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3-2,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윤주만목사 2024. 5. 30. 08:38

마태복음1:21절을 보겠습니다. (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3-1과 연결되는 한 문장입니다)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어떤 직분인가 하면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케 하려고 사도로서 직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인가 하면 아들이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하면 우리 인생 모두가 죄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 죽을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천국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믿어 의롭다 함을 얻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사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로와 집사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에 담겨져 있는 것이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께서 그 이름에 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이름을 알아 전하는 자로 사도 바울이 직분을 받아 그 시대에 성경을 기록했고 우리가 그 성경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자입니다

성경을 왜 보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문자를 어느 정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정죄에 직분을 행하면서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기록한 어느 선지자도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오해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방인들이 믿어 순종케 하려고 합니다.

순종한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기 마시기 바랍니다. 정죄의 직분에 순종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복음에 순종해서 믿어 구원을 받는 것에 있어서 순종하는 것이지 정죄의 직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무엇에 순종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자기 육체로 무엇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 순종케 하려고 한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순종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면 그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서 순종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어 순종케 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순종은 사는 것에 대한 순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정죄의 직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을 얻는 순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이 있고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하면 반드시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습니다. 직분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많은 직분을 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두 가지 직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복음에 순종하느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어느 직분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서 믿어 순종케 하는 직분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면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그림자로 있던 복음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밝히 보여 졌지만 이 성경을 보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안 믿고 있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위를 보면 전혀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49:6절을 보겠습니다. (1028)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방의 빛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이방인들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후에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신약 성경은 물론 이스라엘에게도 해당이 되지만 우리 이방인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록이 되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에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것을 누구를 통해서 하셨는가 하면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바로 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게 성경을 기록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지식으로 이 성경을 기록했습니까?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 바울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조차도 받아들이지 않고 마치 사도 바울 개인이 기록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미 선지자들로 성경에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성경을 보고 사도 바울이 감동을 받아 신약 성경을 기록한 것이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뚝딱해서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성경은 구약에 있는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만을 위해서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이미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믿어 순종케 하려고 이미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 혼자서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케 하려고 사도로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직분을 받아 기록한 성경을 보고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 혼자서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특히 이방인들을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보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죄의 직분으로 다 죽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죽게 하는 그 정죄의 직분을 버리지 못하고 이 시대도 역시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방의 빛입니다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이방인들에게 빛이 비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이방에 빛을 비춰주시고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있고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믿어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이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이 성경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이방인들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했지만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마음 놓고 볼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쇄술이 발달한 것도 불과 4-500년 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있어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그 일을 하느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을 하고 있는 사람은 복음을 믿고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떻게 영생을 주시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주시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성경에 그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복음을 믿기보다는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을 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6절을 보겠습니다. (239)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 들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외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 보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 중에서 로마에 있는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주님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셨다고 하니까 육체의 사람을 부르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육체의 사람을 부르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지만 우리 육체는 사단의 것입니다.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그것을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셨다고 하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육체를 부르신 것으로 알고 이 육체를 가지고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내려고 하다보니까 당연히 교회 안에서 행위가 강조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작은 말씀하나가 결국에는 율법주의로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그리스도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것을 가지셔서 무엇 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성경은 그런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영의 비밀을 몰라서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육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 뿐 아니라 육체의 경건의 모양을 내려고 성화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육체는 썩습니다.

그것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에서부터 이 육체를 다시 살리는 것으로 배우다 보니까 부활에 대해서 모르고 주님의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5절을 보겠습니다. (258)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이런 자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도 어렵습니다. 아직까지 설교로 올려 드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작성은 다 했습니다. 나중에 설교로 이 말씀은 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누구의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음행하는 자입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한 자입니다. 이것은 설교로 말씀을 하겠습니다. 이런 자를 어떻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사람의 육신을 죽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의 육신은 멸하게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무엇을 내어 주었습니까? 육신을 멸하려고 그 육신을 내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신은 사단의 것입니다. 이미 죄를 진 이 육신은 사단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아담이 범죄를 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 신체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신체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담에게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체는 썩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썩는 것을 다시 살려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사단의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사단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죽을 것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사도 바울이 분명히 이런 자는 사단에게 내어 주고 그 육신을 멸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육신은 사단에게 내어 주었지만 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이 영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영 그 자체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 영이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은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단의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의 씨인 우리 육체는 사단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생명,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영의 비밀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이 영의 탄생에 대해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두 번 나는 것입니다

