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성막에 대하여

제2강, 성막 2 (성막 문)

윤주만목사 2017. 1. 14. 20:21

성막 2 (성막 문)

 

출애굽기26:36-37절을 보겠습니다. (구 123쪽)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성막문을 위하여 장을 만들고 그 문장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을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

 

성막의 문입니다

성막은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쪽이 22.5미터 서쪽이 22.5미터 남쪽이 45미터 북쪽이 45미터입니다 지금 우리가 계산하는 미터법으로 했을 때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규빗이라는 길이의 단위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성막의 전체적은 것을 말씀을 드렸고 이번 시간부터는 성막에 있는 하나하나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는 가를 깨닫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성막은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막을 바로 알아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성막을 지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성막을 짓지 않은 사람은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실제 이 성막을 지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 성막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막을 알아야 우리가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구약을 너무 모릅니다.

저 역시도 구약을 해석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신약에서는 실체가 보여 졌기 때문에 웬만한 말씀들은 이해가 되는데 구약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을 보고 있는 이방인이 우리도 이렇게 구약을 보는 것이 어려운데 모든 것이 그림자와 예표로 되어 있는 구약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성막에 대해서는 바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것은 이 성막은 하늘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도 어려운데 하늘의 것을 우리가 모형으로 보면서 그것을 우리가 이해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약에서 성령 론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성막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은 생명이고 모르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역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이 성막을 바로 알았다면 영생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외식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이 성막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가지가 잘리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제사는 너무도 철저하게 드렸지만 실제 이 성막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성막론 하나만 보아도 그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막에 대해서 바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나름대로는 이 성막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저 문자가 사로잡혀서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 정도로 알고 있지 그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를 하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것은 곧 내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내가 모르면 사망이고 또 잘못 알고 있어도 역시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구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거의 문자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 성막에 대해서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성막에 계시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막 문을 만들라고 말씀을 합니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성막문을 위하여 장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성막의 문은 동편에 만들었습니다. 동편에 만들어 놓은 이 문을 통해서 성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요한복음10:7절을 보겠습니다. (신 163쪽)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들어갈 때는 반드시 이 문을 통해서만 들어가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막의 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번제단이 있고 물두멍이 있고 성막 안 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가 있습니다.

그 성소 안에는 진설병상이 있고 등대가 있고 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와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증거궤가 있고 속죄소가 있습니다. 그 속죄소를 시은좌라고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려면 반드시 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다른 문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 이 시대 자기가 메시야 그리고 보혜사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거짓인가를 성막론만 바로 알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미혹이 되어서 넘어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는가 하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양이라면 반드시 이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다른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천하 인간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을 잘못 들어가면 죽습니다.

반드시 우리 성도는 성소의 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녀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소로 들어가야 하는데 음녀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자기들이 성소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음녀들은 지금 이 시대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서 교인 들이 앉아 있는 곳을 성소라고 하고 있고 그리고 강대상이 있는 곳을 지성소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라는 건물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냥 건물이지 성소도 지성소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줄을 모릅니다.

그 교회를 성소라고 하고 지성소라고 하는 것은 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성경을 이용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성물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도 최소한 신학을 공부할 때 성막에 대해서 배웠을 텐데도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냥 건물이지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교인들이 그 교회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들은 이렇게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그 말에 그대로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막의 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다른 문으로 들어가면 다 죽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교회라 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만 들어가 있으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입니다

문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를 성소라 하고 또 지성소라 하고 또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성물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말들에 미혹을 당하니까 성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이스라엘이 그 안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이스라엘이 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제도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언어 잘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고 해서 교회 안에서 함부로 사용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때에 사용해서 될 말씀이 있고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가장 기초가 되는 언어 사용부터가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해서도 안 되고 또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성물이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남들이 사용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좋다 보니까 아무 생각이 없이 사용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모욕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뜻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막의 문을 네 가지 색의 실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색이 무엇을 의미를 하고 있는 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색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네 가지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네 가지 색이 의미하고 있는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성막의 문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4복음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가지 색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4복음서는 서로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4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각각 다른 4가지 사역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을 상징하는 복음이므로 왕의 족보가 들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첫 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의 세계라 기록 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왕으로서 사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색은 왕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가복음은 홍색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종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종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족보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들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 해 주시기 위해서 종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까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대신 해 주시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인자, 사람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은 흰색을 상징 합니다 누가복음은 사람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족보가 아담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마지막 절에 아담 이상은 하나님이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예수님부터 아담까지 기록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족보가 기록되어서 그래서 인자라는 말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다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미 성막의 색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예수님을 그저 하나님의 아들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구원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성막을 지으라고 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청색 실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교리로 만들어 놓고서 아들로 폄하를 시키고 있습니다.

