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3-1, 의인은 없나니

윤주만목사 2024. 7. 2. 08:23

로마서3:10절을 보겠습니다. (24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 아래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죄 아래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의 눈에는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 성도는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분명히 그래도 자기들이 세상 사람들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 눈에는 아니 이성에서는 분명히 율법을 더 잘 지킨 사람은 그래도 죄 아래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도라고 칭하는 사람이나 저 사람은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나 세상 사람이나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낫습니까?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고 하는 그 사람이 더 낫습니까? 아니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서 자기 평생을 헌신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이 낫습니까? 사람에 이성에는 사도 바울과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욥이라고 하는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를 안 지은 그가 이 세상에서 또 가장 죄를 많이 진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죄는 안 지었을지 몰라도 영적인 죄를 성경에서 알면 욥과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더 낫습니까?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더 낫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더 낫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라는 것을 바로 알면 조금 더 낫느냐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율법주의를 만들고 있고 성화주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그리로 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진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금 더 나아진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을 바로 알고 있는 성도는 내가 십계명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소한 십계명은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계명을 지켰습니까?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그들이 실상은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그 십계명을 지키고자 하고 있는 그들이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만든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계시가 되기 전에는 이렇게 우리는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자 청년이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문자적인 십계명을 다 지킨 것을 모르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실상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데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십계명을 보면 뭐 합니까?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십계명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그가 깨닫지를 못한 것과 같이 이 시대 성경에서 십계명을 보고 있지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과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 계명을 보면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그래도 십계명만은 지키겠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가 죄 아래 갇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성경말씀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면 뭐 합니까?

죄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죄 아래 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죄 아래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하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도리어 사망에 쏘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깨닫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자기가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아무리 봐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자기가 그 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해도 자기들은 그래도 십계명만은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성경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왜 성경을 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모두가 죄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내가 왜 죄 아래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도리어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일부의 것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십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최소한 그래도 십계명에서만은 죄 아래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모르면 알 때까지 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죄 아래 있는가를 알아야 그 다음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해서 자기가 왜 죄 아래 있는가를 모른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의인은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이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정의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의인이 있었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의인이 없다는 것을 문자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면 뭐 합니까? 의인이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인이 없다고 하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의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되지만 의인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아담의 자손이 이 지구에 이제까지 있었던 사람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에 모든 사람 중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인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기6:29절을 보겠습니다. (767)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욥입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어느 누구도 욥보다 의로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욥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의로운 사람입니다.

분명히 의롭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욥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변론을 하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감히 우리 같은 사람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욥은 의롭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 엘리바스가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 주시고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쳐주신다고 말을 하면서 너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아라 혹시라도 네가 잘못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욥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욥이 대답을 합니다.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실제 사람의 이성에 따라 생각하면 의롭다고 할 정도로 살았습니다. 그가 변론을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지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그것을 자기가 지키는 것을 보고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은 의롭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의 생각이 욥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성도로서의 당연한 삶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고난을 당합니다.

그랬을 때 욥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자기는 문자적으로 보이는 십계명을 어느 한 가지도 어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회개를 하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보아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반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내가 이제까지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십계명을 지키면서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의인이 없다고 하지만 욥과 같이 내가 의롭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보다 더 의로운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보다 더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율법이 이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율법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사단은 율법을 지키게 해서 그가 스스로 의롭다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맞습니까? 그는 세상의 이성으로 보았을 때는 그럴지 몰라도 성경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욥기31:16-17절을 보겠습니다. (791)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에게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욥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31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욥기 전체를 보면 욥은 정말 누가 보아도 의롭다 함을 받을 만할 정도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 의롭게 살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할 정도로 의롭게 살았습니다.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욥은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은 욥과 같이는 하지 못했어도 그래도 나름대로는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겉으로는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교인들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주일을 지켰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중에 혹시 하나를 어겼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산 것을 아시지 않으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는 말은 하지 못할지라도 그 마음 안에서는 그래도 세상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욥의 고백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에게 먹이지 아니하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실제 욥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이 말씀은 욥이 실제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욥은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분명히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라도 힘이 드는 일입니다.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가 와서 자기에게 꾸어 달라고 하면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기려 박사와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 놓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이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욥은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왜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과부는 있습니다. 일찍 그가 병이 들어서 죽든지 아니면 전쟁이나 사고로 인하여 죽는 사람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과부가 있습니다. 과부는 남편이 없으니까 늘 곤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과부가 와서 욥에게 요청을 할 때 욥이 내가 언제 과부의 눈을 실망케 했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부를 조금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부자가 과부의 형편을 보고 조금 도와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눈을 실망케 하지 않을 정도로 도와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과부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욥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산 것을 지금 변론을 하면서 내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를 먹였습니다.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를 먹이지 않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만 보아도 욥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그가 의롭다고 변론을 하는 말씀들을 들어보면 그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기 때문에 욥은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이렇게 의롭다 함을 묻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상은 다 욥기에서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게 살면 복을 받습니다.

