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4-1,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윤주만목사 2024. 5. 31. 08:21

로마서1:8절을 보겠습니다. (239)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은혜와 평강입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온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위로 보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말씀의 기초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기초가 이사야 96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두고 있는 성도는 로마서에서 아니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같이 기록을 했다 해도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이라고 했다 해도 그 말씀을 생각하게 되면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 오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보시면 됩니다. 특히 내세의 일과 하나님과 그 외에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은 성경에서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가를 알고 그것을 기초로 두고서 성경을 보면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 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마치 서로 다른 위를 가지신 두 분이 은혜와 평강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을 한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으면 내가 받는 은혜와 평강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무엇인가 찜찜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성경의 감동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떻게 믿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자 하는 인물이 아니라 믿어야 하고 믿는 성도에게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를 주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강을 주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홀로 한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에 따라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입니다

그것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아들이 있는데 그가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영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누가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만 주시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해 주셨지만 그 말씀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는 그들에게 그런 말씀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주님이 자기들에게 오시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주님이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썼더라도 아니 아들이라고 말씀을 했더라도 이사야에서 한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위의 두 분에게서 은혜와 평강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 역시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위의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록 로마서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했어도 그것은 이사야의 말씀대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임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교회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이 시대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으니까 그들이 성경을 보고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다른 신을 만들어서 거의 1700년 동안 믿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해를 해야 하겠지만 영의 일을 이해하려고 하다가는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는 믿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가 하면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믿음에 대해서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고 또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나는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릅니까?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아브라함을 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까?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를 그의 자손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의 자손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음을 모르고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3:2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로는 하고 있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가 배제가 되어 있는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너희 믿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이 시대와 같이 종교적인 활동을 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십일조를 내고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렸습니까?

그것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정말 이 시대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의 행위를 하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있으면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기독교가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되어서 믿었던 것과 같이 지금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듣고 믿음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안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국어를 모릅니까?

아니 글이 이해가 안 됩니까? 국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어떠한 말씀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하면 한 가지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믿음입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다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가 믿는다고 해도 갈라디아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만든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을 해도 성경은 그들에게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 행위가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는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마귀의 자식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죽은 자입니다. 그저 종교적으로 내가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율법을 버리는 믿음이 그에게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말씀은 성령으로 난 영이 그의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누구의 믿음을 따르겠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켰고 이방의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믿음을 따를 것인가는 여러분의 자유지만 이스라엘의 믿음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직 믿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갈라디아에서 말씀하고 있는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은 율법의 행위가 포함이 되지 않은 믿음 그 자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에게 없다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9절을 보겠습니다. (377)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너희 믿음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믿음의 결국 곧 영혼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영혼 구원을 받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반드시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믿음 하나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과연 구원을 받았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던 그들이 아니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한 그들을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저주를 하셨습니다.

왜 저주를 하셨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안 믿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렇고 이방인이 보아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안 믿는다는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제발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제사법과 시민법만 율법입니까? 성경은 이 시대 도덕법이라고 하는 십계명도 율법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율법이 아닙니까?

야고보서에서는 율법을 범한 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나누지 않고 있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나누어서 그것을 신학이라는 곳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솔직히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제사법과 시민법에 속한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사법 시민법이 폐하여졌고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는 그들이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 안에서 축복을 받는 자와 저주를 받는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교회 안에는 천국의 축복을 받는 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가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믿음입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그것은 거짓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야고보서 강해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믿는다고 해서 다 영혼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이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이 두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버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율법의 행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를 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너희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너희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자기 양심에 따라 살고 있는 사람입니까?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마태복음2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저주를 받을 자들아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은 믿는다고 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실상은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누가 많다고 생각합니까? 양은 지극히 적고 염소는 바다 모래 같이 많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교회 안에서는 축복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축복과 저주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 해당이 되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교회에서는 축복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짓을 해도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안 지킬 수 있습니까?

