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4-2,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윤주만목사 2024. 5. 31. 08:22

요한복음8:18절을 보겠습니다. (15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저 역시도 인터넷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10여 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7년이 지나고 나서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인터넷으로 제가 감동을 받는 것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그 복음을 듣고 감동을 받았으면 자기가 들은 그 복음이 성경과 맞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감동을 받았으면 이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 감동을 받았으면 저에게 물어오는 것이 목사냐는 것이고 또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느냐는 것을 묻습니다.

제가 안수를 안 받았을 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제가 안수를 받은 것에 대해서 잘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니까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 안수를 받은 것이지 저는 지금도 목사에 대해서 별로 그렇게 마음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사가 먼저 되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를 증거 해 주는 것이 이 시대는 목사라는 직분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가 아무리 복음이 있다 해도 그저 한번 읽고 말지 그 복음을 더 이상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고 통화를 하는 사람마다 첫 마디가 목사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목사가 아니면 안 듣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그가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누가 증거를 해 주었습니까? 아무도 사도 바울이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복음을 들을 때 사도 바울이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증거 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사도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접하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영접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귀신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요구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허황됩니까?

바리새인들이 지금 예수님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 하니 네 증거가 참되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에 주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 소경이 되어 있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주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셔도 그것이 참 되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 참되지 않다고 합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은 주님께서 참된 말씀을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잡혀 왔으면 당연히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도리어 나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참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를 보고 있습니다. 그 종교에서 교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그대로 주장하면 참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증거 하실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증거를 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의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때가 거의 없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어느 때에 이스라엘이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습니까? 도리어 그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단이라고 공격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물어오는 것이 똑같습니다. 네가 참을 전하는지를 증거 하라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참을 전한다고 증거를 한다 해도 거짓에 속해 있는, 율법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 말씀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증인이 누구십니까? 사람에게 그리고 세상의 증거를 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증인이 되시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는 복음을 들으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사람에게서 증인을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누가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성령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하지 않으면 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황당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시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육체의 속한 사람은 자기 육체로 증인을 삼으려 하고 있고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는 것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겠습니다, (154)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교제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사적인 교제가 많이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저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서 교회를 세우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교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왜 복음을 전했는가 하면 이방인들이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서 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 보고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일에 자기 수고를 다 해야 합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어떻게 시간이 그렇게 많아서 일주일에 설교를 그렇게 많이 하고 있고 또 사람들을 만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일주일에 하루 강의를 하고 또 설교 두 편을 올리고 하는 것도 제게는 너무 버겁기만 합니다. 일주일에서 거의 4일은 꼬박 설교를 작성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꼬박 강의 준비를 하고 있고 또 그런 저런 글을 쓰고 성경을 보다보면 정말 시간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역시도 많은 시간을 성경을 보면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말씀을 계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다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는 이 복음을 성경에서 깨닫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물론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니까 여러 지방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정말 시간을 아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인간적인 교제를 할 시간도 없었고 자기가 있던 곳에서 복음이 어느 정도 전해지면 바로 떠나서 또 다른 지방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정말 이 복음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은 너무 시간이 많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종교 활동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1:11절을 보겠습니다. (239)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심히 보고 싶어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인 아들을 보고 믿어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보기를 심히 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보고 싶어 했습니까?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기 위해서 심히 보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은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12장에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은사는 말씀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라고 하니까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런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은사가 아니라 종교적인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은사는 모르고 종교적인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고 그런 표적들을 보면서 마치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7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라는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광야에서 목이 말랐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마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실 때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시고 난 후에 이 물을 먹는 자는 목이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입니다

그것이 신령한 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먹는 그런 물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할 수 있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신령한 은사라는 말씀입니다.

은사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여러 가지 은사가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은사는 그런 은사가 아니라 영생을 하는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는 신령한 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 은사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입니다

그것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령한 은사를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보려고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서 그들이 영생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이 은사를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은사를 너무 모르고 그저 겉으로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인 샤머니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그 은사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은사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은사라고 하는 그 모든 것은 은사가 아니라 실상은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행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꽤나 신령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생명을 얻습니다.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주님이 신령한 은사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 은사를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샤머니즘을 좇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나눠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빤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도 얻지 못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무엇 합니까?

