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2-1,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윤주만목사 2024. 6. 30. 06:16

 

로마서3:7절을 보겠습니다. (242)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하나님이 불의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심판을 하실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시지 않다는 것을 이미 성경을 통해서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분명히 불의하십니다.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었고 또 우리 인생들이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게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에덴에 생명나무 과실을 두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담에게 구원을 보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생명나무를 있게 함으로 해서 아담이 영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단에게 져서 범죄를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구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인생입니다

모두가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그 순간에 아담은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선악과입니다

그것은 첫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그 율법의 저주를 받아서 육체가 사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담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거저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에게 부터 복음을 보여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 않고 공평하게 심판을 하기 위해서 성경에 이미 복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불의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 주셔서 저를 믿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면서 불의로 진리를 막아서 스스로 심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절대로 불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괜스레 창조를 하셨고 또 불의하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하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어떤 자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어떤 자가 적은 소수의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모두가 믿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시대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심판을 받습니다.

왜 심판을 받는가 하면 구원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그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그 아들을 보내주셨지만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믿음이라면 이스라엘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 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신다 해도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를 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어떤 믿지 않는 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3:2)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야 그렇다고 해도 교회에 나왔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 아들을 보내 주셨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이 것이 아니라는 그 말씀대로 교회가 불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나도 역시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습니까?"”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드러나서 그분께 영광이 되었다면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참 어렵습니다.

저도 보통 3-4가지 이상의 성경을 보고 있지만 어떤 때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풀어지지가 않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잘 풀어지지 않는 말씀도 있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부터 말씀을 계속해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생각이 났다가도 또 잊어버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니 글로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어렵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성경을 보고 있고 그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 장이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사람의 예로 말을 한다고 하면서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반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서 나오고 있는 반문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로마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지가 않아서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으로 사람의 지식으로는 어느 누구도 풀어지지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고 고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이미 자기들에게는 지적인 능력이 있고 세상의 지식으로 이 성경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믿음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게 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1장부터 해서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의 불의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의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의가 불의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로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율법의 의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불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의입니다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의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의롭다 함을 주지 못하는 의가 있다면 그것은 불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가 바로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이 참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영광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로운 사람과 같이 보이고 그것에서는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의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4:25절을 보겠습니다. (314)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거짓입니다

이 시대는 거짓과 참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 있어서 무엇이 거짓인지 그리고 무엇이 참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생각을 가지고 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것이 무슨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고 도리어 성경과 반대가 되는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이라는 말씀이 있을 때는 그것이 생명에 대해서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입니다

사전적인 뜻은 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이성으로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에 있어서 사실이 아닌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저 자기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사실이 아닌 것을 버리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있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짓입니까?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이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이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면서 지켰던 율법이 썩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율법의 행위만 썩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지키고 있는 율법도 썩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썩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가지고 성경을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남기는 그것 까지도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내 마음에 거짓이 하나도 없습니까? 그럴지라도 성경은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이성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이 있습니까?

그리고 유명하다는 루터가 있고 칼뱅이 있고 웨슬레가 있습니까? 그들이 무엇을 남겼습니까? 다 썩어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들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믿음이 조상 아브라함이 있습니까?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있습니까? 그들 역시 그들이 한 행위도 모두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썩어지는 것은 거짓입니다

아브라함이 참이고 사도 바울이 참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다 거짓입니다. 다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성경도 많이 기록했고 또 수고를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역시 썩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썩어집니까?

사람은 거짓되고 오직 하나님만 참 되시기 때문에 썩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서 세상의 샤머니즘적인 사상들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행한 의로운 행위를 가지고 마치 천국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거짓입니다 왜 거짓인가 하면 우리에게 의를 줄 수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를 줄 수 있는 것이 참이지 의를 줄 수 없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그 거짓에 미혹이 되어서 모두가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와 싸우셨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과 싸우셨습니다. 그들이 거짓을 가지고 참이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다 해도 이제 모든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방의 교회 역시 모두가 썩어져 가는 거짓에 미혹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1:5절을 보겠습니다. (142)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거짓입니다

그리고 참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어두움이 거짓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빛이 세상에 오시자 이스라엘이 지키는 율법이 어두움이고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였습니다.

아니 거짓에 미혹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거짓의 아비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율법이 거짓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참 빛을 비춰주시면 그것이 얼마나 거짓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짓이었습니다.