나만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말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미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만 잘 믿을 수 있습니까? 이미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고 그 날에 11시에 종교적인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어떻게 잘 믿을 수 있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비밀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그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누가 십일조를 하고, 누가 주일이라는 날을 지켰고, 누가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렸습니까? 그리고 누가 오늘날과 같은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까?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을 계속해서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우리 성도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그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73:28절을 보겠습니다. (855)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믿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대상을 믿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대상을 믿을 때는 그의 행사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교회에서 종교적인 생활을 했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그런 것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전파가 되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전파가 된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이 인간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준 것을 제가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번역이 되었고 비록 다른 복음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성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우리에게 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지켰고 또 종교의 형식에 맞추어서 여러 가지 행위를 했고 더구나 성경에도 없는 성탄절과 추수감사절을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율법입니다

삼가 지키는 모든 것은 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간적인 수고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씀을 드려서 그들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믿었던 기독교라는 종교에 열심을 내서 그것을 전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종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313년 이후로는 기독교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종교가 유럽에서 전파가 되었다가 미국과 캐나다의 신대륙을 유럽인들이 점령하고 난 이후에 남미와 그리고 아시아로 전파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역시 그들과 같은 열심으로 자기들의 종교를 전하느라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주의 모든 행사를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주의 모든 행사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영혼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그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입니다

수많은 교회가 각각 자기들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기독교를 전하고 있고, 천주교를 전하고 있고, 통일교를 전하고 있고, 여호와증인을 전하고 있고, 안식일 교회를 전하고 있고, 구원파를 전하고 있고, 다락방을 전하고 있고, 신천지를 전하고 있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전하는 교회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그대로 따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심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를 받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전파됩니다.

그것은 주의 행사를 믿는 믿음이 전파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를 보면 자기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너희 믿음이 전파가 되었다고 하니까 자기들의 종교적인 믿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나가 결국에는 그것이 악한 일이 되어서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행사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라 이 믿음이 전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등 이런 교회는 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받은 직분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만든 교회를 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9-10절을 보겠습니다. (23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을 찾아갈 기회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내가 그분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전함으로써 성심껏 섬기고 있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었기 때문에 늘 각처에 있는 교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한 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를 하면서 그 교회가 믿음에 굳세게 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종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기도와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하고 있는 기도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나면 또 다른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수고 했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곳에서는 완전하게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은 상태에서도 또 다른 지방으로 갔습니다.

지금과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은 목사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굳이 다른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미디어가 많이 발달을 해서 굳이 다른 지방으로 갈 필요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입니다

우리나라로 하면 삼국시대 이전입니다

사실 삼국 시대 이전의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사람의 말로 전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과 같이 인쇄술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책도 일일이 다 써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종이의 질이 나쁘다 보니까 성경을 기록해서 그것을 다 가지고 다닌다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가 없습니다.

그저 사람의 말입니다. 조금 나은 것이 있다면 그래도 성경을 두루마리로 가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두루마리로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러한 때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사실 성경에서 다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복음을 전해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믿음을 갖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도 믿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까?

이제 교회에 나와서 설교 몇 편을 들었다고 그 사람이 믿음이 있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불과 4-5년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때 전했던 복음이 얼마나 부족했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 복음을 알고 있다고 했던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복음을 다 깨닫고 나서 이방에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믿음이 있다 할 정도로 복음을 들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쉬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나 왔지만 사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된 이방의 교회들은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한 것을 다 안다는 것이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이방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를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이방에 사도로 직분을 받아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전한 그곳을 위해서 늘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기도를 했는가 하면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이미 성경과는 많이 어긋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가르치는 교회도 없고 종교적인 율법만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와 지금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편합니다.

그 자유가 좋은 쪽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쁜 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교회는 서로 경쟁을 하는 곳이 되었고 서로 자기의 세력을 키우는데 급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시장 경제에서 마케팅을 잘하는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고 그렇지 못한 교회는 정체가 되고 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각기 자기들의 교회가 따로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름도 짓고, 자기들이 건물도 짓고 자기들끼리의 종교적인 모임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치 친목 단체가 되어서 그것을 오래 동안 유지를 하고 있고 그리고 모든 생활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 교회가 가는 대로 그저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만 이렇게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교회에 자기가 다시 찾아갈 수 있게 기도를 했고 그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서신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종교는 있어도 교회는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아들 복음 안에서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앞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그의 아들의 복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남겨 놓은 책들을 보아도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사실 우리가 기독교라는 교회사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을 지금 이 시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 없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최소한 목사라고 한다면 내가 풀고 있는 이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걸리는 것이 있다면 절대로 전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성경을 풀어서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입니다. 더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실 때에 복음을 들은 사도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사도 바울을 사도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환상의 목소리로 사도 바울에게 말씀을 하시고 자기 안에 이 복음이 계시가 됨으로 해서 자기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십니다.

내가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갈라디아서에서도 말씀을 보아서 알고 있지만 사도 바울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실제 주님이 살아 계실 때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도리어 복음에 반대를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의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라고 하고 있고 야고보는 주의 형제로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과 교제를 한 후에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그는 자기의 증인을 말할 때 베드로나 야고보를 말하지 않고 나의 증인이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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