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생각이 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영의 생각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것으로 영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아니 나에게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해서 나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은 다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육신으로 하고 있는 사람의 이성을 따라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백번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생명이 있는 저 역시도 육신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 해도 성령이 나를 감동해 주면서 그것이 틀리다고 감동을 해 주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율법을 반드시 지키게 되어 있고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 생각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허무한가 하면 그 생각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그 재물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 같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허무하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에 허무합니다.
그런데 그 허무한 것을 천국에 가져가려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모든 행위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려서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육신을 따라 살아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육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영으로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너무 무지한 생각입니다. 영과 육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자기 육신으로 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영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성경이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서 아니 그 생각과 맞추려고 한다면 그는 성경을 볼 필요도 없는 사람입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내 생각에서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무엇 하러 성경을 봅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는 우리 육신의 생각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 생각으로는 죄의 법,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생각으로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으로는 죄의 법만 섬긴다고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생각은 그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는 죄의 법, 율법만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그 육신으로 구원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 육신이 하고 있는 모든 생각은 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율법을 자기 육신으로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영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성도는 이미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또 율법을 지킬 이유가 있습니까? 더구나 그 율법은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내가 다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아야 하는 그 율법을 또 지키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 전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영을 따라 사는 우리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생명과 사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다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 지킵니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는데 왜 지킵니까? 더구나 그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되어서 사망에 이르는데 왜 지킵니까? 하지만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지키는가 하면 육신의 생각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옳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영으로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한다고 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믿음으로 한다는 그 말에 모두가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적대감을 품은 것을 나타내는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그런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다 해도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행위가 하나님께 적대감을 나타내는 행위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봅니까? 내 생각을 맞추어 보려고 봅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검정색이라고 해도 성경에서 흰색이라고 하면 흰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합니까?
그러나 성경이 악하다고 하면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지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성경과 맞추려고 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말이 됩니까?
저 역시도 말이 안 됩니다. 어떻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까? 저 역시도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난합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를 방종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싶습니까? 그럴지라도 성경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니까 저는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육신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으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도 못 받아들이는 그가 성경을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음을 이야기를 하면서 진심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그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어서 십자가에 못 박는 악을 행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자기들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자기들의 마음을 아시지요? 하면서 고백하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바리새인과 같이 십일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원하는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지만 육신으로는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의 생각은 악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수입니다
왜 원수가 되는가 하면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면 그것이 죄의 법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육신의 생각이 죄의 법,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예표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이 시대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율법주의로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입니다
이미 처음 제사 때부터 보여주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육신의 생각으로 제사를 드리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성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육신의 생각이 죄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기 때문에 그 죄로는 절대로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죄의 법, 율법을 지키는 죄를 범하게 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따라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누가 원수입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자부를 했던 바리새인들이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바리새인이 무엇을 했습니까?
복음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예수님과 다툼을 일으켰습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사람의 법을 따라서 예수님과 다툼을 일으키면서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원수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원수라고 하는데도 이 시대는 그 원수 된 것을 지키느라고 모두가 육신의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더라도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단 한 가지가 죄의 법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무엇으로 지킵니까?
