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910강,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윤주만목사 2022. 6. 14. 06:29

열왕기상19:18-21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하나님입니다

사실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유일하시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서 어느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지만 그 마저도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볼 수 있는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서 그 문자와 언어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그저 언어의 뜻을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입니다 

문자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것 같으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잘 알 수 있고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무리 성경을 보고 공부를 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언어적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입니다 

수명이 참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해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박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예전과 같지 않고 너무 흔한 게 박사입니다. 그 희소성이 적어서 이제는 박사라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사입니다

그리고 나이까지 많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생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아니 인생에 대해서 그 근본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그가 아무리 박사라 해도 배워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지식적으로는 참 많이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할 때는 거침이 없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세상의 기본적인 이치도 모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이치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자기 지식을 자랑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세상의 이치도 모르는 그들이 복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의 지식입니까?

그리고 언어적 능력입니까?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어디서 불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그들이 선생이라고 하고 있고 박사라고 하면서 가르치는 말을 들어보면 정말 저들이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저 어느 문자를 아는 것입니까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 법전을 많이 알아서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생으로서의 기본 가치를 아는가 하는 것에 있어서는 솔직히 말씀을 해서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모든 판사, 검사, 변호사를 무시를 하고 폄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는 것은 제가 직업의 지식을 아는 정도지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연세가 든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거의 애 어른 이라고 밖에 말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지식으로는 경험으로는 많은 것을 안다고 하지만 세상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이치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더구나 종교에 빠져 있으면 그것은 더욱 더 답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옛날의 어르신들과 같이 뒷자리에 앉아 그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중에 한 마디 거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 애 어른이라는 분들이 너무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존경을 합니까

제가 예전의 어르신을 보면 아무리 구차하게 보이는 분이라고 해도 우리가 함부로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면 겉으로는 존경을 표하는 것과 같이 보여도 뒤 돌아서면 다시 보고 싶지도 않고 다시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너무 어르신들을 폄하를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나이도 70이 넘었습니다

우리부모 세대 같으면 이제 거의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때라는 것을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오래 사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이 매너리즘에 빠져 헛소리나 하고 살까하는 것이고 그 전에 죽을 수 있다면 저는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 아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아는 것이 진리를 향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안다고 하는 것을 들어보면 세상의 이치에도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내가 왜 저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고 그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차라리 조용히 설교나 쓰고 싶을 뿐입니다

 

때로 미디어를 봅니다

그래도 혹시 세상의 이치라도 듣고 알 수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보고 있지만 차라리 젊은 사람에게서 듣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참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어쩌면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먼저 내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 말 한마디를 해도 조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헛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그 기초부터 모르니까 자기가 꽤나 잘나고 자기 지식이 마치 전부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에 대한 진리입니다. 그 외에 우리 인생들이 알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다 헛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내가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조심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 자본주의에 깊이 빠져 사람들의 생각까지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본입니다 

제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자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 역시 자본주의 사상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거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초적인 이치에 따르는 지식을 말하는 사람도 없고 어른도 없는 것은 바로 이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재물을 벌어서 잘 사는 것을 제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은 세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부호가 독립 운동을 하고 좋은 일에 돈을 사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본이 엄청났지만 최소한 그것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책에서 보았습니다

 

이치입니다 

그리고 순리입니다. 그것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지금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에 대한 뉴스로 매일 떠들고 있는 것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참혹함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입니다 

분단이 된지 70년이 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것이 젊은 사람들에게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가 든 사람들이 더 심하다는 것을 듣게 되면서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만약에 다시 전쟁이 있다면 그렇게 되지 말라고 누가 장담을 하겠습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솔직히 전쟁이 나서 죽는다 해도 저는 아무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자기 자손들을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도 단순한 이치도 모르는 그들이 박사라고 떠들고 있는 것을 들으면서 그리고 종교에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그들이 애민의 연민의 마음이 있는가를 생각을 해 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스로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도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부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부자들이 주님께서 오셨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가 유대인들을 통해서 쉽게 깨달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도 안 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부자가 되어 있는 그것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헛것을 자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8,“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믿음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엘라야입니다

