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2:26-29절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강해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해석한 것이 1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로마서 강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10년 전에 해석한 성경과 그리고 지금 해석하고 있는 성경은 조금 더 진보를 이루었기에 설교로 간단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가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해도 역시 그 철학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율법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의 문제입니다 그 다음이 생명에 대한 문제이고 하나님에 대해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야고보서, 갈라디아서, 로마서, 요한복음을 10년 넘게 강해를 하고 있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앞에서 말씀을 하는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이 되는 일이 유월절을 먹어야 하고 그것을 먹는 일을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종교입니다
인생들은 이 종교가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무르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거의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지 않고 비유로 말씀을 하니까 인생의 철학으로는 더욱 더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잠언에서 말씀합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잠언에서는 우리 인생을 소년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철학적으로 뛰어나다 해도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석학이라고 부른다 해도 종교에 들어가는 우리 인생을 잠언에서는 소년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잠언을 보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 소년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자들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있는 제자들을 소자들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모태 신앙이고 나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까?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소자, 소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우리 인생은 다 소년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잠언에서는 종교에 빠지는 우리 인생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은 자기가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는 인생들의 가치를 무제한으로 높여서 말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인생들은 그런 말에 미혹이 되어서 자기가 마치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야곱을 대표로 해서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서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피조물들이 자기 가체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종교인들은 종교성에 빠져 마치 마약에 취하는 것과 같이 종교의 나르시스 즘에 의해서 서서히 포로가 되어 가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인생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피조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라는 말씀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은 이상하게도 세상 사람들보다 그리고 세상 종교인들보다 더 자기들이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여기고 있고 그런 그들이 마치 마약에 취하는 것과 같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종교성입니다
그런데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한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에서 자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런 인생들의 철학이 종교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저 육체의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사도 요한이 바벨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아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본성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고 그 본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성경은 여러 가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인생들은 거대한 종교가 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도 이 누룩 없는 떡을 먹이지 않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을 보고 그 문자 그대로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 종교를 상징하는 나라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일이 이스라엘만의 문제인가 하면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우리 인생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이 말씀입니다
초기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종교성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자랑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 일을 증거를 받아 믿는 마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잘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종교는 그것을 잘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방인들 역시 그렇게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유대인들을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종교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안 본다는 것을 모르고 사도 바울에게 이 말씀을 하게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우리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는 것을 자랑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하지만, 율법을 어기면 그대가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린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할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지만 너희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편지에서 십계명의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십계명의 의미를 모르고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5절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하지만, 율법을 어기면 그대가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린다는 말씀은 실제 너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일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문제입니다
정말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아무래도 이방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고 그리고 그 회당과 연결이 되어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초기 교회 안에서는 복음을 듣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고 자기들이 유대인으로 율법을 지키는 일을 자랑을 하고 있었다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율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13절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일을 보고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믿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지키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할례는 받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 자인가를 유대인들에게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나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랑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표성입니다
유대인들이 초기 교회에 성도들에게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가지고 자랑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실상은 너희가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7절입니다.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같이 실제 율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마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무 할례자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우리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마치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 인생들에 대해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우리 이방인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로마서 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문제로 주님과 대적을 했던 유대인들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데 우리 이방인들이 무 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어떻게 지키는가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바로 이 율법을 보고 믿는 일을 사도 바울이 무 할례자인 우리 이방인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하는 자라고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율법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보면서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그 안에서 인생의 철학에 따라 문자 그대로 아는 것으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고 있고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유기체로 말씀을 하고 있고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법이 살아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라는 율법을 대표로 해서 그 한 가지라는 지키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 한 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이 성경적 기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입니까?
내가 생각을 하는 그대로 하는 것이 율법을 지킨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말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를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실제 지켜서 지킨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가 되어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자가 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킨 자입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대로 자기가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가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우리 성도가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이 믿음이 없는 것을 보고 판단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판단을 받는 너희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주님께서 지키신 율법의 의가 내 것이 되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도 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그들을 판단치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판단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래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지금까지도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입니다
육신의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아브라함의 자손인 육체의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육신의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그런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종교의 교리 자체가 육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는 말씀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억지로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는 성경의 일관성이 무너지게 되어 있고 그들의 믿음은 그 자체로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9:8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표면입니다
육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조상 대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표면적 유대인이 그러니까 그렇게 표면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아브라함의 자선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입니다
표면적 그리스도인입니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유대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이방인들이 종교인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그런 종교인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육신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할례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에게도 역시 육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같은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지켜서는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킨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 유대인들도 그렇고 표면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표면적으로 자기들의 육체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것을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육체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피조물의 육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으로 성경의 문자를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그렇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가장 기초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그럼으로 해서 약속의 씨가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표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종교의 교리로서는 지금 이 말씀을 이해를 하고 믿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약속의 씨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로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약속의 씨는 하나님의 자녀는 할례르 그러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일을 마음에 있다는 그러니까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문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 보고 있는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주님께서 온전하게 지키신 율법을 보고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는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지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초기 교회 안입니다
지금은 종교가 되어서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표면적으로 그러니까 육체로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는 사람들 중에서는 유대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일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들은 주님께서 온전히 지키신 율법을 보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칭찬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율법을 표면적으로 잘 지키는 것을 보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표면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온전케 하신 율법을 보고 믿는 성도를 칭찬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를 사도 바울이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칭찬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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