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참된 양식
요한복음 4:34절을 보겠습니다. (신 148쪽)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나의 살은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양식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이 양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그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알고 있는 것으로 마치 양식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 안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도 모르다 보니까 양식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그의 일이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선지자들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고 그것이 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일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성경만 보아도 이것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보혜사가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폐하셨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셨습니다. 그런 것은 아주 기초입니다, 그런데 이 기초도 믿지를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믿지 않고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종용히 양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일만 만들어서 교회 안에서 행위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주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의 양식은 그 일을 성경에서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주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는 것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은 주님이 하신 것이고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참된 양식을 아직 먹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과 자기가 한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한 몸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나 역시도 한 몸입니다, 주님이 율법을 다 지키셨다면 내가 그것을 다시 지켜야 합니까? 지키지 말아야 합니까? 이런 기초도 모르면서 양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서 목사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그 말 한 마디에 미혹이 되어서 참된 양식을 먹지를 않고 그들이 만든 일만 평생 하다가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양식입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어떠한 아버지의 일을 했는가를 아는 것이 주님의 살이고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참된 양식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참된 양식을 먹은 성도라면 절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이 무엇 때문에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케 했는가 하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 613가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 타당성이 있는 할례를 지키자고 하는데서 부터 출발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인은 참된 양식입니다.
양식을 못 먹으면 일만 만들어서 그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참된 양식을 먹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참된 양식을 먹는다 해서 다른 복음에 미혹을 안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참된 양식을 안 먹였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가 그렇게 했는가 하면 참된 양식을 먹고 있었던 초대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단 한 가지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이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02쪽)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그의 아들에 관해 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 그대로 이방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정말 예수 외에는 아무 다른 것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에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쉽게 들어오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보면 이런 말씀들을 그저 쉽게 생각을 하고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남의 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가 지금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사실 종교인이라고 해야 하지 사도 바울과는 전혀 다르게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온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은 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은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가르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성경에서 예수를 알아서 믿는 것 외에 교회 안에서 삼가 정해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가르치고 하라고 하는 모든 말들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전했습니까?
다른 것 안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셔서 한 일을 믿지 못하게 하는 악한 행위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악한 일에 빠져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간음, 음행, 탐욕, 정욕, 더러운 것, 우상 숭배, 술수, 시기, 분냄, 분쟁, 투기, 술취 함, 방탕, 당 짓는 일, 거짓말, 살인, 두려워하는 것, 개들이 하는 일, 등 이런 것들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을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단어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부 부정적이고 나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이 교회 안에서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 좋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모든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이 모든 것들을 지금 교회 안에서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이런 일들이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는가 하면 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이런 일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사람의 이성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이런 일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문자로 보다보니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그리고 선지자들이 어떻게 성경을 기록했습니까? 때로는 이스라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해 주었지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알고 있다면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얼마나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4절을 보겠습니다. (신 223쪽)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이 사도들이었습니다.
실제 그들은 사도 요한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순교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섬에 귀양을 가서 노예로 살다가 결국에는 거기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다릅니다.
로마 시대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다 죽였습니다. 그때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지금 이 시대 자기들이 복음이라고 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종교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말은 참 잘 합니다.
사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포기 했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렇게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하지 못하는 그들이 말로는 다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누가 못 합니까?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그럴 각오가 되어 있다면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그것도 못하면서 아니 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입에 바른 말을 하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는 로마 시대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로마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 같으면 정말 이해가 됩니다. 아니 사도들은 정말 자기들이 앞장을 서서 이방에 복음을 전했고 또 로마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복음으로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너무 커서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것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 하면 자기 육체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생명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 안에 탄생이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성도만이 자기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거짓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이 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모든 행위는 다 귀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잘하려고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그런 모양을 보면서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이 귀하지 않은데 왜 자기가 하는 일이 그렇게 귀합니까? 그 자체가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생명이 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도 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음행이고 간음이고 정욕이고 탐심이고 살인을 하는 일인데도 깨닫지 못하고 그 일을 하느라 모든 정신을 다 빼앗겨 있습니다.
