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71강 영의 일입니다

윤주만목사 2017. 10. 2. 22:48



로마서 8:11절을 보겠습니다. (24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 육신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 다 육신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다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지를 못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육신에 빠져 있습니다. 죽은 몸으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그저 교회에 나와서 종교의식을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자기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찬송가를 부르고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탄식으로 나타내고 있는 기도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행위는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를 안다고 아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씀은 성경은 영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 영의 말씀을 믿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것이 믿음의 결국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에 집착을 하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종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육신의 대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육신이 우리의 혈과 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에 붙잡혀서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를 못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고 막연하게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우리가 느낄 수도 없고 감성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으로만 그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영으로 계십니다. 영이라는 분명한 것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지 막연하게 우리 안에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 영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에게서 역사하는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영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기독교입니다

이 영의 일을 모르니까 어떻게 합니까? 별 이상한 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 세상 샤머니즘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고 그런 이상한 행위를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들 안에 계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영이라는 분명한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영은 영원히 있습니다. 어느 것이 실체입니까? 그 사라지는 것이 우리 인생들에게는 실체와 같이 생각이 됩니다. 아니 그것이 실체입니다 그러나 이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이미 죽은 몸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육신으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지만 그 육신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신 그것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정을 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영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그것을 죽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이 영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육신에 매여서 그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모습과 같이 생각이 됩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을 알기를 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육신으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제사가 이 시대 율법의 행위로 나타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했다 해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 육신이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신입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다면 그 육체는 죽여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육체를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는 육체는 죽이고 주님께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내 안에 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이 생명입니다

우리 몸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우리 몸을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육체에 빠져서 살아 있는 자기 육체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그 영이 의로 인하여 삽니다. 그 영이 어떤 영인가 하면 영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입은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영으로는 산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육체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까?

물론 주님은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육체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는 말씀은 우리 영이 의롭다 하심을 입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영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은 분명한 실체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있는 성도는 이 영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모르게 되면 그는 그저 종교인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깨닫기보다는 이스라엘과 같이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다가 죄의 법에 의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모릅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대도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교회에서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년 부활절을 지키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살아 나셨는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부활도 모르는 그들이 부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실제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은 실제 있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실제 일로만 받아들이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그렇게 부활한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8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기초입니다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이 기초가 되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기초가 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영의 일을 말씀할 때는 많이 인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말씀은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살리심을 받았습니까?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은 성경에 몇 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이 말씀을 본다고 해도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보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주님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육체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한번 인용을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또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육체로 살리심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구원을 받을 수 없는가 하면 육체로 살리심을 받았으면 그 육체가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영으로 실제 거하시고 있습니다. 마치 판타지 소설과 같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고 또 사람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말씀하고 있고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지만 실제입니다 그리고 그 영은 분명한 생명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영의 일을 깨닫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믿음을 주심으로 그 믿음으로 영의 일이 깨달아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사셨습니까?

육체로 살았다는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육체로 살았다고 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영의 일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영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하니까 그리고 실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육체로 살아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왜 영으로 살아나셨는가 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가 영이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신 육신은 죽고 이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이 생명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서 우리에게 그 영을 보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영으로만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살아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고 받아들이지도 못 합니다 아니 영의 일을 말씀을 드리면 이 영의 일이 너무 어렵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그동안 육신으로 살았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의 일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믿어지지가 않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에 대해서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이 영의 일을 깨닫게 해 달라고 지혜를 구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에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깨달아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으로 알려고 해서 깨달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야 합니다. 또 영의 일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정말 많은 분량의 말씀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 보았습니까?

그 말씀들을 다 보았다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정도의 말씀만 여러분이 정확하게 깨닫고 있다면 구원을 받는데 있어 부족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깊고 오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깨달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어떻게 살아나셨는가 하면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는가 하면 그 영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것이 어떻게 거하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은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13:5절을 보겠습니다. (300)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다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얻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알 수 있습니까? 아니면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말씀 그대로 영의 일입니다

 

이 시대는 안다고 말을 합니다.

어떻게 압니까? 자기들 마음이 감동을 받고 있다고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종교적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성경 말씀이 문자적으로 생각이 나는 것을 가지고 마치 성령이 오셔서 감동하여 주는 것으로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거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자기 육신으로 성경 말씀이 문자적으로 생각이 나는 것을 영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그런 것에 다 취해 있습니다. 종교가 만들어 내고 있는 샤머니즘을 마치 자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증거가 되는 것으로 간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영을 모릅니까? 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육체의 체험을 가지고 아니 무당이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샤머니즘적인 체험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거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그런 체험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알 수 있다면 성경은 굳이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하지 않고 그런 체험을 하라고 말씀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체험을 한 것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무엇 하러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이렇게 체험을 하면 된다고 하면 됩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그런 체험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영의 일입니다 사람이 이성으로는 아니 그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우리에게 주셔서 그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입니다 그것은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이 영의 일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믿음밖에는 없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에 삐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체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다 체험에 미쳐 있습니다. 그들 종교에서 말하는 대로 그들은 체험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거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런 체험을 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영은 실체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생명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깨달을 수 없으며 우리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영의 일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이 영의 일을 한두 시간을 대화를 나누면 어디 이상한 이단이 와서 자기들을 미혹하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간단합니다.

