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성막에 대하여

제3강, 번제단

윤주만목사 2017. 1. 15. 09:58

출애굽기27:1-8절을 보겠습니다. (구 123쪽)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찌며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찌며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찌며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찌며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찌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대로 그들이 만들찌니라”

 

번제단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은 가로와 세로가 5규빗 (2.5m)정사각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3규빗 (1.5m)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성막에 동편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번제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면 그 죄를 대신할 수 있는 짐승을 끌고 성막 안으로 들어와 제사장에게 나아갑니다. 제사장은 죄인이 끌고 온 제물에 죄인의 죄를 전가하는 안수를 하고 나서 그 제물을 잡아서 번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죄인의 죄가 깨끗해져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 주고 있습니다.

 

죄인이 제물을 끌고 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나 장로들이 안수를 하고 난 후에 그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번제단 밑에 다 쏟습니다. 그리고 그 기름을 취하여서 번제단 위에 놓고 번제를 드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그 죄인의 죄를 사해 주시고 있다는 의미로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번제단에서는 제사를 드립니다.

번제단에서 드리는 제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제사가 번제입니다 번제에는 율법에 정해진 매일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제, 화목제가 있습니다. 번제에 해당이 되지만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 모든 제사를 번제단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제사들은 다 의미가 있어서 그에 따라는 율법에 의해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제사를 불살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사가 아니라 번제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제사를 드리든지 그 제물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이 안수를 하고 그 제물을 동편 문 앞에서 잡아서 피는 모두 번제단 아래에 쏟습니다. 그리고 제물은 번제단 위에 놓고 그 제물을 다 불살라 드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고 있습니다.

 

번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화목제가 있습니다. 물론 이 제사를 다 번제단에서 화제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금령을 어긴 것을 위해서 드리는 속건제가 있고 일반 백성이 금령을 어긴 것을 위해서 드리는 속죄제가 있습니다. 이 속건제와 속죄제는 다 번제에 해당이 된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하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하실 때에 모세에게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성막을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영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불행하게도 이 번제단에서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제사를 드립니다.

반드시 이 번제단에서 드려야지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다른 곳에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받으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로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전에 믿음의 조상들은 돌 위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어떤 제사를 드리는 가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제단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제사는 속죄제와 소제와 그리고 화목재입니다 이 세 가지 제사를 이스라엘이 번제단에서 드리게 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막을 지으라고 하실 때에 분명히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모형과 그림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늘의 것을 알기 보다는 그저 자기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제사를 보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모형과 그림자를 실체로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모형과 그림자라는 말씀이 있으면 반드시 그 뒤에 있는 실체를 보아야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체를 보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그림자를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믿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은 것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늘의 모형과 형상으로 보고 있는 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거의 제사에 빠져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실제 이스라엘과 같이 성막이 있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들이 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제사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이스라엘이 모형과 그림자를 보고 제사를 드렸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제사에 빠져서 그 제사를 보고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그것은 그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는 실체가 보여 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자를 따라 행함으로 해서 실체를 볼 수 있게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번제단에서 정성을 다 해서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은 제사의 의미를 모르고 번제단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번제단에서 드리는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 번제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너무도 적은 것 같습니다.

 

메타포입니다.

보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메타포를 찾기 보다는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제사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 번제단에서 드려지고 있는 제사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 아는 것으로 십자가를 안다고 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십자가 안에는 정말 오묘한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있는데 그저 죄를 사해 주셨다는 그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떠했습니까?

자기들이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에 정해진 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백성이라는 것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가졌고 그것을 모르고 있는 이방인들을 멸시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번제단에서 제사를 하는 자기들이 대단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레위기1:2-4절을 보겠습니다. (구 147쪽)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속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속죄입니다. 요한복음1장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번제단 위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속죄입니다.

 

제물의 요건입니다

흠이 없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흠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제를 드리되 흠이 없는 제물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드렸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속죄 제물은 흠이 없는 것으로 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제사의 기본이기 때문에 흠 없는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을 때 성전 입구에서 제물을 바꾸어 주는 장사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제물을 가지고 오다 보면 중간에 흠이 생기는 제물에 대해서 성전 입구에서 그것을 바꾸어 주는 장사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장사를 했습니까?

그들은 문자 그대로 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주님이 오셔서 흠 없는 제물로 십자가에서 드려질 것을 예표로 이 번제단에서 가르쳐 주시고 있었습니다.

 

요한일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흠 없는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짐승의 흠 없는 것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이 없는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드려질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해 주는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 실체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속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이스라엘의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짐승을 흠 없는 것으로 드리는 것은 너무도 잘 했지만 그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제물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것을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육의 생각입니다

분명히 모세에게 산에서 네게 보인대로 할찌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육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이 성막의 번제단에서 속죄제를 번제로 드리는 일에 정성을 다 했습니다.

