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좇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좇는 것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까? 로마서8장을 보고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육신을 좇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들이 풀리지가 않으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영을 좇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오셨습니까?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로 육신을 좇아 율법을 지키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양을 잡아서 제사를 안 드리는 것으로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만 안 드리고 있지 실상은 이스라엘보다 더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무엇으로 하고 있습니까? 다 육신을 좇아 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종교의 법이 되어서 육신을 좇아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는 성도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성찬식까지 율법으로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안 드리고 있지만 성찬식을 하고 있고 물세례를 종교 의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하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율법이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육신을 좇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입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육신으로 지키느냐 영을 좇아 지키느냐에 따라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생명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모든 사람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육신을 좇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그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심으로 해서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망했습니다.
육신을 좇지 말라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육신의 죄를 정하셨지만 사람들은 정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그것을 설령 알더라도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과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초보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초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의 육신으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시대는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믿음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는가 하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님이 이루신 일을 거절하는 가장 악한 자입니다. 성경에 왜 그렇게 많이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지만 주여 주여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믿습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까?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에 미혹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성경을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거절하는 가장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모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 영의 일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깨닫고 싶어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성도만이 이 영의 일을 알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까?
그가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성령이 오시지 않고 그가 오셔서 주님을 증거하는 말씀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을 좇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성령을 좇아 행하는 성도는 율법의 요구를 이미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로 갔던 것과 같이 이방의 교회도 율법주의로 가서 육신을 좇아 행하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증거를 해 줌으로 해서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루는가 하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주님이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믿음으로 그것이 내 것이 되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성령이 오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성령이 오셨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율법 안 지킵니다.
이미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성도는 다시 율법을 지킬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교회 안에서 죽을 때까지 율법을 지키다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고 사망을 당해서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요함을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4-6절을 보겠습니다. (신 321쪽)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육신을 좇는 자가 있고 영을 좇는 자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있는데 누가 더 많은가 하면 육신을 좇은 자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좇는 자가 반만 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굳이 이 말씀을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사실 이 시대 천만 명 중에 오백만 명이 구원을 받는다면 성경은 이 말씀을 기록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아니 십만 명만 구원을 받아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기록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으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합니다. 천만 명이 교회 안에 있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의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의 비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지극히 적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로마서8장의 말씀을 보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 육신을 좇아 살아간다는 것을 인지한다 해도 그 말을 하지 못 합니다.
육신을 좇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자기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영의 일에 대해서 무지한 그들이 영을 좇아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까?
솔직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환자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 환자가 아니라 종교에 빠져 있는 환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제가 보기에는 북한 공산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주체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나 교리에 묶여 있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어떤 의견을 내는데도 있어 보면 거의 공산당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투표를 하면 거의 공산당과 같은 찬성이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누군가 의견을 내면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거의 맹목적으로 아니 반대 의견을 내면 믿음이 없다는 말을 들을까봐서 무조건적으로 찬성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유대교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육신을 좇아 육신의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육신을 좇아 살면서 육신의 일을 했습니다. 그가 어떤 육신의 일을 했는가 하면 율법을 아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그는 흠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그렇게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하면서 율법을 자기 육신으로 지켰습니다. 이 시대도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리새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육신을 좇아 육신의 일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육신의 일이 무엇인가 영의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면서도 막연하게 자기들이 영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입니다
그는 육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신의 일이 무엇인가하면 죄의 법을 섬기는 일, 율법을 지키는 일이 육신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육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육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는데도 육신의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평생 교회 안에서 육신의 일만 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그냥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성경에 육신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성경에서 이렇게까지 육신의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사망에 이르는 일이 아닙니다. 육신을 좇아 육신의 일을 하는 사람의 결말이 어떠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렇게 간곡하게 육신을 좇아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하는 일들을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육신으로 지키고 있고 그것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것이 영의 일이라고 하면서 더 많이 생각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9-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른다고 해야 맞습니다. 성경에 이 육체의 일을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육신의 일,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일을 왜 말씀하고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입니다
육체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육체의 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그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서 자기들이 육체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이미 갈라디아서 강해를 하면서 하나하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육체의 일이 무엇이라는 것은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갈라디아서 강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육체의 일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율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 복음과 율법의 싸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복음을 믿는 사람이 있고 다른 복음인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이 서로 대적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는 눈이 감겨서 육체의 일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신학자입니까?
아니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입니까? 그런 것은 다 버리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절대로 성경이 보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육체의 일 중에 어느 한 가지도 비유를 깨닫지를 못하고 성경을 그대로 보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육체의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누구에게 이 서신을 보냈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누가 우상 숭배를 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불교인들이 그리고 무당들이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전체가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미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말씀했습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우상 숭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그 사람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교회 안에 있었던 유명한 사람들이 다 우상이 되어서 그들을 따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 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누가 잘 지켰습니까?
