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5-1,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윤주만목사 2024. 6. 1. 07:42

로마서1:12절을 보겠습니다. (239)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신령한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사도 바울은 정말 이 일에 얼마나 자기가 수고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가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제 신령한 은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성경은 다 이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성경말씀을 듣고 또 보고 있는 이유는 이 복음을 알고 믿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신령한 은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이 신령한 은사를 주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로마서를 보면서 아니 모든 성경을 보면서 이것을 얻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교회에 나와서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고 자기들이 주고 있는 물세례를 받고, 직분을 받고, 성찬식을 하고, 종교 의식에 따르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 세상의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지혜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영의 일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면 행위를 잘하는 사람이 될까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았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기를 원하는 것을 받고 나서 행위를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직 경험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 이 신령한 은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받은 성도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맛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계속해서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맛있는 것을 먹은 사람은 그것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두 가지 식물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율법의 행위를 하라고 하는 진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생명의 떡입니다.

어느 것이 맛있겠습니까?

맛있는 것을 떠나 영의 일을 알아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 단단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기 쉬운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것이 사람의 이성에 쉽게 이해가 되면 누구나 그것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깨달아져야 그것이 맛있어 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것을 먹고 싶어도 먹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신령한 것을 먹지 못하는가 하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 시대는 이 신령한 것을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을 어느 정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들어왔던 것과는 정 반대로 성경을 풀어서 말씀을 하다보니까 지식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도 그것을 먹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성경을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 하고 이해는 하고 있지만 이것을 먹어서 소화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고 그 정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아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내가 믿는다고 해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깨달았으면 이제 다른복음을 배척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해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성경에서 알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안에서 믿음이 역사를 하면 성도는 그것을 더욱 견고케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버리고 믿음으로 견고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믿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받아야 믿음에 견고케 될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우상의 제물만 먹이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견고해질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 견고해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믿음에 견고해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믿음에 견고해지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견고케 하고 있습니다.

왜 견고케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의 믿음과 로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를 얻으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믿음으로 격려를 받고자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로마에 있는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같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교회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종교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로 같아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마음으로 믿는 그 믿음으로 같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사람을 이해시키는데 쉽겠습니까?

행위는 보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다 식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서로 성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으로 같아지고 있는가 하면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같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와 나의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너희와 나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믿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같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9절을 보겠습니다. (304)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너희와 나의 믿음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방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방에 있는 성도들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다 같은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와 나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그렇게 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가 어떠한 일을 했든지 사도 바울은 너희와 나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목사입니까? 그리고 듣는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안하고 듣고 믿는 성도입니까? 그럴지라도 이 두 사람이 믿음이 같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가르친다 해도 믿음이 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듣는 자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믿음으로 견고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견고해졌을지라도 피차 믿음을 통해서 서로 격려를 받으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라고 더 좋습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누가 더 좋고 누구는 조금 더 나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런 질량으로 따져서는 안 됩니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입니다. 그러니까 있으면 있고 없으면 아예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서 그들을 견고케 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듣고 믿었다 해도 피차 같은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왜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피차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어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의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왜 믿음입니까?

믿음이 아니고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있다는 것은 율법을 버린다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믿음을 말씀할 때는 율법의 행위가 완전히 배제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성경을 보면서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이 둘을 서로 비교를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나라도 이중국적을 갖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 해도 그가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우리나라를 자주 다니고 또 우리나라에 태어났다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미국에서 거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아주 가끔 한 번씩 오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가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이중 국적이 불허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믿음이 있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서 너희를 견고케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바리새인으로 살았던 모든 것을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율법을 지켰던 그것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의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천국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이 가는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하고 있고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천국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같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차 안위를 얻으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나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나 서로 안위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서 그들이 믿음에 견고케 됨으로 해서 사도 바울이나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나 안위함을 얻으려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13절을 보겠습니다. (239)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가려고 여러 번 마음을 먹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혀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열매를 거둔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것을 좀 거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듣고 믿게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시대적인 상황과 그리고 그때의 교회와 지금의 교회를 생각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복음을 가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하기 위해서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을 향한 열심과 지금 이 시대 자기들이 선교를 한다고 하는 그 열심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이방에 복음을 전했고 이 시대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서방에 의해서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은 다른 복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받은 것은 복음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되어서 지금 또 그들과 같이 열심을 내면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고자 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진심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을 해서 교통과 미디어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에 복음이 처음 전파가 되었던 때는 순전히 사도 바울이 발로 다녔던 때입니다. 물론 먼 곳을 갈 때는 배를 타고 다녔지만 지금부터 2000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 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저기 평양에 있는 사람이 부산이나 광주를 가려고 하면 보통의 마음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별로 그렇게 왕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복음을 전할 때 그 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그런 거리를 걸어서 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때도 아닙니다. 헬라어나 로마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지 않았고 설령 그렇다 해도 복음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성경의 시대적 배경도 우리가 무시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사도 바울이나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솔직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복음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는 복음이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하고 또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기독교라는 종교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복음을 위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이방에서 복음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다 사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어느 곳이라도 가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복음을 전했지만 이 시대는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렇게 원했습니까?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했지만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와 같이 교통이 편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지만 강도의 위협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치안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치안 상태가 굉장히 나빴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지방으로 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같은 나라도 아니고 다른 나라입니다. 물론 로마라는 나라가 다 점령을 하고 있었지만 어찌 되었던 다른 나라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할 수 있는 한 갔습니다.