 

번제단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구약의 성도들은 이 성막을 보고 깨달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막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릴 때 물론 육적으로 드린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성도들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의인이 죄인의 죄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일서에서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번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번제단입니다.

반드시 흠 없는 제물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양이라 해도 또 소라 해도 흠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흠이 없는 것을 드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게 해 주신 것이지 실제 양과 소가 흠이 없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어느 것도 흠이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이 장막은 비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 장막의 번제단에서 흠 없는 제물로 드려지는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아무리 잘 드린다 해도 그것으로는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시편51:16절을 보겠습니다. (구 839쪽)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왜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이 제물로는 우리가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리심으로 이 세상 모든 죄를 가지고 가신 것으로 기뻐하셨습니다. 또 이 번제단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들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사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게 한 것은 오직 한 예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던 것이지 그 제사 자체를 받으시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제사를 드리는 일을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온 제물이 번제단에 드려지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기뻐했습니까?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기를 어느 정도 기뻐했는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서에서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느냐고 말씀을 하시고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 누가 기뻐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제사를 기뻐해서 무수한 제물로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면서 그것을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제 성전은 없어졌으므로 양을 잡거나 제물을 드리는 제사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들이 다 제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이 제사인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드립니다.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이 다 제사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런 행위들을 하면서 누가 기뻐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십일조를 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들은 십일조를 낼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기뻐하고 있고 또 그 십일조를 기쁜 마음으로 내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예배가 누구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는 솔직히 구약에 이스라엘이 무수히 드렸던 제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고 이 번제단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성도들이 구원을 얻는 그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하시는데도 이 시대 제사에 모두가 빠져 있는데 만약에 성경에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 받으신다고 했으면 아마 이 시대 볼만도 안할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들이 제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드릴까 그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일을 기뻐하시지 땅의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신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샤머니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10:5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단은 십자가입니다.

그 위에 드려지는 짐승의 제물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번제단에서 이스라엘이 드렸던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시대 성도들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제사와 예물을 드렸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정말 정성을 다 해서 이 제사를 드리는 것에 최선을 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과 그리고 그 예물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바로 제사와 예물을 드림으로 해서 자기들의 마음이 기뻤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 누가 기쁩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커다란 교회를 지어 놓고 그 안에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고 있고 또 감동을 주는 찬양을 부르고 있고 자기들이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미 만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산에서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를 보여 주시면서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성막을 짓고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번제단에는 반드시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를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몸으로 제물이 되어 드리셨는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기뻐하는 제사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하나님께 받으시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도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제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산에서 보여 주신 식양대로 하는 그 제사도 기뻐하시지 않는데 이 시대의 제사를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예배, 찬양, 기도, 헌금 등이 제사와 예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무수히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전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성전을 짓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도 역시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자기 몸이 되시는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셨는데 이 시대 역시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하면서 그 안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의 제물입니다.

죄인이 성막 문으로 제물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제물에 안수를 합니다. 안수를 한다는 것은 죄인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를 하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흠 없는 제물에 안수를 해서 번제단에서 번제로 드려지면 하나님께서 열납을 하시고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안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죄인의 죄를 그 제물이 대신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 번제단에서 가르쳐 주는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한 제물을 예비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번제단에서 안수를 해서 그 제물에게 죄를 전가한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흠 없는 제물에 안수를 해서 번제로 드리면 열납을 하시고 그 죄인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막 문으로 제물을 끌고 들어와서 그 제물에 안수를 하면 죄인의 죄가 그 제물에 전가가 되어서 제물이 번제단에서 번제로 드려지고 그 죄인은 사함을 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고린도후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91쪽)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누가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을 수 있습니까? 의인을 위해서나 선인을 위해서는 간혹 있을 수 있으나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떠한 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성도는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입니다

번제단에서 제물이 죄인을 대신해서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모형입니다. 누가 대신 죽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가 살인자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살인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냥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겼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살인을 했습니다. 간음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내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하고 또 내 이웃의 것을 탐내면서 산 그런 죄인입니다 이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십계명의 모든 죄를 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 줄을 깨달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은혜가 은혜 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자기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십계명의 모든 계명을 영적으로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죄인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것을 번제단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제물이 되셔서 이 죄를 대신 지시고 번제단에서 번제로 드려져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번제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확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번제단을 보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랑의 확증입니다

의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또 선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모든 계명을 어긴 죄인을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번제단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십계명을 보고 자기 죄를 깨닫기 보다는 오히려 십계명을 보고 자기가 죄가 없다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고 죄를 깨달은 사람만이 제물을 가지고 동편 문으로 들어와 제물에 안수를 하고 번제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굳이 제물을 가지고 와서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죄인입니다

이 번제단은 죄인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죄인을 위해서 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만나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만나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은 우리 죄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의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법 외에는 속죄가 없다는 것을 번제단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고백을 해서 속죄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얼마나 이 세상 적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자기 죄를 사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속죄를 받지 못하고 그저 죄인으로 있다가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속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교회 안에서 행하는 샤머니즘적인 이 세상 방법을 따라 속죄를 받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입니다.

