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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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윤주만목사 2016. 3. 19. 09:51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4:32-37절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초대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 만에 승천을 하고 난 후에 오십일이 되었을 때 성령이 임재하시고 난 후에 사도 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로 하면 일제 강점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곤궁했는가를 미리 짐작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 정처 없이 유랑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 멀리 남미 까지 수 개월을 걸려서 가 거의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에 있던 사람들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모든 것을 일본에 다 수탈을 당하고 극심한 가난과 하루 끼니를 연명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은 시대를 살아갔던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한 나라에 다른 나라에 침략을 당하게 되면 그 나라의 백성들의 삶은 매우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침략을 당해 전쟁에서 패한 나라는 모든 주권을 잃어버리고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라는 강대국 앞에 거의 주변 모든 국가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좋은 것은 다 로마에 의해 수탈을 당했고 또 로마에 상납을 해야 하다 보니까 백성들의 삶은 너무도 힘이 들었을 것이 뻔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남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종교인들이었습니다. 특히 로마는 독특하게도 그 나라의 종교를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점령군들이 종교부터 말살을 하는데 로마는 자기들이 점령을 했어도 다른 것은 다 자기들이 간섭을 했으면서도 종교만은 당시 지도자들을 내세워서 그 나라의 백성들이 자기들이 조상 대대로 믿던 신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도 성경을 통해서 보셔서 알겠지만 수천 명이 복음을 듣기 위해서 따라왔지만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가다가 배가 너무 고파 할까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또 사천 명을 먹이시고 했던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너무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끼 식사도 준비할 여력이 거의 없었으며 또 현세에 대해서 소망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복음에 귀를 기울였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태동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전해 주셨던 복음을 듣고 있었고 그것이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강령하게 역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68:5절을 보면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입니다

고아의 아버지이시고 또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는 어느 시대나 있었고 그들만큼 불쌍한 자들이 없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없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요즘은 고아보다는 이혼에 의해서 부모 한쪽이 없는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고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짠해 집니다.

그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자기를 도울 자가 없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하늘을 보며 한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실제적인 고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기를 의지할 수 없이 방황을 하고 있는 고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들을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고아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하나 그들을 보호해 주기 보다는 오히려 핍박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당시 권력에 빌붙어 있던 종교인들은 누렸습니다.

로마가 권력을 유지하게 위해서 종교인들을 설득했던 그들은 로마의 권력에 적당히 편승을 하면서 또 자기들이 누리고자 하는 기득권을 누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로마라는 식민을 통치하던 나라에 수탈을 당하고 또 종교인들에 의해서 신앙을 강요를 받았습니다. 종교가 국민을 위해서 봉사를 하기 보다는 당시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의 명목으로 오히려 백성들을 더 곤궁하게 만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나라가 안정이 안 되면 종교가 더 극심하게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런 시대적 배경을 안고 태동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국민들이 어디에도 마음을 줄 수 없는 시기에 기독교는 많은 것을 해 주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힘은 너무도 컸습니다.

한 끼 밥을 먹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해 주었고 또 학교를 지어서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고 병원을 지어서 병이 들어서 치료를 못 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너무도 고마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도 역시 세계 역사상 찾아 볼 수 없는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와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었고 주님을 통해서 이미 천국 복음에 대해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꼭 빵을 위해서만 복음을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 때부터 메시아를 기다려왔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복음보다는 빵을 위해서 더 교회에 나왔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또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차별을 당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사도 들이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은 바로 그런 시대적 배경 가운데서 태동을 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제가 지금 이 모습을 지금의 교회에 그대로 적용을 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시대가 많이 변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오해를 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무리가 있습니다.

특히 종말론 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국에 있는 오지로 들어가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내 놓고 함께 농사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고 거기서 나는 소출도 함께 공동으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신앙촌이라는 곳을 이야기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존재를 합니다.

거기도 대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7-80년대에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신앙촌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기 재산을 다 내 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도 거리를 지나다 보면 신앙촌이라는 가게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근거를 해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고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초대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진리가 바로 서 있는 교회의 성도들이라면 굳이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않고 그런 것을 가지고 서로 자랑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자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 강요에 의해서 또는 무리가 서로 같은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당시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순전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지 어느 누군가가 그것을 가지고 누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휴거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재산을 교회에 가져다 받치고 휴거 일을 기다렸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쇼에 불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에 대해서는 결국 어느 누군가가 착복을 하고 재산을 바친 많은 사람들은 거의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그들은 잘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당시 사도들은 예수님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재산이 전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한번 설교를 하니까 오천 명이 회개를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를 하셨지만 성령이 오시기 전이었습니다. 이제 성령이 오셔서 직접 역사를 하시고 그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또 자기 조상이 아브라함임을 늘 깨닫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이 배운 성경은 거의 율법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까 거의 무리가 모여서 매일 복음을 들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일요일 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사도 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성경이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지도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처음으로 예수에 대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어떤 시간을 정해 놓고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거의 매일 모여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2:44-46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날마다 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제 막 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예배의 형식이 있지도 않았고 또 이제 복음에 대해서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며칠 아니 몇 달을 보여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에도 들어가지를 않고 계속해서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교통편이 좋고 이동 수단이 좋다면 몰라도 예루살렘에 와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멀리 지방에서도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매일 집에 갔다가 아니 일요일 만 오라고 해서 복음을 가르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들은 도중에 복음을 더 이상 들으려 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처음 복음이 전파되던 시기에는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이 믿음에 서 있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또 그들은 이동하는데 있어서 지금과 같이 편리한 시대가 아니라 한번 오가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였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성경을 통해 증거를 했습니다. 물론 아직 신약 성경이 기록되기 전이었지만 구약에 예표 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또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우리를 위해 승천을 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번 가면 못 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그리 큰 나라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시에 이동을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무리가 함께 있으면서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재물이 있는 성도들이 자기들의 것을 팔아서 그들과 함께 사용을 했습니다.

