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2:8절을 보겠습니다. (신 319쪽)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양,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형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의 문자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치 사람이 아들을 낳는 것과 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에서는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이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분명히 하나님입니다. 성자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의 믿음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 시키고 있습니다. 성자라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독생자라는 말씀은 있지만 그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라 홀로 있다는 뜻에서 독생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 분이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을 가지고 성경은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분이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삼위일체에서 말하는 다른 위의 성자가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양으로 오시니까 그것을 성경에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양입니다
하나님은 모양이 없으십니다. 요한계시록이나 성경에서도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이 모양이라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시니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이십니다
그런데 모양이 있어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모양을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같이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삼위일체의 성자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의 기초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기초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흔들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다보니까 기초가 되는 말씀을 흔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초입니다. 그러면 그 분이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부도 아닙니다. 그런 말을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시대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믿고 있습니다. 그 분이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성경은 그렇게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을 보고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아들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이성에 따르는 말씀이 아니라 영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진짜 사람이 아들을 낳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모양입니다
그 모양이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 하나님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어도 그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삼위일체를 말하는 모든 사람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 그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견고한 교리에 묶여서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고 그 교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한 위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그분이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실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인생과 같은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을 성경은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왜 오셨는가 하면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94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의 번역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래도 한글개역성경이 가장 잘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8장3절의 번역도 거의 다 잘못 번역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고 그래도 한글개역 성경이 어느 정도 원어에 근접하게 번역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육신의 죄를 정하사.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은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공동번역은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고 거의 모든 성경이 다 비슷한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목사입니다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저는 방언의 은사가 없어서 원어의 뜻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글개역성경의 번역만 보아도 그 원어가 어떻게 기록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장의 흐름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쉬운 것이 아니라 저 역시도 그렇게 보고 한참을 설교 작성하다가 다시 쓰고 있습니다.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한글개역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이 시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한글개역성경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성경을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설령 내 안에 성령이 오셨다고 해도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자만하지 말고 또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생명입니다
한 문장을 잘못 보는 그것으로 성경 전체가 뒤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쉽게 보고 있는 그 말씀으로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면서 성경을 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거의 모든 목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른 번역에서는 거의 다 그렇게 사실적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아니라 앞에 있는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깨닫기 바랍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육신이 연약해서 율법을 지킬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 있는 것도 문자적으로만 알고 있지 실제로는 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볼 때는 국어를 알고 보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를 모르니까 잘 번역이 되어 있는 한글개역성경을 보고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곧,
앞의 내용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할 때 쓰여 앞뒤 어구나 문장을 이어 주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는 것을 이제 다른 말로 바꾸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말씀을 다른 말로 바꾸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니까 곧 이라는 부사를 써서 다른 말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영이신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으로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셨습니다. 정하셨다고 하니까 심판을 하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육신이 지켜야 하는 율법을 자기 아들을 보내어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인하여,
죄가 있어서 우리가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우리 육신은 죄를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죄를 짓고 살아가는가 하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셨습니다.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고 육신의 죄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죄를 질 수밖에 없는데 자기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율법을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는 말씀은 육신은 죄를 질 수밖에 없는데 그 아들이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부요하신 자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해서 부요한 자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죄를 정하셨습니다.
육신으로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셔서 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켜서 부요한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정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스스로 부요하게 되려고 하다가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어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육신은 죄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죄를 짓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죄를 짓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것이 육신으로 하면 죄를 짓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성령이 감동하고 있는 성도는 다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곧 그것은 우리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를 질 수밖에 없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이 짓는 죄를 그 아들에게 정하셨습니다.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그 아들이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죄가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부요하신 자가 되었고 그렇게 육신의 죄를 그 아들에게 정하사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가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육신은 죄의 법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죄를 질 수밖에 없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율법을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죄를 다 도덕적인 죄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고 있는 도덕적인 죄로 생각하면서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우리 육신이 도덕적인 죄를 진 것을 십자가에서 지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초보입니다
그런 초보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아는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아도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초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까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
우리 인생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지키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그 율법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다가 도리어 육신의 죄의 법을 섬기는 죄를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저주를 받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인하여 입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육신은 연약한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죄를 인하여 우리가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보아도 그 뜻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성경을 몰라서 율법을 지켰고 이방의 교회 역시 사도들의 피를 흘리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율법을 다 지키게 하셔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고 그 부요함을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시고 있지만 성경을 모르니까 믿을 수 없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8: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왜 자기 아들에게 육신의 죄를 정하게 하셨습니까?
아니 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문자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행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해도 행할 수 있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문자적으로나 알고 있지 실제 그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주님이 오셔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만 나가면 기도를 할 때 자기가 지은 세상 죄를 용서해 달라고 회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성도라면 절대로 그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아니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안 믿습니다.
문자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고 가셨다는 말을 하면서 전도를 하고 있는 그들이 안 믿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막연하게 주여 주여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입니까? 물론 그것도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죄의 법을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셨습니까?
육신을 좇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육신을 좇지 않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육신을 좇아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습니다.
반드시 죄의 법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실상은 다 죄의 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니까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지 영을 좇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가 우리는 영을 좇아 행한다고 하면 성경과 아무 상관이 없이 자기들은 영을 좇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실상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조차도 잘못 번역이 되어 있다 보니까 주님이 이 세상이 오셔서 율법을 왜 완전케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왜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의 법입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죄의 법만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육신을 좇아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육신의 죄를 정하셨는데 성경을 보면서도 그 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스라엘과 같이 육신을 좇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을 좇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신은 반드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고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다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하는 그것으로 자기들이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것으로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는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왜 육신을 좇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절대 다수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경계의 말씀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은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육신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영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 시대 교인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자기들이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지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8: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58쪽)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육신을 좇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신을 좇아가면서 살았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보고 지키지 않은 것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다 잡혀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체를 따라 판단을 해서 이 여자를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가 하는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그 자체가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가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니 이 십일조가 설령 율법으로 기록이 안 되어 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십일조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육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십일조를 하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판단으로 심지어는 믿음이 있다 없다 를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육신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는 그 자체가 육신을 좇아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육신을 좇아 행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입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육신을 좇아 지킬 것인가 영을 좇아 지킬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이 율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같은 경우에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린다고 하면서 그 이상도 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음으로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지키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지켜야 합니다.
반드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육신으로 죄를 정하게 하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렇게 완전케 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육신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을 육신을 좇아 살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도 육신을 좇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면 그는 아직 한글도 모르는 무지한 자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을 좇아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율법의 요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아니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정말 한글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어만 알아도 사도 바울이 로마서8장을 시작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는 이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5: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육신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다 육신을 좇아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합니다.
우리 성도는 성령을 좇아 행하고 있고 그렇게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니까 정말 무지한 사람은 이 말씀을 가지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합니다.
어떻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증거를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증거를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합니다. 절에 있는 스님이 성경을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증거를 해 주셔서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좇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성령을 좇는 것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까? 이미 앞에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율법을 지키셨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증거를 받은 성도는 주님이 지키신 그 율법의 의를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주님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지키신 그 율법이 주님이 지키신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지킬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주님이 지키심으로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서 주님이 지키신 율법이 내 것이 되었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아니 성경이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성령이 오셔서 주님이 지키신 그 율법을 우리가 가져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다 이루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다 이룬 성도는 더 이상 육신을 좇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성령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next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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