 

네 가지 색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종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 4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의 막을 이 실로 짜게 하셨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오셨는가 하는 이 네 가지를 우리가 다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 네 가지를 다 믿어야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못 들어갑니다.

성막의 문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네 가지 색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색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또 어느 것은 받아들이고 어느 것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종으로 오신 예수님과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잘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안 받아들이면 못 들어갑니다.

반드시 이 네 가지 색의 의미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이 네 가지 색이 의미를 하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주님은 왕입니다. 종입니다. 사람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4:6-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3쪽)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이것은 환상으로 사도요한이 본 것입니다 진짜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마시고 상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같은데, 같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는 것을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생물 사자는 왕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둘 째 생물 소는 일하는 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셋째 생물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신 것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수리는 하늘에 날아다니고 있고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하늘의 모형을 보고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네 가지 색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을 보았고 그것을 모세는 네 가지 색으로 성막의 문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보좌 주위에 이 네 생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이 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보좌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형과 그림자로 성막의 문을 네 가지 색으로 짠 실로 만들어서 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늘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다 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네 가지 색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늘의 것을 직접 가르쳐 주면 쉬울 것 같지만 하늘의 것을 인생의 언어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내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과 부활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비유와 은유로 그리고 그림자로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하늘의 일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성막을 보고도 도무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으로 오신 것을 인정합니까? 왕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는 것은 왕으로서 일하는 것을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왕은 먼저 그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왕은 그 백성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은 다른 다라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싸워서 이겨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잘 알겠지만 왕이 다른 왕에서 패하면 그 나라 자체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왕은 나라입니다.

나라의 존폐는 왕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로 생각을 할 때 왕의 존재는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막의 문에 자색의 실이 들어가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성도들이 싸워야 하는 전쟁에서 이겨주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왕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왕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민주 국가가 되서 선거를 통해서 몇 년 마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이 아니라 왕이 나라를 세우고 또 그 왕이 사라지면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성경에서 왜 왕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담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에 두시고 그로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가 왕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해서 사단에게 이 왕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신 것은 아담이 빼앗긴 왕권을 다시 찾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한계시록17:14절을 보겠습니다. (신 416쪽)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전쟁이 나면 왕과 그 백성이 함께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대표성을 가지고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런 싸움이 아니라 영의 싸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기셨습니다.

성경이 이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과의 전쟁에서 십자가로 승리를 하셨다고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전쟁과 같이 칼과 창을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의 싸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싸움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이 육으로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육체의 일을 싸워서 이겨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런 싸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누구라는 것을 온 우주에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기 전까지만 해도 천사들은 잘 몰랐습니다.

 

영의 일에 대한 전쟁에서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 인생들을 죄를 짓게 하는 주범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단이 죄를 짓게 하는 주범이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심으로 해서 이제 사단이 이 세상 사람들을 사망으로 이끌고 간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영의 일에 싸움에서 왕으로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육체를 구원해 주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민족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다윗과 같은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면서도 육의 일만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것을 모르는 교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의 것을 그 왕에게 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자기 왕에게 구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생각하고 있던 메시아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들의 육체의 것을 이기게 해 주실 분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성막 자체를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단이 우리를 건들이지 못하도록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담이 잃어버린 왕권을 다시 찾으심으로 해서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단이 이제는 만지지도 못 합니다.

전쟁에서 진 왕은 전쟁에서 이긴 왕의 백성을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긴 왕의 백성입니다. 그 백성은 사단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대적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단을 어떻게 대적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예수님께서 어떤 싸움에서 승리를 하셨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왕입니다

육의 일에 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왕으로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사망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의 예수님을 육의 일에 왕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의 일에 있어서 왕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홍색

예수님께서는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종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종으로 인정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종으로 인정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며 성막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이 무엇을 합니까?