그가 누구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종교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엘리야를 모를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의 설교 가운데서도 엘리야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표적을 우리가 충분히 보고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다음에 사사들을 세우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을 세우시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가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아합 왕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타락한 왕 중에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은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고 그 교회가 타락을 하니까 어떻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세벨이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타락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세벨을 통해서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세벨이 아합 왕의 부인이 되고 나서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레위인이 다 도망을 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알을 섬기는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이제 엘리야가 죽을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5절에서17절까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을 세웁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세웁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저 역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세상의 초등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입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더구나 숫자는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숫자에서 그 문자에서 뜻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숫자에서는 더욱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숫자를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비유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칠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라고 보통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칠이라는 숫자가 기록이 된 것을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칠천이라고 말씀을 했다고 해서 마치 꼭 칠천이라는 딱 맞는 숫자를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스바냐3: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입니다 

엘리야를 통해서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칠천이라는 숫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다 뜻이 있고 하나님께서 남기신 자가 누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입니다 

그저 이런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남은 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남기신 자가 누구인가를 우리는 성경에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3:2절을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입니다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은 자가 누구인가를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치 않습니다.

누가 악을 행하는 자들입니까?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는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렇게 남은 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악을 행치 아니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누가 남겨 두셨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식이 있어서 아니 진리를 깨달아서 스스로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시대도 이렇게 남은 자를 남겨 두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남은 자입니까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내가 그 칠천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내가 칠천 안에 있다고 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충분한 근거를 찾아서 내가 남은 자라는 증거를 받아야 남은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악입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수도 없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 악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의 단어의 뜻으로 악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남은 자는 이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다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엘리야 시대에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은 자입니다

첫 번째가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악을 행하지 않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우리 성도를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를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저 살다가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4절을 보면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거짓입니다 

하나님께서 칠천 인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거짓 형제입니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가만히 들어와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은 그들을 죄의 종으로 삼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들은 죄의 종이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온갖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죄의 종이 된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습니다

남겨 두셨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저 종교 안에 있는 자기를 보고 남겨 두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남겨 둔 자인가를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거짓을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남겨 둔 자라고 오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그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을 하고 있고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기가 남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서 분명히 이 남은 자가 되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하면서 남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합니다

그리고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짓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이성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복음을 전해서 듣고 믿게 하기 위해서는 마치 여자가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남은 자인지 아니면 악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는 자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면 그가 아무리 신학박사라 해도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방의 종교는 이 세상초등학문을 배운 것으로 마치 그가 진리의 성령을 받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0-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듭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생명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그들의 교리서를 보아도 이 생명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한 말을 하고 있고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는 성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남은 자입니까

이 시대 누가 남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겨 두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칠천인 안에 있는 자인가도 모르면서 그저 남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로마서11:4-6절을 보면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남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를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이 남은 자가 누군가를 깨달아야 하고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입니다 

그들을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가 아닌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합니까

남은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가 바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이세벨에게 속아 음행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9절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바알입니다 

풍요의 신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구약의 바알은 물질적으로 풍요의 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는 물질도 그렇지만 율법의 행위의 의가 있는 것 역시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것임을 말씀을 하고 있고 바알에게 입 맞추는 것임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바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하는 말씀이며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지 않는 것을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열왕기 서에서는 바알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그들이 부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대적을 했고 그들이 멸망을 당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에 대해서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선지자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가 어떻게 부르심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사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농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엘라야를 대신하는 선지자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하면 성경말씀과 같이 열두 겨리 소로 밭을 가는 농부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엘리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나 선지자가 나타나면 이스라엘은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도 알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옷은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정말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엘리사가 누구입니까? 그는 이제까지 밭을 갈고 있는 농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와서 그의 겉옷을 던지니까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보더라도 제사장의 아들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밭을 갈며 살아가고 있는데 엘리야가 그 겉옷을 그에게 던지니까 소를 버리고 따라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입니까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세상의 이치도 모르는 사람들이 공부를 해 보아야 그것은 그저 세상 지식의 문자를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내가 신학을 공부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입니다 

우리 인생이 공부를 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평생을 성경만 보고 연구를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야 가능한 일이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뭐 합니까?

그가 박사면 뭐 합니까? 세상의 이치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복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으로 자기가 공부를 했다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그런 것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21,“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열두 겨리 소입니다 

소가 24마리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농사를 지려면 그래도 괜찮은 농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에 그 소 중에서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농부입니까

선지자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선지자가 돼서 더 풍요롭게 살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살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사의 부름에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의 학문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의 학벌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는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남은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end