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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윤주만목사 2016. 4. 25. 20:59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8:10-1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성경을 보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말씀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많은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가 됩니다.

아마도 이 말씀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쉽게 빠지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으니까 우리도 죄 용서를 받았으면 이제 예수를 믿으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 안 짓는 것이 무엇입니까?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죄를 안 짓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서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복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습니까? 정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짓는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말씀에 사로잡힙니다.

거의 모든 교인들이 성경 말씀에 사로 잡혀서 율법주의로 빠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말씀에 세상 말로 꽃이게 되면 그 말씀에 사로 잡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상 하리 만큼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번 본 말씀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단순합니까?

이 세상에 이성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보아서도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말씀을 예수를 안 믿는 이 세상 사람에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마도 놀랍게도 자기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내가 진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성경을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보아도 나와 똑같은 대답을 내 놓고 있다면 나는 지금 성경을 잘못 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정말 한번 내가 알고 있는 성경 말씀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어떻습니까?

목사들이 하고 있는 말은 이 세상에서 대학을 나와서 성경 몇 번을 읽고서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이 세상 지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시대 지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경을 강의를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세상의 지식이라는 증거입니다 성경에서 문자에 사로 잡혀서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영의 일을 육의 일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육의 일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 보니까 육적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죄를 안 질 수 있습니까?

 

갈라디아서2:16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안 됩니다

우리는 평생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난 후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면 사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거나 검은 쥐를 보고 흰 쥐라고 해도 믿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죄를 안 짓고 사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율법적으로는 죄를 안 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죄인이 아닐 수 있느냐는 것에 있어서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알고는 안 질 수 있습니다.

정말 성인군자와 같은 사람은 알고는 죄를 안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죄를 안 짓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한 마디로 성경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을 모르고 말씀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초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안 짓고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와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여자를 정죄하시지 않고 그녀를 보내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죄를 안 짓고 살았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니 자기가 죄를 안 짓고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문자에 갇혀 있어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진토입니다

설령 지금 죽음의 목전에서 우리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었다 해도 그가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그가 이제까지 그렇게 살았던 것을 청산을 하고 조금 더 선하게 살려고 노력은 할 수 있어도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 예표입니다

육의 일을 통해서 영의 일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히 육의 것으로 보고 있다 보니까 진짜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다가 결국에는 율법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진짜 죄를 안 져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좋은데 성경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히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죄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또한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정말 죄를 안 짓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우리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욥이 자기가 죄가 없다고 항변을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자기 죄를 회개를 했습니다.

 

물론 욥은 육적으로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것도 하나의 나타나는 모양이 그렇지 실제 그가 왜 그렇게 했는가를 보면 그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자에게 왜 예수님께서는 빤히 아시면서도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8:3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왔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시려고 간음을 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아 왔습니다. 사실 어떤 죄가 더 큽니까? 이 여인은 돌로 맞아 죽으면 됩니다. 육체는 죽을지 몰라도 그 여자가 예수를 믿었다면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육적인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영적인 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육적인 죄를 더 크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영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육적으로 간음을 한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이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잡아 와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또 다른 마리아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마리아의 간음한 것을 말씀을 하고자 성경에 이것을 기록했습니까? 어떤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간음을 한 것을 그리고 그 여자를 예수님께서 정죄를 하지 않은 것을 위해서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상에는 그런 일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지금이야 죄도 아닙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여자가 간음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돌로 쳐 죽이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스스로 자진을 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경우에는 누군가가 그 여자를 살려 주었을 일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가 왔습니까?

 

물론 육적으로는 분명히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어떤 여자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왔는데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살려 준 이야기로 보기에는 성경이 너무 약합니다. 그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예수라는 사람의 의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요한복음8:5절을 보면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율법입니다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히면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간음에 대해서는 십계명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간음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법을 집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슬람에서는 여자나 남자가 간음을 하다 잡히면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분명히 율법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이지 않으면 율법을 어기는 일이 되고 맙니다. 율법을 어겼을 때는 인정을 봐주지 말고 율법대로 하라는 것이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율법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여자입니다

이 여자는 지금 누구입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또 다른 마리아입니까? 지금 단순히 그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성경에 이런 사건을 기록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여자는 분명히 현장에서 간음을 하다 잡혀왔습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것도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단순히 이 여자가 불쌍해서 그 여자를 살려 주고 난 후에 나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나서 그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그런 단순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말씀에는 다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여자는 이스라엘입니다

단순히 현장에서 간음을 하다 잡혀온 여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자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한 여자의 간통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간음을 깨우쳐 주시고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육적인 간음을 하다가 잡혀 와서 죽고 살고 하는 문제는 예수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육적인 간음한 여자를 잡아와서 돌로 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느 죄가 더 큽니까? 육적인 간음을 한 이 여자의 죄가 큽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죄가 더 큽니까?

