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0:11-18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율법입니다
인생은 종교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인류의 문명을 보아도 잘 알겠지만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종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축물들을 지었고 거기서 제사 형식의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고 해도 그리고 철학자라고 해도 역시 종교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주장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유대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종교에서 어느 종파를 보더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영지주의라고 정죄를 하는 그곳에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철학이고 본성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게 있어 율법은 자기의 정체성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습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들이 방종을 하는 이단적인 집단으로 보일지라도 그곳에서도 역시 자기들만의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도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본능이라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어린 아이라 해도 자기가 잘못을 했으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본능적으로 감추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성입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어느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면 역시 인생의 본능이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세상을 사는 것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왜 종교를 대표로 하는 유대교가 세상인지를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보는 율법은 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보는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그러니까 비유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모세를 통해서 친히 쓰셔서 반포를 하게 하신 십계명도 그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세상의 법입니다
그것을 대표로 할 수 있는 것이 함무라비 법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그림자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법 또한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지켜야 한다고 저 역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법에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면 저 역시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소한 법이라고 해도 그것을 지키지 않아서 쉽게 말씀을 하면 교통법규를 위반을 해서 범칙금을 받으면 그것을 당연히 납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반대를 하거나 부정을 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입니다
그들의 교리가 있고 그 안에서도 법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그것을 마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지키면서도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사람을 의롭다고 하고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을 종교는 지향을 하고 있고 그들이 말을 하는 내세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기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문자 그대로 보는 율법에 대해서 비유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비유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성경의 문자를 이야기를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 율법이 그림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어두움에 다니지 말라고 그러니까 너희가 문자 그대로 아는 율법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입니다. 같은 의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그러니까 너희는 문자 그대로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그는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이 율법주의이기 때문에 성경을 봐도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제사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그 시작을 번제로부터 해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성전을 짓고 그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그 문자 그대로 사해지는 것으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종교적인 행위에 열심을 내서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제사에 열심을 냈는가를 이사야 선지자가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제사입니다
제사장이 있고 제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적으로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제사에 대해서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입니다
그들만 제사를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전이 없어지고 나서 이제 이방인들은 예배라는 형식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교회라는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한다고 하면서 같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사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제사를 드렸고 그것을 같은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는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그런 제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제사입니다
같은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는데 인생들은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같은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는 언제든지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는 말씀은 그 제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같은 제사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 같은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같은 제사를 드린 것과 같이 이방인들은 교회라는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같은 예배의 폼으로 그러니까 행위를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없이 하지 못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행위를 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해도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같은 폼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고 그것으로 자기들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같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철학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위대하다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0장에서 그 시작을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같은 폼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같은 제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같은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같은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언제부터인가 교회라는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같은 폼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유대교의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면서 죄를 없이하려고 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죄를 없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같다는 것을 인생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한계입니다.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제사 안 됩니다.
제사는 인생이 하는 행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에서 하는 예배 역시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 시대 종교에서 예배를 드리는 폼을 행위라고 하면 아마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비난하거나 어떻게 하든지 반대를 하는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압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성경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고 정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한 사람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사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이 드린다고 하는 예배로도 안 됩니다. 아니 유대인들이 드린다고 했던 제사나 이방인들이 폼으로 하고 있는 행위의 예배나 같다는 것을 저는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가 늘 같은 형식으로 드려지고 있고 예배 역시 늘 같은 형식으로 드려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설교가 다릅니까?
그리고 찬송가가 다릅니까? 그리고 지난 주에 드렸던 헌금의 액수와 이번 주에 드리는 헌금이 다릅니까? 정말 초등학생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도 깨닫지를 못하면서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차라리 세상 종교를 믿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속죄입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우리의 속죄이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6:10절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입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을 대표로 해서 그들의 제사로는 속죄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행위를 해서는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제사는 이방인들의 예배의 형식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입니다
지금 유대교인들이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 성경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된 성경을 참으로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이 성경을 기록하게 감동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이 이 성경은 안 본다는 것을 모르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이상한 분으로 만들면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없이 하는 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해서 우리의 죄가 없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을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의가 무엇인가 하면 주님께서 이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심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의를 모르니까 제사를 드리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늘 기도를 하고 있고 죄를 사해 달라고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사로 안 됩니다.
형식으로 드려지는 예배로도 안 됩니다. 그 일을 주님께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성령이 오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죄는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하면서 그리고 이방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죄를 고백을 하면서 사해 달라고 비는 행위를 하면서 그것으로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하신 것은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고 그럼으로 해서 의로운 생명이 우리에게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사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를 하는 행위로도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3,“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성경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해서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고 그것이 실상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죄를 없이하셨고 이제 그의 생명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주님께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고 이제는 믿는 우리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보고 믿음으로 그와 같은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창조된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발아래 굴복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창조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지는 날 까지 기다리신다는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에베소서1:4-5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성경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창조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창조라는 단어를 보고 있지만 창조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철학으로는 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제사라는 것을 그리고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에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2000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일입니까?
창세 전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하시기 전에 먼저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난 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거룩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이 창세 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세 전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된 후에 있는 인생들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창세 전부터 영원히 온전케 하신 일을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15,16,“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 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죄 사함입니다.
거룩함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종교적인 품에 의해서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사함을 받는다고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인생들이 역시 제사를 드리고 종교의 형식에 따라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날 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시면 내 법을 저희 마음속에 두어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믿음을 모르고 제사를 드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를 하는 행위를 하면서 성령이 오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그러니까 성령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 기초가 바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문자적인 율법에 대해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자는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그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7,“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사야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성경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신 일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다고 하니까 이런 말씀을 직접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창세 전에 있던 영화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죄와 불법을 기억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이것이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도 깨달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 히브리서의 말씀도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비유고 실제로는 창세 전에 있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보고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 전에 있는 영화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태초에 있는 생명 영원한 생명은 이미 창세 전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불법은 이미 다 사라졌다는 것을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런 성도만이 지금 히브리서의 말씀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18,“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인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시간의 개념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진화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창조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이 드리는 형식에 의한 예배입니다. 다 무엇을 위해서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으면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도 요한이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창조에 대해서 모르니까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같은 제사를 드리면서, 같은 예배를 드리면서 죄를 없이하려고 마치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긴 말씀이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믿음으로 주님과 같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생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74,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2) | 2024.12.29 |
---|---|
1174,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0) | 2024.12.28 |
1173,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1) | 2024.12.21 |
1172,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2) | 2024.12.18 |
1171,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2) | 2024.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