사람의 육신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백번을 생각해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저 역시도 육신적으로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법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육신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신의 생각을 이야기를 하지 마시고 성경이 죄의 법이라고 하면 죄의 법입니다. 그리고 죄의 법을 섬기면 사망이 온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가 하면 그 생각으로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죄의 법,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의 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다 이루신 것은 우리로 영의 생각을 따라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으로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것을 받아들을 수 없어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너무 감사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와 같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고 죄의 법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 정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이 죄의 법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율법이 원수이기 때문에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원수가 되는가 하면 이 율법을 사도 바울은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죄의 법을 왜 섬기는가 하면 육신의 생각으로는 지키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 누가 지키겠습니까? 우리 육신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것은 죄의 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 역시도 이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살면 되지 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저주를 받고 있습니까? 그것이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2: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의문에 쓴 증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스르고 대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지킴으로 해서 죄의 법을 섬기게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는데 사람들은 이 율법을 보고 그 안에서 복음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하고 있어서 원수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습니까? 율법을 보면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이 믿어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이 우리가 영을 좇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는 것임을 성령이 감동하여 주지 않으면 반드시 의문에 쓴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그 일을 받아들이기 못하는 그들이 원수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는데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자랑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는가 하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정의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의문에 쓴 증서대로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 원하는가 하면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것을 이루게 하셨는데 사람들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육신의 생각은 죄의 법을 섬기게 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따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죄의 법, 율법을 지키면서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아니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고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아서 모두가 종교에 빠져 그렇게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이 복음을 주시고 그 안에서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지혜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누가 세상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을 좇아 영의 생각으로 살게 하시고 있고 영생을 주시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를 못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것이 우리가 영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시는 역사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열심히 지키다가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그 생각이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영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영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육신의 생각으로 성경에서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영이라고 하니까 추상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분명히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대로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이 원수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5:4-5절을 보겠습니다. (구 1057쪽)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율법입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 누구의 법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이 지킬 때는 사람의 법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지킨 사람의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하셨는데 그것을 사람이 지키면 사람의 법이 되고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셨으면 하나님의 법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실상은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그 율법을 사람의 법으로 만들어서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사람의 육신으로 지키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사람의 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육신에 생각에 빠져 그 법을 지키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그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멸망을 당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너무 지키다 보니까 하나님의 법을 몰라서 아니 하나님의 법이 굴복하지를 않아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벨론입니다
이미 그 국가는 메데와 바사에 의해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바벨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바벨론이 무엇을 상징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못 지켜서 포로가 되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초보에 불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너무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몰랐습니다. 그 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그들에게 그러면 너희가 법의 상징인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살아보라고 하나님께서 율법의 포로가 되어서 사는 것이 어떤가를 가르쳐 주신 포로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율법의 나라에 포로가 되어서 살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벨론의 포로 70년입니다. 그 포로 생활이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에까지 계속해서 바벨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천하고 우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어리석고 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시니까 한 사람도 지혜가 있는 자가 없고 비천하고 우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비천합니까?
구원을 받은 백성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져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 백성을 보니까 어느 한 사람도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보니까 우준하고 비천합니다.
그래도 귀인들은 지혜가 있을까 해서 그들에게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귀인들 역시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도 그렇고 귀인도 그렇습니다. 이 시대로 말을 하면 교인도 그렇고 목사도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다릅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의 예표입니다. 그들의 백성이 비천하고 우준하였으면 지금도 그렇습니다. 백성 뿐 아니라, 교인뿐 아니라 목사들도 일제히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있고 여호와의 법을 모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우리에게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을지라도 이 시대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이 시대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천하고 우준한 백성은 이 시대 교인입니다. 그리고 귀인들은 이 시대 목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에서 떠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습니다. 그럼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그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싶습니까? 아니 비천하고 우준한 자들은 다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들까지도 다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을 따라 죄의 법, 율법을 자기들의 육신으로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입니까?
이스라엘의 귀인들이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을 모르고 살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목사들은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을 알고 있습니까? 이 시대 어느 목사가 율법을 폐하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아니 교회사를 통해서도 그런 목사를 못 보았습니다.
성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으면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랬을지라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 때문에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의 생명이 걸린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막연하게 나는 잘 믿고 있다는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산상수훈에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삼가야 합니까?
너무 많기 때문에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 명 중에 삼십 명이 거짓 선지자 같으면 삼갈 필요도 없습니다. 아니 두 명만 되도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갈 때 한 사람이 있었으면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이스라엘만 한 사람도 없습니까? 이 시대 역시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십만 명이 넘는 목사가 있어도 하나님의 법을 아는 목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 백성은 비천하고 우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모두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도 육신의 생각을 따라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니까 그 백성이 비천하고 우준합니다. 그리고 그 귀인들 역시도 하나님의 길, 여호와의 법에서 떠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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