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무서워하지 마사기 바랍니다.
우리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바라보면 우리는 무서워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육체에서 놓아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음의 공포에 있는 우리를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영입니다
육체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한번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설령 육체의 죽음이 오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과 혈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받을 축복이 너무 크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받아들입니다.
죽음입니다.
무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하려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일을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구원이 아니라 영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면 무서워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교회가 병원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도원이 불치병을 고치는 병원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병을 고치는 역사는 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왜 그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육체의 병을 고치려고 병원을 차리고 있습니다.
암 병입니다
죽을병을 고쳤습니다. 그가 영생을 합니까? 그가 십년을 더 산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 그가 50년을 더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우리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더 살아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고 천국에 들어갈 만큼 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십년을 더 살면 뭐합니까? 십년 동안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만 짓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죽으면 너무 두려워서 더 잘하고 난 후에 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만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아서 살아가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이 시대 교회가 병원이 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정으로는 저 역시 사람인지라 슬픕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자가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생명이 거하고 있는 성도고 그 영이 진짜 나라를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혈과 정이 붙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병을 고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냉정할지 모르겠지만 죽을병이 들었으면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육체의 병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구원을 확증하면서 내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종의 영입니다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죽을병이 들었는데 그것을 고치겠다고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지금 죽은 것이 두렵지만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죽는 그것을 한번 정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욥기3:25절을 보겠습니다. (구 764쪽)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기31:23절을 보겠습니다. (구 791쪽)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 위엄을 인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욥입니다
그는 이 세상 최고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는가는 욥기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가 왜 율법을 지켰는가를 욥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 위엄을 인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종의 영을 받아서 무서워하기 때문에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은 반드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안 지키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고 이 시대 모든 교인들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지키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그들이 자유를 이야기를 할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렇게 하다가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할까봐서 심히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율법을 안 지켜도 하나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욥과 같은 마음이 내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법을 하나도 안 지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그것이 믿어지고 있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욥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심히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육적으로도 그가 손을 내밀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빵을 하나 나눠주기보다는 우리가 은혜로 얻은 이 생명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청년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도 영생을 생각하면서 이 일을 했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무섭고 두려워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의 영입니다
이 시대도 종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똑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작은 교회도 자기들 먹고 사는 것도 힘이 드는 교회도 가난한 자들을 돕겠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그런 일을 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영생에 대해서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니까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하고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안심이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성도는 사실 그런 일을 할 돈도 없고 그런 일을 하기 보다는 정말 영에 일에 있어서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냉정합니까?
절대로 냉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세상에 가난한 자를 그리고 과부를 물질적으로 도와주라고 하셨습니까?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은 그런 일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가 생명을 얻게 하는 그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할 일이 없습니까?
우리는 사실 주님께서 부탁하신 그 일만 하기에도 버겁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 것을 아는 그들이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하지 않고 종의 영을 받아서 욥과 같이 율법주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생명을 얻을 만큼 율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안 지켜도 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종의 영을 받았습니다.
욥과 같이 종의 영을 받아서 자기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과 같이 종의 영을 받아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서워서 지키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욥은 우리 인생들의 예표와 그림자입니다 그는 육체에 무서워하는 그것이 두려워하는 그것이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에게는 육체에 그것이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고 난 이후에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욥기를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자인가를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종이 누군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 평생 교회 안에서 종으로 살아가다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미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8:33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이 시대도 똑같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오셔서 똑같은 말씀을 하면 이 시대 역시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고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를 자유케 되라고 하느냐고 반문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 시대 역시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그것으로 자유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스라엘과 같이 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의 영입니다
모든 율법을 지켜서 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율법을 지킨 이스라엘도 종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그것에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율법을 지켜서 종이 되었고 자기들은 당연히 성도로서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할례를 받은 너희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켰으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율법만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의무입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면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다른 이유를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이 시대 역시 전체 율법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을 반드시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옳습니까? 지키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제가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성경에는 여러 가지 재앙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재앙들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더욱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실상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종의 영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시편27:1절을 보겠습니다. (구 820쪽)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로마서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들로 인정이 되는 순간에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안 지킵니까?
