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2:1-7절을 보면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는 성경을 풀 수도 없고 그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믿는 믿음의 역사가 아니라 그저 종교성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거대해졌습니다. 이제는 그 종교의 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교회와 같이 사도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핍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종교인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편한 시대입니다
굳이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아니 굳이 반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미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부터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아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까지도 그 정도는 지식의 수준이기 때문에 다 알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그저 종교는 하나의 필요성에 의해서 자기들의 신앙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참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아는 이성적 지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 믿음으로 내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시대는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시스템화가 되어서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 이 시대 거대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굳이 따지도 묻지도 않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자기가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너무도 좋겠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잘 느끼고 있습니다. 이미 종교는 거대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어 있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두꺼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분명히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고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성경을 보고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자기에게 이로운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종교는 그런 그들을 자기들이 끌고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피조물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진토라는 것을 아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분명히 예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그 나라에서 받을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있고 정말 한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바라는 마음이 제 안에서 크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합니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만 해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믿는다고 하는 것인 줄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목적입니다
상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성경을 보더라도 한 말씀이라도 상고를 하는 마음으로 아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성경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에게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영생도 모르면서 영생을 얻는 자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성경을 주신 목적입니다
가장 우선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종교인으로서 평생을 그 안에서 살다가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복음을 듣고 깨닫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가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 씨가 좋은 땅에 뿌려져 그러니까 우리에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그런 성도에게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게 되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정말 얼마만큼의 증거를 받느냐에 따라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성경에서 그런 것을 말씀을 하면 도리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시편142편입니다
다윗의 시편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다윗 개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늘 말씀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고 그가 쓴 시편은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를 다윗이 예언으로 시편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다윗이 기록한 시편이지만 자기 개인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는 일을 예언을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 길을 지금 다윗이 시편을 통해서 예언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오셔서 이 말씀 그대로 구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5: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5장입니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을 하셨는가를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시편142편의 말씀을 인용을 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아주 성경을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은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보고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5장입니다
5절과 6절의 말씀입니다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했다는 것을 각주로 달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7절의 말씀에는 각주를 안달아 놓았습니다.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아니 초기 종교가 태동이 되면서 이렇게 자기들이 각주를 달아 놓은 것 외에는 인용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것을 일반 교인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보는 성경입니까?
저는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해서 아니 종교에 의해서 자기들이 각주를 달아 놓고 성경을 편찬을 해 놓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처음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기록한 그대로 편찬을 한 것이 아니라 종교에 의해서 편찬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우리 성도는 늘 지혜를 구하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기를 힘써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편142편입니다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서로 인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성도는 인용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5장에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초를 든든히 세우고 있다면 시편142편을 그리고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면서 서로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고 도리어 우리가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분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오셔서 이렇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영으로 살리시고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얻으셨고 우리가 이 구원을 보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역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근원입니다
모형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구원을 받으신 것이 우리 인생들에게는 구원의 모형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해서 더 많은 씨가 우리 안에서 결실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저 그냥 종교 안에서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습니까?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우리가 성경을 보더라도 그 자체를 차단하는 성경을 편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개인입니까?
물론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할 때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 종교화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영어 성경도 이렇게 각주를 달아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성경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순종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순종을 하십니까? 우리는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순종을 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영광의 부활을 하실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말씀을 서로 인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아니 이런 말씀들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진짜 믿음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까?
인생 다윗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 시편을 인생 다윗의 말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히브리서5:8절을 보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들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고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을 아들과 같이 생각을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아들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모르니까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라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시편에서는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입니다
1절은 7절을 인용을 하고 있고 2절은 8절을 인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을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종교는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중요한 말씀을 인용을 하지 않아서 시편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연약할 때에 주님은 내 갈 길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잡으려고 내가 가는 길에 덫을 놓았습니다.”
누가복음11:54절을 보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
시편142편입니다
이 말씀이 다윗이라는 인생 개인의 말씀으로 생각이 됩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니 142편 전체 말씀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생으로 오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길을 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길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주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 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 길을 아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을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시편에서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사람들은 나를 잡으려고 내가 가는 길에 덫을 놓았습니다. 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자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 가지 일로 힐문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생 다윗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자기들이 인용을 한 것 외에는 성경을 인용하지 못하게 그들의 교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아는 것만 각주를 달아 놓음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마태복음26:56절을 보면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태복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글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각주를 달아 놓지 않고 있는 것이 종교에서 편찬한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제가 성경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각주를 달아 놓고 인용을 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말씀은 누가 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종교에서 편찬한 성경에서는 인용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은 시편142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마태복음에서는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142편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윗의 개인의 생에 대한 말씀으로 시편을 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아니 최소한 성경을 가르치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야 하지만 종교가 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증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마태복음8:20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를 받은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제 칠일에 안식에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이고 그 말씀에서 증거를 받는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셔서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입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라고 하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생존 세계에서는 분깃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인생으로 오셔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 분깃을 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루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이 오셨을 때 어떻게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내가 가는 길에 덫을 놓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유대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요한복음5: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이 막으려고 하자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거대하다는 것을 늘 우리는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유대인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하고 있고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핍박을 합니까?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시니까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하신다고 하면서 예수를 핍박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날을 지키는 것 자체가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임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주일입니다 그 두 날이 다릅니까? 정말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날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그리고 그 날에 율법의 행위를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같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날을 지키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다수가 되어 소수인 우리 성도보다 강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고린도전서15:4절을 보면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옥에서
물론 히브리어의 원어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지하 감옥이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142편의 말씀을 처음부터 보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히브리어 헬라어의 단어의 뜻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 감사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씀이고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이 세상에 의인이 있습니까? 성경은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에서는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표현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의인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윗의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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