육체로 한번 낳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한번 또 낳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나는 안개와 같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성령으로 난 내가 부활을 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하늘의 씨가 우리에게 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로서 난 영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그리스도의 것이지 아담으로부터 난 육체가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영의 일을 모르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이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신체의 부활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는 사단의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살려서 부활을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샤머니즘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고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가져다가 무엇 하시겠습니까? 죄인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죄인은 사단에게 내어 주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주님의 날에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것입니다

그것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깨끗하게 빨아도 안 됩니다. 그것은 걸레로 쓰던 것을 빨아서 수건으로 쓰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늘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 생명은 깨끗한 생명입니다.

사단의 것을 가지고 잘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 음행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것을 믿음으로 내 안에 거하게 해야 하는데 이 시대 교회는 사단의 것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다가 주님의 것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사단의 것은 내어 주었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20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이 말씀을 그저 문자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지 실제로 죽지를 않고 있습니다. 죽지 않으니까 사단의 것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제 죽은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듣기에 좋은 감성적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말로만 죽었다고 하고 실제로는 살아서 사단의 것이 되어서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교회의 일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교인들이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을 하고도 통한히 여기지를 않고 도리어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육체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체를 사단에게 내어 주어서 죽은 성도는 절대로 음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러한 음행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담의 씨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씨가 천국에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면서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생명이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 그 생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면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 되어서 이제는 단단한 영의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했어도 이 영의 말씀을 들어 보지를 않아서 아직까지 초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육체의 행위 초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단단한 식물입니다. 영의 일을 믿으려면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아서 먹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면서 초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가신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육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깨어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육체를 가지고 주님의 것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이 율법주의에 그리고 성화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것을 깨끗하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두가 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육체 가운데 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것인 우리 성도는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 주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로마서1:7절을 보겠습니다. (239)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백성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거룩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죄로 인하여 사단에게 내어 준 그 육체를 성도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육체입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거하시니까 성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우리의 육체는 성도가 아닙니다.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성도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 육체를 가지고 스스로 거룩한 백성이 되려고 하다가 그것이 음행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문자에 있으니까 내가 사랑하심을 입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는 정말 명확하게 내 안에서 확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16:27절을 보겠습니다. (176)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누가 사랑하심을 입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로서 온 줄로 내 안에서 믿어져야 사랑하심을 입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직분에 대해서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죄의 직분이냐 의의 직분이냐를 말씀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고 외식이 나타나고 있는 사람은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의의 직분을 맡은 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리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입니다. 이 둘이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에 있는 사람은 율법의 의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강해를 하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로서 온 줄을 믿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정죄의 직분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룩한 백성입니다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을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절대로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육체를 보고 거룩한 백성이 되려하고 있습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성도로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성도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르는 그런 성도가 아니라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26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말씀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각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면 거의 다 이 말씀을 시작과 끝에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쫓아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로마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더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너무 평화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핍박이 많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받는 것이 아니라 영이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모든 것을 육적으로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가 조금이라도 고난이 오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받았습니다.

이제 평강이 와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좇아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평강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걱정이나 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천국으로 구원을 받는데 있어 아무 걱정이나 탈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입니다

율법은 아무리 잘 지켜도 늘 걱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킨 욥을 통해서도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욥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지만 그러나 늘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과 같은 사람도 그런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성경에 있는 율법을 흠이 없이 지킨 것 같아도 늘 두려워하며 무서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마음에 평강이 올 수 있고 또 두려움이 자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이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으라고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대 교회가 지나가지도 전에 이 복음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동일한 말씀으로 이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고 성령의 감동으로 믿어 구원을 받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next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