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10:16-23절을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냅니다.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에 대해서 각처로 가서 전하라고 보내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천국 복음에 대해서 전파를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천국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바로 당신을 증거를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제자들이 했고 그것이 계속해서 내려와 이제는 우리 시대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성도는 있을 것이고 성도는 이 세상에 종말이 오는 날 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힘써 일해야 합니다.
왜 합니까?
이 일이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나 혼자 구원을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또 다른 영혼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일에 대해서 게을리 해서는 안 되고 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다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실제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을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심으로 우리가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성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너무 급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너무 급하게 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그런 고통을 맛보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 안에 교인 하나를 들여다 놓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지주의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일을 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직분이 있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직접 전하는 자가 있을 것이고 또 간접적으로 전하는 자가 있을 것이고 또 누구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돕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 났느냐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그 일을 하면 됩니다.
고린도전서1: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전도라는 것이 참으로 미련하게 보입니다. 아니 지금 이 시대 전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해서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를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도무지 알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식이 있다 해도 내가 학자라 해도 성경을 보아서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문자적으로는 이 세상의 학문적으로 아주 지혜롭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내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지혜가 있어서 대학 교수가 되어 있을지라도 그가 성경을 보아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대학 교수라는 것을 인정을 하면서 마치 그가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박사라 해도 안 됩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공부를 했던 것과 같이 성경의 일반 지식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빨리 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하나님의 지혜를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지적인 수준을 보고 그가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을 오셔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예수를 믿는다고 했다고 해서 그가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와 같은 종교의 자유가 무한정 있는 그런 나라에게 예수를 믿었다고 시인하는 것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실 신빙성이 없습니다.
시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법적인 용어입니다 법적으로 그 말을 해서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있을 때 그것이 시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평화롭고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있는 그런 시대에서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1: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고 전도를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재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고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절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종교에 끌어 들이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데도 이 복음을 전하겠다고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에 대해서 거의 무지하다고 보면 맞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성령에 대해서 아주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서 아니 자기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보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 시대 성령을 받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몇%나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1%도 안 되고 많이 되어야 0.001% 될까 말까 한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혜롭습니다.
거짓을 진짜 같이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도 않았는데 마치 받은 것으로 사람들이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재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 현대 교회 안에서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자기가 성령을 받아 그런 것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행위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진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같이 보일지라도 아니 성경적인 지식이 뛰어나 많은 사람을 가르친다 해도 성령을 받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남을 가르치고 또 예수를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사단을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다른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가 바른 복음을 전해도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데 하물며 성령을 받지 않고 전하게 되면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도저히 알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 세상 지혜에 미혹이 되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지혜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안 보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형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리입니다
이미 사단에게 사로 잡혀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모두가 바리새인들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화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한번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이리에게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로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은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부인을 하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십 년간 이미 율법주의 사상으로 고착화 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만으로도 그들은 공격을 합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잠시 말씀을 전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오더니 자기 교회의 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헌금을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니 십일조에 대해서 한 마디도 안 했는데도 그들은 복음에 대해서 심하게 거부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교회에 안 나가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미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이단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미디어가 발달을 했고 또 정보가 무한하게 노출이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뱀 같이 지혜롭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필이면 뱀을 말씀을 합니까? 뱀을 말씀하는 것은 전부 사단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정말 뱀과 같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뱀이 어떻게 에덴에서 하와를 미혹했는가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수밖에 없게 뱀은 아주 지혜롭게 하와를 미혹했습니다.
그와 같아야 합니다.
뱀은 하와와 아담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그들을 살려야 하는데 뱀이 하와를 죽인 것 같이 하지 않고는 우리가 영혼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죽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살리는 일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구나 영혼 자체를 믿지를 않고 있고 자기 영혼이 죽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은 한 마디로 허황된 말과 같이 들릴 수 있습니다. 사실 복음이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지혜로워야 하겠습니까?
사단 보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면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지혜가 있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보다 더 지혜가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시편12:6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충만히 있어야 합니다. 선 무당이 되지 마시고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차 있을 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너무 빠릅니다.
자기가 교회에만 나오면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상에서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열심히 앞서서 그것을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를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학을 나왔습니까?
