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율법,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죄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죄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을 지키는 일이 의로운 것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거의 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영의 일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육체로 나타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은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정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너무 쉽습니다.
영의 일로는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어떤 것도 나타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 믿음을 보이다보니까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율법은 죄입니다.
왜 죄인가 하면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에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율법은 자기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을 얻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율법은 서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복음을 알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종교에 있든 무신론자로 살아가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그 율법을 지키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키지 않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처음부터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을 버린다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뿐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국가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일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덕적인 법을 지키는 것이 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장까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일이 왜 죄인가를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일이 죄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죄로만 끝이 난다면 그마나 다행이겠지만 사망을 당하는 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서 버림을 받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버림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해서 비유를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비유를 보고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는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죄가 남아 있습니다. 그 죄를 짓는 사람을 성경에서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악인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지만 그 사랑을 거절하고 자기들의 의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악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악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악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악이 율법을 지키는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이 시대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단이나 정통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 합니까?
자기들보다 율법을 많이 지키면 율법주의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보다 율법을 적게 지키면 영지주의라고 하면서 방종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가 무엇인지 영지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들과 율법을 다르게 지킨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렇게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다 율법주의입니다
안식일, 주일, 십일조, 절기, 날을 지키는 일, 헌금을 하는 일, 예배의 형식 등 모든 것이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전체 율법을 말할 때도 율법이고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한 가지를 말씀할 때도 율법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에서 해방이 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 법은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게 함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있는 성도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까?
반드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어야 합니다. 해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죄의 법에 속해 있는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해방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이고 그는 아직까지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속박하거나 얽매였던 것에서 자유 하는 것이 해방입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에 의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니 종교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율법에 의해서 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 율법에서 해방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교회는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속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갈라디아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게 해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언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해방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을 보면 전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믿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해결이 된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막연하게 이 세상 종교에서 생활하는 그것으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도 믿지 않는 그들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율법에서 해방이 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우리 육신으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고 있는가 하면 사단이 몇 가지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자기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창세기2:17절을 보겠습니다. (구 3쪽)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몇 가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는 자이고 죄를 안 지어본 사람이고 또 하나님께서 손수 손으로 지어 만드셨습니다.
우리와 다릅니다.
에덴에 있었던 아담과 우리는 본질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아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 안에 얼마나 맛있는 과실들을 많이 두셨겠습니까? 아마도 지금은 우리가 맛 볼 수도 없는 그런 과실들이 많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그 생각부터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착시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우리 사람들을 착각에 빠뜨리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는 육신이 연약해서 사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마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그것은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그것을 안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초대교회에 또 보여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속히 다른 복음에 빠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가지고 거짓 형제가 교회 안에 들어오니까 사람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다보니까 이 율법에 대해서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율법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지키다보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그 십계명을 외우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들이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서도 그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육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십계명을 설교로 올렸습니다.
그 십계명을 보고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들이 연약해서 율법을 지킬 수 없어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율법을 대신 지켜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아담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고 또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죄악만 행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자기 결국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술에 취해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켰습니까?
누가 십계명을 지켰다고 말을 했습니까?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하면 똑같이 대답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자기들이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보고 지킨 그것을 가지고 십계명을 지켰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성경이 맞습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는 그 사람이 맞습니까? 성경의 정의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자기들이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잘못입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하고 있으면 성경이 잘못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그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누구 하나는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전체 율법도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단 한 가지도 율법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라는 율법이 들어왔습니다. 그것 역시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자기 육체에 할례를 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성경은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할례를 했습니다. 이미 그것을 하는 순간에 성경은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자기들이 하는 순간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이상 성경은 성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안식일도 못 지키고 십일조도 못 내고 절기도 못 지키고 한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이 더 이상 성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하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순간에 여러분은 소경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말씀을 하는데 여러분이 그것을 하게 되면 성경이 성경으로 보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거짓말을 하신 분밖에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기31:16절을 보겠습니다. (구 791쪽)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신명기26: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1쪽)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욥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 세상 어느 사람보다도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하나님을 잘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고난을 당했습니까? 그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자기 몸에 임했고 그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자기 몸에 미쳤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이성을 따라 정말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의인이라고 말을 들을 정도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두려워했습니까?
그리고 왜 무서워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욥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그에게 임하고 그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그 몸에 미쳤습니다. 율법을 정말 잘 지킨 그에게 그가 생각하는 그대로 임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는 인과응보의 사상이 있습니다. 자기가 잘하면 복을 받고 자기가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맞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대로 맞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도 없이 인과응보에 따라 살면 됩니다.
