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요한복음 강해

271,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윤주만목사 2025. 3. 10. 07:58

요한복음19:4절을 보겠습니다. (191)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빌라도입니다

그는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이 주님을 고소를 해서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18장에서 보았듯이 빌라도는 주님을 재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에 의해서 재판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십자가형을 내리고 맙니다.

 

나는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 합니다.

실제 빌라도가 재판을 할 때 주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풀어 주고자 했지만 그것은 빌라도라는 사람의 정의로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정의로움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까?

물론 우리는 세상을 살 때는 철학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법도 지키고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그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잘못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더 아닙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야 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입니다

그것은 헛것이고 그림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거의 모든 성경을 보면 과거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시작과 끝입니다. 다 아신 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끝을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피조물들의 끝을 다 아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피조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알겠지만 아담이 죄를 지는 순간 우리 인생들은 그와 같은 체질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목적대로 아담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인생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아담이 죄를 지는 순간 다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주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 막대기와 채찍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채찍으로 맞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저가 채찍으로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음 입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너무도 쉽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셨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우리 육체의 죄를 위해서 맞으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일을 우리 육체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육체의 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가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문장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병입니다

영적인 병입니다. 우리 인생은 문둥병이 걸린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소경이라는 것을 요한복음 9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입니다. 그리고 혈우병이 걸린 자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렇게 병이 들어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병에서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냥 기록이 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창조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말로는 창조주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시 면류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일을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시 면류관입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는 인생의 철학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가시나무에서 잣나무가 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주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멸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고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만왕의 왕이시고 거룩한 면류관을 쓰셔야 하는 분인데 인생들은 주님을 보면서도 그분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고 그것은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만앙의 왕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그저 이 세상의 이성적 생각으로 하나님 나라를 자기들이 상상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멸시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멸시를 받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로마의 군병들에 의해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또 손바닥으로 때리는 멸시를 당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장에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내신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예표를 보여주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주님께서 홀로 행하신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그 일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데 있어서 단지 주님께서 하신 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나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하면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으면 우리 역시 율법을 완전케 한 자가 되어서 그것이 내가 한 것이 되어서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자손이라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그리고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도 주님이 하늘에 가신 그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반드시 이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이미 구약에 율법에서 다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는 지금 재판을 하면서 인간의 정의로움으로 계속해서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10절을 보겠습니다. (147)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증거를 전혀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증거를 받을 수 없는가 하면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종교가 율법을 인생들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있고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전이 없으니까 제사법은 폐하여졌다고 하고 있고 또 우리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니까 시민법이 폐하여 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율법을 볼 필요조차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경에서 누가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나누고 있습니까? 성경은 도리어 율법 하나와 율법 전체를 같은 율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하나입니다

그리고 율법 전체입니다. 하나를 범해도 율법을 범한 자가 되고 율법 전체를 범해도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율법에 대한 정의가 안 되어 있어서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을 수 없게 그들의 교리로 만들었고 그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교리로 정해지고 신학교에서 종교인들이 그렇게 배우다보니까 더 이상 율법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종교인들마다 제 각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어도 종교인들마다 어느 율법을 지켜야 하고 어느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제각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폄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종교에서 성경보다 자기들의 교리를 우위에 두고 교리에 맞추어서 성경을 보는 그런 무지함에 빠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태초에 있는 말씀을 모르고 자기 철학으로 마음대로 성경을 난도질을 하면서 보고 있고 그렇게 종교는 교리를 만들어서 배우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경을 보아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아니 종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폄하를 하고 있고 그들의 종교에서 교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교리마저도 무시가 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자기들이 교리도 무시를 하고 성경도 무시를 하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까?

내가 바르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르다고 하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우리 피조물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문법이 아닙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으면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성문법으로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문법으로 보는 순간 생명의 도를 깨달을 수 없고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빌라도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이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소를 했습니다. 지금 빌라도라는 사람은 계속해서 주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피조물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주님께서는 반드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입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로마의 총독이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경대로 된다는 것을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로마의 총독이면 그 권세가 얼마나 큰 가를 이제 뒤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주님을 살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복음서에서 보면 그의 부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을 하고 또 빌라도 역시 당시 그 지방 총독이었기 때문에 소문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알고 있고 그가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 때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됩니다.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세상은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강하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역시 피조물에 불과하고 헛것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빌라도가 말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빌라도의 총독관저 앞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주님을 다시 유대인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제사법이 있습니다. 5대 제사가 있습니다. 이미 이 제사 제도에 대해서는 설교 말씀을 올려 드렸기 때문에 다시 말씀을 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5대 제사를 보면 계속해서 흠 없는 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유월절에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제사 제도를 정하셨습니다. 그때 제물로 흠 없는 어린 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대 제사입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신약 성경입니다.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할 때도 흠 없는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빌라도가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빌라도가 하는 말은 이미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에 영향을 받으니까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빌라도는 주님을 데리고 나와서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을 합니까?

