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9:5절을 보겠습니다. (신 191쪽)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영생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하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요한복음만 바로 풀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고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을 이루시는 일을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요한복음은 거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사도 요한이 후에 성령이 오신 후에 감동을 받아 기록한 성경이고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를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 합니다. 그 일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생명을 얻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지난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에 다니시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믿지를 않고 아니 영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지금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달려 죽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성도가 되어야지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마치 성도나 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도 얻지 못한 그들이 마치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기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계십니다.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대로 고난을 당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로마의 군병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계시고 있고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주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룹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다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주님 곁에 있었던 제자도 있지만 거의 모든 제자들과 그리고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가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대로 이루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끝까지 주님을 살리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그가 얼마나 주님을 변호를 하고 이 재판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또 주님을 심문하고 나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에게 그것을 알게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시작하면서 주문과 같이 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있습니까?
유대인이 고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방면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결과가 십자가형을 내렸기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는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석방하려고 했고 더구나 지금도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대 그들은 정체도 없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주문과 같이 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한 일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아주 악한 자들입니다.
최소한 양심이 있습니까?
그러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를 받으셨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분명히 유대인들이 고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는 오히려 주님을 심문하고 나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자기들이 한 일까지도 후에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빌라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본디오 빌라도를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시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18장부터 성경을 봤을 때 그 주체가 누군가 하면 바로 유대교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이 더 그렇습니다. 저는 종교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악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는 어떻게 해서 감추려고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죄는 더 부각을 시킴으로 해서 자기들이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종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왔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신사 참배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빨갱이 타령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북한 정권을 두둔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데오르기 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사 참배를 했던 종교인들이 이제 미국이 들어오니까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그들이 살려고 주장을 했던 것이 바로 이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인이 그렇게 시작을 했고 그 안에 있는 청년들이 서북청년단을 만들었습니다.
서북 청년단입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여기서 말씀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승만이라는 독제자의 정권을 유지를 하기 위해서 그 정권의 힘을 이용을 해서 당시 이념 논쟁을 했고 그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감추기 위해서 지금까지도 이데오르기에 편승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주장을 하는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종교의 악행에 대해서는 지금 이 시대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2: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방인인 당시 총독 빌라도도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이 고소를 하는 것을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분명히 주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죽하면 너희가 이 사람을 왜 고소를 하느냐고 하면서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을 하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빌라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물론 제가 성경을 안 봤다는 것은 단정할 수 없지만 굳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성경을 볼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고 또 인간적으로도 정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다스리는 지역의 종교입니다. 그 종교인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로마와 같은 강대국에 수많은 총독들이 있었고 그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가능한 불편한 관계를 가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아니 유대인들은 거의 유대교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유대교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를 했다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때문에 빌라도 역시 유대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있었고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를 하는 것이 자기가 로마에서 더 출세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정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주님을 고소를 했을 때 빌라도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가 재판한 결과대로 판결을 내리려고 했던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지막 까지 유대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채찍으로 때리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혀서 내가 이만큼 벌을 주었지만 이 사람에게서는 아무 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항변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미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입니다
빌라도를 통해서 주님께서 성경대로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우리가 요한복음 앞에서 많은 말씀들을 보았고 그들은 율법의 문제 그리고 하나님과의 동등하심에 대한 문제 등으로 그리고 백성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들의 종교에 영향을 받으니까 죽이고자 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성경에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혜를 당시 관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하나도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떻습니까?
이방인의 총독인 빌라도가 주님을 변호를 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재판장으로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들의 율법의 문제와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태초에 있는 말씀을 전혀 성경에서 증거를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보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비유로 해서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지혜입니다. 성경은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 중에는 하나도 몰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다모래 같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말을 합니다. 예수님을 유대인들 앞에 데리고 나와서 보라 이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고 그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하시니까 옳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을 하신다고 하니까 이제는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시는 신성 모독 죄로 지금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입니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는 멸시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멸시를 당하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받아들이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영접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인들 역시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논어를 말씀하고 니체의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의 예표가 되고 거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가 주님을 왕이시라고 하면서 보라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까? 정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성경을 마치 유대인들이 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유대인들은 안 보고 이방인들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니까 성경도 인생의 철학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영광의 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는가를 사도 바울이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남의 집에 불구경 하듯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빌라도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고 사도 신경이라는 출처도 없는 것을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비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비밀인가 하면 인생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도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고 주님에게서 삼년 반 동안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까지는 깨달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안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도 그리고 시편의 말씀도 모세의 율법도 모르니까 인생의 철학으로도 가장 악한 강도인 바라바를 놓아 주라고 하는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다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6절을 보겠습니다. (신 191쪽)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하고 말하였다.”