그것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1장에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뀌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우상이 무엇이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처가 우상입니까?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단군 상이 우상입니까? 그리고 천주교에서 세워 놓은 마리아 상이 우상입니까? 그것을 우상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초보에 머물러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 사람도 다 알고 있습니다.
우상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우상이 되었습니까?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가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우상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이 하고 있는 행위가 우상이 되어서 육체의 일에 서로 욕심을 내면서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있는데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서로 우상을 만들려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있는 지혜 있다고 하는 그들이 무지함에 빠져 있는데도 모두가 종교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소가 푸주로 가듯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이 육체의 일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육체의 일을 해야 마치 성도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한계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한계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능력으로는 여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모두 다 하면서도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이런 말씀들을 풀어서 말씀을 드려도 절대로 깨닫지 못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에 교회는 율법주의로 왔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 정통이 되어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압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셔서 이 글들을 쓰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쓰게 하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많은 사람이 볼 가능성이 있지만 이제는 아무리 복음이 전해지더라도 사람들이 안 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원을 받을 정도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 은혜를 주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성경을 보고 풀어가는 것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만 바로 보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복음을 주셨지만 그러나 안 본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는 육체가 되어 있습니다. 아니 육체의 일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육신을 좇아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 영의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설령 누군가 보더라도 너무 어려워서 포기를 하고 맙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다 보면 되는데 그것을 깨닫기도 전에 어려워서 더 이상 안 보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행위라고 하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십일조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 우상 숭배가 되고 있다고 하면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도리어 반감을 가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교회를 비판합니까?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언제 그들이 하고 있는 육적인 것을 가지고 판단을 했습니까? 그런 것은 한 번도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편지를 보는 사람들은 그런 육적인 것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는 복음에 대해서 판단을 했지 그들의 육적인 행위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합니까?
지금 이 시대 어느 목사가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합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 숭배를 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서 우상숭배를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입니까?
그리스도편지를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일을 하는데도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우상 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따라하고 싶어 합니다. 꼭 율법이 아니라도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좋게 생각이 되어서 모두가 따라 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 우상 숭배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상 숭배를 하고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는 육체의 일을 하고 있는 교회를 보고 침묵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아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을 좇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상이 교회 안에 있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우상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행위라고 하면서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2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3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육체의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다고 하면 분명히 받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육체의 일을 한 가지라도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그는 교회 안에서 버림을 받는 불쌍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의미적인 말씀이라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모르면 자기도 모르게 사망에 이르는데도 사람들은 아무 감각이 없이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새번역에서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까? 성령을 따라 살게 해서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좇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많은가 하면 육신을 좇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많은가 하면 예레미야 시대에는 한 사람이 없어서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했고 호세아 시대에도 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영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천만 명입니까?
그런 숫자 놀음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다수가 옳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사회를 살다보니까 다수가 옳은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다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수가 반드시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을 좇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만큼 적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확실한 이단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소수를 지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교회에서 어느 소수에 속한 사람도 육신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영을 좇는 사람입니다
그는 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영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이라고 하니까 이 시대는 이상하게 생각을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육신을 좇아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영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모릅니까?
그리고 영을 모릅니까? 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양심에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더 유익이 됩니다. 영도 모르고 육신도 모르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재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초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까?
영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영의 일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영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육신의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의 일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알아서 믿는 것이 영의 일입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모르면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말 입니까? 그런데 성경도 모르는 그들이 아니 육신도 모르고 영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으려면 그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면 뭐합니까?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뭐 합니까? 그가 유명한 신학자라서 강해를 쓰면 뭐 합니까? 또 주석을 쓰면 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살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을 모르면 그는 교회 안에서 반드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시대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육신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도 모르면서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의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게 하시고 우리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영을 좇아 사는 사람이고 영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이것을 알고 좇아가는 성도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다는 것이 성령의 생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육신의 생각도 모르고 영의 생각도 모른다면 차라리 안 보는 것이 그 사람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 육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영을 좇아서 영의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었습니다.
영의 생각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으면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직까지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다 지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어서 이루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저 역시 백번 인정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율법도 잘 지키는 것 너무도 타당합니다. 저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옳습니까?
백번 옳아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옳다고 해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어야 합니다. 좀 무식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저는 그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길을 간다 해도 저 혼자라도 그 길을 갈 수 있게 주님이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주 적은 성도가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설령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다 율법주의로 돌아간다 해도 저는 절대로 뒤로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것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그렇게 살게 역사를 할 줄 믿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의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는 전제 조건이 율법을 모두 버리는 일입니다. 율법도 버리지 않은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next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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