우리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내세를 바라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에 대해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믿는 성도만은 무서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안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율법을 누가 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중보자의 손을 빌어서 반포를 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구원을 생각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누구하고 하니까 꼭 사람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시편을 보면서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을 하고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온전히 다 지켜서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 무섭습니다.
그것을 다 지켰다고 자신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자 청년의 말을 들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계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에서도 찜찜하니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지켰습니다.
그러면 부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는 그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부족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기가 지킨 그 율법의 행위를 보면 부족하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주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떻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누구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누구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여호와께서 구원을 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무서워하지도 않고 있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늘 이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고 그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율법을 지켜도 역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우리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분이 여호와이고 그분이 아버지입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이 되시고 있고 그 분이 나의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양자의 영을 받지 않고 종의 영을 받아서 이 부자 청년과 같이 아직도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모두가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율법을 지키다가 욥과 같이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하면서 통곡을 하게 됩니다.
죽어서입니다.
종은 죽어서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염소가 되어서 영벌에 처해질 때 그것을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욥기는 율법주의자인 욥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자는 반드시 죽어서 욥이 이 세상에서 받았던 그 고난과 같은 것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종의 영을 받아서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양자의 영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을 요구를 이룬 성도가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지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믿지를 못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를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자기들이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성경에도 없는 법까지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무서워하는 그것이 그대로 미쳐서 천국을 유업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4:3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종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종이 무서워합니까? 교회 안에 있지만 종은 유업을 아들과 함께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 미리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내어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그리고 이삭이 있습니다. 둘 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계집종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이 두 여자는 두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라의 교회가 있고 하갈의 교회가 있어서 하나는 종으로 살아가고 있고 하나는 자유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창세기에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종은 아들과 유업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누구를 예표하고 있습니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브라함에게 두 여자가 있는데 하나는 계집 종이고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입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비유를 깨닫지를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종이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아브라함을 통해서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는 말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이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종이 누군가를 몰라서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종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종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누군가를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종이라고 하는가 하면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종이고 교회 안에서 이렇게 율법을 지키면 내어 쫓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지옥입니다 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고 있고 그래서 그들은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데 그것이 도리어 종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은 무섭습니다.
왜 무서운가 하면 아들과 함께 유업을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종은 아들과 함께 유업을 나눌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종인지 아들인지를 전혀 모르고 막연하게 자기들이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입니다
종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종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니 기록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삼가 지키는 것이 있다면 다 종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이삭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이스마엘입니까?
물론 그들 역시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종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육적인 이스마엘의 자손이 종이 아니라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육적으로는 이삭의 자손이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종입니다
정통입니까?
그런 것은 다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 기독교를 정통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당시 정통이라고 했던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도 종이라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루살렘이 종인가 하면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종이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종이 된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역시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누군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유대교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했지만 이 시대는 같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종은 무서워하는 그것이 반드시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감각이 없습니다.
모두가 영적으로 문둥병이 걸려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서, 특별한 형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무서워하는 그것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가 잘못이 되어서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에게는 무서워하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이 임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4:6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잠언20:1절을 보겠습니다. (구 932쪽)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종의 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자의 영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 있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두 가지를 가지고 비유를 할 때는 나쁜 쪽에 해당이 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절대 다수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가 더 많은가 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에는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좋은 것은 다 자기 쪽으로 해석해서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자기들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막연하게 자기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모두가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그리고 미혹의 영이 있습니다. 진리의 영은 성령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혹의 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미혹의 영이 무엇인가를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미혹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포도주입니다
그리고 독주입니다 이것은 다 율법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술 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술친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끊임이 없이 율법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영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혹의 영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가 얼마나 교회 안에 많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물론 어디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못 보았습니다. 말로는 율법을 폐하였다고 하고 있지 실상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한 두 사람이 거짓 선지자가 될 것 같으면 삼갈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거짓 선지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선지자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거짓 선지자가 되어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미혹의 영에 다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을 다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영을 다 믿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서 영을 다 믿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다 믿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는 절대적으로 미혹의 영을 가지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술 취해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술에 취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마시는 술을 입에도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술 취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아니 교회 안에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모두가 거짓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거짓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이 영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 막연하게 자기들은 양자의 영을 받아서 미혹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자기들 이로운 쪽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미는 전혀 모르고 목사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당하지 않는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있다고 하니까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잠시 잠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인생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세의 일입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가에 대한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바빠서 성경을 볼 시간도 없고 거짓 선지자를 삼갈 시간도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가서 그들이 차려준 예배에 참석을 하고 또 자기들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헌금을 하고 나온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미혹의 영에 미혹을 당하는가 하면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 바르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아들입니다
