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성령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만 있으면 무조건 성령이 오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에게나 성령이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라는 말씀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습니까?
겨우 그것 하나로 자기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한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아니 다수에 의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몇 만 명이 아니라도 불과 10여명만 되도 사람들이 있는 그 안에서도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수입니다
세 명이 있을 때는 둘이 다수입니다 그때 한 사람이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둘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하나는 자기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고 받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이 시대는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는 기도를 하는데 마음으로 감동을 받았다고 하고 어느 성경 구절이 생각이 났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은 아무 체험이 없어도 자기도 그렇다고 해야 그 두 사람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과 같이 그런 외적인 것을 보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내가 아들이라는 것을 친히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집단으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아들이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스라엘에 어느 사람이 그것을 부정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 도리어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맞습니다. 그러나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한 부자와 같이 교회 안에서 자기 혼자서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한 부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내가 부른다고 아버지가 됩니까?
반드시 나를 낳아야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낳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증거를 해 주셔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줄을 모르니까 막연하게 자기들이 아들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영으로 친히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증거를 해 주십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도 바울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종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증거를 해 주시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의인화를 해서 실제 있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로마서8장16절의 말씀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어떤 말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성령을 느끼지도 그렇다고 감성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영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로마서8장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한 모든 영의 일을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영의 일을 알고 우리가 그대로 행할 때 이 말씀이 믿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보게 되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시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자녀입니다
누가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100만 명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왜 주셨습니까?
이 성경에서 증거를 받게 하기 위해서 주셨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내가 자녀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삼았던 이스라엘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살았지만 마귀의 자식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마귀의 자식인가 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아 종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자녀보다는 종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왜 종의 영과 양자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영자의 영을 받을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종의 영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많은가 하면 어느 시대에는 한 사람도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성경에서 노아 시대도 그랬고 예레미야 시대도 그랬고 호세아 시대에도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대에 한 사람도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녀입니다
어떻게 자녀입니까? 내가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성령이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까? 종의 영을 받은 사람과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아도 소경이 되어서 자기가 종의 영을 받은 자인가 양자의 영을 받은 자녀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4: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후사입니다
누구의 후사입니까? 하나님의 후사라고 말씀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후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과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보다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후사입니까?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그럴 일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가 될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이 시대는 누가 율법에 속한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이스라엘이 지키면 그것이 율법이 되고 자기들이 지키면 그것이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가 누구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할례를 받은 너희에게 다시 증거 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이고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이고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입니다 매주 시간 마다 예배를 드리고 그 안에서 종교 의식에 따라 행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이고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어서 제가 일일이 다 설명을 할 수도 없습니다. 감각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이렇게 후사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것으로 자기들이 후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모두 자기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히 후사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이라는 말씀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후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후사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이 오셔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사람의 이성으로 이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설령 그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사망이 온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었고 또 이방의 교회 역시 율법주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누가 후사입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있어서 그 영이 후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영의 거듭남을 모르고 있고 자기 육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입니다
그 영이 후사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을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이 어떻게 내 안에 거하게 되는가 하면 성령으로 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를 통해서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만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자녀가 아닙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육신대로 살면서 아무리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3:6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증거가 되고 있는가 하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한 후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드시 이 영의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일을 혹시라도 모르면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로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게 후사가 되는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후사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이 로마서를 기록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후사가 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 성경을 굳이 기록하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성경을 자기들이 좋은 쪽으로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성경이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분별할 수 있는 성인들이 왜 광야라는 교회에서 다 죽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지혜가 없어서 죽었습니까? 그들은 더구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면서 진행했고 또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도 광야라는 교회에서 다 죽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너무 태평합니다.
아니 종교의 마약에 모두가 취해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혀 있습니다. 모두가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정통이라고 하는 그 교회를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보다 더 독한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에게 모두가 포승으로 묶여서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있는가 하면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방인일지라도 복음을 알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후사가 될 수 있는가 하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서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가 복음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복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선지자들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릅니다.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과 같이 소경이 되어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복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고 그것을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후사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후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그대로 보니까 후사가 되었다고 해도 별로 감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후사가 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의 수가 천만 명이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능한 일입니까?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은혜라는 단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이 은혜도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입니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는 일은 이 지구와도 바꿀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세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합니다.