자기들이 체험한 것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성경 말씀이 생각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는데 거기에 딱 막는 성경 말씀을 누군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를 하면서 또 헌금을 하면서 자기 마음으로 다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그런데 영의 일을 말씀드리면 아주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굳이 이렇게 어렵게 이해도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말을 하기 보다는 쉽게 체험을 한 그것으로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으로 확증할 수 있는데 얼마나 미련하게 보이겠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왜 믿음인가 하면 기독교인이 체험하는 그런 것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십니까?

예수를 살리신 이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십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알 수 있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믿음으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버리운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버리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 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자기 안에 거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영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율법을 잘 못 지켜서입니까? 아니면 도덕적으로 죄를 많이 지어서입니까?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로마라는 강대국이 있어서 모두가 로마의 속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민족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까?

비교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정말 간절했습니다. 자기 조상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세웠는데 그 성전이 다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왕인 헤롯이 자기들의 마음을 사려고 성전을 다시 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 간절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왜 버림을 받았는가 하면 주님께서 오셨는데 너희 안에 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주님이 거하실 곳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으로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은혜롭게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까? 나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런 행위를 하면서 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게 거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십니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오직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믿음에 있는 성도만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그 안에 거하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역시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 시험하고 확증하지 않고 육신으로 확증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역사하는 영의 일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이 확증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줄 확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이상한 방법으로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가 체험을 한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13-14절을 보겠습니다. (17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그의 영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성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려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영생은 진리의 하나님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성령이 오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누가 보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많이 나오니까 모두 다 알고 있는 것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누가 받을 수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영입니다

그가 오셔서 우리를 감동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이 시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성령이 오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 죄의 법을 섬기다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가 다시 살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입니다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가 하면 이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자의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의미를 찾기보다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의가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영생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을 볼 때 이 영생에 대해서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의로 성경을 보면서 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는 순간에 그것은 자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사셔서 부활하신 것이 주님의 영광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주님께서 부활 하셨다는 것을 나타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그대로 우리 역시 부활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부활을 하셔서 영원한 생명이 그에게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령을 보내 주셔야 성령이 우리를 감동을 해서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참 문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기독교조직신학에서는 신체의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면 분명히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되어 있고 그것은 곧 신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누구나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신체의 부활의 정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문자 그대로라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앞에 있는 9절과 10절 말씀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는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말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 있는 9-10절 말씀에서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말씀이 신체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체의 부활이 맞습니까?

영의 부활의 맞습니까? 분명히 10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그런데 11절에서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4:14절을 보겠습니다. (290)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주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장 전체를 이해를 해야지 어느 한 절만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입니다

지금의 성경은 편찬하는 사람들이 장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써서 보낼 때는 장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장절을 구분해서 보고 있습니다. 문장 전체를 보면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알 수 있지만 장절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로마서 말씀을 근거로 해서 신체의 부활을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그것이 도리어 진리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하고 또 성경 전체에서 영생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어떻게 살리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베드로전서318절에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기초가 중요한가는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이 흔들려 버리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모든 목사입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모든 신학자들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하면 신체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고 또 성경의 장절을 보면서 마치 이 말씀과 저 말씀이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살리심을 받았습니까?

주님은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만 기억하고 있어도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신체의 부활을 주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의 말씀 따로 보고 있고 심지어는 바로 앞에 있는 로마서9-10절 말씀도 따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영은 의로 인하여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반대가 되는 말씀을 문자만 보고 신체의 부활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신체의 부활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잘못 되었습니다. 주님은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이 보고도 알지 못 했습니다.