아들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너희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막연하게 성경을 문자로 아는 것을 가지고 아들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아들이라고 할 때는 아들인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이미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누구에게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들의 영을 보내 주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육신은 율법 아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위해서 율법에서 속량 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려고 아들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아들의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의 영이 있으려면 반드시 율법에서 속량을 해 주셔야지 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에서 속량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해도 아들의 영이 없음으로 아들이 될 수 없고 그는 종으로 평생을 교회 안에서 살다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쫓겨나는 무서운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면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기 때문에 아들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아들의 영을 받은 성도만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게 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영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영이 있는 성도만이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그가 아무리 목사 안수를 받고 이 시대 유명한 자라고 해도 종의 영을 받은 미련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이 영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의 이성으로 이 영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해서 이 영의 일이 믿어지는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를 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이 영의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입니다
이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양자의 영을 받아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입니다
반드시 관계가 성립이 되어야 부를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반드시 아버지에게서 낳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믿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들로 인정이 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함으로 해서 양자의 영을 받게 하셨습니다. 아들과 같은 영을 받음으로 해서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그가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종의 영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에서 벗어나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전제 조건입니다
종의 영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양자의 영을 받아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른다고 해서 아버지가 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억지가 심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아버지라고 불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에 충족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그와 같습니다.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가 되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통령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대통령이 아버지라고 인정을 해 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그가 아들이라고 인정을 해 주어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설령 그가 낳지 않았어도 그가 인정을 하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육적으로는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정을 해 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에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양자라는 말씀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의 일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양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 육신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을 우리가 알 수 있게 양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내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종의 영을 받아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의 영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양자의 영을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더 이상 육신으로 살지 않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대로 살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육신대로 살고 싶어도 양자의 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우리 안에 생명이 있는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그 육신이 지금은 모든 것을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영에 대해서 전혀 느끼고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서 역사를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내세의 일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가 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그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자
입양에 의해서 자식의 자격을 얻은 사람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육신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양자를 얻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본래 영이 없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영이신 하나님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나 그의 영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인은 하나님의 자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식으로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자격을 얻은 것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양자의 영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비로운 일이며 우리가 이 영을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과 같은 영이 있음으로 해서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여겨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영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양자를 얻어서 그를 자식으로 삼을 때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록 양자를 삼았을지라도 부모는 자기 아들과 똑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닙니다.
아들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아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지만 죄가 없으시고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으로서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한 분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양자를 삼으시고 아들과 똑같이 여겨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는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들로서 인정을 스스로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을 주셔서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는 영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부활을 하려면 반드시 이 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이 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고 구속의 일을 이루게 하시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을 로마서에서는 양자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는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가 영이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영을 받았으며 그것을 양자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아들로 인정이 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로서 온 영이 있음으로 해서 아들의 자격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로서 온 영이 있어야 아들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자격을 얻은 것을 가지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는 하지만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본래 영이십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그분은 다시 영으로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본래 영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본래가 육신입니다 그 육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해서 우리 안에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본래가 영이었고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양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자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들의 자격을 얻은 양자입니다 아들의 자격을 얻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몰라서 자기 육신대로 살아가고 있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도 죽이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양자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을 합니까?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육신대로 사는 그들이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지도 않는 그들이 양자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안다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6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정말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오셨다는 것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우리에게서 육신대로 살지 않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가 몸의 행실을 죽이고 있습니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저 역시도 몸의 행실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 어쩔 때는 저도 모르게 몸의 행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그래도 거의 나오지가 않고 있는데 찬양은 습관이 되어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다가도 다시 몸의 행실을 바로 죽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종교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고 있고 그렇게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해서 우리가 사는 영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은 절대로 알지 못 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내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그것이 내가 사는 것임을 알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라는 말을 하면 거의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무엇이라는 그 기본조차도 모르다보니까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이 성령의 기초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입니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령을 진리의 영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진리의 영을 모릅니까?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진리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의 영이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를 해서 성령을 말하면서 온갖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진리의 영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34쪽)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리고 은유와 의인화를 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이런 말씀들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다보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알 수 없고 성경의 해석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의인화입니다
성령을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더구나 존칭을 쓰다 보니까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종교가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령이 인격체입니까?