아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 지혜에 불과 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지식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많이 아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성경에 접목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은 무엇을 안다고 세상의 지적인 수준이 있다고 해서 남들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쓰레기입니다
아니 영혼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가 영혼의 살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의 열심을 보이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없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재앙입니다 전도를 해야겠지만 모르고 전도를 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이 시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누가 우리를 공회에 넘기고 또 채찍질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렇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마음 놓고 전도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불과 몇 십 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면 아마도 거의 이단이라고 공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복음을 알고 있어서 교회 안에서 그것을 전하게 된다면 그 교회는 가만히 있지를 않고 이단으로 규정을 해서 그와 상종도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이 사람에게는 꼭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오히려 나를 대적하고 공회에 나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뒤에 그래서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안 식구라 해도 복음에 대해서는 정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슬기롭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들이 나를 공회에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미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사랑이 필요 없고 일단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나를 정죄를 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내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었을 때에 그 복음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듭니다.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신성 모독죄를 쓰고 죽어 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이 있는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실제 초대 교회에 제자들과 많은 성도들은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게 됨으로 해서 그것이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었고 당시 이방인들이 많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냥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증거가 되기까지는 이렇게 제자들이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 순교의 피를 통해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고난을 통해서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에게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순교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복음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평안하게 예수를 믿고 있고 그것이 오히려 진리에서 타락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고난입니다
늘 이 세상에는 고난이 있을 때 진리가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태평해지면 진리는 어김없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치열한 교리싸움이 있었던 중세 시대 때에는 그래도 생명을 걸고 진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지나갔고 사실 복음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정말 깨어 있지 않으면 진리를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늘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확증을 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가 믿을 수 없고 또 진리 안에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끌려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 가를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못 합니다
사실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고 하는 일이 인생의 이성적인 사고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교를 아무나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도와 주셔야지 순교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말 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언제든지 순교할 수 있는 것처럼 객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 다 죽었습니다.
눈앞에서 사자가 물어뜯어 먹는 것을 보면서 과연 누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것을 이기게 해 주시고 그것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시면 죽음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있게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
순교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그들을 구원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러나 그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방인들이 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 저들이 하나님을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이 있다면 왜 악한 일에 개입을 안 할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순교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또 죽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죽으면서 기꺼이 그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어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성령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타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부인을 하고 싶어도 부인을 하지 않게 성령이 감동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은 내 마음을 알고 내 마음이 담대함을 가질 수 있게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확신을 얻은 성도는 성령의 감동대로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종교는 무섭습니다.
어떻게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줄 수 있고 자식이 그 부모를 죽게 할 수 있습니까? 아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반대를 하는 종교는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복음에 반대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해서 배울 때 그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실제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있다는 보도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 말이 실제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너무 왜곡 보도를 하다 보니까 실제 있는 그런 일까지 믿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공산주의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악해지면 공산주의와 똑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실제 죽이지는 않지만 자기와 교리가 다르며 부모 자식 간에도 원수가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도 그런데 부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 제 주변에서도 서로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불교나 다른 종교를 믿어서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이단이라고 하면서 싸우다가 결국에는 부부도 이혼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우면 천륜도 깨지게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에 빠져서 이 시대도 중독이 되어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 복음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이 부부가 서로 먼저 안 사람이 복음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라고 하면 들으면 참 좋은데 절대로 들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이 세상 이야기에 대해서는 서로 들어주는 그들이 신앙에 대해서만은 부부도 없고 부모 자식도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복음이 있는 성도가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슬기로워야 합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반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늘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는 다수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늘 소수에게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나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성령께서 그 마음을 주시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만 해당이 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초대 교회에 성도들에게만 해당이 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오직 예수를 전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적기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 안에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미움을 받고 또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에서도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더 미움을 받습니까?
세상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에서 더 미움을 받게 됩니다. 정말로 성령이 임한 성도는 그것을 각오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실제 주님을 죽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 법정은 오히려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죄를 계속해서 요구를 하니까 이 세상 법정이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난 후에는 교회가 타락을 하면서 교회가 성도들을 죽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보면 초대 교회에 성도들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것을 이야기 하면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못 보게 했고 성경을 소지하고 있다는 죄목으로 성도들을 죽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미움을 받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라는 거대한 종교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을 해 주고 있습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 생명이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너무 외롭습니다.
때로는 자기 혼자 이 길을 가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된 것이 아니가 하면서 회의를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나 모두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렇게 미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끝까지 견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중에 영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피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세상은 복음이 있는 자는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기 때문에 당연히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핍박을 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세상 사람들이 피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이스라엘의 동네를 다 돌기 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스라엘에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도 제자들이 잠시 전했지만 유대인들의 핍박이 너무 심해서 숨어서 지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축복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받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이 복음으로 인하여 심지어는 죽음에 내 몰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의 버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로 이 세상을 이기게 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그리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잠깐 지나가는 형적에 불과 합니다. 이것을 견디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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