왜 생명이 귀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가는데 있어 이 썩을 것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귀하지 않습니다. 썩을 것이 귀합니까? 지금 썩어가고 있는 사과가 귀합니까? 오히려 버리는 것도 귀찮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런 악한 것을 가지고 귀하게 여기고 그 일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해서 다른 복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분별을 할 수 있는데 모두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복음인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통이 있습니다. 누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단이나 정통이나 할 것 없이 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 다른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교인들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단과 우리는 다릅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그들은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까? 물론 자기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통이라고 하는 곳에서 이단으로 정한 곳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안식일 교회고 또 구원파이고 다락방이고 합니다, 또 가정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곳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과 정통이 다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복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모든 교회가 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만약에 그 교회들 중에 어느 한 교회라도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제가 판단을 하고 있다면 저는 주님으로부터 더 큰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은 것이 복음입니다,
이 은혜는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은혜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국어도 모르는 무식한 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라는 단어를 모르니까 무식하게도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한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은혜라는 단어의 뜻이 좋으니까 아무 것이나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았으니까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은혜의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일한 것이 없이 은혜로 천국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자기들이 어떤 행위를 한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4쪽)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이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구원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이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기뻐하는 그런 일에 대한 소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습니까?
복음이라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 기뻐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 복음도 아니고 구원의 복음도 아닙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은혜의 복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어떤 체험을 하는 그것을 가지고 기뻐하고 있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병자가 치유함을 얻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천국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은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영의 일에 대한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치유가 되는 것을 보면서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육체의 기쁨입니다. 그런 체험은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 천주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해서 육체의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불교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천주교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제가 알기로는 교회에서 체험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육체로 기뻐하는 것을 가지고 마치 복음을 듣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쁨을 누리면서 복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많은 체험을 하고 있고 그런 것으로 기뻐하고 있고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복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그런 체험의 종교가 맞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전한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있는 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듣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보화를 찾지 못하면 그것이 아무리 성경이라고 해도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캐내는 성도만이 성경이 진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것이나 복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아무 것이나 가지고 복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모든 지혜의 기준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고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신앙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천국 복음, 은혜의 복음, 구원의 복음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편지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한다고 해서 마치 어느 이단이나 되는 것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 자체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전했습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얼마나 타락을 했는지 이 복음에 대해서 전하는데 구원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짜 구원파에서 설교를 들어보고 이런 말을 한다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구원파의 설교를 들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한다고 구원파라고 합니다.
어느 설교가 비슷합니까?
그것을 가지고 구원파라고 하면 이 시대 정통이라는 교회는 안식일 교회도 되고 구원파도 되고 몰몬교도 되고 여호와 증인도 되고 다락방도 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신천지도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전제적으로 성경에서 무엇을 전하는 가를 바로 알고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한두 편 설교를 보고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그들이 더 이단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모릅니까?
그러면 배우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복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복음이라는 단어는 신약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120여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이 무엇인가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성경에 기록된 문자를 보고 행위로 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사도들이라도 아니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이 있었던 때에 벌써 이렇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저주를 받습니까?
복음 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물론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으면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전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다른 복음을 만들어서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외에 것을 전하면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의 어느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전하는데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서 무엇을 전해서 저주를 받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이라도 그리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저주를 받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무슨 말씀이 필요합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너무 겁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니 율법을 안 지키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제 이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를 강해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아마도 이 갈라디아서 강해를 다 들으면 정말 이 시대 지키고 있는 율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전하면 사도라도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사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하면서 행위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가르치는 사람 뿐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듣고 미혹이 되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정말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 저주라는 단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저주를 받는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십일조를 믿음이라고 정신 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십일조가 믿음입니까?
성경 어디에 믿음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십일조는 분명히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있습니까? 종교는 아편과도 같아서 한번 세뇌를 당하면 율법도 믿음으로 변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성도는 성경을 보고 있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십일조가 믿음이라고 하면 반드시 우리는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십일조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된 것을 육체로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육체로 행하라고 하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이렇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사도라도 그리고 하늘로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이 다른 복음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단 한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입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다른 복음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이스라엘 못지않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기 시작을 하면서 이 율법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교리가 그대로 2000년 가까이 내려오다 보니까 이스라엘의 율법주의 못지않은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느 누구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국어도 모릅니까?
성경에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면 율법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율법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그것이 율법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과 같이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의 한 행위라도 하고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제가 말씀을 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목사라도 아니 그가 존경을 받는 신학자라고 해도 성경에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사도들이라도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면서 축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입니다. 만약에 십일조가 율법이 아니라면 사도들은 분명히 십일조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이 세상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면 다른 복음이 되고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율법-설교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강, 선택 (0) | 2018.10.17 |
---|---|
제5강, 다른 복음 (0) | 2018.10.17 |
제4강, 그리스도의 종 (0) | 2018.10.16 |
제2강, 그리스도의 은혜 (0) | 2018.10.16 |
제1강, 교회 (0) | 2018.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