주님께서는 흠 없는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주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성경에서 그러니까 제사 제도에서 예물을 드릴 때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제를 제외하고 모든 제사는 동물을 드리고 있고 그때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방인입니다

그도 주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유대인들에게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율법 문제를 자기들의 철학으로 생각할 때 죄가 있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시는 것만으로도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죄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종교인이 될 수 있고 아니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가 모두가 진노를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도 못하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방인들은 주님은 죄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하는 죄 역시 유대인들이 생각을 하고 있는 율법의 성문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지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을 말씀을 하면서 삼위일체는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증거를 합니까?

세상의 총독인 빌라도가 죄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신 것을 그대로 말씀을 하시면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주님을 고소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번제입니다

레위기에서 번제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흠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이방의 재판관인 빌라도 역시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흠 없는 제물입니다

주님께서는 흠이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레위기에서도 흠 없는 제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도 빌라도 역시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인생들은 그저 자기들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게 하신 제사가 무슨 의미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고 이제 이방의 종교인들은 심지어는 이 제사 제도가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더 이상 성경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흠이 없는 어린 양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죄가 있으면 그것은 흠이 있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성경은 흠이 없는 어린 양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빌라도 역시 그에게서는 죄를 찾지 못하겠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적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9:23절을 보겠습니다. (362)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우리 인생입니다

피조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잊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인격적인 교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창조주입니다.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루시는가를 아주 조금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아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압니까?

물론 성경은 여호와를 힘써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을 알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어떻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가 하나님 나라로 구원을 하시는 일을 하신 것에 대해서 알라고 하는 말씀이지 본질은 우리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과 같은가 하면 우리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게임 속에 캐릭터가 있습니다. 그 캐릭터가 그 밖으로 나와서 아니 환상으로든지 뭐든지 어떠한 방법이든지 게임을 만든 제작자를 보고 그와 대화를 하고 그를 보고 안다는 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들이 교만합니다.

자기가 무슨 존재인가를 너무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선택이라는 말씀이 있고 존귀하다는 말씀이 있고 성도라는 말씀이 있다 보니까 그런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고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들이 종교에 깊이 빠져 헤매고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나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창조주를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지만 유대인들은 영접을 할 수 없었고 도리어 지금 고소를 해서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만 그렇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예표라는 것을 늘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우리 역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 율법의 문제와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의 문제로 고소를 하고 있으면 역시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그렇지 않습니까?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에 대해서 믿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유대인들과 같이 신성모독 죄로 고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그렇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마치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자기들이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조건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지만 자기들은 지혜와 지식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우습게 말해도 자기들이 지혜가 있어서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인입니다

지금 유대교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들이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도리어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을 고소를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압니까?

만약에 유대인들이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이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면 그들은 다 영접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지만 그들은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들이 제일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세상 속된 말로 자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 만에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성문법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성문법으로도 우리 인생은 죄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는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가 무슨 죄를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도덕적인 죄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복음을 듣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서 영생을 얻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 죄를 자백을 하면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짓고 있는 죄를 사해 주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빌라도가 종교의 힘에 굴복을 해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있지만 장시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죄입니까?

물론 주님께서는 인생으로도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시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분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죄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빌라도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영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서는 제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요한이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화목 제물로 드려지심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에게 더 이상의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물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종교는 천국과 지옥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의 종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인생들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입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에게 더 이상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요한일서에서도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목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또 죄를 묻고 지옥에 보낸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더 이상의 죄를 묻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온 세상도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죽으면 그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모르니까 그 의미를 모르니까 지옥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종교는 특히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지옥이라는 것으로 겁을 주면서 그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선언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대로 죄가 없다는 것을 빌라도를 통해서 선언을 해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죄가 없다는 의미를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이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인생으로만 죽게 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는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세상의 율법이 아니라 더 좋은 제물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를 이제 히브리서 9장 마지막 절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렇게 인생들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흠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발라도의 말이지만 그를 통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결과가 이제 2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