그 거짓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참되시다는 것이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거짓에 미혹이 되지 않았다면 굳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세상 죄를 지고 가셔야 하기 때문에 오셔야 하겠지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율법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이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복음의 빛을 비춰주신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거짓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의를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의를 더 사랑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주님께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로 영광을 받으셨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초대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 복음을 듣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심증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믿어지는 역사가 없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어느 정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식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 그래 이 말씀이 맞는 것 같아 하면서도 믿어지는 역사가 있지를 않습니다. 만약에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고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가 나누고 있는 주의 만찬에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사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일을 하거나 또 지역이 너무 멀어서 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근교에 있다면 당연히 참석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육체로 지켰던 율법의 행위가 거짓입니다 그 거짓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으로 비춰주시니까 그 거짓이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참되시며 의롭다 함을 주시고 주님의 영광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예 복음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7절에 있는 말씀에 대한 질문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참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이라는 것을 최소한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이 같이 반문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아예 반문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에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꼭 그렇게 자기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기는 들었는데 믿어지지가 않는 사람이 반문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듣지도 않은 사람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나의 거짓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가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거짓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내가 왜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을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나의 거짓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율법을 지킨 그것으로 인하여 죄인과 같이 심판을 받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율법의 행위를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그 지역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회당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내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왜 죄인처럼 심판을 받느냐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 억지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나온 것 같습니다. 내 거짓이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되었다면 그래서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그 거짓으로 왜 내가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다 보면 아니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렇게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정말 불행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거짓이 무엇인지 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나서 불과 100여년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맹목만 있습니다.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목사가 설교를 하면 그것이 무조건 맞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솔직히 목사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그저 아멘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들으면 이 말씀이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단은 그런 생각까지도 다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서 그것에 빠져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느라 아무 생각이 없고 그런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알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3:8절을 보겠습니다. (242)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고 말했다면서 우리를 헐뜯고 다니는데 그들은 당연히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그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전하는 자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전해서 되는 것이 아니가 듣는 사람 역시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이 세상의 이성은 서로 충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자리에 계시는 분은 한번쯤은 복음을 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복음을 듣는 것 같다가도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니 복음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반박을 해 보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누구나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전하면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율법을 폐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교회 안에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인 율법을 폐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럼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 하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 합니다

심지어는 도적질을 해도 되고 살인을 해도 되겠네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떻게 말을 합니까?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하면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운영이 되라고 하느냐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단의 계략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는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 나의 거짓이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니까 이제 우리가 더욱 악을 행하면 선이 더 드러나게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의 거짓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이 있어야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니까 우리가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 로마서를 통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역시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꼭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반문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악을 행하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어떻습니까? 나의 거짓이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 거짓이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게 하려면 우리가 더 악을 행하자고 말을 하고 있고 아니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그렇다고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논리적으로는 맞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거짓이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해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복음을 듣고 믿지를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람의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5:20절을 보겠습니다. (246)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죄를 더 많이 지면 은혜가 넘치니까 죄를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사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세상적인 의인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죄를 더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으로 죄를 더 많이 진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것을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들은 복음을 아무리 들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누가 보아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같이 보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잘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악한 일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대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서부터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일이 악한 행위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더 이상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단도 아주 지독한 이단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무시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지라고 합니까?

사도 바울이 죄를 지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더 많이 죄를 지어서 은혜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을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경하지만 누구는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알고 있고 누구는 죄를 짓고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울에 달아보면 세상 사람이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나 입김보다 더 경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

죄를 더 지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알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누가 더 많이 지었는가를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입김보다 더 경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율법에 가입을 해서 죄가 더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죄를 일부러 더 짓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율법을 알면 죄는 자동적으로 더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거짓이 무엇이고 참이 무엇인가를 전했고 우리 거짓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을 합니까?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하려고 악을 행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면 당연히 이런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폐하라고 하면 죄를 마음 놓고 지라고 한다고 하면서 저들은 무법천지를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악 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꼭 이렇게 반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저들은 하나님의 참되심이 우리의 거짓으로 더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을 한다고 하면서 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되니까 저들은 악을 행하자고 한다고 하면서 비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비방합니까?

복음을 듣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가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했어도 율법의 행위를 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비방을 하는 자는 꼭 비약을 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리스도편지가 잘 알려지지가 않았으니까 비방을 듣지를 않고 있지만 아마도 많이 알려지면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글을 보면서 비방을 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비방도 하지 못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든지 비방할 꺼리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