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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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윤주만목사 2016. 4. 24. 11:31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3:23-29절을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3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이렇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말씀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세운 갈라디아 교회가 아직 사도 바울이 있는 그때에 벌써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한탄을 합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한계입니다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생은 율법이라는 든든한 포승에 매여서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 율법의 포승을 끊어버리려고 하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도 이단이라고 정죄를 받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법입니다

이 세상은 법에 의해 운행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라는 별이 법에 의해서 아주 정확하게 운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 법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도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이 지구의 법이라는 틀 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이 법과의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아직까지도 율법의 포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누구도 겁이 나서 법을 없앤다고 하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렇습니까?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사상이 법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이 세상에서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그런 자유를 누리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라면 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하고 그런 성도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전할 때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도덕법은 이미 세상의 법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이 아니더라도 이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거의 모든 도덕법이 우리나라의 법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도덕법을 이용을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종교인들이 다른 법들을 살리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 법을 지키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 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폐했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법을 살리는 순간 우리는 절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만약에 성경에 나오는 법을 살리는 순간에 이미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행위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법 폐해졌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법을 폐했다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소수가 진리를 전해도 그것이 오히려 이단이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교회에 법이 폐해졌다고 하는 곳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이단도 그렇고 정통이라는 교회도 모두가 법이 폐해졌다고 하는 곳은 없습니다. 아니 폐해졌다고는 하고 있지만 그들은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지주의라고 하는 구원파라는 곳도 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교회에서 정확하게 법이 폐해졌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또 법을 안 지키고 있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어느 법은 폐해졌다고 하면서 어느 법은 법이 아니라고 하면서 믿음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교회에서 완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폐하신 법이 폐해진 교회를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법이 폐해진 교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법이 폐해졌습니까?

아니 한국의 장로교가 법이 폐해졌습니까? 자기들은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교회에 제가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행위가 율법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면으로 부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폐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행해 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자기 정욕대로 사는 것이 낫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자기에게 진노를 가져오는 가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고 그 끔찍한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무시를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낫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죄인으로 살다가 죽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원수된 것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원수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겠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과 싸우시고 그 율법을 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내가 그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일은 예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제 설교를 많이 보신 분들은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은 내가 삼가 지키고 있고 그것으로 정죄를 하거나 받고 있다면 그것은 다 율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든 안 되어 있든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으면 그것은 무조건 율법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드립니다.

십일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일조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매달 삼가 내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입니다. 내가 자원을 했든지 안 했든지 그것을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자원하면 율법이, 율법이 아닌 것이 됩니까?

자원을 했든지 안 했든지 일단 내가 매달 삼가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율법입니다 그리고 이 십일조를 가지고 얼마나 정죄를 하고 있습니까? 내가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하고 있고 이 십일조를 안 내면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는 것으로 알고 자기는 굶주려도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삼가 지키고 있다는 자체가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에서 분명히 믿음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릅니다.

율법과 믿음은 전혀 다릅니다. 마치 그것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율법은 서로 대적을 하고 있고 또 원수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과 믿음이 원수가 아니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갈라디아 교회보다도 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싸움입니다. 사실 율법을 폐하는 이 싸움은 성경에서 보면 너무도 기초적인 것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진노를 받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는데 이 시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단이나 정통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율법에 대해서는 한 결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이스라엘을 따라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까지 율법 아래 매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매여 있는 사람은 자기가 율법 아래 매여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매여 있다는 말씀의 뜻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순수 물이 있습니다.

증유수라고도 합니다.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수은이 0.001%가 들어갔습니다. 그럼 이 물은 순수한 물이 아니라 이미 오염이 되어 있는 물입니다 1000분의 1이 들어가고 그것을 증유수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율법이 613가지라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율법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매여 있다면 그는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이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아직 믿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니 성경에 기록이 안 되었어도 매 주일 그리고 매달 그리고 매년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믿음이 오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 한가지의 율법이 그렇게 만듭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 아직 믿음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모양을 내고 있다면 나는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율법이 교회 안에서 지켜지고 있는 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강 아는 것만 열거를 하겠습니다.

십일조, 주일, 그리고 각종 정해서 하는 예배, 그리고 기도, 그리고 또 여러 가지 정해서 하는 헌금,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각종 절기, 그리고 성경에도 없는 추수감사절, 성탄절, 송구영신예배 등 제가 율법이라고 알고 있는 여러분들이 쉽게 알 수 있는 몇 가지만을 열거를 했습니다. 만약에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여러분이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아직 믿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교회는 어떻게 운영을 하고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고 그리고 구약 성경을 보지 말라는 것이냐고 따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있는 자체가 아직 믿음이 오지 않아서 율법에 매여 있기 때문에 율법을 편드느라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 편입니까?

예수 편입니까? 율법의 편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인줄 압니까? 자기 색을 분명히 내지 않고 있는 회색분자입니다 자기가 빨갱이 같으면 빨갱이 색을 내고 자기가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의 색을 내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주 이상한 색을 내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 형편에 따라 변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억 하세요.

믿음이 오기 전에는 이렇게 율법 아래 매인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율법 아래 매여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율법에 매여 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런 행위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비밀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는 지적인 사람이라 해도 성경을 자기가 보아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믿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그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믿음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이성의 판단에 따라 내가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때 까지 갇혔습니다.