주인이 할 것을 대신하는 사람이 종입니다 주인이 지고 가야할 짐을 대신 지고 가는 것이 종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종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모두가 종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종이 어느 것 까지 해야 하는 가를 과거 우리나라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입니다

주인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종이 대신 가서 곤장을 맞았습니다. 물론 모든 일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는 종이 대신 곤장을 맞았습니다. 그렇게 종이 대신 맞음으로 해서 주인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런 종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대신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종입니다

실제적으로 종이 아니라 의미상으로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종이라고 하면 아마 기독교 전체에서 이단이라고 정죄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의미상으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는 우리의 종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힘들어서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해 주셨습니다.

 

종은 주인의 문제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다 짊어 지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장2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성도들의 종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 지셔야 합니다. 종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짊어 지셔야 합니다.

 

마태복음8: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2쪽)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가 예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어려워서 못하는 것은 주님께서 다 짊어 지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종과 같은 입장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예수님 보고 너는 내 종이라고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주인이신데 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우리를 위해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성막 안으로 들어가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종으로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종이 되셨습니다.

 

로마서8: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율법 무거운 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오셔서 우리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질 수 없이 연약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을 하지 않고 있고 율법을 아주 잘 지키려고 너무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대신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성막 문도 들어가지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려면 주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종으로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정말로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분명히 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믿지를 않는다면 그는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양의 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오셨는가를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문은 양만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는 것을 믿지를 못해서 자기들이 율법을 또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94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부요하신 자 이신데 우리 때문에 가난한자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가난한자가 되셨다고 말씀하면서 그 이유는 우리로 부유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모든 것을 짊어지시고 우리 때문에 가난하게 되시고 우리의 모든 짐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주님께서 종으로 이 세상에서 오셔서 하신 일을 자기들이 또 하고 있습니다.

 

종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을 종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종으로서 감당해야할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이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하늘에 있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종으로서의 예수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종이 있는 주인과 종이 없는 주인은 어떻게 다릅니까? 일이 생기면 종이 없는 주인은 이것저것 자기가 다해야 하고 너무도 바쁩니다. 그런데 종이 있는 주인은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어도 종이 알아서 다 합니다 예수님을 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도는 율법을 안 지킬 것이고 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종이 있습니까?

이런 주인이 있습니다. 종이 있는데도 종에게 시키지 않고 이리 저리 찾아 다니면서 자기가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주인은 힘이 듭니다. 오늘 예수가 있는데도 힘들어서 예수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은 종으로서 계시는 예수를 몰라서 그렇게 말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종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안 믿습니다.

아니 못 믿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느라 전혀 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느라 등골이 휘어지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종이라는 의미를 아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전체를 다 짊어지신 분입니다 주인 대신 일하는 사람이 종입니다 대신이라는 말씀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신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대신 하시는 분이 있는 사람은 종이 있으니까 율법이 아무리 무거워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종이 다 할 것인데 무슨 염려를 하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려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냥 종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종입니다 무능한 종이 아니라 아주 유능한 종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창조주께서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어려운 것을 다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 입니다

 

종도 똑똑한 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종이 있습니다.

찾아서 하는 종이 있고 주인이 시켜야만 하는 종이 있습니다. 주인이 일일이 간섭하여 일하는 종이 있고 주인 눈치만 보고도 찾아서 일하는 종이 있습니다. 이런 종이 있으면 주인은 마음이 평안 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혜로우신 종입니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하시는 종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고민하는 지 다 아십니다.

 

그런데 종은 가만 놔두고 주인이 하려고 하면 종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냥 쳐다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앞서 행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머리보다 몇 만 배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일을 하셔도 절대로 실수 하시지 않습니다. 종을 잘못두면 엉뚱한 일을 벌여서 주인이 그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실수도 안하시지만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정말로 좋은 종이 여러분 앞서서 일하고 계십니다.

종을 믿는 주인은 특별한 일이 생겨도 마음이 편안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주님만 믿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종으로 오신 주님을 못 믿고 있습니다.

 

종의 능력을 알면 주인은 평안합니다.

우리 주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히 성경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과 자기가 한 몸이라는 것을 믿지를 않기 때문에 주님이 하신 것은 주님이 한 것이고 내가 또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흰색

주님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우리와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가 있는 사람인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가 없으신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요한일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가 없으십니다.

죄가 없으시다는 의미를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막에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때 흠 없는 양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죄인은 죄인의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왜 흠 없는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는가 하면 죄인은 대속 제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은 반드시 흠 없는 것으로 받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어 흠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해서 죽을 수 있겠습니까?

