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2-2, 선한 양심을 가지라

윤주만목사 2024. 6. 30. 06:17

 

베드로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280)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정죄를 받는 것이 옳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꼬투리를 잡아서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비방을 합니까?

모르면 절대로 비방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어느 정도 안다고 하기 때문에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은 저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듣기만 하고 스스로 판단만 하지 비방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으로 비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 선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선행입니다 그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율법을 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누가 욕을 하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욕을 하고 있습니다.

비방을 합니다.

십일조 한 가지만 해도 우리는 비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주일이라는 날이 율법이라는 것도 역시 비방을 받을 말 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비방하는 그들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저희가 정죄를 받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모르면서 비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이 왔을 때 그 백성이 어떻게 했는가를 알면 됩니다. 물론 대우를 받은 선지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비방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끄러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담대합니다. 믿음으로 담대하면 좋은데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면서 담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부끄러움은 얼마든지 당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낫지 교회 안에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저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죄를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정죄를 받는가 하면 복음을 듣고 믿어지지가 않아서 비방하고 있는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지지가 않으면 그나마 복음을 듣기라도 했으니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예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을 들었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 누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저 역시도 부족하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조차도 듣지를 못하고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예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복음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의를 따라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느 누구 하나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복음을 듣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믿어지고 있다면 은혜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은혜를 받기 보다는 불의로 진리를 막으면서 스스로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의 거대한 포승에 묶여 끌려가고 있습니다.

로마서3:9을 보겠습니다. (242)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이 이방 사람보다 낫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가 불의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해서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이 진리에 얼마나 반대가 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다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군가를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있다 해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낫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유대인으로 살았는데 그것이 도리어 해가 되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시가 되기까지는 그것이 해가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이 살았다는 그것에 대해서 이방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존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유대인이나 되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환상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정말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기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오고 나니까 그것이 다 해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유대인으로 산 그것이 결코 나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거의 유대인과 비슷하다고 보면 맞습니다. 유대인도 아니면서 자기들이 대단하게 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세상 사람들과는 차별이 되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한 가지만 해도 세상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들 말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행위라는 것이 사람을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자기들이 낫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낫다고 하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자기들이 낫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 사람들보다는 죄를 덜 짓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은 죄를 안 지었습니까? 죄를 안 지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죄를 안 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4절을 보겠습니다. (15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신명기23:15-16절을 보겠습니다. (297)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유대인입니까?

헬라인입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입니까? 불교인입니까? 아니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입니까? 인생은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언입니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죄 아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조금 더 죄를 짓는가 하는 계량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단순히 나는 짓지 않는 죄를 지었다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할 때는 생명에 대해서 죄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라고 하니까 누구는 간음을 했으니까 죄를 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죄를 지었으면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이 됩니다.

죄를 진 사람은 죄의 종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의 종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종은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종이라는 의미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종이 되는 순간에는 유업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은 죄를 안 지었다고 하면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안 지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죄를 안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죄를 안 짓고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그리고 종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 아래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의 눈에는 자기들이 죄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이 안 보입니다 아니 죄를 지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언을 했다는 말씀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가 죄의 종이 되어서 사망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단순히 그냥 어떤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사망이 따라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언입니다.

그것은 사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죄를 지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죄를 지었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어서 사망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디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미 구약의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아무리 보아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 말씀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개인을 두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두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했습니까?

이미 율법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명기에 말씀에서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말씀은 그저 어느 한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했을 때 다 감동을 받았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약 성경에서 많은 계시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구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 전체를 너무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령이 오시지를 않아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다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었던 어느 한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모두를 종으로 이미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우리 인생 모두가 다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종인가 하면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못 지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니 율법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율법을 보고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 되다 보니까 이 말씀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를 다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종이 되었는가 하면 죄를 지어서 죄의 종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해서 모두가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신명기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그냥 기록했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감동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구약에 있는 말씀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진 사람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죄 아래 있다는 말씀은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모두가 다 종입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종이 되지 않고 자유하는 자의 아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절대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종이라는 것을 이렇게 구약에서 율법으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왜 종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종이라고 하면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께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자기들이 사단에게 종이 안 되어 있다고 말을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종입니다

유대인입니까? 이방인입니까? 모두가 종이라고 성경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왜 종인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자기가 왜 종인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여러분은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인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내가 성도냐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자기가 종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종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내가 왜 종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남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지나간 율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민법입니까?

율법이 폐하여져서 이제 이 시민법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종이라고 말씀을 할 때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이 신명기에 있는 율법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종이 되었습니다. 종이 되어서 어디로 피할 곳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이 있습니다. 그 종이 어디로 피할 수 있습니까? 종이 피하다가 붙잡히면 다시 주인에게 가야하고 그 주인이 자기 종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입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성경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피할 길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종은 도망을 가면 반드시 잡혀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종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피할 곳이 없어서 그저 이 세상에서 짐승과 같이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안 지었습니까?

