는 반드시 복음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구원파를 영지주의라고 하는 것은 정통의 교회 스스로가 복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영지주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고 난 후에 교회 안에 영지주의가 싹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사라져 있는 지금의 교회에서는 영지주의라는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전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종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거짓 선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자기가 다른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알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모르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만약에 내가 사람을 기쁘게 했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성경 말씀을 얼마나 쉽게 보는가를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 한두 편만 들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49:18-20절을 보겠습니다. (837)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복음과 다른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다른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다른 복음은 누구를 좋게 하는 것이냐면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이고 다른 복음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영원한 빛을 보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행위가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면 자기를 축하하는 것이 됩니다. 또 사람들에게서 성도라는 말을 듣고 칭찬을 받기도 합니다. 이 시대도 십일조를 잘 내고 또 주일이라는 날을 잘 지키고 교회법으로 정해 놓은 여러 가지 일을 잘하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존귀에 처 했습니다.

이 말씀은 청함을 받아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존귀에 처해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깨닫지 못하는가 하면 자기가 율법을 잘 지켜서 축하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서 기쁨을 누리고는 있지만 영원한 빛을 보지 못하는 멸망하는 짐승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늘 강조를 합니다.

아니 제가 드리는 말씀의 거의 모든 말씀이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멸망하는 짐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를 축하하는 행위를 하고 있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하는 자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축하를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를 좋게 하는 것이냐면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술을 마십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이 술 문제가 정말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해결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없고 주님께서도 포도주를 마셨는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술을 쳐다보는 자체로만도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하면 성화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와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끊었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죽어도 못 끊을 것 같던 그것을 자기가 끊은 것을 보고 스스로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뭐라고 칭찬을 합니까? 저 사람이 예수를 믿더니 믿음이 좋아져서 술 담배를 끊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튼 이 시대는 무엇이든지 믿음과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술 담배를 하는 것과 믿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화 되어 있고 성화가 되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전에는 하지 못 했는데 예수를 잘 믿으니까 그것이 끊어졌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축하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다 육적인 일입니다.

그런 것으로 스스로 축하를 하고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그것을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뿐 아니라 어느 사람이 이제 교회에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십일조를 안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모든 사람이 십일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자기 스스로를 축하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만 축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십일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잘 지키는 것도 그렇고 특히 새벽 예배를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축하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믿음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를 좋게 하는 것입니까?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삶이니 하는 그런 말 하지 마시고 정말 그런 행위들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누구를 좋게 하고 있고 누가 칭찬을 받고 있는가를 바로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다 자기 스스로를 축하하고 있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행위가 아닙니까?

 

청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육적으로나마 성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존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육의 것을 보면서 스스로 축하하고 있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면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누가 좋습니까?

사람이 좋습니까? 하나님이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죄를 진 인생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께서 결코 좋아하실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축하받기 위해서이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복음이 그렇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좋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사람을 좋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다른 복음에 깊이 빠져 율법의 행위를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행위는 사람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죄인이 되기 싫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다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행위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멸망하는 짐승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짐승인가 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짐승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고 우상을 섬기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었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짐승이 되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이 짐승과 함께 멸망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16절을 보겠습니다. (369)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새 번역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까? 라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게 물으면서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도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단의 종이 되어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이나 모든 행위는 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인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믿음으로 했다고 해도 그리고 진심으로 했다고 해도 자기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처럼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믿음이라는 말로 현혹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이라는 것은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오직 선을 행했고 또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않고 했습니다. 선을 행했다고 하니까 마치 교회 안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선한 일을 했습니다, 왜 선한 일을 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선을 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보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선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선을 행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이 시대는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19절을 보겠습니다. (1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선을 행하고 나눠주는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선을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선을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에서는 사도 바울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라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게 묻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에서는 내가 사람을 기쁘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기쁘게 했다면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선하신 이를 믿는 자는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는 선을 행한다는 말씀은 선하신 이를 믿는다는 말씀이지 어떤 행위로 선을 행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행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는 일입니다,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별을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존귀에 처해 있으나 육의 일과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종이 누구입니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 종이 있으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제사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입니다. 다른 복음은 자기 육체로 행하는 것이고 복음은 선하신 이를 믿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다른 복음을 전하지도 않았고 또 그것으로 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을 가지고 얼마나 기뻐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기뻐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제사를 드리면서 자기들이 기뻐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기 스스로가 선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육체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선하신 이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그러한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선하신 이를 믿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로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의 육체로 행하는 제사에 빠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8절을 보겠습니다. (249)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복음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육신으로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기들 스스로 축하를 하고 있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것을 더 칭찬 받기 위해서 서로 간증이라는 것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간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간증합니까?

다른 복음을 듣고 그것을 자기 육신으로 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를 해서 그렇게 교회 안에서 자기 육신의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무엇이 육신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좋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사람이 기쁨을 누리면 그것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든지 그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어서 했더라도 그것으로 내 마음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기쁨을 누리면 하나님은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자기 육체로 기뻐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종인가 하면 먼저 선한 일을 행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한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믿음의 비밀을 받은 성도는 절대로 다른 복음에 미혹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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