성경은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으려 고는 하지 않고 자기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야 그것이 신령한 것이지 영생도 얻지 못하는 것을 받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가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있어 신령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이상한 행위들을 하면서 그것으로 표적을 삼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육적인 것이지 신령한 것이 아닙니다. 육과 영을 분별을 못하니까 무엇이 신령한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를 나눠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로마서를 보고도 이 은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로마에 가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면서 도리어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은사가 없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2:31절을 보겠습니다. (278)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로마서는 무슨 신령한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더욱 큰 은사에 대해서는 이미 그리스도편지에 설교 말씀으로 올려 드렸습니다. 이 더욱 큰 은사가 무엇이라는 것은 아카데미 강의에서도 고린도전서13장을 말씀했습니다.

더욱 큰 은사입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모든 것이 다 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입에 바른 말을 참 잘 합니다. 자기가 눈물을 흘려 가면서 그렇게 사랑을 고백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이미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이 지구는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또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모두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노아 시대에 이미 세상은 물로 심판을 받았어야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습니까? 아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서 나눠 주려고 하는 무슨 신령한 은사는 그런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로마에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려 고는 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했다 해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해도 주님이 사랑하시지 않으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더 큰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받아야 제일 좋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이 은사를 받기 위해서 사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은사를 받기 위해서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들을 망하게 하는 것을 받으려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은사라고 하는 것은 실상은 은사가 아니라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령해야 합니다.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신령하지 않습니다. 물론 율법을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면 그것도 신령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신령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직까지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신령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알고 믿어서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해 주셔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이 신령한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베드로전서2:2절을 보겠습니다. (378)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령한 젖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는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신령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신령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이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이 거듭남에 대해서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듭나서 구원을 받는 그것이 신령한 것이지 그 외에 다른 것은 신령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는 사람 중에서 매일 구원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그것은 이 성경을 보고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는 자기가 사는 동안에 이 구원에 대한 말씀만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구원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무엇에 대해서 기록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서 듣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야 받을 수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오직 예수를 전하면 도리어 싫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지 나사로면 어떻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면 어떻고, 강도짓을 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거듭남이라는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이 말씀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듭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거듭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두 번 낳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변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씨로 한번 낳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만이 하늘로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 영의 비밀을 모르고 자기가 그저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나눠주려고 합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신령한 젖을 나눠주려고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심히 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신령한 것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령한 자라야 이 신령한 것을 나눠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의 행위를 하는 육체에 빠져 있습니다.

시편40:2절을 보겠습니다. (831)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말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이 성경을 깨닫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소경과 같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본다고 하지만 그 이성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웅덩이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도리어 구덩이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보았습니까?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고 있다고 하지만 소경이 되어서 구덩이에 빠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만 소경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왜 소경이라고 하셨는가 하면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소경이 되어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못 보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습니다.

소경이 달리 소경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소경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주의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뼛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을 보면 너무도 쉽게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었는가 하면 그들의 지혜가 우리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태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신학의 기초를 어떻게 삼고 있는가 하면 도덕법이 살아 있다는 것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왜 이방의 교회가 율법을 지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그렇게 율법을 폐하라는 말씀이 많이 있어도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그 웅덩이에서 우리 스스로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성경을 자기 스스로 보면 100% 다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율법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에서 사람의 지혜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건져 주셨습니다.

거기서 끌어 올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려 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 모두는 다 거기에 빠져서 스스로는 절대 못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끌어내어서 견고케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둬서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서 견고케 해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렇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신령한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전서1:8절을 보겠습니다. (263)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견고케 하십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책망하시는데 성령의 책망을 받지 않게 끝까지 견고케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책망을 받지 않으려면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많은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과는 거꾸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을 누가 악하다고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이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악한 일이고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런 말씀들이 보이지가 않는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책망합니다.

그러나 그 책망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서 그들을 견고케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서 그들을 견고케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율법과 복음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모든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신령한 은사를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 율법에서 건져 내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신령한 은사를 나눠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