 

일상적인 사용이 아닙니다.

옷을 사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사고 그런 것으로 사용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는데 있어 꼭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되어 졌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말씀을 가지고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고 그들에게 한번 넘어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사회가 익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먹고 기거를 하는데 있어 내 것 네 것이 없이 사용했다는 말씀이지 다른 것에서도 일상생활에서 그랬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고 또 자기들이 정한 날에 교회에 나오고 하던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태동을 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지금과 같은 교회의 형태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많았고 또 멀리서 복음을 들으러 와서 아예 숙식을 하면서 지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오천 명이면 적은 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오천 명이 모여서 복음을 듣고 그들의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서 있는 성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집도 팔고 밭도 팔아서 그들을 숙식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역시 복음이 있는 교회가 이런 형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집과 밭이 있는 성도들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이생보다는 복음을 듣고 내세를 소망하면서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건물이 큰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그들이 하는 일들은 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헌금 강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씀을 보고 은근히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렇게 했다고 하면서 이 시대도 마치 이렇게 해야 하는 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는 속이는 자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 교회의 목사는 자기 교회부터 처분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절대로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 것은 지켜야 하고 교인들의 고혈을 뽑아내려고 이런 말씀들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우어 준 것은 최소한의 식사를 위해 나누어 주었다는 말씀이지 마치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사용을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 중에는 자기 집과 재산을 팔아 내 놓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니 현실을 보면 가진 성도라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너무 배가 불러 있습니다. 물론 개척 교회에서 어렵게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큰 교회에서 너무 많은 헌금을 강요를 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교회를 섬기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헌금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헌금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하나님께 헌금을 한다고 하지만 큰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 헌금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우상을 섬기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일정한 법에 의해서 헌금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개 같은 자의 소득이며 창기의 재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면 무조건 받으시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헌금이 여러분 스스로의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법이 폐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법에 의해 헌금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십일조를 받고 구제 헌금을 받고 했다면 굳이 이렇게 기록했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천 명이 십일조를 낸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중에 절반이 이천오백 명만 십일조를 낸다 해도 굳이 개인이 집을 팔고 밭을 팔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이런 말씀을 기록할 필요도 없이 성도들이 십일조를 내서 교회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오천 명이 되는 교회에서 십일조를 받았다면 과연 그 교회 안에 밥을 굶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영혼을 망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도 다 옳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일로 인하여 교회 안에는 악한 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누가 악한 자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아직도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악한 자들입니다 그런 율법을 정해서 자기들이 헌금을 받고 있다며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게 보인다 해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생각이 아무리 이성적으로 옳아 보인다 할지라도 만약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는 방법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겠다고 공사판에 가서 막노동을 해서 아버지께 선물을 해 주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 아버지가 아들을 기뻐하겠습니까?

 

더구나 그 아들이 아직 학생입니다

공부를 해서 지혜를 얻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돈 많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고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하루 일당을 받아서 그것을 모아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 준다면 아버지는 오히려 근심을 하게 되고 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그 아들이 한다면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지 말라야 하는 일입니다

아들의 생각에는 그것이 아무리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일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면서 억지로 아버지에게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고 스스로 만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깊이 생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레위 족속이면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레위 인으로서 당연히 자기의 밭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기업이 없는 레위인은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고 또 자기 밭에서 나는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레위인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민수기3:12절을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위인에 속해 있는 모든 것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것인데 굳이 다시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있습니까? 레위인은 물론이고 레위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위인은 굳이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성경에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자체가 다 하나님의 것인데 무엇을 드리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밭과 또 십일조를 받는 그것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바나바가 자기 밭을 팔아서 드렸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고 자기가 레위인이라는 기득권을 주장할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을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것을 드린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포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레위인이 분명히 하나님의 것이 맞지만 이제는 영적으로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자기가 레위인임을 포기를 하고 밭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두었습니다.

 

제사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시대는 제사의 제도가 그래도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있지는 않지만 제사 제도에 있는 율법의 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레위인을 포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누군가는 스스로를 레위인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레위인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가 육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무슨 레위인이나 되는 것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레위인인 바나바는 자기의 직분을 포기를 하고 복음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밭까지 팔아서 초대 교회를 도왔는데 이 시대는 오히려 축척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그 외에 삼가 내는 헌금이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교회를 보면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십일조를 안 냈어도 이렇게 자원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복음이 더 풍성하게 전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되기를 원합니다.

늘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