 

우리도 살리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리십니까? 예수와 함께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으면 우리 역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야 예수와 함께 살리시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는데 우리는 신체로 살리심을 받는다면 예수와 함께 가 아니라 따로 가 됩니다.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에서 주 예수를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체가 다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서 같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는 것이 우리의 신체라면 로마서89-10절 말씀을 11절에서 뒤집어 버리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모든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몸입니다

그 단어를 보고 신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니 너희 죽을 몸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더욱 신체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이 몸이 우리 신체를 말씀하고 있다면 신체의 부활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로마서89-10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기록해서는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십니다. 예수와 함께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살리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똑같이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살리심을 받았는가 하면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서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우리 죽을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으면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예수가 아니면 우리는 몸이 없습니다. 지금 잠시 보이는 이 육신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몸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 신체의 몸을 살리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5:44절을 보겠습니다. (283)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학자들이 신체의 부활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체의 부활을 말해야 사람들에게 조금 더 극적인 부활을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성도들끼리도 서로 만나서 무용담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죽을 몸에는 두 가지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죽을 몸은 우리 실제 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리는 몸은 우리 신체가 아니라 신령한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죽을 몸이라고 할 때는 실제 우리 육신을 말씀하고 있고 살리시리라고 할 때는 그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다시 사는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를 해야 합니다. 아니 성경이 우리가 어떻게 다시 사는 가를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죽을 몸이라고 할 때는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육의 몸이 맞습니다. 그러나 살리시리라는 말씀은 그 몸을 살리신다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문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영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살리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영으로 살리심을 받을 때는 신령한 몸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살리시리라

미래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살렸다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몸을 말씀을 하니까 신령한 몸을 말씀해야 하는데 그 신령한 몸은 언제 사는가 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살리십니다.

 

죽을 몸입니다

물론 미래형입니다 그러나 살리시리라는 말씀은 그보다 더 미래형입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은 산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을 입는 것은 앞으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영은 산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산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육과 영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다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몸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 것이 되어있는 영이 신령한 몸을 입을 때는 살리심을 받아 느끼고 알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 절대로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그 이성으로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과 전혀 연결이 안 되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억지로 해석해서 신체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전혀 모릅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의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영이지만 분명히 생명은 있습니다. 그래서 영은 산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영은 산 것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성경 아래를 보면 생명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우리가 느끼고 알고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은 산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죽을 몸은 실제 죽을 몸을 말씀하고 있고 살리시리라는 말씀은 그 죽을 몸을 살리신다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역시 그 영이 산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산 것이 되었는가 하면 그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시기 때문에 산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입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너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아난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살려주는 영이 있는 성도는 신령한 몸으로 살리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이 영의 일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세의 일은 모릅니다. 사실 영이라고 하니까 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 안에 이 영이 거하시고 있지만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이 아닙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신체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그렇게 정의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한다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입니다 그곳에서 이 세상의 것이 다 생각이 나고 보여 지고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여러분이 잘 살았습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천국이라면 저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부활의 형상을 알아야 합니다. 나만 내 과거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내 과거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 혼자만 알면 그마나 다행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만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도 알고 또 부활을 한 모든 성도들이 다 알고 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가 파노라마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진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은 절대로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영원히 살 바에는 차라리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습니다. 신체의 부활을 해서 나를 인지한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산 모든 것이 인지가 되고 또 그것을 나만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더 죄를 많이 지어서가 아니라 저는 그런 천국을 원치 않습니다.

 

살리십니다.

무엇을 살리십니까? 영이 산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산 것이 되었습니다. 그 영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생명이 있는 영을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으로 살려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체의 부활은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뭐가 다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우리 신체가 부활을 하는 것과 불교인이 윤회를 하다가 성불이 되어서 신체의 부활을 하는 것과 이슬람에서 자기들이 행한 것으로 신체가 부활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 시대 기독교는 이미 세상 종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 종교에 너무 많은 사람이 빠져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로마서8:12절을 보겠습니다. (24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어떻게 살리시는가 하면 영으로 살리셔서 그 영이 생명이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혀서 살리십니다. 신체의 부활과 영의 부활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을 주장하는 한 율법주의는 교회에서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신체가 부활을 하니까 율법적으로 잘 살아야 천국에서 그나마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성경은 우리 영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 그자체로 부활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이 생명이 있는데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부활을 해야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리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리심을 받습니다.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고 우리는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살 수 없어서 사망에 이르러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의 생각을 하게 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빚진 자입니까?

구원에 대해서 빚진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생명은 우리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입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하지만 실상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수많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는가 하면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해서 보험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에 가서 더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 다른 하나는 보험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제 성경을 보면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고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는 순간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을 것 같으니까 지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그 율법과 상관이 없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안 지킵니다. 그러나 구원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실제 달란트의 비유를 보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해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남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빚을 지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빚을 진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육신의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해 주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빚진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우리가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은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빚을 진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24:10-13절을 보겠습니다. (299)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 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영의 생명입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이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 생명에 대해서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났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 단회적인 사건이 임한 성도는 성경에서 이 구원에 대해서 끝까지 보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구원이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이용을 해서 이제 구원은 자기에게 임한 것으로 알고 그 다음부터는 육신으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면 믿음으로 해서 누구나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는 속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이 단회적인 사건은 맞지만 성경은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영생에 관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복음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그 종교 안에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기 구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에서 이 영생에 관한 말씀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는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빚을 지었는가 하면 구원에 대해서 빚을 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빚진 자인가 하면 우리 인생들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형제들아 우리는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은 이미 부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세상에 대해서 이미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께 부요하심을 꾸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빚진 자로 살아가라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꾸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생명에 대해서 꾸어야 합니다. 내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요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꾸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로마서를 보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빚을 지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에 속아서 마음에서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꾸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하는 그들이 자기들이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줄 때