 

예레미야3:8절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간음을 안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깨끗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육적으로 간음한 여자를 찾아 돌로 쳐 죽이려고 하고 있으면서 자기들의 영적인 간음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지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음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혼서 까지 써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반역한 자매 유대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도 가서 행음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는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자기들은 분명히 육적으로 간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한다고 하고 오히려 예레미야 선지자를 핍박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음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통정을 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셨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구원을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다른 남편을 섬기고 있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이 시대도 영적인 간음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온통 간음을 하는 집단으로 변질이 되어 있으면서도 오히려 간음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는 순간에 그것이 간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말로는 의롭게 되기 위해서 성도로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율법의 기능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도로서 의롭게 살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간음입니다

그것이 왜 간음인가 하면 그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기능이 바로 생명과 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성경은 율법을 지키면 생명에 이르고 율법을 못 지키면 사망을 당한다고 분명하게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생명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는 두 남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남편을 함께 섬기는 순간 그 여자는 간음을 하는 여자가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고 이스라엘은 간음을 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간음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나님과 피로서 언약을 함으로 해서 더욱 더 간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이렇게 영적으로는 간음을 하면서도 오히려 육적인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빠져 영의 일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8:6-9절을 보면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돌로 치려고 합니다.

율법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자체가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간음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은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에게 경계를 해서 돌로 쳐 죽이라고 한 것이지 실제 그 육체를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은 육체로 살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다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은 영적인 간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율법을 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이 너무 어려워서 다 이해를 하기가 힘이 듭니다.

 

율법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키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은 영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왜 그러냐면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고 있다면 그 자체가 간음을 하고 있는 것이며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의 비밀을 모르고 율법을 보았다가는 모두가 이스라엘과 같이 영적인 간음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도 이 구절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땅에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가책을 받아서 모두가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너희도 간음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여자는 육적으로 간음을 해서 현장에서 잡혀왔지만 너희가 돌로 치는 순간에 너희는 영적으로 간음을 하는 더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자기가 간음을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모릅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율법을 어긴 사람이 잘못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단번에 속죄가 되는 것을 구약의 제사에서도 가르쳐 주셨고 또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돌로 쳐야 합니까?

만약에 돌로 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간음을 한 여자를 두둔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죄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죄라 해도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자를 정죄를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잠시 후에 당신이 지실 십자가를 보시고 이 여자를 정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적으로 이스라엘은 이 간음한 여자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을 쓰셨기에 이들이 다 돌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흠이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 같은 경우에는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양심이 있는 가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만약에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면 이들은 자기들의 율법의 의를 주장하면서 이 여자를 돌로 쳤을 것이 분명한데도 주님께서 이 사람들의 양심을 건들이면서 이 여자를 돌로 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잡아온 사람들은 그나마 양심이 있어서 자기 죄를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다 갔습니다.

이 여자를 잡아왔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 가고 이제 여자와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묻고 있습니다. 돌로 쳐 죽이려고 왔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니까 어른부터 해서 하나씩 다 자리를 떴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은 이 여자를 고소하고 있습니다. 또 율법은 이 여자를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법을 어긴 여자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45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율법의 기능입니다

죄를 진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피로서 언약을 했습니다. 피로 언약을 했기 때문에 그 율법을 어기면 반드시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피를 얻기 위해서 율법은 이 시대도 죄를 진 사람들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이렇게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간음을 한 여자를 통해서 율법이 우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리석게도 자기를 고소하고 있는 율법을 너무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자기를 나중에 고소를 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6:37절을 보면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의 모양을 보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가 정죄를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내가 정죄를 한 그것이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법은 정죄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법이 살아 있어 정죄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사실은 더 큰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정죄를 하는 것은 더 큰 간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가 단번에 속죄될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율법에 빠져 간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모양을 보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죄를 하고 있는 자체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이 사실은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율법주의에 빠져서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19절을 보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정죄를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간음을 한 여자를 잡아와서 정죄를 하고 있지만 정죄는 사실은 율법을 더 사랑하는 것이 정죄를 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무엇이 정죄를 받아야 하는 일인지를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어긴 여자를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간음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죄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가지고 정죄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정죄를 받게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켰다 해도 반드시 정죄를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율법으로는 정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죄가 무엇입니까?

율법으로 정죄를 하는 것이 바로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큰 정죄가 되고 이 정죄를 받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통해서 정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이 여자를 정죄를 해서 돌로 쳐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가 정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더 큰 정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정죄를 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렇게 율법을 가지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죄가 다시 자기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간음을 한 여자를 통해서 더 이상 율법으로는 정죄를 하지 못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율법으로는 정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자입니다 율법으로 간음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있는 여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현장에서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가 진 죄가 무엇입니까? 육체적으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바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간음을 하고 있는 이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정죄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정죄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 여자는 육적으로 간음을 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정죄를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또 다른 여자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간음을 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양심에 가책을 받아 돌아갔습니다.

자기들이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여자를 돌로 치지 않고 다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육적인 간음에 대해서는 정죄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왜 하시고 있습니까?

 

이 여자가 정말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여자의 체질을 모르고 이제는 다시는 죄를 범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도덕적인 죄를 다시는 범치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네가 율법으로 정죄를 받았지만 이제는 영적으로 정죄를 받는 죄를 짓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으로는 정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어찌 되었든 율법주의에 있는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율법에 의해서 잡혀왔습니다. 이제 그 정죄는 사라졌으니까 이제는 어두움에 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도덕적으로 정죄를 받지 말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잡혀 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죄 사함을 받으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에게 다시는 도덕적인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율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 여자에게 율법적인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무엇이 죄인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으로 인하여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도덕적인 죄를 안 짓는 자기를 보면서 죄를 안 짓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비록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와 율법으로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더 이상 정죄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미음으로 해서 육적인 죄에서도 멀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 은혜가 넘쳐 다시 정죄를 받지 않고 또 영적으로 안 믿는 죄를 짓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