율법에 갇혀서 믿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역시 믿음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율법주의로 빠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믿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점점 종교화 되어 가고 있고 종교라는 여인에게 포승과 같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의 정의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이제 더 이상 이 몽학 선생이 해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 했는데 왜 아직까지 이 몽학 선생이 나를 주관해야 합니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몽학 선생이 주관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이 몽학 선생입니까?

마치 이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몽학 선생의 말을 잘 듣다 보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몽학 선생이 우리를 인도 했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그 몽학 선생을 잘 따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몽학 선생입니다

어떻게 몽학 선생이 되었습니까? 내가 율법으로 의롭게 살아서 몽학 성생이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살아 보니까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보고 또 해보고 노력을 했지만 율법으로는 도저히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수십 년을 그렇게 해 보고도 아직까지도 몽학 선생에게 매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수십 년을 해 보고도 깨닫지 못 합니까?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그렇게 노력을 해 보고도 아직까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율법에 매여서 평생 끌려가다가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 되니까 믿은 것입니다

율법으로 해 보고 또 해보아도 안 되니까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몽학 선생이 나를 아주 의롭게 살게 해서 그 율법을 알아서 잘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해 보고 또 해 보았지만 안 되니까 이제 믿음에 의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했습니다.

만약에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과연 누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겠습니까?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아직까지 몽학 선생이 시키면 되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계를 느껴야 합니다.

아니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율법을 버렸을 때 그때 믿음의 때가 내게 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몽학 선생에게 갇혀서 믿음의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너무도 잘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안 믿고 있다고 해야 맞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율법으로 그것을 해 보니까 죄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아! 율법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고 이제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 완전히 자기가 깨지고 나야 그제 서야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가를 알게 되고 믿음이 때가 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온 성도는 이제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믿음이 있으면 율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몽학선생 아래 있으면 안 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며 그것은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행위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다고 증거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평생 하면 뭐 합니까?

 

이것이 증거입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증거가 바로 몽학선생 아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거짓 선지자를 분별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쉽게 하지만 사람들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일단 그가 몽학선생 아래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안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입술로 시인을 하면서 사랑한다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라도 그가 율법 아래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어느 한 모양이라도 내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기초를 볼 수 있습니다.

최소한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일단은 몽학 선생에게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초보입니다 이 싸움에서 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독교를 믿고 있는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성도라고 칭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몽학선생 아래 있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깨닫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5:18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더 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합니까?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율법이 아니라 단 하나의 율법이라고 그 아래 있다면 그것을 지키고 있다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구원에 가장 기초입니다

여러분이 율법 아래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구원은 없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율법을 안 지키고 율법을 지키면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해야 합니까? 제가 율법이 있는 성경을 보지도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위로 지키는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율법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유익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최소한 세상 죄인은 될지언정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는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이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이 시대 갈라디아 사람들과 같이 율법 아래 매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다 율법에 매여서 거기서 벗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입니다

더 이상 법을 지키지 않아도 아들입니다 한번 아들이 된 성도는 법과 상관이 없이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법을 가지고 자기 아들이라고 합니까? 아들은 법과 상관이 없이 그냥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법으로 하나님과 아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쉬운 길을 놓아두고 어렵게 율법을 지키려고 합니까? 물론 내가 자유하고 싶어도 이 세상의 종교가 나를 놓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 종교가 아무리 강하게 나를 붙들려고 해도 그것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이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성경을 통해서 이 믿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경을 보기만 하면 사람들은 더욱 더 율법에 매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성령의 감동에 따라 보아야 하는데 이 세상의 이성적인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다 보니까 믿음의 비밀을 알기 보다는 이 세상의 지혜인 율법을 지키는 일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세례를 받았습니까?

교회에서 물로 주는 그 세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례는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그 세례를 베풀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육적으로 받는 그런 세례는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고 믿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받은 사람이 과연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이미 자기 평생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율법을 지키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

우리가 입는 그런 옷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서에서 구원의 옷으로 입혀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례를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로 구원의 옷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이 내 안에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죽은 내 육체가 율법을 지키고 말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알면 율법을 버릴 수 있는데 아직까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모르고 믿지를 못해서 율법 아래 매인바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죽었습니다.

뭐에 대해서 죽었느냐면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한번 율법에 대해서 죽었는데 다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다 하나입니다

다 동일하게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율법의 의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어려서 할례를 받고 또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자기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율법입니다 자기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십일조를 내는 것 하나만 보아도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폐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차별을 할 수 있습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무엇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율법에는 종과 주인이 다르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폐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이 생각에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유대인이 믿는 믿음이나 여자가 믿는 믿음이나 종이 믿는 믿음이나 믿음은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위는 다릅니다. 분명히 율법에도 다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자나 부한 자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은혜에 참예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들이 형통으로나 육정으로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은 맞지만 믿음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면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의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동일한 믿음을 가진 성도를 성경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당연히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나에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도 있다면 절대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내게서 율법의 모양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할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에 매여 있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믿음이 있다 하시고 또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의로 천국에 들어가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