내세는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것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된다는 말씀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후사가 되는 순간에 천사도 우리의 부림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육체는 천사를 보면 죽은 자 같이 되지만 그 천사가 우리의 부림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후사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각으로는 상상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아니 설명조차 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5:10-13절을 보겠습니다. (신 404쪽)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그와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받는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런 왕과는 비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가 아무리 절대 권력을 누린다 해도 인생의 년 수가 팔십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기껏 해 보아야 60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장수를 하는 왕이 누리는 것이 60년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고 해보아도 그가 누릴 수 있는 것이 10여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부활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부활을 해서 생명을 누리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는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왕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왕 노릇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차라리 이 세상에서 거지와 같이 살더라도 영원한 왕을 누리는 천국을 소망하고 싶습니다.
세상은 잠깐입니다.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살았던 그도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그가 최고와 같이 보이지만 그 역시도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가 고민이 없겠습니까? 그가 근심이 없겠습니까? 그가 혼자서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그가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가 나중에 죽지 않겠습니까?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라 해도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것은 이런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천사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광을 주님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받는 영광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그런 영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입니다
그 영광이라는 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설명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별로 감동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우리도 주님과 함께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런 영광을 우리가 받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부활을 해서 영광을 받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라지는 내 육체가 내가 아니라 영원히 있는 영이 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가 나 입니까?
아직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담의 사람이 나 이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나 이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내가 바라는 그대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어리석은 자들은 아담의 자기와 하나님의 영이 결합을 해서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을 볼 때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게 되어 있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상상이 안 됩니다
그런데 만만의 천사가 천천의 천사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해서 천국에 가는 영의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영광을 알았기 때문에 초대교회에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나약합니다.
솔직히 사회가 발달을 한 영향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육체적으로는 너무 나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늘 이 영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담의 자손인 나는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와 같이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탄생이 되어 내 안에 있는 양자의 영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영이 받을 영광을 믿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 육체로 제물을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다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미천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조금 보는 것으로 마치 대단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성경을 볼 때마다 제 자신이 얼마나 미천한가를 늘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막연한 종교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라는 것을 모르고 기독교라는 종교에 모두가 빠져서 육신의 일만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영의 일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차라리 세상에서 사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영의 일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신체로 부활을 하지 않고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신체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리고 썩어 없어지는 진토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신체는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을 하셨는데 그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신체가 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나 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 이름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담의 씨로 살아가고 있는 김병덕이라는 사람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니님께로서 난 자가 부활을 해서 천국에서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영광을 받고 이제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을 할 때는 새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아담이 하와를 보고 말한 것과 같이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부활을 해서 천국에서 모든 영광을 받습니다.
이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이라고 하니까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다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레미야 시대에 호세아 시대에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성도가 얼마나 큰 영광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숫자를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아무리 많은 숫자가 있다 해도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수가 있어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바다 모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초대 교회를 지나고 나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생겨나서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물론 인구의 수가 최근에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겠습니까?
바다 모래입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결국에는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아주 적은 숫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적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음을 모르고 종교적인 행위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영광을 받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이 영광을 생각하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주어지는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고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8:31절을 보겠습니다. (신 67쪽)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육적인 고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영적인 고난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적인 고난을 누구에게 받는가 하면 주님이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셔서 죽임을 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율법의 대적이 되기도 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대적하고 거스리는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반드시 고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이단이라고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당연히 그 영광을 받으려면 주님이 받으신 고난을 우리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시대는 종교의 권력보다는 국가의 권력이 더 강해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이단이라고 공격은 해도 어떤 물리적으로 고난을 받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초대교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했습니다. 그들이 배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 육체의 생명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배교를 하는 그 사람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배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로입니다
그들이 바리새인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서기관입니다 그들은 율법학자들입니다 이런 율법주의자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그런 고난은 없습니다.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성도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며 그것이 악한 행위라고 하면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이야 말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교회에 가서 십일조를 내는 것이 악한 일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 십일조가 율법이라는 것을 말하고 또 그것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것은 고사하고서라도 쫓겨나지를 않으면 다행입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그렇게 말을 하면 위협을 당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악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성도는 세상에서도 그리고 종교 안에서도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을지라도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를 해 주시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는 당연히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는 꿩 먹고 알 먹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입니다
하늘의 것을 얻을 것인가 이 세상의 것을 얻을 것인가를 여러분은 분명하게 택해야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반드시 세상에서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세상에 대해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고난을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받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면 그때 받을 축복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내 손 안에 있는 떡을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믿음이 없어서 그것이 실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천하보다 더 큽니다
이 세상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상상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은 이보다 더 큽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라리 지옥에 갈지라도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사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현실을 이기지 못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래도 이 시대는 얼마나 평안합니까? 순교를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율법을 안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재판에 넘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편지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말씀을 보고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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