번제단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표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 바로 오직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속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문제는 자기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십자가가 와 닫지가 않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을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히브리서9: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62쪽)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더 좋은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흠이 없는 양과 소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번제단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제사를 드리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제사를 통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9절을 보겠습니다. (구 147쪽)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화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번제단 위에서 드려지는 제물에서는 반드시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합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물로 화제를 드렸는데 향기로운 냄새가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반드시입니다

우리가 속죄를 받으려면 이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번제물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합니다. 이 시대 우리가 드려지는 속죄 제사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향기로운 냄새가 무엇인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2:14-16절을 보겠습니다. (신 288쪽)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냄새를 나타나게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게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제물이 되셔서 번제단에 드려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유일한 속죄를 받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졌던 제물에서 향기가 났습니다. 그 향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졌던 제물에서 났던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씀입니다. 이 향기가 남으로 해서 생명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속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한 속죄를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아는 냄새가 성도들에게서 나고 있고 이 냄새가 각처에서 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냄새가 나야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그 냄새가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냄새가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반드시 속죄를 받아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번제단에서 무수한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가 어디 있습니까?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들이 종교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 요소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속죄를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지금도 교회에만 나가면 그저 자기 죄를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죄가 생각이 날 때마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속죄를 받은 사람입니까? 아직 속죄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까?

 

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의 방법이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이 번제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율법이 살아나 율법이 성행을 하고 있고 그 율법을 어기면 마치 구원을 못 받을 까봐 그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생명을 얻었다 해도 역시 우리는 죄인입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야 한다는 것을 또한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죄를 받아 생명을 얻는 길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번제단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레위기2: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47쪽)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두 번째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소제입니다

이 소제는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피를 흘리지 않는 제사라 해서 감사의 제사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을 수 있으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제사도 역시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곡식입니다

그것을 고운 가루로 예물로 삼아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운 가루에 기름을 넣고 유향을 놓아 화제로 드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는 대로 제사에 대해서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향기로운 냄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십자가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드리는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번제를 드려서 죄를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소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소제는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 시대 주님을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곳에서 주님을 하나님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만약에 하나님이 아니라면 거룩하다고 성경에 기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소제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주님께서는 곡식 가루가 되어서 화제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이 제사의 곡식 가루가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남은 부분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다 번제단에서 화제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남은 것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화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것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먹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에서 우리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는 영적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고운 가루가 되어서 화제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남은 것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거룩함을 입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된 성도들만이 천국에 들어가서 살 수 있습니다.

 

반드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영이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룩하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 것이나 거룩하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십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이 거룩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이 거룩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성도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거룩해지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 나와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거룩하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소제로 드려져야 하고 그 남은 지극히 거룩한 것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먹으라고 하시고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아론과 그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우리 성도들을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제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소제의 고운 가루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몰랐고 자기들이 누구로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율법에 의해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것을 보고 거룩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사는 신령한 제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지금도 이 신령한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법이라고 자기들이 정해 놓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신령한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령과 진정이 무엇입니까? 성령과 진리로서 예배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제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배를 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그는 신령한 제사를 드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예배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보이지가 않고 온갖 세상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신령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소제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아니 그 거룩한 것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신령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사 안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무조건 받으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거의 맹목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를 안 받으신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행위의 제사는 안 받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따라 드린 제사도 안 받으셨는데 이방인들이 교회라고 만들어 놓고 자기들이 교회법으로 만든 예배와 찬양, 기도, 헌금 등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도 원치 않으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이방의 교회들이 하는 제사를 받으시겠습니까?

 

신령한 제사입니다

지금 이 시대 성도들에게 이 신령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는 신령한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를 신령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을 가지고 하는 것은 절대로 신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육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신령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10:4절을 보겠습니다. (신 274쪽)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다 같이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 음료를 마시면서도 그들을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이스라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보이고 있는데도 성경을 몰라서 그런지 신령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하는데 예수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그런 말에 미혹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귀신도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과연 성경에서 예수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예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겉모습이나 행위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거룩한 가루로 소제로 드려지고 그 남은 것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먹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지극히 고운 가루를 먹어야 합니다. 그런 제사장만이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졌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제사를 드리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을 먹은 제사장은 지극히 거룩한 것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먹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초등학문인 신학을 배워서 그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노를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셔야 합니다.

내가 기쁜 것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기쁘시지도 않으신데 자기들이 기쁜 것을 가지고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기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제사여야 합니다.