인과응보의 사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자기들이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데 인과응보를 생각하니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욥기에서 그것을 욥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서 내가 벌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거의 다 이 인과응보의 사상이 그대로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욥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한 일로 여기고 갚아 주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욱 열심히 자기들이 번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욥의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신으로 이것을 다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욥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를 이 시대 교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인과응보라면 욥은 고난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이 든 일을 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잘하는 그것으로 복을 받는다면 이 욥기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욥이 어떻게 말을 합니까?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왜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는 율법을 잘 지켰다는 말입니다. 어느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물론 욥이 살던 시대는 율법이 반포가 되기 전이라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알고 있습니다.
율법이 반포가 되기 전이지만 욥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으면 자기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무서워하는 그것이 자기 몸에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고난을 당했는가 하면 그의 자녀들이 다 죽고 그의 재산이 모두가 탈취를 당하고 그의 부인이 저주를 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떠나가는 그런 고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욥은 고난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대 목사들이 이야기를 하는 그대로라면 절대로 고난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했습니다.
왜 고난을 당했는가 하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자기가 했다고 주장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욥이 한 모든 행위가 다 악한 일이고 죄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고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하는 그것으로 고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몰랐습니다.
자기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자기가 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욥은 자기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자기가 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를 못해서 고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자의 소원을 누가 들어줍니까?
과부의 눈을 누가 실망치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욥이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까? 그리고 욥이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욥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자기가 그렇게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욥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가난한 자입니다. 그것은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이 세상에서는 부자로 살아서 그런 일을 했을지 몰라도 우리 영혼의 문제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것을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욥은 자기 스스로가 가난한 인생이면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부자입니까?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자기가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어떻게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습니까?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그것은 욥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자기가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욥은 자기가 그것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소원입니다
과부의 눈입니다. 이것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입니다. 이들을 배부르게 하고 부요하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에 매 삼년에 드리는 십일조를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율법에 정해 놓으셔서 우리가 지금 배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고아입니다 과부입니다. 그리고 객입니다. 또 영적으로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매 삼년에 십일조를 해서 이들을 배부르게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배부르고 있습니다.
누가 하십니까?
욥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부자라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켰다 해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매 삼년 끝에 십일조를 창고에 쌓아 두고 우리를 배부르게 먹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그것을 먹고 배가 불러서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셨습니다. 성경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몇 가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분명히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의 육신으로 욥과 같이 하려고 합니다. 욥은 그래도 살아 있을 때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죽을 때까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매 삼년 끝에 십일조를 창고에 쌓아 두셨습니다.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이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객으로 고아로 과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배부르게 먹어서 천국을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게 되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을 보는 그들이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0:20절을 보겠습니다. (신 71쪽)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마태복음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6쪽)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의 대답입니다. 아마 이 시대 교인들에게 물어 보아도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가 모태신앙이라고 하면서 내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무엇을 더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대답이 맞습니까?
만약에 이 대답이 맞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로마서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니 모든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때는 저렇게 하는 것이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부자 청년과 같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느 것은 지켰고 어느 것은 지키지 못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못 지킨 것을 다 지고 가셨기 때문에 내가 지켰다고 대답을 합니다.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벌쩡하게 넘어가지 마시고 내가 지켰는가 아니면 성경에서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지키지 못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부자 청년과 같이 자기가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살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못 지켰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그것을 했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할 수 없다는 것을 하고 있는 아주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하지 않았습니까?
우상숭배하지 않았습니까? 도적질하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청년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이 질문을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는 하지 않았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살인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살인을 하면서 살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시대 교인들은 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니까 돌아갔다고 생각지도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을 안 받아들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 있더라도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근심하고 돌아간 청년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안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이 연약해서 할 수 없다면 내가 왜 살인한 자인가를 알아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십계명의 어느 계명이라도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면서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 혼자의 어리석음으로 끝이 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신학을 배우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렇게 가르치면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연약합니다.
부드럽고 약하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연약하다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가 보호를 해 주지 않으면 아주 작은 것에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가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머니가 젖을 물려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굶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이제 갓난아이와 같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지혜가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율법주의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합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연약해서 할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완전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율법을 누가 지킬 수 있는가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자기들이 하려고 하다가 욥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욥은 육체의 고난을 받았지만 교회 안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그 고난이 나중에 찾아옵니다.
율법을 지키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7장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이제 결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의인이라고 하는 욥도 하지 못 했습니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고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고난이 이 시대 교인들에게는 육체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후에 찾아온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을 자기들이 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결국에는 버림을 받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할 수 없다고 하면 안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그것을 내가 하려고 하다가 죄의 법에 사로 잡혀서 사망의 몸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어떤 일을 하면 할수록 구원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망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세상 사람은 죄인으로 살다가 죽을 수 있지만 우리말에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다가 악한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 잡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자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사실 이 말씀에 다 걸려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하는 자기들의 행위가 악인지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무엇을 다 이루었는지를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마치셨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next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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