 

설령 그런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죄가 있다면 우리는 아직 죄인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분이 죄가 있으면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하고 태어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악의 종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볼 때는 흠 없이 산 것 같아도 그 역시도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보고 그림자를 걷어 내지를 못했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 죄를 자기가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우리가 수 십 년을 신앙생활 하지만 여전히 검은 사람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검은 사람은 얼굴이 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 얼굴을 어떻게 하면 하얗게 만들 수 있을까 매일 그 얼굴을 씻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검은 것을 하얗게 만들려고 하면 자기 얼굴에 피만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해도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면 은혜를 구할 수 있는데 자기가 노력하면 죄인이 안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고 자기가 하얀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이고 죄는 그대로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죄는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가 않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모습에 죄를 가리고 있어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얗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검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받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1: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주님이 왜 죄가 없으신가 하면 그 피가 아니고는 우리가 깨끗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절대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깨끗하시기 때문에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도 깨끗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피로 우리가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끗하게 해서 성막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다 죽습니다. 성막 문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의 피로 우리가 깨끗해 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이것도 믿고 또 스스로도 깨끗해지려고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성으로 좋을지 몰라도 성막은 누가 깨끗해야 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깨끗하신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인입니다.

그 의인의 피로 우리가 깨끗함을 입어서 성막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흠 없는 어린 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문에 들어가는 기본입니다 성막 문을 왜 이렇게 색으로 상징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청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난번에 하나님에 대해서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313년 니케아 공회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삼위일체 교리가 만들어 졌습니다. 지금도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이 교리를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주교나 기독교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파에서 교리로 채택이 되어 있습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니 이 문제가 바로 정립이 안 되면 절대 구원이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삼위일체 교리가 맞는다고 하면 그 교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겠습니까?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교리 때문에 사람을 죽이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이 교리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교회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3위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어디 삼위일체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성경에 있고 없고를 떠나 정말 이 교리가 맞는다면 절대로 교리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교리로 천주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교리가 맞는다고 하는 것은 천주교가 정통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이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라도 반대를 한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그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또 다른 위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9:6절을 보겠습니다. (구 978쪽)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수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있습니다. 아들로 보다 보니까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까지 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에서 분명히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과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기록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또 다른 위로 보고 하는 오류들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경의 문자에 사로잡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통해서 청색을 상징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삼위일체론이 잘못 되었는가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이 믿음의 대상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사도신경에 성령을 믿사오며 이런 말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령을 믿으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반드시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성령을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령이 믿음의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말씀 그대로 영이지 우리가 믿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게 삼위일체를 만들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하면서 그 교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악을 행하고도 그 교리가 정통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이 교리에 반대를 하면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성령을 믿어야 하는데 성경 어디에서 성령을 믿으라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성령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깎아 내린 것이 바로 삼위일체교리입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리가 다 맞습니까?

정통이라는 것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사람이 만든 교리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정통이라고 해도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 교리는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교리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막의 색이 청색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도무지 영의 일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없으니까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아들이라고 표현을 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성막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네 가지 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색입니다 그가 누구인가를 색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믿지를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입니까?

정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이라면 우리는 믿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대상은 반드시 하나님이어야지 그 아들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를 구원해 주실 자로 믿는 것입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실 자로 믿어야 합니다.

 

창세기15:6절을 보겠습니다. (구 18쪽)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언약을 해 주신 것을 믿으니까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대상입니다

언약을 해 주셨을 때 그것을 믿을 수 있는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 외에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두 분입니까? 홀로 한 분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의 대상이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도 믿고 예수 그리스도도 믿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2: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셨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구나 하고 인정만 하면 되지 굳이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아! 예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누가 구원을 해 주십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육적으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 구원을 예표를 해 주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시편에서만도 정말 많은 말씀들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하 인간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구원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문입니다 양들은 그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놓고 정통이라고 하지를 않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폄하를 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아들 맞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예표와 비유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성경에서 많은 말씀들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로 말씀을 하고 있다 해도 이 성경이 누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알면 됩니다.