이 시대는 성령이 인격이 있다고까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상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인격적인 교제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면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성령으로부터 직접 가르치심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과 같이 직접 가르치심을 받았습니까?
없습니다.
가르치신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 가르치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를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이 나에게 음성으로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려고하다보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분명히 성령이 제 안에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느끼거나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가르치심을 받아서 구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가르치심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이성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령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성령이 저를 가르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제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분명히 성령이 오셔서 진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가르치셔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저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령에게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이 말씀이 생각나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입니까?
그런데도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기들에게 증거를 해 주셔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런 증거를 받은 적이 없고 성령이 제 영과 더불어서 증거를 하는 것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의인화를 통해서 은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은 성령을 먼저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은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이미 앞에서 다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알아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몸의 행실을 죽이고 있는 사람은 성령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내가 느끼고 알 수 있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은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서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로마서8장16절의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성령도 모르고 우리 영도 모르는 그들이 마치 이 일을 아는 것과 같이 그리고 경험을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성령에 대해서 의인화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에 대해서는 이미 9절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8장까지의 앞에 있는 말씀을 아는 성도는 이 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들었습니까?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를 해주는 것을 들었습니까? 그것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들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말씀을 깨닫고 나니까 이 말씀이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증거하는 것이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도 영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도 영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로마서 말씀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지는 역사가 내 안에서 있으면 성령이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63절을 보겠습니다. (신 155쪽)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성령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3장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을 예수님께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에게 어떤 생명이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장63절의 말씀도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 안에 막연하게 생명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이 있습니다.
그것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여러분이 느낄 수 있고 인지할 수 있습니까? 이 영은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느끼고 인지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요한복음의 말씀을 안다고 해서 내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믿음으로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는가 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믿음을 모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교적인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이 영의 일은 도무지 믿을 수 없고 또 우리가 알 수도 그리고 인지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영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영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영생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심으로 해서 이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거짓이라고 해도 또 이 일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저는 이 일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영이 있습니다.
반드시 이 영이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성령의 역사로 믿어져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영이 실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까?
그것은 때가 되면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그것을 나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영을 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육신은 반드시 썩어 없어지지만 이 영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을 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 육신의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육신에 증거를 하면 뭐 합니까? 그것은 죽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를 해 주시면 우리가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자녀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신다는 것이 믿어져야 내 안에 영이 있고 그 영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이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이 우리가 영원히 누리는 생명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서 친히 증거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증거를 해 주시는가 하면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고 우리의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종교는 거의 모두가 샤머니즘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귀가 막혔고 또 눈이 감겨서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이 일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로마서8장16절의 말씀이 믿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영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는 그들이 억지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믿을 수 있게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고 그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8:1절을 보겠습니다. (구 918쪽)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성령이 친히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성령이 증거하시는 말씀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도 실제로는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실제 영으로 성령이 증거를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습니다.
증거하십니다.
의인화를 해서 은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성도는 이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육체가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릅니다.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명철이 소리를 높일 때 우리가 명철에 대해서 들었습니까? 정말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영의 일을 의인화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혜가 불렀기 때문에 그리고 명철이 소리를 높였기 때문에 우리가 지혜를 얻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고 있습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으로 이러한 일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을 아는 명철함이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 역시 이 일이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믿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것이 믿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고 영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이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 해서 이 일이 믿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강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 75강 초대교회 입니다 (0) | 2017.10.03 |
---|---|
로마서 강해74강 성령입니다 (0) | 2017.10.03 |
로마서 강해 72강 빚진 자입니다 (0) | 2017.10.03 |
로마서 강해 71강 영의 일입니다 (0) | 2017.10.02 |
로마서 강해 70강 그리스도의 사람 (0) | 2017.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