왜 갔는가 하면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어떤 열매입니까? 교회 안에서 이 시대 육적으로 교인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을 보고 열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열매가 아니라 영생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1:43절을 보겠습니다. (3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교인 하나를 데리고 오는 것을 가지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에 교인 하나를 데려오는 것은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천만 명입니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교회에 다닌다 해도 그것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홍수입니다.

그때에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노아 한 사람만이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까? 어쩌면 노아 때보다 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소경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그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성도라고 하면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라고 자부를 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고 늘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빼앗겼는가 하면 주님이 오셨는데도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육적으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는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는 회개를 하면서 밤을 새워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자기가 어떤 죄를 지고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2:38절을 보겠습니다. (190)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회개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회개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개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회개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포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회개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 안에 오시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자가 되어서 그 안에 하늘의 생명이 탄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의 탄생부터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 안에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것조차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고 아니 그 영의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 나와 있으면 자기가 열매를 맺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열매가 전도를 해서 교회 안에 교인 하나를 더 얻는 것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열매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되어야 열매를 맺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예레미야 시대에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면서도 단 한 사람도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이런 성경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우리나라에 천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지만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인의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천만이면 어떻고 이천만이면 어떻습니까? 그것은 기독교라는 교인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나오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열매를 맺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바리새인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가지고 회개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진리를 모르고 악한 행위를 한 자신을 바로 알고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하라고 하니까 더욱 악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서 죄사함을 받아 성령을 받아야 회개를 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야 열매를 맺은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누가 성령을 받았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안 보입니까? 성령을 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안 지킵니까?

믿음으로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수많은 율법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계속해서 세뇌를 당하다보니까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이 와야 내 안에 영이 탄생이 됩니다. 영이 탄생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사도 바울은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영이 탄생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령을 어떻게 받는지도 모르고 있고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반드시 탄생이 되어야 하는 열매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이 여러분에게 없으면 여러분은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보이는 열매를 맺는 것은 좋아하고 있지만 영의 열매를 맺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보이는 열매가 풍성하게 보인다 해도 성령이 그 안에 오시지 않으면 그는 죽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열매가 아니라 그 나라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보이는 열매가 많다 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기독교는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자기에게 열매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4:28절을 보겠습니다. (59)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우리는 땅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씨를 뿌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는가 하면 주님이 뿌려 주셔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열매를 우리의 능력으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주셔서 우리에게 믿음이 있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점점 자라서 충실한 곡식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씨가 어떻게 우리 안에서 자라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역사를 하시는 성도들에게 저절로 자라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땅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서 무슨 신령한 것을 나누어 주면 그들이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임하고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면 결국에는 모두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고 거의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입니다

땅이 노력을 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땅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열매는 땅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선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조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사도 바울과 같이 직분을 받은 자로부터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율법은 다른 복음입니다

그 율법을 행하면서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서는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이 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자유의지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섭리에 따라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식이 있습니까?

아니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성경에서 복음이 보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셔서 전하게 하는 자가 있습니다. 또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든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모든 것을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이런 영의 일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보고 그 안에서 지혜를 얻는다 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열매가 어떻게 맺어지는 가를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지 땅이 어떠한 노력을 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

진리의 영이 우리에게 오셔야지만 우리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령이 오셔서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은 낳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역사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열매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마치 열매를 맺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눈으로 보이고 사람의 지식으로 알고 있는 그런 열매는 영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복음을 전했습니까?

이 복음을 듣고 믿어야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신 성도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이 천국의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영이 깨어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못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 거지와 같이 살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분복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럴지라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next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