성경대로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비일 저녁에 식사를 하시면서 가룟 유다에게 빵 조각을 떼어 주시면서 네 할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은 삼심에 예수를 팔고 주님이 자주 오시는 동산에 군병들을 데리고 와서 지금 빌라도의 법정에 서 계시고 있습니다.
만약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주주이십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고 2000년 전에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환상으로 다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성경은 4000년 동안의 일을 기록을 했고 주님이 부활승천하시고 난 후에 지금 2000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겨우 6000년 입니까?
하나님은 수백억년 이라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전능하시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8장부터의 말씀을 보면서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까지의 모든 과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이 우리 인생 개인의 일까지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대략적인 것은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입니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주 창조까지도 시뮬레이션으로 다 재현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천문학은 거의 무지에 가까웠고 심지어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고 그것을 종교에서 관여를 하고 재판까지 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입니다
저는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아는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럴지라도 과학이 그만큼 발달을 해서 우리가 우주를 정확하게 볼 수 있고 또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와 그 나라에 대해서도 바로 생각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과학입니다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이 이 과학을 무시를 하면서 거의 다 샤머니즘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환상을 본다든지 음성을 듣는다는 말을 하고 있고 자기 마음에 감동을 받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기도를 하면서 자기 몸의 변화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느끼는 감정 등이 다 샤머니즘적인 것인데도 사람들은 과학을 무시를 하고 있고 그것이 도리어 성경을 푸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보고 계신다는 정말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를 보시고 있고 관찰자의 입장에 있다는 인생의 철학적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이 성경을 얼마나 무지하게 보고 있는가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입니다
왜 인생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창조의 개념조차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창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문자 하나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샤머니즘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참 맹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판단하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을 해도 이때는 이 말을 하고 저 때는 저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최소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빌라도와 유대인의 차이가 그것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상식입니다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설령 빌라도가 죽이려고 해도 유대인들이 반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유대인들이 고소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죽이려고 하고 있고 도리어 빌라도는 주님을 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이 왔으면 그들이 영접을 해야 하고 또 설령 세상의 군대가 죽이려고 해도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이상하게도 거꾸로 가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실제 유대인들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재판을 하게 빌라도에게 고소를 했고 이방인들 역시 수많은 성도들을 죽이면서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자기들의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가 주님을 데리고 나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인들이 모여서 지금 자기들의 종교의 힘을 빌어서 빌라도를 압박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도는 죄를 찾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유대인들에는 주님께서는 죄인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문제로 죄인이 되어 있고 주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으로 신성모독을 하는 죄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았다면 결코 죄가 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죄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창조주로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창조주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할 수 있는 구원을 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일입니다
다른 일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도 모르고 있고 하나님 나라도 모르고 있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어떻게 얻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만을 고집을 하고 있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나라입니다.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 자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실 수 없어서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피조물의 생각에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을 믿을 수 없고 아니 이해할 수도 없으니까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69:12절을 보겠습니다. (구 851쪽)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시편69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의 모든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지만 다윗의 시편으로 보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다윗이 왕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왕이 되고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는 것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떻습니까?
다윗과 자기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마치 자기의 고백과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교 안에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을 자기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말씀이 다윗이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윗의 육체의 일을 비유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은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피조물로 오셨지만 하나님과 같이 살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역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수밖에 없었고 사단에 의해서 멸시를 당하고 고난을 받기도 하고 결국은 마귀의 자녀들인 종교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싸움에서 이기심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 피조물이 그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선한 일을 행한 자가 되어 생명의 부활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나를 구원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물입니까? 요한계시록에서 큰 음녀의 받을 심판에서 많은 물 위에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의 말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와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입니다. 그것을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 보다 많고 무리한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며 강하였으며 내가 취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주님을 무고히 미워하고 있고 그들이 주님의 머리털 보다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대제사장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러니까 종교인들이, 취한 자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주님의 원수가 되어서 주님을 지금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강한 자가 되어서 로마 총독인 빌라도까지 압박을 하면서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행악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행악자라고 하면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목자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이루시는데 유대인들은 주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고소를 해서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고 성경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아니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을 인용을 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시편의 말씀을 보아도 그 말씀을 그저 인간 다윗이 쓴 글이고 다윗의 이야기로만 치부를 해 버리고 있습니다.
다윗입니까?
그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입니까? 그럴지라도 그 역시 일개 선지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시편을 기록했다고 해서 그가 인간적으로는 위대하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간이고 그 역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다윗을 그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유대인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와 비유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으면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인들에게 빌라도가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 했다고 하지만 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독생하신 하나님을 죽이고 있습니다. next 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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