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는 69-1번의 말씀과 연결이 된 설교입니다. 1과 2는 한 설교의 문장입니다. 별개의 설교가 아닙니다.
이사야1:10-11절을 보겠습니다. (신 968쪽)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법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 시대 교회의 예표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이 시대 교회 역시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멸망을 당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소돔의 관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가 되어 있는 육신에 생각을 따라 죄의 법,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몰랐습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오해를 합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정말 율법을 지키는 것을 자기들이 생명과 같이 생각하면서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이방의 교회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과 같이 살려고 해도 이스라엘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부르니까 그들이 문자적으로 율법을 잘못 지킨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적으로 살았는가를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배가 부르다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무수한 재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를 지면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진 짐승으로 각종 제사를 다 드렸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것이 이스라엘의 무수한 재물이고 수양의 번제와 실진 짐승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하고 있는 그 죄의 법,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택한 백성도 아닌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따라 무수한 재물을 드리고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시대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각종 헌금이라는 명목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무수한 재물과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을 드리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모르니까 그 법에 굴복하지 않아서 이스라엘과 똑같이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다
이미 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제사를 안 드리는 것 뿐 입니다. 그러나 실제 양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는 안 드리고 있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모든 행위는 무수한 재물을 드리고 있고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육신으로 죄의 법,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안 지켰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안 지켰다면 그들은 무수한 재물을 드리지도 않았고 수양의 번제와 실진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눈이 감겨져 있습니다.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경계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들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때보다 더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타락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 백성을 삼으셨는데 그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신의 죄를 정하셔서 율법을 다 지키셔서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해 주셨지만 믿지를 않아서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역시 무수한 재물을 드리고 있고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십일조와 각종 헌금과 예배를 통해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의 법을 섬기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왜 할 수 없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했다는 것을 거절하는 일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8: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61쪽)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사람의 법입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의문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으로 성경에 기록을 하게 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율법을 보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몰라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으로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법을 보고 사람의 법으로 만들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의문에 쓴 계명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은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법을 완전케 하신 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율법을 모르고 믿는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합니다. 율법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저희 마음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면 히브리서의 이 말씀은 심각한 문제가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법이라면 히브리서에 내 법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또 이상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마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육체로 지켰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참 쉽습니다.
자기들이 같다 붙이면 다 말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무지한 교인들은 목사가 하는 말에 맹목적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사망으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소경을 따라 가다가 구덩이에 다 빠져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여러분이 율법을 보고 지키고 있다면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로마서 강해를 쓰고 있지만 과연 이 글을 보면서 몇 사람이나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너무 어렵다고 말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율법을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백 명이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면 그것은 미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마음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의 법을 정하셨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신 것은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합니까?
내 마음으로 믿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은 우리 마음에 있어서 우리가 육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있는가 하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의 생각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 세상 어느 사람에게라도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옳은가를 물어보면 아무리 악한 자라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말을 합니다. 비록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생각입니다.
아마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면 우리에게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는 우리는 분명히 제 정신이 아닌 사람과 같이 생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까?
율법을 지키게 되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한 말씀입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니 믿을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면서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성경이 믿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입니까?
그것을 주장하려고 하면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믿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십일조를 내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믿는다고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믿는다 해도 성경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짓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왜 거짓인가 하면 성경이 믿을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성경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굴복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사야2:8-9절을 보겠습니다. (구 970쪽)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육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것에 굴복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을 얻을 수도 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육신의 생각을 사도 바울이 죄의 법,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는 우상이 가득합니다.
이스라엘의 땅에만 우상이 가득합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우상이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이 있는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천한 자도 굴복하고 귀한 자고 굴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을 따라 우상에게 굴복해 있는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에는 굴복치 않고 있습니다. 아니 우상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그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고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율법을 자기들이 육신의 생각에 따라 육신으로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우상에게 굴복하느라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고 있습니다.
우상이 가득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이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우상을 섬기느라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고 있지만 우상에게 굴복이 되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말씀이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육신의 생각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아서 우상에게 굴복이 되어서 하나님의 법에 굴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 주인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주인에게 굴복이 되면 다른 주인에게는 절대로 굴복할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우상에게 굴복을 하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십일조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아니 이 십일조도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십일조를 하고 있으면서도 교인들은 맹목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하는 그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땅에 우상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이 왜 우상이 되는 줄도 모르고 지키고 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는 이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많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의 율법만 지켜도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있습니다.
아니 우리 속에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해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의 법을 정하셨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것이 믿어져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하고 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목사라 해도 또 신실하게 믿는 성도와 같이 보인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마음을 역사하기 때문에 이 사실이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있는 성도만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세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8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대로라면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육체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육신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육체가 무엇인지 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기들의 육체로 하면서도 그것을 영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 성경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육체를 따라 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이 육신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육신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를 못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적 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입니다
나쁜 의미는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육신에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은 아니고 이단이나 아니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새가 그물에 걸립니다.
그 새가 그물이 있다는 것을 알면 걸리겠습니까? 새는 그물이 있는 줄을 인지하지 못하고 날아가다가 그물에 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는 모릅니다.
그럼 새만 모릅니까? 새를 비유로 해서 우리 인생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가 육신에 있는 것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사람은 마치 새가 그물에 걸리듯이 자기가 그물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평생을 그 그물에 걸려 신앙생활 하다가 필경은 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아니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까? 신학을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까?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도리어 그것이 그물이 되어서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과 같이 걸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신학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신학에서 무엇을 가르칩니까? 결국은 도덕입니다.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도덕을 가르치고 있고 거기에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것 하나 뿐 입니다. 그것으로 모두가 새가 그물에 걸리듯이 걸려서 필경은 그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각입니까?
그것은 정말 헛된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 사람의 생각도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지혜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 빨리 그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 육신이 하고 있는 생각입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빨리 그물로 들어가는 것이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런 사람일수록 율법을 지키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누가 육신에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의 법을 안 섬길 수 있습니까? 육신에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로마서를 보고도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육신에 있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성도입니다
우리는 육신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육신에 있는 자가 누군가를 말씀하고 있지만 이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육신에 있는지 영을 좇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까?
죄송하지만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육신에 있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그 율법을 지키는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다수에 속해 있으면 정통이라고 하고 있고 숫자가 적으면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로, 헌금으로, 찬송가로,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수한 재물과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을 드리면서 억지로 받으라고 하는 것임을 모르고 육신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종교는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육신에 있습니까?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말은 참 잘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감성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더욱 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말로는 누가 못 합니까?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말은 참 잘 합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아주 잘 지키면서 나를 봐라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이 육신에 있는 자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육신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세상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고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자기 육신으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육신에 있는 자는 자기가 육신에 있는 줄을 죽을 때까지 모릅니다. 새가 그물에 걸려 사망에 이르지만 깨닫지를 못하는 것과 같이 자기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물에 걸리는 일이고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누가 깨달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1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65쪽)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죄의 법을 섬기는 자가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이라는 재물에 욕심을 내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욕심이 무슨 욕심인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까? 욕심이 잉태를 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은 흠이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질 정도로 율법에 대해서 욕심을 부렸습니다. 이 시대는 전체 율법은 지키지 않더라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대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심 중에 하나입니다. 정말 이 욕심의 끝이 어디까지 갈지 상상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죄라는 것을 모르고 그런 육신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한 가지를 지키면 또 다른 것을 지키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키는 그 율법만은 정말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의 육신의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까?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믿음으로 한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믿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내가 연약해서 할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는 것임을 믿어 율법의 요구를 이룬 자가 되어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next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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