신령한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은혜라고 하지 마시고 그 은혜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셔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십자가 하면 그저 우리 죄를 지고 가셨다는 정도 밖에는 모릅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아는 것입니다. 그 정도를 안다고 해서 십자가를 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아주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다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번제단에 대해서 강의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번제단 하나만으로도 솔직히 이 한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깊은 경륜이 얼마나 오묘한가를 쉽게 깨달을 수 없고 또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신령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 믿는 사람입니다

 

알아야 믿을 것 아닙니까?

모르고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구를 믿는다 해도 그에 대해서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맹목적으로 자기가 진심으로 믿는다고 하면 믿어지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소제의 거룩한 고운 가루를 먹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아야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왕이 아니라 하늘에서 왕 노릇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체로 하다가 망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육체로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것을 모르다 보니까 육체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육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다 육체에 속한 자입니다. 지금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의 설교에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고민한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10: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소제입니다

주님께서 고운 가루가 되어서 화제로 드려졌습니다. 그 제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번제단에서 소제로 드려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함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의 거룩함이 아니라 내 안에 거룩한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성화주의자가 많습니다.

사실 알미니안주의는 성화주의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알미니안주의가 거의 교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성화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성화가 되려고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단에서 소제로 드려진 것을 믿지 않는데서 나오고 있습니다.

 

성화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세상 사람들의 도덕적인 기준에 충족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물론 그것이 영적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신령한 것입니다. 그 신령한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면 우리가 그들이 생각하는 의에 충족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성화가 되려고 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영으로 거룩하게 된 성도가 왜 다시 육으로 거룩해 지려고 합니까? 이스라엘이 그렇게 거룩해 지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거룩해 집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거룩해 집니까?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어떻게 거룩해 지는 줄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거룩해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율법에 정해주신 대로 거룩하게 하려고 했다가 망하는 것을 보고도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직 초등학문에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런 행위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단에서 소제로 드려진 것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레위기3:1-5절을 보겠습니다. (구 148쪽)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찌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세 번째 제사입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화목제입니다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모두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화목제도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는 말씀 그대로 화목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화목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죄가 있는 인생은 절대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셔서 드려짐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씀을 드리면 사신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할 때 화해를 하고자 하면 사신을 보냅니다. 우리 인생은 죽을 때 까지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번제를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소제를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운 가루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운 가루가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 남은 것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먹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화목제를 드립니다.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함을 입은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런데 화목을 해야 합니다. 죄인으로 있다가 이제 의인이 되었으니까 하나님과 화목을 해야 천국에 들어가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화목이 안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점도 흠도 없으신 분입니다 화목하게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정말 화목하게 되어야 들어가서 살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88쪽)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이 둘을 화목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화목제를 드림으로 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죄를 져서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진 아들은 아버지에게 갈 수 있는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고 싶어도 자기 죄가 보이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단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하나님에게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죄를 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주심으로 그 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졌습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 믿고 있습니다. 화목제를 통해서 주님이 아니고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 해서 화목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따지고 보면 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잘 해서 화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화목해 졌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의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25쪽)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입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온 우주 만물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케 되는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의 피로 우리 죄인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 번제단 위에서 주님이 화목제로 드려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서 또 그것을 기뻐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지 않고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데 그저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에 빠져 그것으로 화목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일을 우리에게 예표를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땅에서 화목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피로 말미암아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화목케 되시기를 기뻐하시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피를 흘려 이 세상 모든 만물의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행위로 화목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화목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이스라엘과 같이 제사에 빠져 있습니다.

 

화목 제사를 아무리 드리면 뭐 합니까?

그런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화목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번제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정도는 다 압니다. 그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번제단에서 어떤 제사들이 드려지는 가를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요한일서4: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 이 세상은 종말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연약한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가르쳐 주는 제사입니다.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면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번제단에서 짐으로 해서 죄인인 우리와 하나님이 화목하게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의 일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알고 있지만 육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도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모른다면 그는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확증해 주시는 증거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죄인을 사랑해서 자기가 대신 죽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사랑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그것은 영의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육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육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죄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이 번제단에서 화목제를 수도 없이 드리면서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받고 있는 가를 증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기 아들을 화목제로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모릅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말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흠 없는 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고 또 고운 가루를 소제로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면서도 그 율법의 행위를 따라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64쪽)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식이 병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성경에서 다른 것을 아는데 힘을 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비밀을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번제단에서 제사로 드려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하나님의 지혜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것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부탁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너무 지식이 뛰어 납니다. 그 지식들이 자기들에게 얼마나 병이 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 아는 그 지식이 그 영혼을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기 위해서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십자가입니다

사실 오늘 번제단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는 극히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형과 그림자인 번제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그의 십자가를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십자가의 비밀은 너무도 깊고 오묘해서 성령이 감동을 해 주지 않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번제를 드림으로 해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그리고 소재를 드림으로 해서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또 화목제를 드림으로 해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내가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께서 이 번제단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서 영의 비밀을 깨달아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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