 

출애굽기29:42-43절을 보겠습니다. (구 128쪽)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회막문에서 매일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 문에서 너희와 만나고 너희에게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면서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막의 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만나 주시는 곳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막문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 색으로 해서 왕으로 오신 예수님, 종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만나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문은 우리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주님이 하늘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말씀을 다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4복음서를 통해서 주님께서 천국 복음을 다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스라엘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기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직접 만나셔서 말씀을 하신 것을 기록을 했고 우리가 지금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오묘하시게 일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이 성막문에서 만나셔서 말씀을 하셨지만 이 성막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오셨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우리 안에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하늘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바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적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시대는 복음서를 보고도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 성막문을 모르다 보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성막문의 네 가지 색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면 복음서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는 있지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4:23절을 보겠습니다. (신 5쪽)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천국복음입니다

네 가지 색의 상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천국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네 가지 색이 상징하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천국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천국복음을 말씀을 하셨는데 주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다른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서 천국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천국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것과 종으로 오셔서 우리가 연약하여 질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대신 이루신 것이며 죄가 없는 사람으로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입니다.

천국복음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걸림이 되는 것이 바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과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이 네 가지 색에 대해서 다 믿어야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아무리 많이 보아도 이 네 가지를 말씀하는 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천국복음이 무엇입니까?

그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네 가지 색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걸림이 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의 네 가지 색을 상징으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 적인 율법의 문제가 걸림이 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종으로 오신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양이 그 문을 모른다면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알아야 들어갈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양이 문을 알아야 그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을 모르면 양은 다른 곳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문은 네 가지 색으로 우리에게 상징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양들이 아무리 복음서를 보아도 이 문을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소경이 되어서 소경이 인도하는 대로 아무 데로나 들어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3:24절을 보겠습니다. (신 118쪽)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은혜입니다

내가 이 문을 알 수 있다는 자체가 은혜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이 문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를 못 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을 자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그냥 열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수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얼마나 적은 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전혀 힘쓰지를 않고 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를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들이 다 진심으로 천국에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정말 진심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힘쓰지를 않고 있고 행위에 빠져서 결국에는 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거짓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그들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기에 힘쓰지를 않고 자기 마음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천국 모두가 가고 싶어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천국에 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그런 진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 세상은 늘 그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믿음의 비밀도 모르는 사람이 종교적인 행위에 힘쓰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늘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기에 힘쓰는 성도만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힘쓴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6:37절을 보겠습니다. (구 123쪽)

“그 문장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찌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을 놋으로 부어 만들찌니라”

 

그 문장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그 조각목을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를도 금으로 싸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이렇게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각목을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이라는 의미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기둥을 다섯이라고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막문의 기둥과 장을 거는 고리를 다 금으로 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금은 생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란트의 비유에서 배웠지만 생명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당연히 이 생명의 달란트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막의 문입니다

네 가지 색의 상징의 의미를 아는 성도는 당연히 생명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막의 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성막의 문기둥과 그 기둥에서 장을 연결하는 갈고리를 금으로 싸서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그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막을 왜 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성막을 주셨습니다. 만약에 구약에 이스라엘에게 이 성막을 주시지 않았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막을 통해 미리 예표를 해 주시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어떻게 오시는 가를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만세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성막은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생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교회 안에만 들어와 있으면 자기들이 생명을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얼마나 적은 가를 성경에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침노하여 빼앗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 전쟁을 하는 마음으로 이 천국을 빼앗기 위해서 사단과 싸워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이성적 지식을 이용해서 우리가 믿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침노해야 합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성막에 대한 말씀이 있다 해도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그저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을 침노하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교회 안에 들어가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믿고 싶어도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셔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기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종으로 오셔서 우리가 해야 하는 연약한 것을 모두 이루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죄가 없으신 분인데 우리 죄를 위해서 대속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깨끗함을 입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오셔서 그의 피로 언약을 해 주시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아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진심으로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을 침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성막에 들어가려면 이 받침을 밟고 들어가야 합니다. 저도 성막의 실제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으로는 보았지만 그 그림으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금으로 싼 것이고 금 고리를 만든 것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둥의 받침은 놋으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8:4절을 보겠습니다. (구 1026쪽)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인생들은 완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아무리 은혜를 베푸시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완악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이 성막문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인생의 이 완악함을 밟고 들어가야 합니다. 너는 완악하여 네 이마는 놋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보면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완악해서 은혜를 입기를 거절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에게 은혜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너무도 완악해서 은혜를 거절을 하고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율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은 그것을 밟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 완악함으로 인하여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다 계시를 해 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자기들의 이성을 주장하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진리에 대해서 너무도 완악한 것이 사람들입니다.

 

은혜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 그것이 참으로 옳게 보이나 그것으로 인하여 완악해 져서 사랑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외식적인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문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가지로 오신 주님을 믿어야 이 성막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성도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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