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3-2, 의인은 없나니

윤주만목사 2024. 7. 2. 08:25

히브리서9:27절을 보겠습니다. (362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왜 사람이 죽습니까?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한번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이 죄라고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의인이 없습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죽는가 하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만약에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아담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하고 난 후에 인류는 죄악의 종자가 되었기 때문에 죄의 종자로 태어났고 또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한번 죽어야 합니다.

의인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모두가 한번 죽어야 합니다. 이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죽은 사람이 주님이 오실 때 부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죽은 사람이 한번 죽고 난 후에 부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 없다는 말씀은 우리 인생 그러니까 아담의 자손은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죽으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죽은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없습니다.

육체로는 의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생은 의인이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의인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까?

성경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우리 육체입니까? 만약에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우리는 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를 의롭다 하셨으면 우리는 어찌되었든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는 의인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았든지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았든지 그것이 만약에 육체의 일이라면 우리는 죽지 말아야 합니다. 의인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의인이 없는가 하면 모두가 죽기 때문에 의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이상한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한번 죽는 것이 정해진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설령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어도 우리 육체는 의인이 아닙니다. 육체를 보면서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성경에서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는 가를 모르고 그저 성경에 문자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의인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 아담의 자손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을 보고 의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겉 사람을 보고 의인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의인이 될 수도 없고 성경이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을 보고 의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의 자손은 어떻게 해도 의인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아담의 자손을 의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아담의 자손은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내가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죄의 삯으로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성경이 한번 죽은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면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 아담의 자손을 보고 의인이라고 하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의인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의인이 없다고 하면 우리 인생 모두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죄인이 의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 죄인을 보고 의인이라고 하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한일서3:5절을 보겠습니다. (390)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성경에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으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씀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없습니다.

의인이라고 할 때는 반드시 죄가 없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인이라고 할 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지 죄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의인은 있고 또 세상의 이성으로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죄가 없는 의인은 아주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기초적인 말씀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기초가 흔들리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기초적인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은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의인이 없다고 하지 마시고 어떤 의인이 없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왜 오직 예수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에서 오직 예수라고 하니까 말로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 오직 예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그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오직 예수라고 하니까 따라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죄가 없는 의인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죄가 없는 의인이 있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받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모르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영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없다고 하는데 어떤 의인이 없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이 없으면 당연히 아담으로 난 모든 사람은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받기 위해서 믿고 있는 것이지 육체가 의인이 되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의인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육체로 의인이 되고자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죄가 없는 의인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이 있으면 하나님은 굳이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 의인을 구원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없습니다,

아주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없기 때문에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의인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의인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의인이 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국가가 법을 만들어 놓고서 죄를 짓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정말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간혹 가다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하나를 범해도 모두를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를 범한 자가 아니라 모두를 범한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율법을 왜 범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의인이 없다고 하면 왜 의인이 없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목사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죄가 없이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까? 의인이 없다는 성경말씀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죄를 짓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말씀을 바로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초를 든든히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310절의 말씀은 이 세상에 의인이 없다는 말씀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흔들리면 성경에서 다른 말씀까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3:11절을 보겠습니다. (242)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의인이 없습니다.

어떤 의인이 없는가 하면 죄를 안 짓는 의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 죄를 안 짓는 의인이 아주 없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는 그 모습에 취해서 죄를 안 짓고 사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릅니다.

요한복음8:7절을 보겠습니다. (158)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왔습니다. 왜 이 여자를 끌고 왔는가 하면 자기들은 죄가 없고 이 여자는 죄가 있기 때문에 끌고 왔습니다. 만약에 자기들이 간음을 했다면 절대로 이 여자를 끌고 오자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을 보고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는 가를 보려고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릅니다.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아주 잘 안다고 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그들이 실상은 율법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왜 지키는가 하면 그리고 율법대로 정죄를 하는가 하면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성경을 보고 깨달았다면 절대로 이 여자를 잡아 오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을 깨달았습니까?

이 시대는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깨닫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보고 깨달았다면 이 여자를 잡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이 시대 실제 잡아오지는 않고 있지만 누군가 주변에서 간음을 하고 있다면 아마도 똑같이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왜 정죄를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가 죄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정죄를 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할 수 있습니까? 죄인은 같은 죄인을 절대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죄인을 보면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정죄가 무엇입니까? 자기들은 주일이라는 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세상 사람은 주일이라는 날도 안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세상 사람들은 주일이라는 날에 휴가를 가고 또 자기 볼 일을 보고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왜 정죄를 합니까?

