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24:1-8절을 보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찌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성경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익하신 신입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이 신이라고 믿는다고 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것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 역시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시간적 개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고 있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은 당연히 역사적 사실을 따라 보고 배우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고 성경을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특별한 민족입니까? 물론 이 시대를 보면 그들이 지식적으로나 세상의 재물로 보았을 때는 아주 특별한 것과 같이 생각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다 한 혈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특별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한 혈통 중에서 인생들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애굽입니다
저 역시 역사적 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 따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자체가 성경을 왜 보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셔서 비유와 예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광야 교회에서 어떻게 했는가를 알아야 이 시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우리의 거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울입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내가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으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면 그래서 광야에서 다 죽었으면 나 역시 거울로 보면 교회 안에서 죽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피조물입니다
이스라엘도 피조물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피조물입니다. 물론 피조물끼리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조물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다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더기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구더기를 보면 어떻게 보입니까? 다 같은 구더기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구더기들끼리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있고 그리고 성도라는 단어가 있고 그리고 의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보니까 마치 인생들이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의를 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울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스라엘이 광야 교회에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 이 시대 보이는 건물의 교회 안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를 볼 수 없다면 그는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거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만이 인생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같습니다.
피조물은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다르다는 것은 순전히 인생의 철학적 사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인생들은 그렇게 대접을 받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래서 종교는 자기들만이 특별하다는 것을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 시대 종교를 보더라도 다른 것을 행위로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들이 출애굽을 해서 이제 광야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고 그 일이 우리의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찌니라”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비유로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도 않고 그들이 우리보다 특별하지도 않다는 것이 성경적 정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인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보고 있고 그것이 종교인으로 만들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인생입니다
본성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그 종교성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이 종교성이기 때문에 성경을 보는 인생들의 한계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을 광야 교회로 인도를 하시고 이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철학으로는 모세가 반포를 하는 율법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으로는 모세가 반포한 율법은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20장부터입니다
십계명을 시작으로 해서 절기를 지키는 일까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반포하게 하신 일을 알고 24장을 보아야지 그 말씀을 모르면서 그저 24장만 본다면 그는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더욱 더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장절로 보고 있고 그 장절이 바뀌면 마치 다른 말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장절을 성경이 붙인 것은 14세기 종교에 의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어느 문장의 말씀만 보고 해석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성경에서 전체 주제가 무엇인가를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뜻을 알고 그것을 잊지 말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종교입니다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어디서 부르셨는가 하면 바벨론이라는 종교를 대표하는 나라에서 부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종교를 대표하는 나라인 바벨론을 요한계시록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고 최소한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왜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광야 교회입니다
그저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것을 광야 교회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벨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리고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 나온 것이 교회라는 것을 기초로 세우고 있어야 성경이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는 종으로서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도를 반포하게 하셨지만 인생들은 생명의 도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종교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모세의 율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율법을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을 대표를 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장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는 제사장을 대표로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장로를 대표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데 교회가 어떻게 하는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생명의 도를 반포를 하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반드시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떻게 율법을 보고 받아들이는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이방의 교회가 이렇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처음부터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인생의 철학적 사고를 비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들의 사고를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20장부터의 율법을 반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을 반포를 하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시고 있고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반포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장부터의 율법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것은 분명히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함무라비 법전을 반포를 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도를 반포를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에게는 모세의 법과 같이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 법을 비유로 해서 우리 인생들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미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율법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키는 율법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해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고 그럼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져 그들의 교리를 배운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율법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의 법과 그리고 선지자를 통해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입니다
성경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게 하신 율법을 보고 이 세상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성에 의해서 자기들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3,“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연결입니다
지금 24장의 말씀은 최소한 20장부터의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의 장절은 14세기 이후에 종교에 의해서 성경을 편집을 하면서 사람들이 쉽게 읽고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반드시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씀합니다.
어디서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는 율법은 폐하여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로도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한 말씀은 그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일관성을 찾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반포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하면 20장부터의 율법을 반포를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24장에서만 고하는 것이 아니라 20장부터의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고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5: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기초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에 대해서는 이 말씀이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을 모르면 그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종교는 그들의 교리를 배우고 있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초 위에 집을 짓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방의 종교인들과 상관이 없는 법을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게 하셨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마치 세상도 모르는 그러니까 문명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분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에 대해서 정의를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에 대해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심으로 이제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을 알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제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지키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는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행위입니다
내가 이 세상 철학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법을 몸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까? 애초부터 하나님은 그런 율법을 모세에게 반포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모세가 반포한 율법을 듣고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것이 인생의 철학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그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들의 법과 그리고 제도 그리고 이스라엘과 역사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인생들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인생의 철학을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무지해서 지금 모세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고 지금 이 시대 종교를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법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온 사람도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을 하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니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 수 없으니까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인생들은 완전한 의인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보다는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목소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지키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이 한 목소리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하고 이것이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보고 깨달아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는데 인생들은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그러니까 문자를 보고 그대로 지키면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도 한목소리로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교리로 정한 것을 준행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인생들이 모세의 율법을 보고 한목소리로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인생들이 여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4,“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하나님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기 조상들을 부르시고 택하셨다고 하니까 인생들이 얼마나 자부심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그런 말을 듣고 있고 그런 그들이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게 종교 안에 들어오니까 자기가 마치 특별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해 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은 태생적으로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율법주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 철학에서 말을 하는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이 세상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일서2:2절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이스라엘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인생들이 자기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목제입니다
사도 요한이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함으로 해서 율법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드리게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준행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 한 가지 율법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그저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그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서 죄인입니다. 그 죄인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화목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짓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인생은 그 생명이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화목제로 드리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무슨 말씀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6,“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피 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지금 모세는 그저 단순하게 제물의 피를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율법이 생명의 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피를 가지고 언약을 하는데도 이것이 생명의 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7:38절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의 율법입니다
인생들이 지켜야 하는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것입니까? 그것을 비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도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도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고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언약의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교리입니다.
율법입니다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고 세상 종교에서 지키는 규례와 법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입니다. 그리고 전도서에서 우리 사람의 본분을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기초가 흔들리지 않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8,“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인생입니다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성을 이스라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24장은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보는 철학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걸고 피로 언약을 하는데도 인생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언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피 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우리 인생들의 종교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이방인들 역시 모세의 율법을 보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준행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도 바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종교성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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