간혹 가다가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로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간증을 하는 것을 들으면 자기는 죄에 대해서 아주 깨끗한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죄를 지었어도 그 죄에 대해서 다 용서를 구하고 해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그 사람이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목사로서 어떻게 살았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합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종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여러분은 죄의 종입니다 죄 아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영의 일이고 죄 아래 있는 것은 죄의 종이 된 것은 육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죄의 종이라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 말씀에 다른 이유를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입니다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확실하게 분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육이 무엇인지 그리고 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어떻게 해도 다 죄의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 해도 육체는 죄의 종입니다 그래서 죄 아래 팔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14절을 보겠습니다. (248)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과 혼동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육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마치 육이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간증이라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육과 영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은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강조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한 것을 7장에서는 내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종입니까?

종은 값을 주고 팔고 사는 것이 종입니다 이 시대에 종이 없다고 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미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종이라는 것은 값을 주고 팔고 사는 물건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종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죄를 안 지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복음을 알기 전에는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면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성도는 자기가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 육신을 다시 샀습니까?

속량을 했다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우리를 속량 하셨다고 하니까 육신을 속량한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것을 사신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팔린 것입니다 주님이 그 육신을 다시 사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사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을 속량했다면 우리 육신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 속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값을 주고 샀다는 뜻입니다. 우리 육신이 죄 아래 팔렸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다시 사셨습니까? 성경을 잘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생각이 어떠한 생각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하면 자기 육신이 천국에 간다는 생각까지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사실 진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한번 죽는 것이 정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썩어 없어진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은 죄 아래 팔려 그렇게 죽고 썩어 없어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독교신학개론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를 가지고 육신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이 죄 아래 팔렸다고 하는데 그 육신이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부활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단에게 팔렸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다시 사셨습니까?

그것을 성경에서 속량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생명에 대해서 다시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것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그 죽을 생명을 값을 주고 사신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값을 주고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영의 일에 대해서는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할 예정입니다 이 영의 일을 모르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무엇이 구원을 받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죄 아래 팔린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것은 죄에 팔린 육신이 아닙니다.

죄에 팔린 것은 이제 팔린 그대로 두어서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팔리게 두셨고 이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값으로 주고 사셨는데 무엇을 사셨는가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값을 주고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이 아닙니다.

그 육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자기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 팔린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었다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는 성도만이 영의 생명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고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모르니까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맹목적으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습니다. 모두가 사망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5:56절을 보겠습니다. (284)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 아래 있습니다.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죄 아래 팔린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면 반드시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라 해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법을 마음대로 바꾸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반포하셨습니다. 법을 반포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 법을 지키시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이 죄라는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지면 반드시 사망을 당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를 지면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까?

그 이유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지고 사망을 당해야 하는 우리 육신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부터가 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반포하신 법이라 해도 그것을 어겨가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법으로 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생 모두는 죄 아래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의 비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쏘는 것을 받아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육신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망을 당하게 두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주셨습니까?

바로 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육으로 난 그것이 변하는 것으로 알고 불교인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이 변한다는 것은 불교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 아래 있습니다.

그것은 육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은 어떻게 해도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육이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사망의 쏘는 것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육신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불교와 기독교가 무엇이 다릅니다. 결국에는 자기들이 이야기를 하는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갑니까? 불교인은 해탈의 경지에 올라서 극락에 간다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주님께서 자기들의 육체를 속량해 주셔서 그 육체로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언 하였습니다.

법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도 죄 아래 있고 헬라인도 죄 아래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했다는 말씀은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사망을 당하는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이렇게 강조를 하면서 말씀을 드려도 영의 일이라는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성령으로 난 영이 그 안에 없다보니까 불교의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신은 어떻게 해도 육신입니다

죄 아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가 있고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있다 해도 모두가 죄 아래 팔렸다는 말씀입니다 가라지만 죄 아래 팔린 것이 아니라 성도도 그 육신은 죄 아래 팔려서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은 성도나 가라지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자기 육체가 꽤나 대단한 것으로 알고 육신에 빠져 결국에는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더 나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더 낫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다 같습니다.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성도도 죄 아래 있고 가라지도 죄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다릅니까? 성도는 그 안에 성령으로 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은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아니 죄를 질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의 형상을 입고 변한다는 말씀입니다

선언입니다

육신은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고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육신이 죄 아래 팔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육신은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 스스로도 고백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신이 죄 아래 팔리지가 않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우리 육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 육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 육신으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 아니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어도 이 육신은 안 됩니다 죄 아래 있는 육신이 어떠한 가를 이제부터 자세하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