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9:7절을 보겠습니다. (신 181쪽)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영의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에게 창조주를 아무리 가르쳐 준다고 해도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를 시키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압니까?
누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이 창조를 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일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경에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본질을 우리 피조물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교만합니다.
아니 자기 존재가 누구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진토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피조물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피조물이 알 수 있는 것은 창조된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창조된 것도 우리는 다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지금 이 시대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어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런 인생들이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알 수 있습니까? 물론 성경에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면 우리가 그 정도는 알 수 있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주님과 대화를 하고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바다 모래 같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영생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부터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까지 모든 것을 다 아신 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우리 인생들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로 성경에 기록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려면 그분은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죄인이 죄인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의 죄를 지고 가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당시 로마 총독이고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 제도를 보면 5대 제사가 있는데 그 중에 4가지 제사가 제물로 짐승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흠이 없다는 말씀은 죄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이루어지는 일을 성경에서 다시 보고 있습니다. 비록 이방인의 총독에 의해서 주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선지자나 성도의 입을 통해서 증거를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이방의 총독을 통해서도 그리고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 서라도 증거를 해 주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말을 합니다.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주님을 고소를 했지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은 흠 없는 예물로 드려지는 일을 비록 이방의 총독이지만 주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알려 주고 있지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왜 고소를 합니까? 자기들의 율법대로라면 분명히 죄가 있다고 하면서 고소를 하고 있지만 빌라도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알게 해 주고 있지만 그들이 이제까지 제사를 드리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의 관원으로 그러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문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성경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면서 살았지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서 여러 선지자가 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았다면 분명히 영접을 했을 것이고 감히 고소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리고 성경을 봅니까? 그러면 뭐 합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인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환상으로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깨닫기가 힘들지 몰라도 이미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다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까지 다 이루셨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피조물입니다
창조에서 보면 이미 다 끝이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우리가 하늘의 별을 보는데 그 별의 빛이 수억 년 전에 빛이고 수백억 년 전에 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와 같이 보이고 미래와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이미 다 과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현재의 시간에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취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성경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도 다윗이 쓴 글이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하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원수가 되어 있는 그들이 지금 고소를 해서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성문에 앉아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고 율법에 취한 무리가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편에 기록이 되고 있는 말씀을 후에 성령을 받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일을 했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빌라도가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종교에 의해서 빌라도도 어쩔 수 없이 십자가형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을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와 예표라는 말씀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면 우리 역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주님께서 두 번 오실 이유가 없어서 이방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방의 종교에 오셨어도 역시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신명기의 율법을 보았습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도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태초에 있는 말씀을 모세가 광야 교회에서 반포를 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인생들이 이렇게 함으로 해서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의 육체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죽임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자 되었다는 말씀을 이미 율법에 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고소를 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실상은 종교가 되어서 자기 땅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있습니다.
신명기18:20절을 보겠습니다. (구 291쪽)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빌라도입니다
그는 주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흠 없는 어린 양으로 번제로 드려져야 하는 일을 빌라도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이방인의 재판장이지만 그는 주님에게서 죽일만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성경을 보면서 인생의 철학으로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인생의 철학으로는 정의로운 재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을 살리는 그리고 죽이는 권한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보는 성경은 태초에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일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에 대해서 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고 마귀의 자식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왜 성경을 보는 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를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본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바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입니까?
그것으로 이 세상에서 나는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이 세상에서 이름을 남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을 위해서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인생으로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물론 제 혈과 정이 죽어서 경지에 올랐다고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고 우리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굳이 이 혈과 정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복음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따라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어서 세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애착을 가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고 할 수 있다면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율법입니다
제가 인생으로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법을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모세가 반포한 율법이 무엇이라는 기초가 안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고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문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려면 이 율법에 대해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먼저 율법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종교가 되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모세의 율법에서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했고 처음에는 그들이 듣고 믿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듣고 믿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 복음을 듣는 일을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교인들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으려면 반드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 철학에 따라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그렇게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성령을 보내주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절기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들에게 오순절이 오는 것을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삼년 반 동안 주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유월절을 먹이신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고 주님께서 잡히시자 그들은 다 도망을 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봅니다.