고난을 받지 않고 형통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고 싶다고 하는 욥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욥을 보고 친구들이 와서 네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욥은 내가 이렇게 살았다고 하면서 내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의롭습니까?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욥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아니 천주교에서는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가 의롭게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하면서 성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의롭게 산 사람을 성인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26:12절을 보겠습니다. (301)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명기24:19절을 보겠습니다. (29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욥입니다

그는 아브라함 때의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있기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이 반포되기 이전이지만 그는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거의 모든 율법에 비추어서 볼 때 그는 그대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에 있는 율법입니다

그가 왜 의롭다고 주장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는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의롭게 산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말을 하듯이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지 않고 고아에게 먹이면서 살았습니다.

욥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욥이 정말 의롭다 함을 받을 정도로 살았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행위로 하면서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욥과 같이 살지는 못했어도 욥처럼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최소한 십계명은 지키면서 살려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그것을 지키면서 스스로가 부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보고 육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은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성령 그가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지 않고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않고 자기만 먹지 않고 고아를 먹였다 해도 그것은 다 육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은 다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를 보면서 내가 의롭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욥과 같이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욥은 살아 있을 때 고난을 당했으니까 다행이지만 이제는 성경에서 다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죽어서 주님이 오실 때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래서 스스로가 말하는 것과 같이 의롭습니까? 욥은 절대로 율법을 지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보면서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욥과 같이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살아서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주님이 오실 때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은 율법을 지킨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대로 의로운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욥은 의인과 같이 보일지라도 의인이 아니라 악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의인이 되려고 하는 그들이 악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 하고 있는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욥이 당하는 고난을 나중에 당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이 아무리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지 않고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않고 고아를 먹었다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가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율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그 자체가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를 보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명기10:18절을 보겠습니다. (279)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누가 이렇게 합니까?

욥은 율법을 알고 자기가 그렇게 했습니다.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지 않고 고아를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명기26:12절과 신명기24:19절의 말씀을 누가 하는 것입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보고 욥과 같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문자적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우리에게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나그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라고 이 말씀을 율법에 정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행위를 가르쳐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고아입니까?

누가 과부입니까? 그리고 누가 나그네입니까? 이미 아카데미 강의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담의 자손 모두는 다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욥은 뭐라고 합니까?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조금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자기들의 마음에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키는가 하는 기본적인 것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의롭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이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율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과부의 눈을 실망케 하지 않았고 고아를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욥과 같은 사람이 지금도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성경에 있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후원하는 단체에 후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간적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것으로 자기가 마치 성경에 있는 율법을 어느 정도 지켰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말씀이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사단은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세상에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의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의롭다 함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어도 그래도 의롭게 살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보고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에덴에서 아담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이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육적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욥입니까?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 말을 하고 있는 욥은 하나님을 거짓말하게 만드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문자적인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은 죄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욥과 같은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가 욥과 같이 살면서 의롭다고 해도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미 욥기를 통해서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상실한 마음대로 두시고 있습니다. 아니 그가 계속해서 악을 행하게 두시다가 주님이 오셔서 이 악한 자들을 다 내어 쫓으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서7:20절을 보겠습니다. (955)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성경의 정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서는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이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자기의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십계명에 대해서 설교로 말씀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보시면 됩니다. 왜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이 아주 없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킬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모르고 그의 십자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착시 현상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킨다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도로서 그래도 최소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최소한이 아니라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최소한의 율법이라면 그것을 지킨 사람을 의롭다고 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최소한 십계명을 지켰을 때는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니 성도로서 너무도 당연하게 지켜야 한다고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욥과 같이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킬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자기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세상에는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아주 없습니다. 의인이 없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보지 마시고 의인이 없다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의인이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래 우리는 모두가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3-2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