사람들은 율법을 보면서 자기가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렇게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많이 있는 재물이라든지 그 어떤 것이 있을 때 없는 사람에게 꾸어 주면서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기본적인 생각을 바꾸고 보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이 율법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고 또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는 것임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순간에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지키시는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금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왜 우리가 빚진 자인가 무엇에 대해서 빚진 자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꾸어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꾸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꾸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가난한 자입니다 자기가 가난한지 부자인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며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꾸어야 합니다. 영생에 있어서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꾸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율법대로 꾸어 주셨습니다.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꾸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우리는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무슨 빚을 지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의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십자가에서 지고 가셔서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는 포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빚은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그 말씀에 대해서 빚진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꾸어야 합니다.

율법에 꾸라고 할 때는 무조건 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가 꾸어 주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꾸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주님께 꾸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입니까?

사도 바울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믿음의 선지자들은 이 율법대로 주님께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꾸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영생에 있어서 우리 인생이 주님께 꾸지를 않고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율법에 정해 놓으심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전집물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겉 옷이라는 것은 구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꾸어 주고 있는가 하면 생명을 꾸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에 대해서 꾸어 주실 때 우리의 구원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꾸어 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집에 들어와서 전집물을 취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옷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밖에 서 계시다가 우리가 그 전집물을 내어 주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하고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옷이 그것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돌려주시고 있습니다.


해 질 때까지입니다.

무슨 해입니까? 하루 해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죽는 것을 말씀하기도 하고 있고 또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해가 진다는 것은 개인이 종말을 맞이한다거나 이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 질 때에 가지고 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그 옷을 반드시 돌려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옷을 반드시 돌려주라는 이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는 반드시 돌려주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인생의 종말이 오기 전에 그리고 이 지구의 종말이 오기 전에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서 그 옷을 입고 자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습니다.

그것을 잠을 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기 전에 반드시 구원의 옷을 돌려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율법을 자기들이 육신으로 지키다가 죄를 져서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주님께 반드시 꾸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꾸지 않고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꿀 때 그 전집물을 취하고 자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명이 죽기 전에 그것을 반드시 돌려주어서 구원을 받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꾸지를 않고 있습니다. 꾸지도 않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꾸어서 그 전집물을 입고 자야 은혜를 받은 것이 될 수 있는데 꾸지도 않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옷을 입고 자야 합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반드시 그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 하면 주님께 꾸어서 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스스로는 그것을 입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꾸어서 입어야 하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하는 그들이 꾸지를 않고 있습니다.

 

노래를 합니다.

그리고 늘 자기가 가난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 그들이 무엇이 가난한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말을 하는 그들이 도리어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가난한 가를 알아야 하는데 세상에 대해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들이 입으로만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빚진 자라는 것을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빚을 진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문자가 도리어 사망의 길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얻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다 이것을 사기 위해서 하는 행위임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율법의 행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빚을 진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빚진 자가 되기보다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이 시대 교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무엇을 꾸어야 하는 줄을 모르게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꾸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꾸라고 했으면 꾸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말로는 가난하다고 하지만 자기가 무엇에 대해서 가난한지를 모르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얼마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율법에 의해서 부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로 가난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나는 가난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 교회는 그래도 자기들이 부자인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와 같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갑부는 아닐지 몰라도 다 나름대로는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어서 주님께 꾸지를 않고 있습니다. 빚진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7:23절을 보겠습니다. (248)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무슨 빚을 지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명에 대해서 꾸어 주셔서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고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순전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꾸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자기도 꾸었기 때문에 형제들아 우리는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빚진 자입니다

이제 구원의 옷을 입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더라도 다 육신에 져서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이겼는지 졌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이겨서 율법을 잘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이긴 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빚진 자입니다

주님께서 꾸어 주셔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벌써 육신에 져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도리어 교회 안에서 육신대로 사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사는 사람들이 육신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자기들은 육신대로 살지 않고 세상 사람이 육신대로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형제들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사람이 벌써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벌써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사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성경이 풀어지지가 않아서 육신대로 모두가 살고 있으면서도 육신대로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 육신이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정말 육신으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이렇게까지 간곡하게 형제들아 우리는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꾸어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제 절대로 육신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성도는 육신대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게 성령이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