우리가 생명의 도로 한 순간에 그것을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는 복음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때 먼저 인간의 철학에 따라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자들이 성령이 오시기를 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입니다
유대교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모세의 율법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성문법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어서 성문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직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문법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반드시 그에게서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세의 율법을 유대인들과 같이 그리고 이방인들과 같이 성문법으로 보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교인들이 빌라도에게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죽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도 우리에게도 법이 있습니다. 우리 법대로 하면 마땅히 처형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교인들이 지금 이렇게 빌라도에게 주장을 하는 것이나 이방의 종교인들이 이 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성경을 인용하지 못하는 것이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18장입니다
유대인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하면 문자 그대로 보고 있고 이 법을 자기들이 지켜야 하는 법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 인생들이 이렇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율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명기18장 말씀도 문자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지금 빌라도에게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들이 율법을 보는 철학적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리고 직접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볼 때는 주님은 방자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고 있고 포도주와 음식을 탐하는 자로 보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율법대로 주님께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면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님께서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제가 굳이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모세에게 율법을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고 안식일에 나무 하는 자를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이는 일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는데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유대인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과 동등하심에 대해서는 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주장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이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있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주님을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하고 있고 신명기의 율법대로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에게만 법이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들의 교리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유대인들과 같이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신명기18장의 율법을 유대교인들이나 이방의 종교인들이 그 문자는 아는 것으로 같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들이 알고 있는 성문법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태초에 있는 말씀을 우리 인생들이 지키고 있는 법을 통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종교인들은 우리에게 법이 있다고 하면서 그 법의 문자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있고 또 우리 성도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서 너는 그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는데도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고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30쪽)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법대로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떤 청년이 주님 앞에 와서도 영생에 대해서 주님께 물을 때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을 하시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더 부족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살 때는 자기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세의 율법대로 살았고 그 법대로 하면 주님이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빌라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총독입니다. 유대인들이 고소를 함으로 해서 그가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법으로도 주님께서는 죄가 없다고 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가지고 로마의 법으로 주님을 죽일만한 죄를 찾을 수 없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이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율법대로라면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빌라도입니다. 누가 더 정의롭냐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설령 빌라도가 이 재판에서 주님께서 죄가 없다고 하면서 풀어 준다고 해도 그것은 더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앞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5장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는 유대인들의 말에 모든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역시 주님에 대해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하게 취하심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지금 유대인들에게는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신다고 하신 그 말씀이 신성모독이 되고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사야 선지자가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선지자의 말씀이고 우리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태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들의 철학으로 그 말씀을 보고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더구나 그 아들이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고 말씀을 하면 더욱 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이 피조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 피조물들인 인생들은 자기들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피조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만물의 영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언어로 말을 할 수 없고 표현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고 또 그 비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으니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고소를 합니다.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빌라도에게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이성적 생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면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이 되는 것이고 자기들이 모르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고소를 해서 죽이고자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래서 5장에서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광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말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과 아들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러니까 이사야9장6절에서 말씀을 하는 아들에 대해서 믿었다면 그들은 절대로 지금 빌라도에게 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믿지 못 합니다.
우리 역시 믿지 못 합니다. 이방인들 역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하나님과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두 존재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보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보고 믿으면 간단한데 믿지를 않고 그것을 자기들의 철학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지금 유대인들이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영은 참입니다. 피조물이 참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설령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해도 어느 누구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이방인들도 삼위일체라는 허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면 피조물의 생각만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마치 창조주가 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인생들에게 알량한 지적인 능력이 있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시대 종교인들이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씀을 많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아들을 보았습니까? 아니 하나님을 알고 아들을 알고 있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증거를 해 주고 있으면 우리는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를 못하니까 유대인들과 같이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고소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서 누구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에 곧 내게 대하여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했다고 해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왜 고소를 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해가 됩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이제까지 유대교와 이방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성경을 보고 알았습니까?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해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고 또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못하니까 율법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우리는 피조물이고 창조주라는 말씀이며 그 말씀은 우리가 게임 속에 있는 캐릭터에게 말을 한다고 해서 아니 내 존재를 아무리 가르쳐 준다고 해도 그들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입니다
그들은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헬라 시대입니다. 그들의 지식이 얼마나 뛰어 났는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철학적 사상의 기초가 바로 헬라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말을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유대인들도 이해를 못 했고 이방인들 역시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성령을 보내주신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고 있는가 하면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고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그것이 바로 실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교인들이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명기18장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지만 그들이 십자가에서 죽이는 일을 성경에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이 왜 믿음, 믿음, 믿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를 고소를 해서 율법대로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역사를 하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심을 믿고 있고 그분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next 272-2.
'요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0) | 2025.03.24 |
---|---|
272-2,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0) | 2025.03.17 |
271-2,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0) | 2025.03.10 |
271,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0) | 2025.03.10 |
270-2, 자색 옷을 입히고 (0) | 2025.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