자기들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간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자적으로 간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음을 한 여자를 잡아 와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을 했다고 하면서 정죄를 하고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면 뭐 합니까? 율법에 정통하면 뭐 합니까? 그가 성경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똑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도덕선생이 되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부터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배워서 그리고 도덕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배워서 도덕에 선생이 되어 있습니다.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그것을 몰라서 교회 안에서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합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말을 합니까? 목사들이 너무 믿음만을 주장하다 보니까 교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어느 목사가 그 정도로 믿음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 목사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런 목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도덕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지 어느 누가 어느 목사가 믿음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 시대 목사라고 그래도 이름이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는 가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도덕적으로 완전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도덕에 대해서 수십 년을 배웠으면 그들 말대로 달라져야 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달라지지도 않고 있고 또 도덕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 발상부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모릅니까?

교회에는 그런 사람만 들어옵니까?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만 들어오고 있고 도적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만 들어오고 있고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만 들어오고 있고 간음을 하면 안 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만 들어오고 있고 우상 숭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만 들어옵니까?

레위기20:10절을 보겠습니다. (177)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율법을 보면 뭐합니까?

이스라엘이 성경을 어려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늘 그들은 성경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이라는 이 말씀대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깨달았습니까?

지금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보고 깨달은 자들입니까? 만약에 그들이 성경을 보고 깨달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깨달은 그것을 주님께서는 정죄하지 않고 있다면 주님을 믿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음이라는 말씀이 나오면 그들은 세상이 성적으로 타락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성적으로 너무 타락해서 우리가 그들로 인하여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그들 때문에 우리가 죄에 빠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입니다

성경이 세상일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간음하면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고 그 정도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도 깨닫지를 못해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잡아왔습니다. 아마 이 시대도 국가의 법보다 교회의 법이 더 강하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들입니다 실제 종교의 법이 더 강한 아랍 국가에서 보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렇게 잔인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세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더 했습니다. 교회의 법이 강하니까 국가가 통제도 하지 못하고 교회가 법을 집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녀 재판이라고 해서 돈 많은 여자들을 민심을 달레기 위해서 죽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자기들은 그런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음입니다.

남의 아내가 누구입니까? 진짜 내 이웃의 아내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하면 그럼 간음해도 되겠네 하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비유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입니다

내 이웃의 아내입니다 실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비유로 할 때에 교회를 가르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의 아내와 간음을 하는 자가 누군가 하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와 간음을 했습니다. 어떻게 간음을 했습니까? 율법의 남편을 섬기게 해서 간음을 했습니다. 율법의 남편을 섬기면서 간음을 하고 있는 그들이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육적으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누가 죽어야 합니까?

이 여자의 죄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간음하는 악을 행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누가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여서는 안 되는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쳐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깨닫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교회와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간음하는 것을 가지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짓고 있는 죄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지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영적인 간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누가 간부고 누가 음부인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율법을 보면 뭐합니까? 그저 세상 사람들이 간음하는 것을 보면서 정죄를 하고 있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간음하지 않은 의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간음하지 않은 의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와 간음을 하면서도 도리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와 간음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에서 큰 음녀가 받을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음녀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음녀는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하고 있고 또 이방의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9:4절을 보겠습니다. (308)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명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28장에서는 생명과 저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 방법과 저주를 받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성막을 주시고 또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아서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는가 하면 믿지 않아서 못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지를 못 합니다

이스라엘만 깨닫지를 못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면서 내가 이것을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깨닫습니까?

이 시대 우리가 십계명을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것을 보고 우리가 어느 한 계명도 지키기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십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아서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을 보고 율법을 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생명의 축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사망의 저주를 받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지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기보다는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킨 것이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죄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지키겠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갈라디아에서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왜 지키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켜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해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간음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을 주지 않으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간음하는 일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됩니다

그가 신학박사입니까? 그런 것은 쓰레기로 버리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도리어 성경을 깨닫는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았는데 자기는 공부를 해서 신학 박사라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율법을 지켰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을 주셨으면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율법을 지키려 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믿지를 않고 도리어 율법으로 대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어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7:14절을 보겠습니다. (10)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70억 명의 인구 중에서 적다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아주 적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교회와 세상과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우리나라만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천만 명이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성경이 거짓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시편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기적과도 같이 아니 성경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천만 명이나 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만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으면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보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고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필요할 때마다 주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천만 명이 보일지라도 성경이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말씀보다는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없다고 하는데 자기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많이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은 많이 있습니다. 표면적 크리스천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미혹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없다고 하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는지를 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다 모래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영의 생명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면서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찾는 자인가 아니면 그저 교회 안에 나와 있는 종교인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보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찾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